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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로방스집꾸미기 원문보기 글쓴이: 희 야 님
지구상에서 “가장대체 불가능한”생물종, 그들의 행방불명!
꿀벌 없는세상, 결실 없는가을
(로완제이콥스지음/노태복옮김/우건석 감수
에코리브르/2009년 3월/334쪽/16,000원)
■ 책 소개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꿀벌이 사라진다면 4년 안에 인류도 멸종할것이다.”세계 환경단체인 어스워치(Earth Watch)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가장대체 불가능한 생물 5종 가운데 벌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고2006년, 일하러 나갔던 꿀벌들이 한꺼번에 실종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른바‘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이다. 양봉가와 농부들이 당황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굴지의 아이스크림 회사 하겐다즈는 꿀벌 연구에 25만 달러를 투자했다. 꿀벌의 수가 줄어듦에 따라 아이스크림 재료로 쓰이는 달콤한 꿀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CCD는 농업과 식량위기로 직결된다. 대규모농업은 더 이상꿀벌 없이 존속할 수 없다. 그러니 벌을 키우려면 먹이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공식품을 먹이기 이전에도 벌은 수백만년을 잘 살아왔다. 벌도 우리처럼 “개발이 불러온 질병”을 앓고 있다. 농산업은 과일, 견과, 채소를 수분시키는 벌에 의존하는데 벌들의 소멸은 계속 진행 중이다. 시스템은 산산조각 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CCD라고 칭할만한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드러나는 증상들을 보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 즉 벌에 대한 중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정체불명의 군집 붕괴 현상을 거론하면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는 플로리다에서 감귤농업은 15년 후까지 지속되지 못하리라고 보고 있으며, 오렌지 꽃 벌꿀도 운명을 마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해결책을 제시하며 절대로 꽃을 피우는 식물과 가루받이 매개자(곤충, 특히 벌꿀)에 대해 경이로움에 찬 시선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을 사라지게 하지는 말자고 역설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저자로완제이콥슨
음식과환경, 그리고이 둘사이의 연결고리를집중적으로탐구하는작가다로「더 아트오브이팅」 「뉴욕 타임스」 「뉴스위크」 「와일드어스」 「원더타임」 「컬처 &트래벌」 「NPR.org」 등 여러 매체에 기사를 썼다. 지은 책으로는 『초콜릿의 비밀(Chocolate Unwrapped)』 과 『굴의 지리학(A Geography of Oysters)』 이 있다. 2010년에 출간될 『아메리칸 테루아르(American Terroir)』를 집필 중이다.
■ 역자노태복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환경·생명 운동관련 시민 단체에서 해외 교류 역할을 맡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생각하는 기계』 『문 더스트』『‘동물’에 반대한다』『영과 무한사이 거침없는 숫자 이야기』『현대수학사60장면』 등이 있다.
■ 감수 우건석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미국 오리곤주립대학교 곤충학과에 방문교수로 근무했으며 일본곤충학회, 미국곤충학회, 영국왕립곤충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꿀벌 응애의 생태와 방제, 양봉산업이 국가농업 발전에 미치는 영향등을 주로 연구해왔다. ‘한국에 발생한 중국 가시응애와 꿀벌의 방어 패턴에 대한모델’을 비롯해 각종해외 학회와 심포지엄에서 40여 차례 논문을 발표했다. 아시아양봉학회 한국대표로 25년간 일해 왔으며 2008년 부터는 아시아양봉학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차례
프롤로그 : 2006년, 11월 플로리다
01 미국에서 맞는 아침식사
02 꿀벌은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03 붕괴
04 원인을 찾아서
05 서서히 퍼지는 독
06 2007년 11월, 플로리다
07 아몬드의 향연
08 신경쇠약 직전의 벌들
09 회복, 그리고 러시아벌
10 아름다운 생명체의 탄생
11 결실 없는 가을
에필로그 : 첫서리
부록 1 아프리카벌이 알려준 지혜
부록 2 벌 기르기
부록 3 꽃과 곤충이 어울려 사는 정원 가꾸기
부록 4 벌꿀의 치유력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미국에서 맞는 아침식사
식물은 성장해서 꽃을 피우고, 그 꽃은 다시 씨를 품은 과일이 된다. 그리고 과일은 땅으로 떨어져, 거기서부터 다시 모든 과정을 반복한다. 꽃이 없으면 과일도 없다. 이것은 자명한 이치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반드시 과일이 열린다는 보장은 없다. 과일이 열리려면 꽃가루를 받아들이는 중앙의 암술머리로 꽃가루가 이동해야 한다.
