시 속 전개에 반전을 활용하기
편집부
교양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못마땅해하셨다.
사람이 교양이 있어야지. 일 년을 가도 책 한 권을 읽나. 한자를 모르니 신문을 읽을 수 있나. 드라마나 보고 질질 짜기나 하고.
사람이 교양이 없으면 배우기라도 해야지. 끼리끼리 모여 웃고 떠들고 화투나 치고 시장 사람들하고 노닥거리기나 하고.
교양 있는 할아버지는 책도 읽고 신문도 보았지만 친구는 없었다.
한양하, 《누가 뾰족박쥐일까?》, 어린이시나라, 55쪽 |
1. 옳고 그름을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두기
부부 생활을 오래 한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해서,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리란 법은 없다. 시 <교양> 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못마땅해한다는 정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2연과 3연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어떤 점을 못마땅해하는지를 말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교양이 있고, 교양이 없다면 교양을 쌓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할아버지의 기준에 교양이 있는 사람은 책을 읽고 한자가 많은 신문도 읽되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더라도 몰입하여 감정 이입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할아버지의 의견에 대한 할머니의 생각은 드러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평가하든 말든 친한 시장 사람들과 모여 웃고 떠들고 화투 치며 놀고 계실 것이다.
4연은 반전이다. 할아버지는 비판하는 사람답게 교양있게 책도 읽고 신문도 보지만, 친구가 없다. 교양이 없어도 친구가 많은 할머니와 교양은 있지만, 친구가 없는 할아버지 중에 진짜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시인은 그에 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만약 시인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비판하듯, 할머니를 비판하는 할아버지를 직접 비판하는 내용을 담으려 했다면 시는 달라졌을 것이다. ‘친구는 없었다.’라는 한 문장만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독자는 쉽게 짐작할 수 있고, 사실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비판할 처지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2. 할아버지의 아집을 에둘러 비판함으로써 오는 시의 재미
할아버지는 정말 ‘교양’이 있는 걸까? ‘교양’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교양 있는 사람’은 책도 많이 읽고, 한자도 많이 알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양이 있는 사람은, 한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내를 ‘교양이 있고 없음’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더욱이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구가 없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이 가진 교양 덕에 타인에게 매력적인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1, 2, 3연 내내 할아버지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4연을 읽기 전까지 독자는 할아버지의 논리에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교양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교양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당위적인 말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할머니의 행동이 ‘교양이 있다/없다’로 비판받을 일은 아님에도 할아버지의 ‘못마땅해하는 태도’를 변화시킬 수가 없다. 그렇기에 4연의 의미가 크다. ‘교양이 있음에도 친구가 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독자는 할아버지의 아집을 시인과 함께 비판할 수 있게 된다.
3. 나가며
시를 분석하며 교양의 뜻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았을 때, 교만할 교(驕), 오를 양(揚)을 쓴 교양을 찾았다. 물론 ‘젠체하고 뽐냄.’이란 뜻의 교양(驕揚)은 요즈음은 흔히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교양에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시인도 교양에 다른 뜻이 있는지 알고 있었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시어의 두 가지 의미가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잘 부합한다는 생각에 시를 해석하는 즐거움이 커졌다.
이 시를 국어 사전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교양 있는 할아버지가 교양(敎養)이 있고 없음을 들어 할머니를 못마땅해하는데, 교양(驕揚)이 있기에 그런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자녀를 함께 낳고 기른 할머니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할아버지가 아닌 시장 사람들과 즐겁게 웃고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