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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으로 기도]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시편56:13)
[오늘의 성경말씀] 요한복음 21장 9–17절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 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 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 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 을 먹이라
[오늘의 설교 말씀]
숯불 곁에 차려진 아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오래 기억되는 냄새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찌개 냄새가 그렇고, 비 오는 날 흙냄새가 그렇고, 아주 오래전 살던 집의 장판 냄새가 그렇습니다. 어떤 냄새는 수십 년이 지나도 한순간에 우리를 그때 그 자리로 데려갑니다.
오늘 본문에도 냄새가 하나 나옵니다.
숯불 냄새입니다.
요한복음 21장 9절입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새벽 바닷가입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이 배를 끌고 돌아옵니다. 몸은 지쳤고, 마음은 더 지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해변에 누군가 숯불을 피워놓았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밤새 헛수고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다른 말씀부터 하실 수 있었습니다.
“너희가 왜 다시 고기 잡으러 갔느냐?”
“내가 부활했는데도 아직도 믿지 못하느냐?”
특히 베드로에게는 할 말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베드로야, 너 그날 밤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지?”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숯불을 피우셨습니다.
떡을 준비하셨습니다.
생선을 구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와서 먹어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우리 인생에는 빈 그물을 들고 돌아오는 새벽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3절을 보면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로 나갔습니다.
베드로는 원래 어부였습니다.
이 일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짧고 냉정하게 기록합니다.
“그 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밤새 일했습니다.
그물을 던지고, 다시 끌어올리고, 자리를 옮기고, 또 던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0입니다.
빈 그물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그런 밤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기도도 했습니다.
참았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사업을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온 마음을 다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믿었는데 관계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몸을 잘 돌보았는데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소식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를 오래 했는데도 형편이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사람의 마음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생각은 이것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리고 조금 지나면 이런 생각이 옵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나?”
그리고 더 지나면 아주 무서운 생각이 찾아옵니다.
“이제 끝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빈 그물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특히 내가 자신 있던 영역에서 빈 그물을 만나면 더 아픕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 데 초보가 아니었습니다.
평생 물고기를 잡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문가인 베드로도 빈 그물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빈 그물을 만났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잘못 살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빈 그물의 밤이 있습니다.
잘 믿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문제는 빈 그물이 아니라,
빈 그물을 들고 어디로 돌아오느냐입니다.
제자들이 빈 그물을 들고 돌아오는데 그 해변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잡지 못한 밤을 지났다고 해서 예수님까지 사라지신 것은 아닙니다.
내 손은 비었어도 주님은 계십니다.
내 계획은 틀어졌어도 주님은 계십니다.
내가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주님은 여전히 해변에 서 계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결과가 없으면 하나님도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것과 주님이 안 계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못 보고 있을 뿐,
주님은 이미 새벽 해변에 서 계실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이상하게도 밤이 끝나갈 무렵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도 새벽이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씨름하다가 축복을 받은 때도 날이 밝아오던 때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을 때도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하다가 새벽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이 밤처럼 느껴진다면 이것 하나는 기억하십시오.
밤이 깊다는 것은 아침이 멀다는 뜻이 아닙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법입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에 우리 주님은 우리를 찿으시고 만나시고 먹을것을 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힘을 내도록 하실 것입니다.
2. 주님은 우리의 실패를 묻기 전에 아침을 준비하십니다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숯불이 피워져 있습니다.
그 위에 생선이 있고 떡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참 마음이 뭉클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아침을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더 해야 하고,
봉사를 더 해야 하고,
믿음을 더 보여드려야 하고,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신앙에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출발은 언제나 반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식탁을 차린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식탁을 차리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밤새 고생한 제자들에게 신학시험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삼위일체를 설명해 보아라.”
“구원론을 말해 보아라.”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밥 먹자.”
저는 이 장면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참 좋습니다.
사람은 지쳐 있는데 자꾸 설명부터 요구합니다.
“왜 그렇게 했어?”
“왜 그것밖에 못 했어?”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그런데 예수님은 먼저 먹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친 사람에게는 때로 설명보다 밥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충고보다 따뜻한 손길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사람에게는 책망보다 앉을 자리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힘든 날 집에 들어갔는데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 따뜻한 밥을 차려줄 때가 있습니다.
별말을 하지 않아도 그 밥 한 그릇 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아, 그래도 내가 돌아올 곳이 있구나.”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우리가 빈 그물을 들고 돌아와도 우리에게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 주시는 분입니다.
“앉아라.”
“먹어라.”
“좀 쉬어라.”
“내가 여기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우리가 강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숱한 새벽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리를 위해 숯불을 피워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기도였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뜻밖의 도움일 수도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지나간 작은 은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알게 됩니다.
“아, 그때 하나님이 나를 먹이고 계셨구나.”
“그때 하나님이 나를 버티게 하셨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거창한 모습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떡 한 조각으로 오기도 합니다.
생선 한 토막으로 오기도 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오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를 견딜 만큼의 힘으로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한 달 치 힘을 한꺼번에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낼 만큼만 주셔도 됩니다.
