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 [김승]
이긴 사람이 한 잎씩
머리부터 떼어 내기로 해
그 다음은 왼쪽 팔과 오른쪽 팔을
그리고 양쪽 갈비뼈
두 다리마저 다 떼어내고
척추뼈만 남긴 사람이 이긴 걸로 하자
먼저 버리는 사람이 먼저 떠날 수 있는 세상
바람에 흩날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의 황홀함은
이긴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이파리를 다 떼어낼 때까지 아픔도 있겠지만
바둥바둥 붙어 있어 보아야 한나절인데
매미가 울기 시작하고
아지랑이는 고물고물
사다리 없이도 하늘을 기어오르는데
물 한 모금 없이 마른하늘을 쳐다보며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건 비참한 일이지
우리
그냥
하나씩 하나씩
가벼워지자
먼저
져
주
면
서
김승 시집 '물의 가시에 찔리다' 에서
얼마나 가벼워지셨을까요
숨을 거두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제 편히 쉬시옵소서
카페 게시글
내가 읽은 좋은 디카시
고 김승 시인의 '가위바위보'
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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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1
24.11.15 22:28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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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 김승 시인님의 명복을 빕니다.
(시짐..시집)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사람처럼 빨리 가셨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먼저 가벼워지면서
져 주었습니다
그렇게 흩날리는 어여쁜
가을 잎은 핑그르 돌면서
자동차 뒤 트렁크에
노란 은행잎 하나 예쁜
시집에 책갈피를 꽂아 놓고 가셨더군요
아 ㅡ슬픔이 온 마음으로
다가와 있구나. ......
꽃 물결 끝없이 이어지는
병실 밖 진 풍경에도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