1억 5000만년간 곤충은 꽃을 피우는 식물의 짝짓기를 돕는 몸종 역할을 맡았다. 곤충이 없다면 오늘날 지구상의 식물들은 대부분 번식을 할 수 없다. 수천 종의 곤충들이 꽃꿀과 꽃가루를 먹고 산다. 8000만년 전쯤 곤충의 일종인 벌들이 특별히 그것을 주식으로 삼았다. 2만종의 벌 가운데 오직 한 종만이 꽃꿀을 남달리 애용해 왔고 아울러 양봉업을 이끌어왔다. 그 곤충은 바로 학명이 아피스 멜리페라(Apis mellifera)인 서양종꿀벌이다. 이 작은 생명체가 어떻게 산업사회의 먹이사슬 중 많은 부분을 그 조그만 등으로 떠받칠 수 있는지도 이 책의 주제 가운데 하나다.
수없이 다양한 곤충들이 가루받이를 도울 수 있기는 하지만, 오직 꿀벌만이 5만개의 간편한 이동식 벌통에 담겨 엄청난 양의 순도 높은 꿀을 모을 만한 열정을 갖고 있다. 이 열정 덕분에 우리는 벌꿀이라는 자연의 기적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 대다수 미국 벌들은 짐칸 바닥이 평평한 트럭에 실려 한해 내내 농촌을 돌아다니며 미국 작물들을 가루받이 시킨다. 하지만 우리에게 왜 그처럼 많은 꿀벌이 필요한 것일까? 그 작물들은 꿀벌이 나서기 이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던가? 예전에는 양봉가가 밭이나 숲에 벌통을 놓을 수 있게 해달라고 농부에게 부탁하곤 했다.
하지만 복합적인 원인 때문에 유럽과 미국에서 꿀벌 개체수는 급감한 반면 가루받이가 필요한 농지 면적은 늘어났다. 결국 자유시장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작물에 비해 꿀벌이 충분하지 않으니 농부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꿀벌을 풀어 가루받이 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역사에서 대부분은경작지 근처 벌통이 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후 농기계와 농약의 도입으로 농장이 가족 단위 경영에서 거대 기업형으로 확대되자 점차 꿀벌 대여는 농장의 필수과정이 되어갔다. 1960년대에는 곁가지로 하던 양봉일이 1990년대에 이르자 양봉가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탈바꿈했다. 처음에 이 일은 일부지역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양봉가들이 전국을 돌며 사업을 할지, 아니면 아예 양봉업을 포기해야 할지 기로에 서면서 차츰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던 2006년 가을, 위태롭던 미국양봉업의 밑바닥이 마침내 허물어졌다. 불가사의한 증후군이 미국 전역에 걸쳐 꿀벌 봉군을 휩쓸어가기 시작했다. 2차세계 대전 기간에 600만개였던 벌통수가 2005년에는 260만개로 줄어들다가 종국에는 사상 최초로 200만개 아래로 떨어졌다. 금세 그 증후군은 사태의 원인만큼이나 모호한 이름을 얻었다. 즉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는 명칭이다.
