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싸움
김귀선
며칠 전 식당에서 있었던 일인데 참말로 웃겨서 한번 들어보레이.
“와 대구 사람 욕하능교. 듣자 듣자 하니 참말로 못 참겠네.”
식당 입구에 서 있는데 꽥꽥거리는 큰 소리가 나는 거야. 순간 식당 안의 눈들이 쫙 한곳으로 향했어. 눈들이 꽂힌 곳은 구석 쪽 테이블이었어. 그곳엔 팽팽하게 세운 말끝이 곧 패싸움으로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어.
그날 아는 분이랑 식당엘 갔을 때였지. 그분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문상을 가지 못해 부조라도 전해드리려 했던 거야. 그랬더니 점심이라도 하고 가라며 기어코 붙잡데. 줄 서서 먹을 정도로 맛있는 청국장 집이 있다면서. 점심시간을 피하면 여유롭게 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만난 시간이 딱 그 시간이라 할 수 없이 바로 가게 된 거제. 소문대로 식당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입구 의자엔 벌써 세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어.
사실 아무리 맛있는 집이라고 해도 줄 서서 먹는 식당은 왠지 안 가고 싶어. 먹고 있는 사람도, 그 모습을 보며 기다리는 사람도 상대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는 그 느낌 알제. 입구에 서서 기다리면 자연 남의 밥숟갈 오르내리는 거 쳐다보게 되고, 배라도 고프면 저 사람들 언제 다 먹고 나올까 그 생각만 하게 되잖아. 반대로 식탁에 앉은 사람도 자기를 쳐다보며 식사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싶으니 부담감에 무슨 돈내기 일 처리하듯 밥을 먹게 되잖아. 그렇지만 주위에 마땅한 메뉴도 없어 그 식당으로 가게 된 거지.
입구에서 기다리며 식당 안을 보고 있으니 사람들의 수저가 긴 부리 같았어. 머리 맞대고 부지런히 집어대는 모습이 말이다. 그런저런 생각하며 얼마 지났을까 그렇게 목젖이 찢어지는 것 같은 꽥꽥거리는 소리가 났던 거지.
가만 보이 밥을 먹던 연두색 잠바 남자가 뒤돌아보며 옆 테이블의 양복 남자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어. 양복 남자 테이블에는 그의 마눌인지 일행인지 모를 여자가 두 팔을 날개처럼 접은 채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연배의 대머리 남자가 삐죽하게 목을 빼고 앉아 있었어.
싸움은 금방 소리 기둥으로 솟구쳐 올랐어. 한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나면 상대도 일어나고 한 사람이 앉으면 상대도 앉고 그러면서 팔을 휘저으며 서로 이 새끼 저 새끼 카는데 그럴 때마다 세운 말끝이 상대 가슴팍을 무지막지 공격하고 있었어. 대충 들어 보이 대구 사람이 참 좋다는 일행의 여자 말에 양복 남자가 대구 사람들 아주 안 좋다는 식으로 말한 모양이야. 그냥 한 번으로 안 좋다고 한 거는 아닌 것 같고 옆 테이블의 연두색 잠바가 도저히 못 참고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면 심한 욕으로 쪼아댄 갑더라. 한 사람은 대구 사람 왜 욕하느냐고 카고 상대는 왜 남의 말에 끼어드느냐 카미 말과 말이 풀쩍풀쩍 공중에서 부딪치며 비릿한 비늘을 뿌리고 있었어. 그때였어.
“에이 니기미 씨발 좆같이 시끄러버 밥을 못 먹겠네.”