내일은 내일의 은혜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은 실패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일을 맡기십니다
아침 식사가 끝났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이 질문을 세 번 하십니다.
왜 세 번입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왜 세 번이나 나를 부인했느냐?” 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과거를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과거 속에 가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과거로 규정할 때가 많습니다.
“저 사람은 전에 그런 사람이었어.”
“쟤는 한 번 실패했어.”
“저 사람은 믿을 수 없어.”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원래 이 모양이야.”
“나는 안 돼.”
“이미 너무 늦었어.”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실패한 것을 내가 안다.
네가 나를 부인한 것도 안다.
하지만 그것이 네 인생의 마지막 문장은 아니다.
“내 양을 먹이라.”
다시 일을 맡기십니다.
이것이 놀랍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쓰려면 이력서를 봅니다.
경력을 봅니다.
실패한 기록이 있으면 망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사람을 맡기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넘어졌다가 은혜로 다시 일어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기도 넘어져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실패한 사람을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자기도 버림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약한 사람의 손을 잡을 줄 압니다.
자기도 누군가의 손에 붙들려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훗날 초대교회의 큰 지도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 힘은 베드로가 완벽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숯불 곁에서 다시 받아들여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
세 번 부인했던 자리 위에세 번의 사랑 고백을 세우십니다.
상처를 지우시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을 덧입히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날 밤에도 숯불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8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던 자리에서 사람들이 숯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요한복음 21장에도 다시 숯불이 나옵니다.
그 숯불 냄새를 맡는 순간 베드로는 그날 밤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여기서 주님을 부인했지.”
그러나 이번 숯불 곁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첫 번째 숯불은 실패의 기억이었습니다.
두 번째 숯불은 회복의 기억이 됩니다.
같은 냄새인데 기억이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주님의 회복 방식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과거를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아픈 기억의 자리에 다시 찾아오셔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주십니다.
전에 울었던 자리에서 웃게 하시고,
전에 무너졌던 자리에서 다시 서게 하시고,
전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느 날 돌아보면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일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 일을 지나며 나는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 빈 그물을 들고 계십니까?
무엇인가 많이 했는데 손에 남은 것이 없어 보입니까?
내가 생각한 것과 인생이 너무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마음속에 말 못 할 후회 하나가 있습니까?
‘나는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듭니까?
오늘 갈릴리 바닷가를 한번 바라보십시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입니다.
물안개가 조금 남아 있습니다.
밤새 지친 제자들이 배를 끌고 옵니다.
그리고 저쪽 해변에 작은 불빛 하나가 보입니다.
숯불입니다.
그 곁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주님은 오늘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조금 앉아라.”
“쉬어라.”
“먹어라.”
“내가 너를 버린 것이 아니다.”
“다시 갈 수 있다.”
우리 신앙은 언제나 거대한 기적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낼 마음 하나를 얻는 것이 더 큰 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고, 한 걸음 밖으로 나가고,
그리고 말합니다.
“그래, 오늘 하루 또 살아보자.”
그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거창한 연설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밥을 먹이셨습니다.
사랑을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면 됩니다.
누군가 실패해서 돌아오거든 먼저 밥부터 먹입시다.
누군가 울고 있거든 이유부터 묻지 맙시다.
누군가 지쳐 있거든 “왜 그렇게 약하냐”고 말하지 맙시다.
그 곁에 작은 숯불 하나 피워줍시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넵시다.
“괜찮아. 밥 먹고 하자.”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예수님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제자들에게도 아침이 왔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도 다시 부름이 왔습니다.
빈 그물에도 아침이 왔습니다.
실패에도 아침이 왔습니다.
눈물에도 아침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맙시다.
아직 주님께서 말씀을 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 아침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 오늘 내 손에 빈 그물밖에 없어도 괜찮습니다.
해변을 보십시오.
주님이 숯불을 피우고 계십니다.
떡이 놓여 있습니다.
생선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밤새 빈 그물을 끌어안고 울었던 사람에게도 주님은 아침을 차려주십니다.
그 아침을 믿으십시오.
그 은혜를 드십시오.
그리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도 다시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아직 너와 할 일이 있다.”
“나와 함게 조반 먹자.”
이 은혜가 여기 모인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마무리 기도
사랑의 주님,
밤새 빈 그물을 들고 돌아오는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새벽 해변에서 숯불을 피워 기다려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의 실패보다 먼저 찾아오시고,
우리의 변명보다 먼저 먹이시고,
우리의 과거보다 더 큰 미래를 열어주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오늘 빈손으로 온 이들에게 따뜻한 아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친 마음에는 쉼을 주시고,
낙심한 영혼에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시며,
후회와 자책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여 주옵소서.
우리도 주님을 닮아 지친 사람 곁에 작은 숯불 하나 피워주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누군가의 빈 그물을 판단하기보다 따뜻한 밥 한 끼와 사랑 한마디를 내어놓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푸른숲참기쁨교회가 상처 입은 이들이 돌아와 앉을 수 있는 해변이 되게 하시고,
울던 이가 다시 웃고,
넘어진 이가 다시 일어나고,
끝났다고 생각한 이가 다시 용기를 얻어 길을 떠나는 은혜의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아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