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연휴 마지막날,
담양 병풍산을 다녀온뒤 통 산을 오르지못했다.
현대인은 모두가 바쁘다더니 나역시 예외는 아닌가보다..
느낌으론, 오랫만에 세인봉을 올랐다.
4년전에' 나,나,나는'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적이있다.
이번에 새로이 그동안 써둔 글을 모아모아 책을 내기로해서 참고삼아 읽을겸 찾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않는다.
하는수없이, 책을 찾던중 아들의 2009년도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산에 가서 한가로이 읽을 심산으로 베낭에 넣었다.
내가 알기로도 열몇번인가 헌혈을 했다더니 대한적십자사에서 받은 조그마한 다이어리인듯한데 군대 전역 석달을 앞둔 시점이다.
스물세살에 내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왔을까 궁금했다.
등반하기 좋은 계절이라 그런지 등산객이 많았다.
무등산은 현재 몸살중이다.
비교적 자연 그대로이던 세인봉 길은 나무 뿌리도 보호하고 보다 편히 등반할수있도록
데크 계단을 깔고 노후된 계단은 보수,단장중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연 그대로 놔두기를 바라는데 넘치는 무등산 사랑으로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린다.
허기야 눈,비올땐 미끄럽거나 질퍽거려 일어날수있는 안전사고에 대비 차원이리라.
온통 드르륵 드르륵 드릴 소리와 일하는분들의 호흡 맞추는 소리로 왁자하다.
힘들게 일하시는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보내려다 귀찮을만큼 많은 인사를 받았으려니 싶어 말없이 오른다.
가마니처럼 생긴 푹신하고 보송한 짚 길을 기분좋게 걷는다.
아저씨라 칭하기엔 좀 버릇없고,할아버지라 하기엔 좀 억울한 연세를 가지신 분들은 침을 잘 뱉는 경향이있다.
침을 밷는데도 도움닫기가 필요한지 준비하는 추임새가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오르면서 자주 목격한다.
별 어려움없이 봉우리에 다달았다.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우선 물부터 마시고 일기장을 펼쳐든다.
말년 병장이지만 혹한기 훈련은 열외가 없다는 투덜거림도있고 전역 19일차,18일차,,,날짜를 세더니 드디어2월 21일
....명 받았습니다.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그러더니 곧바로 복학,개강.숨가쁘게 달리더니 세상에 전역한지 5일만에 한자 급수 자격시험 준비를 한단다.
좀 쉴일이지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일주일도 안돼 난리람.
내가 만든 피칸파이를 커피와 먹으며 느긋이 여유를 즐기는데 남녀 한쌍이 내 주변을 맴돈다.
아차...내가 내 욕심만 부렸구나 조망좋은곳을 나만 오래 차지하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에 허겁지겁 챙겨들고 일어나 다시 오른다.
드디어 세인봉을 지나 서인봉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팻말 앞에서 서로 번갈아 사진을 찍던 여자분들이 사진을 눌러달라기에 찍어주고나니
"아... 아까 책읽던 멋진분..."한다.
뒷모습만 보고도 책을 읽고있어 멋지다면 난 매일이 멋진 사람? 큭큭.
가을이 맞긴 맞구나.
억새풀이 어떤건 와인빛을 띄고 있고 어떤건 흰게 바람에 흔들리고있다.
중머리재에 이르니 그늘이 없어 얼마나 따가운지 서둘러 용추폭포 가는길로 내려섰다
왕래가 잦지않아 무성한 키큰 풀을 헤치며 한참을 내려가니 이내 용추폭포가 나온다.
헌데 가만히보니 도처에 도토리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문득 우리 동네 터줏대감 할머니 3총사가 생각났다.
세분은 새벽마다 공원으로 운동 다녀오시면서 도토리 대여섯알을 주워오시곤했다.
요즘은 줍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천신하기도 어렵다고 투덜대셨는데 잔뜩 갖다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실까?싶어
하나 둘 줍다보니 꽤 많이 모아졌다.
힘들것도 없이 그냥 앉은 자리에서 비잉 돌아가며 줍기만하면된다.
