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딜레마1 : 철로를 이탈한 전차 (p36)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중에서)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서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록 들이받으면 인부들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 절박한 심정이 된다.
이 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이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돌려! 죄 없는 사람 하나가 죽겠지만, 다섯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목숨을 구하는 행위는 정당해 보인다.
이제 다른 전차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해 서 있는 구경꾼이다. (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 철로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이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 받기 직전이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다가 문득 당신 옆에 서 있던 덩치가 산만한데 졸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의 목숨을 건질 것읻. (당신이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까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그렇다면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미는 행위가 옳은 일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연히 옳지 않지. 그 남자를 철로로 미는 건 아주 몹쓸 짓이야.”
누군가를 다리 아래로 밀어 죽게 하는 행위는 비록 죄 없는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해도 끔찍한 짓 같다. 그러나 여기서 애매한 도덕적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구하는 첫 번째 예에서는 옳은 것 같던 원칙이 왜 두 번째 예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첫 번째 예에서 우리 반응이 보여주듯이, 숫자가 중요하다면, 그러니까 한 사람을 구하기보다 다섯 사람을 구하는 편이 낫다면, 왜 이원칙을 두 번째 예에 적용해 남자를 밀면 안 되는가? 사람을 밀어서 죽게 하는 행위는 아무리 바람직한 이유를 내세워도 잔인해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을 전차에 치여 죽게 하는 행위는 덜 잔인한가?
사람을 미는 행위가 잘못인 이유는 다리에 서 있는 남자의 의지를 거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남자가 어쨌거나 직접 나설 뜻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 서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건 비상 철로에서 일하던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쩌면 도덕적 차이는 두 경우 모두 죽음으로 끝나는 희생의 결과에 있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의 의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두 경우 모두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할 듯도 하다. 둘 다 죄 없는 한 사람을 희생해서 더 큰 인명 손실을 막겠다는 선택이 개입한다. 남자를 다리 아래로 밀기를 꺼리는 당신의 태도는 소심증이며, 극복해야 할 자세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밀어뜨리는 것은 전차의 방향을 바꾸어 죽게 하는 것보다 언뜻 더 잔인하다. 하지만 옳은 일을 하기가 늘 쉽지는 않은 법이다.
어떤 도덕적 딜레마는 도덕 원칙이 서로 충돌하면서 생긴다. 예를 들어 전차 이야기에 적용되는 원칙을 보자. 하나는 가능하면 많은 생명을 구한다는 원칙이며, 또 하나는 아무리 옳다고 해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는 원칙이다. 많은 생명을 살리자니 죄 없는 사람 한 명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인다. 상황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적절한지 찾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