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에게는 한 가지 일이 있었다.
바로 8시간 동안 썼던 글이 날아간 것이었다.
내 스스로 나의 예술 작품이라 생각하던, 자부심을 느끼던 그러한 이야기.
읽히기 위하여 존재하였던 문장들이 모두 긿을 잃고 사라졌다.
이 일의 경위를 설명 해 보자면, 우선 나는 글을 테블릿으로 작성하였다.
그렇게 글을 완성한 나는 txt를 스마트폰으로 옮기려 했다.
왜냐하면 다음카페 앱이 스마트폰에만 깔려 있어서, 다음카페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일단 gmail을 사용해 보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글을 쓰는데 사용한 노션 앱은 문장 줄이 바뀔 때마다 수록이 달라져서, 한 번에 글의 내용 전체를 선택하는 것이 어려웠다.
즉, 복사 붙여넣기가 잘 안 되는 환경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꿔서 스마트폰에서 노션 앱을 깐 뒤, 두 기기를 하나의 계정으로 연동해 데이터를 받아 올 생각을 하고있었다.
우선 스마트폰에 노션 앱을 깔고,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을 했다.
그리곤 핫스팟을 틀어서 테블릿도 온라인 상태로 바꾼 뒤, 두 기기를 새로고침 하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아무 변화 없이 화면이 다시 되돌아 왔고, 테블릿은 꽤 오랜 시간동안 새로고침 상태로 화면 중앙에 원이 빙글 빙글 돌고만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고 느끼며 앱을 껐다 켜 보았다.
그리고 앱이 다시 켜지고 나자 내가 쓴 모든 글들은 날아가 있었다.
순간 욕이 나왔다.
그러나 감정이 담긴 말은 아니었고, 그저 일상적으로 흘러가듯이 '뭐야 X발?'이 튀어나왔다.
아직 현실을 자각하지 못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뜬금없이 일이 터져버리니, 현실 감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잠시간 이런 저런 방법으로 글을 복구해 보려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하였다.
나는 테블릿을 옆에 내려두고서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니, 어이가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하다가 밑에 있던 기주를 불렀다.
다른 사람의 반응에 기대고 싶었다.
"기주야, 음료수 먹자."
"오 예."
"..."
"..."
"기주야, 나 글 날아갔어."
그러자 기주는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보이다, 이내 웃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도 웃기 시작했고, 몇 번 웃음을 흘리고 나서는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울면서도 내가 처한 상황이 진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진짜 기깔나게 잘 썼네', 하면서 뽕에 취해 '분명 독자들도 읽으면 되게 좋아하겠지?' 같은 생각이나 하며 실실거리던 외중이었는데.
10분 후 지금은 글 삭제 됐다고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웃기고 말이 안돼서 어이가 없었다.
또 웃으면서도 슬픈건 맞아서 엉엉 울고 말이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감정을 물 쓸어내듯 씻어내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때 기주는 나보고 큰 일 하나 했다고, 배운 거라고 말을 했다.
듣고 보니 정말, 너무나도 절묘하다 싶을 정도로 아다리 맞게 쌓여 온 빌드업이 내가 큰 배움 얻었다 말을 하는듯 했다.
그 시살이 또 우스웠고, 그 와중에도 슬픈 내가 너무 웃겼다.
껄껄껄.
끅끆끆.
많은 것들을 쏟아 내고, 끝내 여운이 가시기에는 그날 밤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부스스한 상태로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며 어제는 그저 배움이 있었다 정도로 끝났었던 생각을 얼추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 전 빌드업이 참 절묘하다 한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이 내가 쓴 글과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였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나는 여행에 대하여 말 하였다.
여행이란 내 스스로 나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나를 나로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내려 놓음으로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애초에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것 따위는 없기에, 내가 내가 아닐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를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거짓이라는 데에서 착안한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지금을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을 만끽하는 상정할 수 없는 존재이고.
고로 내가 내가 아닐 방법 같은건 없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그것을 그저 진실되게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다.
이 세상이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껍데기이고,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오로지 보이는 대로 보이는, 말 그대로 나를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제목을 이것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로 정했고, 이야기의 마지막을 이것은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고 적었었다.
그리고, 정말 기가 막히게도 이 이야기는 삭제됐고, 나는 지금 그 이야기에서 내가 말한 상황에 처해있다.
나는 내 스스로를 증명해 준다고 생각되는 글을 잃었고, 그로서 어제의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오늘을 살고있다.
그러니 오늘이 바로 나의 지금 여기라는 사실을, 내 입장에서는 온 세상이 그렇다고 부추기는 것만 같다.
나는 문득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야기인 전지적 독자 시점이 떠올랐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야기가 끝이 나고, 이후 그 이야기 속 문장들을 직접 살아가게 되는 한 독자의 이야기.
설령 나의 이야기가 사라질 지라도, 그 이야기가 말하는 본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글이라는 다소 불완전한 껍데기로 남을 뻔한 배움을, 그 글을 잃음으로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 오후 시간 현곡쌤께서 강의를 마치신 뒤 나에게 이 글을 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 말하시며 또 글 삭제되면 그래도 좋은 것이라는 말씀을 들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정말 글이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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