싸움보다 더 큰 소리가 식당 안을 쨍 가르는 기라. 창가에 있던 남자가 보다 못해 한 소리 내질러뿌랬던 거지. 식당 안은 순간 퍽 하고 웃음이 터졌어. 우리도 킥킥거렸어. 양복 옆의 여자도 픽 웃데. 그와는 상관없이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어. 끝나는가 하면 또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일행을 말려 할 여자가 되레 상대방 남자를 보고 나무라니 양야구가 난 상대 남자가 섣불리 성을 주저앉히지 못해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았던 거야. 어쨌든 식사가 끝난 연두색 잠바가 식당을 나가게 됨으로써 싸움은 일단락되었어. 그동안 우리도 자리가 생겨 횃대에 앉은 닭처럼 차례로 앉았고 배달될 밥을 기다리고 있었어.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숙여 수저부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더군. 그런데 이번엔 카운터 쪽에서 꽥꽥거리는 거야.
“사장 나와보라고 해. 어디갔어. 빨리 데리고 와 보라니깐.”
수저부리를 멈춘 사람들이 이번엔 일제히 고개를 카운터로 향했어. 고함의 주인은 좀 전 싸웠던 양복과 일행인 대머리 남자였어. 무작정 사장 나오라고 서빙 아줌마들을 닦달하고 있는 거라. 물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안 갖다 줬다는 거였어. 아마 좀 전 싸운 것 때문에 자기들을 무시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말려야 할 일행의 여자가 이번에도 목도리 털이 일어날 만큼 팔을 휘두르며 핏대 섞인 말로 서빙 아줌마들을 나무라는 거야. 아이구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더라고. 보다보다 못한 서빙 아줌마가 ‘밥값 내지 말고 그냥 가세요’ 그러데. 아이구 저 말 들으면 더 기분 나빠 펄떡거릴 건데 싶더라구. 좀 긴장이 되더라구. 그런데 영 다른 분위기의 여자 말이 들리는 거 있제.
“한 사람 거만 빼고 우리 둘이 꺼는 받아야지.”
아주 선심 쓰듯 말이다. 다 안 줘도 되니 그냥 가라고 계산대의 아줌마가 몇 번을 반복하니 세 명이 쭈루룩 출구로 가더라구. 그러면서 그냥 가기가 멋쩍었던지 출입문을 닫으려던 여자가 옴팡한 눈으로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이는 거야.
“서빙 똑바로 해. 이런 식으로 하면 식당 망해. 알아?”
그 말의 입김이 미처 따라 나오기도 전에
“니나 똑바로 해라.”
라며 서빙 아줌마가 혼자 말하듯 쫑알거리고 말았어. 식판을 주방으로 들고 가면서 말이야. 나 같아도 저 말이 나오겠다 싶은 게 이해가 가더라구. 한편으론, 저 여자가 들었을 건데 어떡하지.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 털목도리에 바람을 일으키며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오더니 ‘누가 그랬어? 니가 그랬냐? 니가 그랬제?’라며 먹잇감 쫓는 어미닭처럼 주방 안을 휘젓고 다니는 거야. 참말로 막장 드라마였어. 허리 벨트까지 멋지게 찬, 겉으로는 멋쟁이인 여자가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여주나 싶은 게 허탈감마저 들더라구.
겨우 달래 가지고 밖으로 내보내긴 했는데 회오리가 한바탕 빠져나간 것 같았어. 밥 먹던 사람들도 다들 한숨을 푹 쉬더라.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데. 먹고사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며 난동 부린 세 사람은 밥값 주지 않으려 그렇게 쇼 부린 거래. 야 그카이 그들이 지렁이 한 마리 물고 우르르 도망간 닭으로 보이더라 카이.
친구야, 그날 생각하이 우리 사는 기 영판 닭 모습이더래이. 누구 나무랄 거 없이 다들 멋지게 차려입고 어쩌고 캐사도 조금만 자존심 건드리 봐라. 꼬꼬댁 꽥꽥거리며 서로 사정없이 쪼아대니 말이다. 점잖은 척하는 나도 그 상황 되면 안 그럴 거라고 장담을 못 하이. 옆의 닭이 죽어나가는 거 뻐이 보고도 내하고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그저 눈앞 일에 허덕이니 닭장 안의 닭하고 머가 다르겠노. 하하 아매도 우리는 지구 닭장 안에서 비비대는, 어느 거인이 기르는 깃털 없는 닭인지도 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