당시 언론은 이 현상을 처음 접했을 때 줄여서 CCD라고 불렀다. 캘리포니아의 아몬드농장이 2월에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 CCD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경작자들이 벌들을 충분히 확보하려고 한꺼번에 몰려들자 가루받이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2004년에 50달러였던 벌통 하나 값이 2007년에는 150달러로 올랐다. 양봉가들은 아몬드 가루받이만으로 2억 달러 이상 의 연간수입을 올렸다. 반면 미국전체의 꿀 생산 가치는 겨우 1억 5000만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석유가격과 더불어 그 같은 가격 폭등은 곧 다가올 몰락의 전조다. 플로리다의 양봉가들은 ‘다리 여섯 달린 가축’을 트럭에 싣고 수천 킬로미터를 돌아다니며 돈을 번다. 이런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으며, 아무리 혜택을 제공해본들 오늘날 미국작물들을 모두 가루받이시킬 만큼 벌을 충분히 확보할 방법은 없다. 양봉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몰락하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25만종 가운데 4분의 3이 야생 가루받이를 시켜주는 동물 덕분에 번식한다.
사는 곳이 어디든 주변을 둘러보면 이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보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자세히 둘러보면 어려움에 처한 세상이 드러난다. 우리 농업은 야생에서 가루받이를 담당하는 꿀벌 덕분에 지탱되기는 하지만, 꽃을 피우는 식물 가운데 24만9,900종에게는 이들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 일은 지역의 토착곤충들이 담당한다. 덧붙이자면,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렵지만 이 식물 종 가운데 상당수가 서식지 감소, 살충제 중독, 외래 식물이라는 삼중고에 처해 있다.
근본적으로 지구의 번식력이 의심스러운 상황임에도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간다. 농작물수확량이 늘상 늘어나고 과일과 채소가 흙에서 거의 저절로 자란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생산감소 시기로 무섭게 진입하고 있다. 미국중서부지역에서 뭐라도 자라게 하려면 농부들은 화학비료로 들판을 뒤덮어야만 한다. 전국 각지의 농부들이 타지에서 꿀벌을 데려오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풍성한 수확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1985년 마거릿 애투드는 소설 『시녀 이야기』 에서 어느 암울한 세상을 묘사했다. 이 소설에는 불임 여성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자 젊은 시녀를 씨받이로 사들여 아이를 낳게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뒤틀린 상황은 수십 년간 우리의 들판에서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지금 현재, 젊은 시녀마저 죽어가고 있다.
원인을 찾아서
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계는 바이러스, 기생충, 살충제 등 모든 아이디어들을 다 건드려보았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W. 이언 리프킨 박사는 바이러스를 추적했다. 다행히도 CCD 사태가 일어나기 바로 몇 달 전에 꿀벌 유전자의 염기 서열이 전부 규명되었다. 리프킨은 CCD 피해를 입은 봉군 네 군데에서 동사한 벌들을 표본으로 가져오고, 그 대조군으로는 건강한 봉군 두 군데서 표본을 택했다. 그리고 모든 시료에서 염기 서열을 알아보았다. 리프킨은 몇 가지 놀라운 점을 포착했다. 특히 어느 한 가지가 붕괴된 봉군 유전자 대부분에서 검색되었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이스라엘 급성 마비 바이러스(Israeli acute paralysis, IAPV)는 2004년에 이스라엘에서 처음 확인된 꿀벌 바이러스로서 CCD가 발생한 봉군에 있던 30개 시료 가운데 25개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건강한 봉군에서는 21개 시료가운데 단 한 개에서만 나왔다. 또한 CCD가 일어난 봉군뿐 아니라 호주에서 수입된 벌과 중국산 로열젤리에 서도 발견되었다. 「사이언스」 논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리자 의혹의 구름이 특히 호주 상공에 짙게 깔렸다. “CCD가 발생한 벌통에서 나온 벌 시료는 모두 호주에서 수입되었거나 호주산과 섞여 지냈다. 호주에서 미국으로 벌이 수입되기 시작한 해가 2004년이므로 봉군이 비정상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한보고가 나타난 시기와 일치한다.” 