열심히 줍는데 지나가던 어떤분은 행여 들릴세라 조그만 소리로 '다람쥐 밥인데...'한다.
'염려마셔요.다람쥐 밥은 남겨두고 조금만 주울께요' 속으로 대답한다
잠깐인데도 허리에 메는 작은 베낭에 가득히 차서 더이상은 곤란하다싶어 털고 일어섰다.
갖다드리면 깜짝 놀라며 즐거워하실 할머니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나온다.
아들의 일기장 읽기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도토리줍는 인쥐가 되어 정신없이 주워댔구나.
드디어 하산하여 할머니집 앞에서 벨을 누르려다 생각을 고쳐먹는다.
나뭇잎이나 검불을 추려내고 예쁜 바구니에 담아 짜자잔~하고 드리고싶어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에 귀가한 남편은 어디에서 이리도 많이 주웠냐며 나 혼자서 주운걸 믿지않는다.
평소에 욕심도 없어 밤도 한번 쪄먹을것만 줍고 가자는 사람인줄 뻔히 아는터라 여럿이 주운것일거라 짐작한다.
바구니에 가득 담긴 도토리를 보니 보는것만으로도 흐믓하다.
수확의 계절 가을은 풍요로워서 더 좋다.
병풍산의 밤도 먹어야겠고
내가 만든 초코머핀,사과파이는 언제 먹나~
먹은것없이도 무럭무럭 투실해져가는 내 몸이 못마땅하지만
할머니가 만들어주실 도토리 묵은 이 가을에 꼭 먹어야겠다.
첫댓글 다람쥐 밥을 주워왔군요.산에 자주 오르는 분이니 겨울눈이 쌓이면 대체식품이라도..
서울에 계시는 걸로 아는데 따님집에서 쓰셨네요.언니는'책 읽던 멋진 분'입니다,
늘 멋스러움이 배어나와요.아부아님..나도 어제 군대서 휴가나온 아들 다이어리를
보게 되었어요.밖에 친구 만나러 갔는데 책상 귀퉁이서 삐죽 발견된..미안한 기분으로
펼치니,훈련소 간 날부터 이 삼일 간격으로 적어놨지요.긴장하며 읽는데..
'처음 엄마 아빠에게 전화한 날,자꾸 눈물이 나려해서 금방 끊었다'는.사실 짧은 전화가
아쉬웠거든요.'다른 아이들도 울고있었다.'오늘 오후 부대로 갔습니다.입영시키듯 눈물이..
언니 아드님 다이어리도 읽어보세요.그 때 그랬구나 더 이해가 되실 듯해요.언니의 여러기지
일상 이야기를 보며 늘 재미있어요.주변에 펼처지는 엑스트라들의 자세한 상황 몸짓들에서
생동감이..침 뱉으려 도움닫기의 표현까지..잘지내고 오세요..
네~평소대로 일찍 일어났으나 아침 산책 나가기도 싫어 하하에 들왔어요.어제 일찍 올리고 출발한다는걸 잊고서 훌쩍 온걸 알고 얼마나 식겁했는지 딸아이는 안들어오지 함부로 주인 허락없이 pc사용하기도 주저되지 결국 늦었습니다.
서울은 썰렁해요.확실히 광주와는 다르네요.이따가 수원의 아들한테 가기로했어요.수원 화성도가고 수원 왕갈비도 먹자구요.기다려집니다.어제밤엔 딸아이가 엄마표 잡채랑 미역국이 먹고싶다고해서 또 쫘악 해놨죠.먹으면서 말했어요."난 왜 이 맛이 안나지?"똑같은 레시핀데 다르다구요."광주 소고기라 더 맛있는걸까?"광주에서 재료를 다 사갖거든요.
아~울딸의 립서비스일까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드네?
혼자서 무등산에 오르셨군요. 함께 하지 않았어도 훤히 보입니다.계속해서 시간에 쫓기다 보니 산에 가 본지도 오래 되어 산이 그리워 지네요.더군다나 이 좋은 가을에 ...동네 어르신들 좋아하시는 것까지 챙겨 주시는 언니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 보입니다.
무등산의 갈대도 그립구요.언니의 초코머핀,사과파이도 꼭 먹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