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속 ‘허생전’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이 1780년에 압록강을 거쳐 북경과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이때의 견문을 정리하여 쓴 책이다. 이 책에는 박지원이 평소 생각하던 이용후생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나라에 승복하지 않던 시기에 청나라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북학론 등의 사상체계는 근대적 사상의 발현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박지원은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했는데 1768년에는 박제가 등과 만나면서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벽파에 속한 박지원은 생명에 위협까지 느끼다 결국 황해도 금천 연암협에서 은거한다. 그의 호가 연암으로 불린 것도 이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지원은 독서 역시 그러한 진솔함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올바른 독서법으로 '냄새 맡고, 소리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곱씹어' 볼 것을 권했다. 자기의 마음이나 생각으로 미루어 그 책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사상이 문학에서는 '역설'과 '반어'로 나타나 있다.
<연암의 소설, 허생전 줄거리>
조선 시대 남산골에 허생이라는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아내에게 먹고 살길을 찾지 못하면 도둑질이라도 하라는 말을 듣고 허생은 집을 나가버린다. 그는 집을 나와 서울에서 가장 큰 부자인 변씨를 찾아가 변씨에게 1만 냥을 빌린다. 허생은 이돈으로 과일과 말총 등을 매점 매석해서 몇 년 동안에 30만 냥을 만든다.
또한 허생은 도적들을 무인도로 데리고 들어가 농사를 지어 은 100만 냥을 번다. 그러고는 무인도에 정착한 도적들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며 살라고 훈계한 뒤, 50만 냥은 바다에 버리고, 나머지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체한 다음, 10만 냥을 변씨에게 돌려준다.
다시 무일푼이 된 허생에게 변씨는 먹고살 만큼의 재물을 때때로 가져다주면서 친해진다. 변씨는 허생에게 어영대장 이완을 소개하고, 하룻밤의 대화를 통해 집권층의 헛된 명분론을 비판한 허생은 이튿날 사라져버린다.
<작품해설>
<허생전>에는 조선 후기의 북학파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우선 백성의 생활을 넉넉히 하자는 실학정신이다. "1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라는 허생의 탄식에는 조선의 경제 규모가 너무 작으며 상업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비판이 들어 있다.
또한 나라의 경제를 튼튼히 하고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만들면 사회 질서는 저절로 잡히는 것인데 집권층의 무능으로 나라꼴이 엉망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허생전>의 마지막 부분에는 당시 집권층에 대한 비판이 잘 나타나 있는데 변씨와의 대화에서 허생은 뛰어난 인재가 등용되어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2025.1.1.>
https://youtu.be/jLNKT-4j6UE?si=64VIt-Fc_fR_y_-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