또한 “CCD 발생 봉군에서 IAPV의 염기 서열이 우세한 것과 더불어 IAPV에 감염된 벌의 수입과 CCD 사이에 시기와 지리 면에서 중첩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IAPV를 CCD의 주요표지라고 볼 수 있다”라고 정리했다. 물론 과학자들은 호주가 지구상에서 CCD에 걸리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호주 벌들이 IAPV와 무사히 공생하도록 진화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게다가 세심한 신경을 써서 ‘주요표지’와 ‘원인’을 구별해서 말했다. 아마 IAPV가 CCD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CCD가 벌의 면역 체계를 파괴함으로써 IAPV가 번창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구더기들이 직접 죽이지 않은 동물 사체에 득실거리듯이 이 바이러스도 붕괴된 봉군에 잔뜩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이 나서자 ‘주요 표지’는 연관성만으로도 유죄로 몰렸다. 하지만 사태를 차분히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여러 가지 점들이 석연치 않음이 분명해졌다. 호주 벌이 CCD와 공생하도록 진화했을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사이언스」 에서 분명히 밝힌 대로 붕괴된 양봉장에는 대부분 호주에서 수입된 벌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987년 이래 호주에서 꿀벌을 수입해 갔던 캐나다는 어떤가? 캐나다는 미국보다 CCD피해를 덜 입었기 때문에 단지 병든 호주산 꿀벌 탓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캐나다 벌은 늘 미국으로 날아들기 때문에 20년 전에 캐나다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든 오래전에 미국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한편 유럽은 호주에서 벌을 수입하지 않았는데도 봉군붕괴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그렇다면 IAPV는 어찌된 영문인가? 이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한 이스라엘 과학자 일란셀라는 IAPV에 감염된 벌은 날개를 떨고 마비 증상이 나타나며 벌통 바로 바깥에서 죽는다고 설명했다. 진실이 어둠에 묻혀 있던 중 탐조등이 환하게 켜지자, 지금까지의 증상이 CCD와는 조금도 일치하지 않음이 분명하게 밝혀진 셈이다.
2007년 11월, 호주를 원인으로 지목했던 이론은 큰 타격을 입었다. 2002년부터 미국농무부실험실에 냉동되어 있던 시료에 IAPV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2002년이라면 호주산벌이 수입되지도 않았을 때이다. 드디어 호주는 누명을 벗었다. IAPV의 유전암호가 알려졌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어디서나 이 바이러스를 뒤졌다. 그 결과 이 바이러스는 새로운 침입자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전 세계에 퍼져 살면서 인간이 자기를 찾아낼 기술을 발전시키기만을 기다리던 벌 병원균임이 밝혀졌다. 누구나 동의할 만한 유일한 사실은 CCD가 발생하려면 여러 원인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벌이 약해져 있을때만 병원균이 CCD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IAPV가 캐나다 양쪽해안에서 발견되었지만 『토론토글로브 앤 메일』은 ‘벌 바이러스, 터무니없는 말일까?’ 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놓았다. 이 기사에서 캐나다의 저명한 벌 학자인 마크윈스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IAPV는 다가올 거대한 비극의 단역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곧 닥칠 진짜위기는 ‘농업 붕괴 현상’이며, 이것은 농업 자체에 타격을 가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한 CCD 연구팀은 IAPV가 주요 원인이 아님을 보여주는 자료를 자체적으로 갖고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IAPV는 CCD의 원인도, 주요 표지도 아닌 듯했다. 모든 CCD 벌통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바이러스는 없었다. 초정밀 탐색에서 얻어낸 가장 중요한 정보는 모든 꿀벌들이 비정상적으로 여러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건강한’ 벌이라도 속은 병들어 있었다. 에이즈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당시 발견된 사실은 그게 전부였다.
