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전진
이솝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큰 고깃덩어리를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나무 밑에 있던 여우 한 마리가 까마귀에게 말을 시킵니다. “까마귀야! 이 세상에서 너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는 못 들어본 것 같아.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 좀 불러 줄 수 있겠니?” 그러자 까마귀는 우쭐한 마음으로 “깍깍”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참을 소리 지르고 나서 고기를 먹으려고 하니 고기가 없었습니다. 밑을 내려다보니 이미 여우가 그 고기를 물고 도망친 뒤였습니다.
내가 잘났다고 소리를 내면 내 먹이는 떠나가고 없습니다. 내 품 안에 있는 행복도 떠나가고, 사랑, 물질, 축복도 떠나갑니다. 서 있다고 생각하면 넘어지게 됩니다. 잘한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는 언제나 퇴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우리가 일생 동안 겸손하면 하느님 앞에 큰 은총을 받고 귀하게 쓰입니다. 복은 하느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느님을 가까이 할 때에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를 귀하게 쓰시는 분도 장수하게 하는 분도, 복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모두 하느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 임금이 하느님께 버림은 받은 것은 그가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임금으로서 권력도 있고, 인물도 좋고 지혜도 있는 능력자였지만 하느님께 죄를 지음으로써 다 빼앗겼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잘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가까이 해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전진합니다. 영적인 성장이 오면 다른 성장은 뒤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성장을 뒤로 두면 모든 일이 잘되는 것 같아도 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배운 것도 없었습니다. 좋은 옷도 없었습니다. 배경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가까이하고 영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했기에 주님께서 다윗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하느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야고 2,1)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을 마음을 본다.”(1사무 16,7)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좋은 옷을 차려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이 썩지 않는 것으로,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입니다.”(1베드 3,3-4)
우리는 외모에 너무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으십니다. 다윗의 외모는 보잘것없었지만 하느님이 쓰심으로 역사에 기억되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축복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모든 은총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영적인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복은 하느님을 가까이할 때 옵니다. 영적인 부유함이 있습니다. 육으로는 잘살아도 영적으로 가난하면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또 육으로는 가난해도 하느님 앞에 영적으로 부유하면 그 사람은 부자입니다.
부자가 돈이 많아서 천국에 못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 부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못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부유하면 갈 수 있습니다. 스미르나 교회는 가난한 교회였지만 하느님 앞에 부자였습니다.(묵시, 2,9) 그러나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었으나 하느님 앞에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묵시 3,17)라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일찍부터 비단 공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무역이 발달해서 부자가 많이 나오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실 때에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육적으로는 풍족한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첫째, 경배에 잘 참여해야 합니다. 경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경배는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외아드님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경배는 가장 위대한 임금 중의 임금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손에 의해 지음을 받은 인간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피조물과의 만남입니다. 경배는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경배가 귀한 것입니다. 또한 거룩하신 하느님에게 경배를 드리므로 우리도 거룩해지는 시간입니다.
둘째, 봉사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세우신 곳입니다. 이 교회를 내가 섬기고 내가 돌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에 먼지가 쌓여도 천사가 와서 치워 주지 않습니다. 내가 쓸어야 합니다. 내가 어린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고, 내가 안내해야 하고, 내가 봉사해야 교회가 운영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 사랑을 생각하면 내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너무나 작은 일입니다. 우리는 기쁘게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셋째, 하느님 앞에 물질을 잘 사용하고, 하느님의 것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유다인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두 불러 놓고 돈을 똑같이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가서 사고 싶은 것을 사 오라고 한 다음에 돈 쓴 것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를 해 줍니다. 자기 먹을 것이나 장난감만 사 온 아이는 잘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어머니에게 드릴 것도 사고 자기 먹을 것도 산 아이는 잘했다고 칭찬을 합니다. 잘못하고 잘한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 돈 쓰는 법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나그네의 길을 살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신 건강과 지혜, 가정과 직업, 물질을 하느님을 위해 잘 쓰다가 하느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넷째,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경건하게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영적 발전이 있습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축복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모든 은총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을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