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가 익을 무렵
서영희
기장 수변공원에는 앵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 오랜만에 보는 앵두나무라 반갑기 그지없었는데 아쉽게도 앵두가 달려있지 않다 . 한창 볼을 비비며 수줍게 익어갈 때인데 눈을 씻고 보아도 단 한 톨조차 남아 있지 않다 . 누군지 모르지만 어찌 이리도 모질게 다 따버렸나 싶다. 하기야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공원길이니 앵두가 남아나겠는가. 나라도 보자마자 따고 싶어 몸살이 났을 텐데.
앵두를 생각하니 입안에 시큼하게 침이 고인다. 내가 유년을 보냈던 집에도 우물가에 앵두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야트막한 산 밑에 자리한 우리 집 안에는 넓은 남새밭이 있었는데, 앵두나무는 그 한쪽 귀퉁이에 서 있었다. 아주 큰 고목이었다.
앵두나무뿐만 아니라 대추나무, 가죽나무, 감나무 등 유실수가 많았지만 그중 백미는 단연 앵두나무였다. 언제부터 앵두나무가 그곳에서 자라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항상 그 곳에 있었고 내 기억이 시작된 그 때부터 있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터를 잡은 어르신이었을 수도 있겠다. 보통 유실수들은 해거리를 하는데 앵두나무는 해거리도 없이 외려 해마다 담장을 넘어 옆집까지 가지를 늘어뜨리며 열매를 많이도 매달았다.
지금이야 계절과 상관없이 온갖 과일이 넘쳐나지만, 그땐 제철에 나는 과일 외에는 먹을 수가 없었다. 특히 음력 사오월엔 유독 과일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딸기와 토마토가 있기는 했지만, 어린 내 입맛에 토마토는 달지도 않고 맛이 이상했다.
그러나 앵두는 새콤달콤한 것이 딸기보다 더 달고 상큼했다. 그리고 얼마나 예쁘던지 오밀조밀 비좁도록 촘촘히 달려 빨갛게 선홍빛으로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손이 갔다. 오죽하면 어여쁜 입술을 비유할 때 앵두 같다고 했을까.
앵두가 익을 무렵이 되면 할머니와 나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앵두가 익기가 바쁘게 따서는 어딘가에 숨겨 놓았다가 5 일장이 서는 날이 되면 내다 팔곤 했다. 할머니보다 먼저 일어나야만 잘 익은 걸 딸 수 있는데 , 내일은 내가 먼저 일어나야지 하고 결심을 해 보았지만 번번이 할머니의 승리였다 .
새벽잠이 없는 할머니의 부지런을 어찌 당할 수 있었으랴 .
눈만 뜨면 앵두나무 밑으로 가 서성거렸지만 내 손이 닿는 높이엔 이미 할머니의 손이 거쳐 간 뒤라 설익고 푸른 앵두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괜히 엄마에게 짜증을 내면 엄마는 ‘애들이나 먹게 내버려두지 .’ 하며 가끔씩 볼멘소리를 했지만 아무도 할머니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 할머니가 야속했다 .
생각다 못해 할머니가 따 논 앵두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 꽁꽁 숨겨 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짐작 되는 곳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곳은 밤낮으로 커다란 자물통이 걸려 있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
그러던 어느 날 뒷산에서 그네를 뛰다가 할머니를 보았다. 뒷산은 우리 집과 경계를 같이하고 있었다. 집을 싸고 있는 담장이 탱자나무 울타리였다.
그 울타리 한 곳에 가시를 도려내고 개구멍을 만들어 드나들었다. 산이 곧 집이기도 했다. 그곳은 겨울에는 산대를 타고 , 여름에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땀을 말렸으며, 정월 대보름에는 달집을 만들어 태우는 마을의 놀이터였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시민공원 같은 곳이다.
그 곳은 민둥산 이었지만 군데군데 소나무 군락이 있었다. 그리고 소나무 가지에는 항상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삼을 섞어 꼰 밧줄을 매어놓고 그네를 뛰면 우리 집 마당과 아래채가 훤하게 다 보였다. 나는 거의 매일 그네를 뛰었다 . 아주 높이 날아올라 소나무 가지를 꺾어 올 만큼 그네를 잘 뛰었다.
그날도 나는 그네를 타고 힘껏 날아올랐다 . 초여름 바람이 시원했다 . 눈 아래 우리 집 마당이 운동장만큼 커보였다.
그때 할머니가 안채에서 나와 곧장 도장으로 가더니 사다리를 들고 나와 앵두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상추밭에
사다리를 놓고 그 위에 올라 내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앵두를 따기 시작했다. 6 월의 태양을 받은 앵두가 한껏 농익은 날이었다.
언니와 내가 앵두를 딸 때는 상추를 밟는다고 꾸중하던 할머니가 상추를 지근지근 밟다니 . 나는 그네를 타면서도 숨죽이며 바가지에 앵두를 따서 담는 할머니를 지켜보았다. 얼마 후 할머니 바가지엔 앵두가 가득 채워졌다. 그걸 들고 도장으로 들어갔다. 도장문은 훤하게 열려 있었다. 할머니는 말아 논 멍석 뒤편에 손을 넣더니 접이식 의자를 꺼내었다. 아버지가 쓰던 낚시용 의자였다.
그 위에 올라서서 높은 선반위에 포개둔 양철 통을 꺼내 거기에 앵두를 쏟아 붓고는 다시 의자를 접어 넣고 나왔다. 그리고 도장 문을 잠그고 그 앞에 있는 절구에 열쇠를 숨기는 게 아닌가. 예상대로 도장이 할머니의 보물창고였다. 할머니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물건들은 도장 안에 있었다.
그래봐야 농사도 안 짓는 쇠락한 종손 집의 도장에 숨겨둘 게 뭐 그리 대단했겠는가. 기껏 바닥을 보이는 쌀뒤주와 조 , 수수 , 옥수수 등 다음해 양식을 위한 종자용 씨앗이 천장에 흔들리며 걸려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할머니의 도장이 가장 의심이 가는 장소이기는 했다. 그러나 문을 열 방도가 없었던 차에 열쇠를 찾았으니 이제 앵두는 내 손안에 있는 셈이었다.
할머니만 없으면 도장으로 가서 앵두를 한 움큼 집어먹곤 했다. 그런 나를 엄마는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암묵적 동조라고나 할까.
할머니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씀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손주들 중에서 나를 유독 좋아해주었던 할머니 역시 모른 척 했던 건지도 모른다.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 젖을 만지고 자란 나를 그까짓 앵두 때문에 싫어 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낮엔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며 선 머슴애 같이 뛰어놀고는 밤엔 이불을 걷어차며 험하게 자는 막내손녀를 꼭꼭 눌러 잠재웠던 할머니.
잔칫집에라도 가면 떡이나 전 같은 걸 손수건에 싸서 들고 와서 나에게만 살짝 주던 할머니신데 ...... 이제는 기억도 풍화되어 화석이 되어간다. 앵두가 익을무렵 내 삶의 중요 등장인물이었던 할머니와 어머니도 이제 세상에 없다 그곳에 오래된 그림마냥 앵두나무 한그루 서 있던 풍경만이 아릿한 향수를 불러 일으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