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부르심은
철회할 수 없는
부르심이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여전히
하느님 백성이다
(연중 제20주일 2023.8,20)
이사 56:1, 6-7; 로마 11:13-15, 29-32; 마태 15:21-28
지난 주일 미사와 오늘 주일 미사의
제2독서 말씀은 바오로 성인께서
로마인들에게 보내신 서간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
그 내용에서 바오로 성인께서는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자기 자신의 민족에
대한 깊은 슬픔을 토로하십니다.
지난 주 독서 말씀에서 바오로
성인께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라고
기록하십니다.
오늘의 독서 말씀을 통해서 바오로
성인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성인께서는
우리에게 유태인들을 부르신 하느님의
부르심은 비록 철회할 수가 없기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유태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서 멀어지는
것을 허락하셨고, 그리하여, 이방인들을
위하여 복음 말씀이 전파될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교회와
유태인에 대한 내용의 말씀을 좀
드려보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주
슬프고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초대 그리스도교 교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유태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바와 같이, 여전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기 70년 로마인들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유태인들과
그리스도교 교인들 사이의 분열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유태인들과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더 이상 성전에서 함께 예배를
올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어떤 그리스도교 교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곧 유태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서기 309년 콘스탄틴 대제의 칙령은
그리스도교 교회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그와 동시에 그 칙령의 내용에는
유태인들의 종교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적 제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설교가들은 공공연히 유태인을 공박하는
설교를 했으며, 심지어는 암브로시오
성인St. Ambrose과 요한 크리소스톰
성인 St. John Chrysostom과 같은
교회의 성인들까지도 강론을 하면서
유태인들을 공박했습니다. 이렇듯
유태인이라 하면 세대를 거치면서
모조리 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탓으로
욕을 먹고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궁극적으로
수많은 유태인들을 처벌하게 되었습니다.
교황의 명에 의하여 유태인들은 유럽의
각 도시마다 빈민촌 유태인 거리
Ghetto에 갇혀서 살아야만 하게 되었고,
유태인들의 옷에는 하나의 특별한 상징을
해 달고 다녀야 했었는데, 나중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그런 제도를 본받아
실행하기도 했습니다.
유태인들은 그 어떤 상업적인 행위도
모두 다 금지가 되었지만,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교 교인들에게는 금지된,
이자를 받는 대금업만 할 수 있도록
허락이 되어 있었습니다.
유태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자주
전쟁터로 오가던 십자군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몇몇 국가들은 아예 유태인들을
국외로 추방해 버리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강제로 세례를 받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세례를 받은
유태인이 다시 유다이즘으로 돌아간 것이
발각되면 그런 유태인들은 말목에 묶어
세워놓고 태워 죽이는 화형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떠돌아다니는 유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기도 했었는데, 그런
유태인들에게는 국가도 없고 고향도
없었습니다. 이런 처사들도 역시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벌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유태인들의
입장은 좋아지기는커녕 악화일로만
향했습니다.
이를 테면 1492년에 스페인에서 700년
동안이나 국가를 섬기며 충실한 삶을 살고
있던 유태인들은 국외로 추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추방당한 유태인들이 포르투갈로
들어가자 유태인들은 거기서 모진 매를
맞았으며, 강제로 세례를 받게 했다가
나중에는 또 다시 국외로 추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태리와 독일에서는 유태인들이 게토에서만
살도록 강요를 당했고 옷은 유태인임을
드러내 보이는 특이한 옷을 입게 했습니다.
거의 정기적으로 유태인들은 비 유태인
아이들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고발을
당했습니다.
유태인들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죽여
없애기 위하여 우물에 독약을 뿌리고 쥐를
역병에 감염시켜 퍼뜨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고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유태인들은, 특별히, 카톨릭인 채 하며
성체를 받은 뒤에 교묘히 숨겨서 나중에
악마 숭배자가 행하는 의식인 흑미사
black masses에서 신성모독용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고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유태인이 그리스도교
어린 아이를 살해했다는 고발을 당하게
될 때마다 몇몇 유태인 공동체들이
하나의 흉흉한 살육에 전멸당했습니다.
유태인 지역 근방에서 범죄가 일어나게 되면,
그 지역의 화가 난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그 유태인 지역으로 들이닥쳐서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을 모두 산채로 땅속에
묻어버리는, 생매장을 하는 일도 수시로
일어났었습니다.