나름의 성과가 있다 해도, 마치 가을이면 사람들이 코를 훌쩍이고 몸이 아픈 이유가 독감바이러스 때문임을 발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맞는 말이겠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는 아직 인체에 사는 바이러스를 퇴치할 효과적인 치료법을 내놓지 못했다. 벌은 더더욱 가망이 없을 것이다. 비록 양봉가들이 돈을 들여서 벌의 몸속에서 허용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어떤 것인지 가려내는 검사를 한다손 치더라도 이윤이 대폭줄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
신경쇠약 직전의 벌들
오늘날 꿀벌들은 그 조상이 단 한번도 겪지 않았던 압박에 직면해 있다. 그들이 당면한 문제들의 목록은 이렇다. 꿀벌 응애, 기문 응애, 작은 벌집딱정벌레, 아프리카 ‘킬러’ 벌, 미국 부저병 세균, 곰팡이, 각종 바이러스 따위다. 이 밖에도 살충제, 항생제, 영양실조, 도시화, 세계화, 지구온난화에 맞서고 있다.
CCD 연구 집단은 꿀벌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IAPV 외에도 많은 세균을 발견했다. 이 연구집단의 바이러스학자인 에드워드 홈즈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벌 개체들이 엄청나게 많은 바이러스를 몸에 달고 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CCD에 걸린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모두 그랬습니다. … CCD와 관련성이 많은 바이러스도 있지만, 바이러스들이 벌 집단과 상호 작용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가 더 큰 의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전혀 모릅니다.” CCD 증상을 보이지 않았던 벌들조차 온갖 바이러스가 가득했다. 벌 세계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죽어가는 벌 집단에서 바이러스 한 종이 검출된다면 아마 바로 그 바이러스 탓일 것이다. 만약 거기서 바이러스가 14종이나 검출된다면 면역 체계가 붕괴된 탓일 것이다. 그리고 면역 결핍의 대표적인 원인은 만성 스트레스다. 무엇이 벌에게 스트레스를 가하는 걸까?
꿀벌의 일생은 봉아에서 안살림 벌을 거쳐 먹이 구하기 벌로 이어지는 삶을 느리고 체계적으로 살도록 설계되어 있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여러 병원균들이 200만년 동안 꿀벌과 나란히 살아왔지만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 있다. 매년 풍부한 꽃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들판에는 온갖 꽃들이 넉넉히 피기 때문에 벌집에 충분한 먹이를 저장할 수 있고, 언제나 구할 수 있는 먹이도 있다. 벌의 삶은 느리고 예측 가능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8년 현재 대부분 벌들은 그런 삶을 살지 못한다. 몇 주 만에 트럭에 실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며 고과당 옥수수시럽만 공급받고 살충제와 항생제를 투여 받는다. 그런데도 기생충의 공격에 시달릴 뿐 아니라 외래 병원균에 노출되어 있어 요즘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우리처럼 꿀벌들도 한두 가지 스트레스 요인쯤은 털어버리고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어쩌다한 번 응애에 시달리고 다음번에 안 좋은 먹이를 먹어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스트레스요인들이 한꺼번에 작용하고 날마다 생활 리듬이 똑같이 반복되면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위축된 면역 체계, 생식능력 손상, 수명 단축, 성장장애 등이 발생한다. 결국에는 한번 밀기만 해도 벼랑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만다.
과학기술도 단단히 한몫을 거들었다. 대량 이주, 살충제 아피스탄과 체크마이트를 이용한 파우스트식 흥정, 널리 퍼진 질병과 기생충 만연 등이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에 일어났다. 꿀벌 유전학자인 톰 린더러는 이렇게 적었다. “벌에게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을까? 제트 비행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를 쓰면서 부산하게 떠돌아다니는 생활방식에 잘 맞도록 설계된 생물종은 없다. 하지만 꿀벌은 그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상황이다. 2006년 꿀벌 유전자가 해독되자 꿀벌은 해독과 면역 체계를 전담하는 유전자가 다른 곤충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새로운 침입자를 제대로 상대할 수 없는 생명체인 것이다. 그 다음 불청객이 언제 유럽 꿀벌을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더 많은 무단침입자들이 나타나 다시 한 번 꿀벌을 위기에 빠트릴 것이 분명하다.
