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kch_35@hanmail.net강철수
봄봄봄, 꽃이 피듯 예서제서 모임이 열린다.
코로나19 삼 년, 동면에 들었던 문학단체들이 줄줄이 모임을 열고 있다. 어제 오후 모임도 그중의 하나다. 일찌감치 집을 나서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설렘에 겨워 발걸음을 앞당기지 않았을까.
마스크 없는 맨얼굴의 문우들, “이 얼마만이야!” 손을 맞잡아 안부를 묻고 더러는 어깨를 감싸 안아 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수많은 문우로 꽉 들어찬 장내, 웃음과 환호가 넘실대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과 재치 있는 진행이 축제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십여 년 전 어느 문예지 발행인 시절이 어제인 양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는 오늘처럼 앉을 자리를 미리 정해주는 지정 좌석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잡지사가 내빈용인 앞쪽의 두어 테이블만 제외하고는 선착순으로 앉게 했다. 그러다 보니 먼저 온 사람이 뒤에 올 친구들을 위해 옆자리, 또 그 옆자리에다 모자, 가방 등을 올려놓기도 했다.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리저리 기웃대다 결국 낯선 이들과 합석할 수밖에 없었다. 초면인 사람과 수인사는 할 수 있어도 담소를 나누기는 어렵지 않을까. 말이 고픈 건 내 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일부가 아닌 전체를 지정 좌석으로 밀고 나갔다. 봄 정기총회에는 등단 패, 문학상을 받는 분이 스무 명 가까이나 되어 꽃다발을 든 축하객이 줄을 설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전체 인원이 보통 백 오륙십여 명, 많을 때는 백 칠팔십여 명까지 올라갈 때도 있었다. 그 많은 인원을 지정 좌석으로 모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원들과 이마를 맞대고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모임 공지는 이미 본지(本誌) 겨울호에 등재된 데다, 한 달 전에는 정중한 초대의 편지까지 보냈으니 기본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이제 남은 건 참석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잘 모실까를 모색하는 일이었다.
지정 좌석제를 위해 왼쪽 가슴에 붙이던 명함판 크기의 명찰을 손바닥 크기의 목에 거는 걸로 바꾸었다. 시작 임박해서 한꺼번에 몰려오는 사람들을 위해 접수대 인원을 다섯 명으로 늘리고 방명록도 두 권에서 세 권으로 늘렸다. 거기다 안내 요원 서너 명도 새로 배치했다.
다음은 참석자 명단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총회 일주일 전쯤, 최종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거나 답신을 보내지 않은 사람에게는 일일이 전화를 걸고, 참석 의사를 밝힌 이에게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가나다순 참석자 명단을 놓고, A4 용지에 그려진 열여덟 테이블을 놓고 좌석 배치에 들어갔다. 테이블당 열 명씩, 최대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람끼리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테이블 번호는 곧장 참석자 명단 앞에 올라갔다.
총회 시작은 오후 네 시, 열한 시쯤 진행요원 열 서넛이 사무실로 와서 준비물을 챙겼다. 정면에 걸 펼침막, 사기(社旗), 상패와 등단 패, 테이블에 세울 번호판 푯대, 팸플릿 이백 부, 참석자 명단과 좌석 배치도 각 이십 부 등 많기도 했다. 국기는 현장에 있을 것이고 음료수는 뷔페를 맡은 곳에서 준비할 것이니, 일 단계 준비는 대충 끝난 셈이었다.
네댓 상자의 준비물을 봉고차에 싣고 가 현장에 내려놓고 근방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했다. 시작 두 시간 전쯤 마무리 준비에 들어갔다. 펼침막 걸기, 마이크 테스트, 조명 점검, 축하 화환과 화분 제자리에 놓기, 테이블마다 명찰과 팸플릿 등 진설하기…. 한 시간 전인 세 시부터는 완전 스탠바이, 손님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접수대를 맡은 이들을 비롯한 모든 진행 요원들 손에는 참석자 명단과 좌석 배치도가 들려 있었다.
첫 번째 손님은 은발의 여성 문우님이셨다. 진행 요원들의 정중한 인사를 받고는 새벽 호박꽃처럼 얼굴이 환해졌다. 방명록에 서명하고 접수를 마치자 곧장 안내 요원에 의해 정중히 정해진 자리로 모셔졌다. 시작 삼십 분 전, 본격적으로 참석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회장인 나와 부회장 네 명이 도열해 허리 꺾는 인사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황송하다는 듯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파안대소(破顔大笑), 출발이 좋았다.
마감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배웅을 위해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갔다. 손을 맞잡아 엘리베이터로 모시고 손을 흔들면 그쪽에서도 손을 흔들었다. 그중에는 “오늘 모임 좋았습니다.”라거나 “수고 많았습니다”라며 엄지척! 해 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문이 닫히기까지는 불과 몇십 초였지만 내게는 뿌듯함을 만끽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걸로 다가 아니었다. 일산 신도시의 내 집까지는 전철로 한 시간 거리, 참석자 명단을 펼쳐 들고 문자를 띄우기 시작했다.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격월간 《그린 에세이》 2023년 7, 8월호 게재)
첫댓글 기억력도 좋으시네요. 회장님 계실 때 행사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준비도 철저하셨고
안내도 배웅도 깍듯했었지요.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받는 인사문자, 잊지않으시는 마음이 참 귀했지요.
새삼 추억이 방울방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