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절모자 (中折帽子)
김소운
어리수군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나이 한 50 가량 되는 중노인 하나가 기찻간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 변소에 갔다 온 틈에 그 자리를 남에게 뺏겨 버렸다.
보통 상식이면 그 자리는 당연히 그 앉았던 임자가 도로 찾을 것이다. 빈 자리에 잠시 앉았던 이도 먼저 임자가 오면 일어서서 자리를 비켜 주는 것─, 아무리 혼란하고 두서 없는 오늘날의 도덕으로도 이 정도의 상식은 지켜지고 있다.
내가 본 그날 찻간의 사정은 좀 다르다. 여섯이 마주 앉은 그 좌석의 다섯까지는 일행이요, 노인의 뒷자리를 차지하고 내어주지 않는 그 청년도 역시 이 일행의 한 사람이다. 이 일행은 대체 몇이나 되는지, 그 밖에도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 자리가 없어 서 있는 사람 , 오징어니 엿, 캬라멜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보아 대개 짐작으로는 한 십여 명쯤은 되는 듯하다.
그 중에 시골 농부 차림인 중노인 하나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가 잠시 빈 새 불법 점거를 한 그 일행 중의 하나는 응당 내심으로는 좀 미안도 했을 것이나 세를 믿고 한 번 버티어 보자는 판이다.
게다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중노인, 아무리 재 보아야 시골 촌뜨기로 밖에는 안 보이니 상대는 만만한 상대이다.
일행은 모두 군복 차림이다. 군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프레스를 붙인 신문 기자도 아니다. 25, 6에서 3십 전후 , 승승하고 기세 등등한 데다 모두 웃녘 말씨다.
그 웃녘 말씨들이 자리를 돌려 달라는 중노인을 경상도 사투리로 놀려대 보인다. 사투리 흉내 낸다는 것이 혼선이 되어서 더러는 전라도 말씨도 튀어 나온다.
"자리를 달라꼬요? 자리는 못주겠읍니데이……. 안 주면 엇짤낭기요?"
"그늠의 영감쟁이 바래이……, 자리가 어디 당신 자린기요? 돈주고 샀읍니께이……?"
"나도 좀 앉아 보장께로……. 나도 돈 내고 표 삿습니뎅이……."
중간 중간에 폭소 흥소가 반주를 한다. 물론 사태를 여기에 이끈 근본 책임은 중노인 쪽에 있다. 엄연한 태도나 어조로 한 마디 주장만 하면 아무리 낯가죽 두꺼운 친구라도 선뜻 자리는 비어낼 것이다. 그런데도 이 경상도 친구의 표정이란 비굴과 아부(阿附), 요령 부득의 미고소(微苦笑) , 군복 차림에 기를 눌린 탓도 있으려니와, 적으로 하여금 엿볼 틈을 얼마든지 가지게 하는 그런 흐리멍덩한 태도인데, 그렇다고 양보도 단념도 하는 것은 아니다.
"모자를 놓고 갔는데요. 내 모자는 어디 있소. 비끼주이소(싱글벙글 히죽히죽)."
" 헤헤 ─ 그늠의 영감이 야, 인제는 모자 달라카네……, 모자는 언제 매꼈던기요(와 하하하 깔깔깔깔)."
한 친구가 저 앉은 뒤를 더듬더듬하더니 구겨진 중절모자 하나를 집어 낸다.
" 보이소야 , 이게 당신 모잔기요? 참 그 모자 좋네……. 이런 모자 하나, 요새 얼마나 한는공……."
"그 영감이 그래 볼 영감이 아니랑께로, 나가오리를 쓰고……. 참 저런 영감이 속 내용은 진짜 하이까라랑이께……(하하하하, 킥킥킥킥)."
이런 수작이 오가고 십여분 , 나는 최대의 인내력으로 이 비겁한 일당의 작전 효과와 경상도 친구의 그 늑직늑직하고 우유부단한 응수를 보고 있었다.
보려고 보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고 싶고 귀를 막고 싶으나 내가 선 자리가 바로 그네들의 옆이요, 내 앞에선 역시 푸른 군복 외투를 입은 그 일행의 하나도 이 연극에 한 몫 끼어서 낄낄대고 있는 터이다. 시선이라도 돌려 보려니 발을 움직일 도리가 없고 찻간은 꼼짝 못할 정도로 초만원이다.
그러자 한바탕 박장대소가 일어나면서 그 중절모자가 한 친구의 손에서 뽈처럼 획 하고 저쪽 건너편 좌석으로 던져진다. 거기 앉았던 그 좌석의 일행이 모자를 집더니 이번에는 또 이쪽으로 던진다. 세 번째는 그 모자가 방향을 고쳐 <아라비안 나이트>의 비행 담요처럼 승객들의 머리 위를 날아서 내가 서 있는 훨씬 뒤에 가서 떨어진다. 또 폭소다.
"그라지 마이소, 남의 모잘 갖다가……."
경상도 양반은 잘못 걸렸다는 난처한 표정인데, 그래도 그 히죽히죽하는 비굴한 웃음은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 주먹이 앞에서 낄낄거리며 웃고 섰는 그 군복 외투의 등을 한 대 내려 갈기려고 우쭐거린다. 내 의식이 간신이 그것을 누른다.
아무리 따져도 이것은 심심풀이의 찻간 유머는 아니다. 웃음과 농담으로 철면피의 심리를 캄프라지하자는 비루한 책략이다. 게다가 세를 믿고 흥청대는 그 방약무인. 「야, 이 육시(戮屍)를 해서 구어먹을 놈들아, 지금 네 형제 네 조카들이 전선에나 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데…… 네놈들이 입고 있는 그 옷이 부끄럽지 않으냐!」
그렇게라도 소리를 질렀으면 속이 시원하련마는, 한강 투석(投石) 같은 정력의 낭비를 내 50 고개의 이성분별(理性分別)이 인제 좀 참아 두라고 한다.
나는 앞에 선 친구의 등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들기면서,
"여보시오, 장난들이 좀 심한데요. 인제 그쯤 해 두지요. 곁에서 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 두시구려……."
하고 목소리만 좀 크게 그 일행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한 마디했다.
앞에 선 친구가 고개를 뒤로 돌려 일순 나를 노려 보더니, 내 눈초리가 좀 험했던지 슬그머니 고개를 도로 돌려 버린다. 일행들의 시선이 내 쪽에 일제히 쏠렸다가 그것으로 잠잠해 버리고 이 차중 촌극은 끝이 났다.
그 경상도 친구가 자리를 도로 찾은 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찾았다 하더라도 그 친구의 뱃심으로는 거기 앉아서 견딜 재간은 없었으리라.
나는 수신(修身) 교사도 사회 개량가도 아니다. 이런 경우에 내게 상관 없는 일이라 하여 보아 버리고 잊어 버릴 수 있다면 오죽이나 신경이 편하랴. 그러나 남의 나라 아닌 내 나라에서 이러 광경을 한 번씩 목도할 때마다 입술이 마르고 살이 내린다. 필경 나는 도회인의 생리와는 거리가 먼 영원한 촌뜨기일 수밖에 없다. (1952년)
첫댓글 김소운 선생님의 작품에는 늘 비애와 해학이 같이 보입니다.
그 시대상과 인물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