지역개발이 불러온 질병
2008년에 스웨덴 과학자토비아스 올로프손과 알레얀드라베스쿠에스는 벌의 위 속에서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유산균 10종을 발견했다. 인간의 창자 속에 살면서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유산균과 비피더스 미생물같은 균들이었다. 여름기간에 처음 검사했을 때 벌들은 나무딸기 꽃과 무성한 미소식물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에는 자당(蔗糖)용액을 먹고살았다. 좋은 세균들이 사라지고 부저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이 가득 번식해 있었다. 이듬해 봄이 찾아와 린넨이 꽃을 피우자부저병 세균은 사라지고 다시 좋은 세균들이 나타났다. 이 천연 세균들이 병원균으로부터 벌을 지켜내는 첫 방어선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항생제를 먹으면 나쁜 균과 아울러 유산균도 제거된다. 그런 까닭에 유산균 보충을 위해 요구르트를 마시라고 하는 것이다. 유산균이 얼마나 있어야 타일로신(Tylosin)같은 항생제를 투여해도 벌이 생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항생제는 사람보다 벌에게 더 치명적이다. 흥미롭게도 타일로신은 소에게도 투여된다. 소의 반추위(rumen)는 세균으로 채워진 발효탱크다. 하지만 축사에 갇혀 사는 소가 풀 대신 강제로 옥수수를 먹으면 반추위 속 환경이 변하면서 세균들을 파괴한다. 그 결과 소는 병원균의 숙주신세로 전락한다. 이때 항생제 타일로신을 써서 병원균을 퇴치한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에서 마이클폴란은 항생제 투여를 멈추면 어떻게 되느냐고 수의사에게 묻는다. 답은 이렇다. “소의 사망률이 높아지고 품질도 나빠집니다. 행여나 소에게 풀과 공간을 넉넉하게 준다면 저는 실업자신세가 됩니다.” 이러한 사정은 벌도 마찬가지다. 방목은 비싸지만 옥수수시럽은 싸다. 따라서 집단양봉에서 생기는 병을 퇴치하려면 항생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항생제 사용은 뜻밖의 병을 불러올 우려가 있기에 결코 저렴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든, 무엇보다 급선무는 병든 벌이다. 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병들고 있고 지난 수십 년간 병들어 있었다. 질병과 과로와 스트레스로 기력이 쇠진하다보면 특정 시기에 다다른다. 바로 이 시기에 ‘개체 수를 점차 줄이는 질병’이 나타난다. CCD를 일으킨 요괴를 찾는 데 실패하자 양봉업계의 시각은 실용적으로 바뀌었다. 곧 벌을 더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 CCD 연구자들이 줄곧 권유한 내용도 바로 그것이다. “봉군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꿀벌 응애 수치를 낮추도록 한다. 노제마병원균 수치도 낮게 유지한다. 필요하면 추가로 영양을 공급한다.” 초식동물이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옥수수와 콩을 섞어 먹듯이, 꿀벌도복잡한 생체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완벽하게 공급받으려면 여러 종류의 꽃가루가 필요하다. 그 덕분으로 아기를 만들어내고 뇌와 면역 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자연은 계절별로 다른 꽃을 피워냄으로써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꽃이 오직 한 종류만 있는 곳으로 실려 가서 몇 주 동안 머물며 가루받이 작업만 해야 한다. 그 꽃이 고급 단백질을 줄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닐 수도 있다.
대다수 벌들이 처한 상황은 정상상태와 한참 거리가 멀다. 요즘은 벌이 나약한듯하면 곧 바로고 과당 옥수수시럽을 먹이는 방법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만약 봉군이 굶주리면 그런 먹이가 실제로 기운을 불어 넣을 수 있다. 굶주리는 처지에 아무것도 먹지 않느니 콩 모양젤리과자 몇 개라도 먹는 편이 낫다.
CCD가 일어나 벌의 영양공급에 대한관심이 늘면서, 양봉가들도 든든한 영양공급의 중요성을 인식해가고 있다. 하지만 옥수수시럽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벌에게 단백질 셰이크를 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양봉가들은 달걀, 양조용 효모, 꽃가루, 설탕을 비롯한 온갖 비밀스런 재료들을 섞어 자체적으로 이것을 만들기도 한다. 제품으로 판매되는 것도 있다.
