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으로 가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점령한 각 속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그 지역의 왕족과 귀족의 자손들 중 몇 사람을 뽑아 바빌론으로 데려와서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임금은 내시장 아스프나즈에게 분부하여,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다.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 생기고, 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뿐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 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이었다.(1,3-4)
그들은 왕족과 귀족의 자손들 중에서도 까다로운 선발 기준으로 뽑은 인재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니엘과 친구들은 어떤 학문을 가르쳐 주면 금방 깨우칠 정도로 지혜롭고 총명했습니다. 또한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학문에 익숙해 모든 지식을 체계적으로 소화했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이런 인재들을 바빌론으로 데려와서 ‘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우게 했습니다. 여기서 칼데아는 바빌론을 말하며, 문학은 하부 메소포타미아 지방 사람들의 문학을 말합니다. 언어는 설형문자인 아카디아어[영어 알파벳 필기법과는 다른 표의(ideographic) 문자요, 음절(syllabic) 문자]를 가르쳤습니다.
이 근거로 지난 1세기 동안 발굴된 고고학 자료 중에는 칼데아인의 언어들이 설형문자 또는 쐐기문자로 점토판 위에 써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 내용들을 보면 천문학, 수학, 법률 등 다양한 학문의 기초들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이 모든 학문을 배웠다면 3년의 시간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바빌론 제국이 제3세계의 인재들을 데려와서 교육시킨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째, 제3세계의 차세대 지도자들의 실력을 최대한 뽑아내서 바빌론 제국을 만들어갈 핵심 두뇌로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둘째, 바빌론 사상으로 무장한 이들을 훗날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 다스리게 함으로써, 점령지마다 친(親)바빌론 정치 세력을 심어놓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훗날 로마제국도 이 시스템을 따라 했고, 미국에서 전 세계 인재들의 자국의 대학에 와서 공부하게 하는 풀브라이트 장학금(Fullbright Scholarship)를 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임금은 그들이 날마다 먹을 궁중 음식과 술을 정해 주었다. 그렇게 세 해 동안 교육을 받은 뒤에 임금을 섬기게 하였다.(1,5)
또한 임금은 왕궁에서 선별된 음식과 포도주를 각국의 영재들에게 날마다 공급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3년 동안 여러 분야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후에 바빌론 임금 앞에 세워져 나랏일을 했습니다. 강한 나라나 조직일수록 인재 양성 과정이 촘촘하고 치밀했습니다. 바빌론은 단기간에 세계를 제패한 제국답게 무력뿐만 아니라 인재 양성 시스템도 막강했습니다. 군사력으로 제국을 만들 수는 있지만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인재 확보와 육성은 강대국을 만드는 핵심 전략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이 정도의 정성으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요즘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명목으로 지도자들을 쉽게 세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가르침을 받는 동안 각국의 영재들을 임금이 먹는 최고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점령지에서 끌려온 이들에게 바빌론이 얼마나 위대한 대제국이며, 이곳에 와서는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망해버린 옛 조국에 대한 미련을 지우고, 새 주인에게는 충성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려 했습니다.
남은 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
드디어 다니엘과 세 친구인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등장합니다.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습니다.(1,6)
유다 왕국은 망했지만 하느님의 나라가 망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한 다니엘 같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위대한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바빌론은 힘으로 유다를 무너뜨렸지만 다니엘을 통해 하느님의 영적 권위에는 바빌론의 최고 권력자인 네부카드네자르 임금도 무릎을 꿇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역사만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의 섭리를 보아야 합니다.
내시장은 그들에게 다른 이름을 지어 주었다. 곧 다니엘은 벨트사차르, 하난야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자르야는 아벳느고라고 지어 주었다.(1,7)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이나 사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특히 유다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그 이름과 같은 인생을 살라고 기도하면서 지었습니다. 다니엘이란 이름은 ‘하느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 나를 판단할 분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의 친구 하난야는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 미사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아자르야는 ‘하느님의 나의 도움이시다’란 뜻입니다. 이렇게 좋은 뜻의 이름들을 바빌론 왕실에서는 순식간에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했습니다.
유다의 이름들이 하느님과 연관되어 있듯이 바빌론의 이름들 또한 그들의 신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 준 벨트사차르란 이름은 바빌론이 섬기는 신(神)인 벨을 찬양하는 이름으로써. ‘벨이여, 내 생명을 보존하소서’란 뜻이다. 나머지 세 친구들에게 주어진 이름들도 비슷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니엘은 바빌론에 끌려와서 그들의 문학과 언어를 공부하고, 그들이 신들을 숭상하는 의미가 담긴 새 이름을 받는 것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바빌론이 준 이름은 그 나라에서 살면서 가져야 하는 신분증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당에서는 단장님이라 부르지만 회사에서는 부장님이라 불리는 것처럼, 그러나 뭐라고 불리든 간에 마음에 하느님의 이름을 갖고 사는 게 중요합니다.
다니엘이 바빌론 문학을 배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지에 파견되면 그곳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해야 하듯이 비록 포로로 잡혀오긴 했지만 바빌론 왕궁은 그의 선교지였습니다. 바빌론의 문학과 언어 속에는 우상 신들과 관련해 세속적인 문화 요소들도 많았지만 당시에는 세계 최강대국 문명의 문학과 언어였기에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성경만 봐야 하는 건 아닙니다.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근무 시간에는 일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 속에 있으면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몸담고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에서 탁월해질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있게 하신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에 있어 세상과 타협해서도 안 되지만 세상과 연결되는 다리를 아예 끊어버려서도 안 됩니다. 세상이 타락했다고 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취직하지 않고 성직자나 수도자, 선교사가 된다면 어떻게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다니엘은 바빌론에 있으면서 하느님께서 이집트에 자신의 믿음의 선배인 요셉이나 모세를 교육시키신 뜻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신이 사명이라 생각하고 바빌론의 문학과 언어를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지금 있는 곳에서 전문성을 갖추며 살 때, 하느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