성주간 동안에 수도사들이 유태인을
비방하면서 강한 분노를 유발하는 강론을
하게 되면 그러한 강론을 들은 교우들은
너무나도 심하게 화가 나서 미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뛰쳐나가 눈에 띄는
유태인들을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들어
놓기 위하여 거리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19세기에는 소위 시온 의정서Protocols
of Zion와 같은 위조문서가 유포되어
유태인들이 세계를 점령할 계획임을
보여주려 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유태인 대학살 Holocaust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바로 이런 위조문서
같은 것들을 이용했습니다.
이와 같은 증오심에 박차를 가하는
태도들은 완전히 사라져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교인인 우리는
바오로 성인께서 “하느님의 은총과 부르심은
철회할 수가 없다.”고 하신 말씀을 늘
우리의 마음 속에 품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달리 말씀을 드리자면, 유태인들은 여전히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며, 그리고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교인들은 지난 2,000여년
동안 행해진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에서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상당한 활약을 했던
과거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교회로서 그러한 과거의
역할에 대하여 뉘우쳐야 합니다. 유태인
대학살 Holocaust을 준비하는 그 뒷배경에
깔린 상당한 부분을 카톨릭 교회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끔찍한 내용의 이야기에
대하여 우리들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하나의
역사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녀들과 우리 후대의 사람들을 위하여
그러한 우리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놓아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역대 그 어느 교황보다
가장 출중한 일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성지를 방문하셨을 때 슬픔의 기도문을
직접 작성하셔서 남아있는 성전의 서쪽 벽의
틈 사이에 찔러 넣으시는 인상적인 사진을
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수 세기에 걸친 교회의 유태인들을 대한
대우는 사랑에 대한 하나의 부끄러운
실패였습니다. 교회가 저질러온 그러한 끊임없는
박해는 교회의 인간적인 면을 반영해 보여 주는
징벌의 거울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인간적인
면이 되는 것이며,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첫댓글 예감사합니다연중주님안에축복감사기도드릴니다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신부님! 너무나 슬픈교회역사이네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요.
🙏❤🙋♀️🙆♂️
찬미 예수님!
찬미예수님 💚
저는 오늘 중학교때 이후 참석하지 못했던 레지오를 참석하였습니다. 늘 하느님의 영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보은.수녀원에 피정강의 가신 신부님이 보내신 사진 입니다요.
감사 합니다
신부님 잘지내시죠--내일 뵙겠습니다
부르심~~
유태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네요 신부님
언제나 기다리시는 하느님처럼 저희도 그들을 기다리며 사랑해야겠습니다.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8월19일]
📖말씀
백성이 대답하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여호 24,16)
💞 묵상
기도생활은 곧 봉헌생활입니다. 봉헌의 의미는 맡기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봉헌된 삶을 살고 있나요? 삶을 주님께 드렸나요? 삶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이 어디로 이끌던 따라가게 됩니다. 나를 어떻게 활용하건, 어떻게 쓰시건, 그냥 쫓아가게 됩니다. 지금 주님을 내 마음대로 끌고 다니고 있나요? 아니면 주님의 이끄심에 나 자신을 맡겨 드리는 삶을 살고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봉헌된 삶을 사는 이들은 주님을 앞장 세웁니다.
🕯기도
자비의 주님, 제가 당신께 저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탁하는 봉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
💒실천해보기
•봉헌한 삶인지 살펴보기
♧복음화발전소 제공♧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8월20일]
📖말씀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마태 15,25)
💞 묵상
우리가 기도를 한다면, 그래서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면, 상상하지 못했던 축복과 은총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얼굴에 온통 행복과 기쁨이 넘쳐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얼굴부터 달라집니다.
만약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면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주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바꿀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
주님, 당신을 신뢰하며 은총에 기대어 살고져 합니다. 깊은 기도 안에서 진실히 만나주시어 단번에 바뀔 수 있는 은총을 내려주소서.
💒실천해보기
•자주 주님께 도움 청하기
♧복음화발전소 제공♧
감사!!! 난 안드레아 축일 무심코 지냈는데 늦었지만 축하드리고 기쁨 행복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