2006년 11월 15일부터 2007년 2월 7일까지 벌 연구소는 캘리포니아 베이커즈필드 야외에 있는 260개 봉군을 검사했다. 이곳은 주변에 먹이를 찾을 데가 없기 때문에 벌들은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공급되는 먹이에 의존해야했다. 봉군을 여럿으로 나눈 다음 대조군 한 곳만 고과당 옥수수시럽을 먹이고 다른 집단은 각기 다른 단백질 보충제를 먹였다. 제공된 단백질을 활용하지 못해 20일 내에 죽은 봉군도 있었다. 옥수수 시럽을 먹인 벌들은 겨울을 버텨냈지만 새끼는 낳지 못했다. 양육 벌들은 단백질이 봉군 내로 들어오지 않으니 단백질 축적량을 높이기 위해 여왕벌이 낳은 알들, 심지어는 낳고 있는 알들까지 거의 모조리 먹어 치웠을 것이다. 이 벌들이 아몬드 숲으로 가면 금세 죽고 만다. 한편, 메가비(단백질 보충제)를 먹인 집단은 2006년 11월보다 새끼들을 3배나 많이 낳았다. 건강한 새끼 벌들은 쑥쑥 자라 어엿한 성체가 되었다.
화학약품보다는 영양가 있는 먹이로 벌을 키우는 편이 바람직하다. 벌은 생명체이기에 양봉가도 그처럼 넓은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좋은 일이 생긴다. 하지만 벌을 키우려면 먹이를 주어야하니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된 것인가? 우리가 가공식품을 먹이기 이전에도 벌은 수백만년을 잘 살아왔다. 자연이 제공하는 균형 잡힌 식단을 대체할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여느 가축들처럼 벌이 건강하려면 좋은 방목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곳은 점점 더 찾기 어렵다. 늘어나는 도로와 대형 쇼핑센터와 지역개발로 인해 야생화는 자꾸만 줄어든다. 대초원 지대에 깔린 클로버도 조지아주에 자라난 골베리도 차츰 사라져 간다. 양봉가들은 꽃을 찾으러 더 멀리 이동할 수밖에 없다. 플로리다의 아팔라치 콜라강을 따라 펼쳐진 니사나무 숲은 가수 밴 모리슨이 가장 좋아하는 벌꿀 산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강바닥을 준설하고 상류지역의 물길을 나누는 등 개발압력으로 쇠퇴하고 있다. 만약 가뭄지역인 애틀랜타주에서 아팔라치콜라 강물을 끌어간다면 니사나무 벌꿀과는 영원히 작별이다.
사태의 원인이 지역개발이든 단일경작이든 결과는 똑 같다. 인간은 물론이고 벌이 살아갈 자연이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 이 대목에서 양봉가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나 벌을 위해서 이런 생활방식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언급해야겠다. 그들은 단지 망하느냐, 아니면 이동식으로라도 양봉업을 계속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먹고 살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하나씩 계속 추가해온 것이다. 지게차, 대형 트럭, 항생제, 살충제, 곰팡이 제거제, 호주산수입 벌, 메가비 따위는 양봉업을 계속 꾸려가기 위한자구책이었다. 양봉가들은 놀랄 만큼 자원이 많다. 대부분은 근근이 살아가는데도 벌통200만 개를 한꺼번에 잘 다룬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한계가 있다. CCD는 양봉업 몰락을 예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성소년보리스카의 예언이 다음기사에 떴던데요
굳이 그 예언아니더라도 현재 곳곳에서 이상징후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보리스카의 예언도 늘 있어왔던 멸망예언이라고만 보시나요?
전 특정 사상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기후변화, 환경변화등의 지표가 바뀌는것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고,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요즘 일련의 기사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스티븐호킹조차도 200년이내에 지구를 탈출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거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