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小珍 박기옥
건축에는 문외한인 내가 고택 답사팀에 끼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운이 좋았던 탓이다. 나는 지금 청도군 임당리에 있는 내시(內侍) 집을 보러 가는 중이다.
일행은 스무 명쯤 된다. 다양한 직업군의 모임이라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쥐꼬리만한 상식들을 풀어 놓는다. 내시 집의 외양과 구조에 대해 말하는 이도 있고 내시 제도가 뿌리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그중에서도 의사인 J가 주목을 끈다. 내시의 종류와 수술 방법을 들고나온 것이다. 참석자 대부분이 나처럼 무지하여 초보적인 질문이 많다. 버스 안에 간간이 폭소가 터진다.
K는 내시의 법적 권익과 사회적 지위를 주제로 삼는다. 70대의 원로 법조인답게 거침이 없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피해 가며 쉽고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시도 공을 세우면 충신이 되고, 살인을 하면 살인자가 됩니다”
그런데 어찌할까. 버스를 내려 집안에 들어선 순간 그 모든 유익한 정보들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오랜 세월 인적이 끊긴 흉가는 집안 곳곳에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들이 숨어있을 것 같이 어둡고 음습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뒷 꼭지가 오싹해진다.
우선 집의 구조가 특이하다. 규모는 모두 7동으로 안채와 작은 채, 큰 사랑채와 중사랑채, 사당과 두 채의 곳간으로 되어 있는데 눈이 머무는 곳은 중사랑채다. 중사랑채는 곳간 두 채와 더불어 안채와 ‘ㅁ’자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방향은 임금이 계시는 북향이되 15도 각도로 어긋지게 쪽문이 나 있다. 양반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문이다. 쪽문을 열고 작은 마루로 나서면 북서 항의 안채와 곳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솟을대문 너머 첩의 집까지 내시의 시선 안에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사랑채 판벽에 난 구멍이다. 이 구멍은 안채로 드나드는 사람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안채와 곳간이 연결되어 있으니 곳간으로 드나드는 사람 역시 감시의 대상이다.
시험 삼아 일행 모두가 차례대로 구멍에 눈을 대어 본다. 중문으로 웬 남정네가 안채로 들어서는 순간이 포착된다. 자세히 보니 남자가 아니라 일행 중 한 사람인 비구니 스님이다. 21세기의 젊은 비구니 스님은 등 뒤에서 우리가 엿보는 것도 모르고 안채와 곳간을 흥미롭게 둘러보고 있다.
중 사랑을 버리고 안채 마당으로 내려선다. 평생을 통해 친정부모의 사망 때만 바깥출입이 허락된 부인들이건만 담은 일반 양반 댁보다 훨씬 높다. ‘ㅁ'자의 마당에 서니 하늘마저도 네모지게 보이는데 아까부터 몸이 어째 15도 각도로 기우는 듯하다. 어긋지게 난 쪽문 탓이다. 그 문을 통해 한참동안 안채와 사랑채를 훔쳐보았더니 이제는 아예 몸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이다.
누구던가 몸이 마음을 만들고 마음이 생각을 다스린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한 남자만을 바라보며 감옥과도 같은 집에 사는 여인들에게 그 무슨 의혹이 있어 어긋진 쪽문이 필요했을까. 세상 모든 근원적인 번뇌와 고통을 짊어진 내시 여인들의 한 맺힌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안채 뒤로는 장독대의 흔적이 있다. 독은 없고 풀들만 무성하다. 버려진 장독대가 황량하고 쓸쓸하다. 조선시대 궁중 내시로 봉직한 남편을 받들어 400여 년간 무려 16대에 걸쳐 내시 가계를 이어왔다는 안주인들의 삶 또한 저러했으리라.
평생을 부부로 살면서도 운우(雲雨)의 정을 나눌 수 없고 늙어 의지할 자식마저 낳을 수 없으니 그 외롭고 서러운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부부의 연으로 만났으나 진정으로 일심동체가 되지 못하는 그 기막힌 사정을 누가 알까. 야사에 의하면 내시 여인들이 겪은 절망과 슬픔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장독대 옆 이끼 속에 묻힌 사금파리 몇 쪽이 여인들의 시리고 아픈 한을 말해주는 듯하다.
비구니 스님이 오더니 장독대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어지러운 풀 더미 속에 봉선화 몇 송이가 오롯하게 피어 있다. 그 옛날 이 집 곳간이 가득 차고 큰 사랑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 여인네들의 말동무가 되었음직한 꽃이다.
“손톱에 물들이시게요?”
짐짓 농을 건네는 나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젊은 스님은,
“봉선화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한다.
봉선화의 꽃말이라니? 봉선화도 꽃말이 있었던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랍니다. 이 집에 어울리지 않나요?"
스님이 봉선화의 잎을 가볍게 건드린다. 그러면서 혼잣말인 듯 중얼거린다.
”이 댁 여인들도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였을까.“
내시의 여인들이 손톱에 봉선화물을 들였는지 어땠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것은 세월 따라 어김없이 씨를 뿌려가며 빈 집을 지켜온 봉선화만이 알 일이다. 다만 나는 스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번개처럼 떠오르는 한 마디를 상기했다. 인간은 동물적인 욕구와 높은 정신적 이상을 동시에 가진 다층구조의 존재인 것을 ---.
이 답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특이한 집’ 혹은 ‘재미있는 집’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씨 고택은 내게 더 이상 특이하거나 재미있는 집이 아니었다. 장독대 옆에 봉선화가 처량하게 피어 있는 애잔한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