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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박성복군의 어머니 권남희씨가 5일 오후 박군의 장례식을 치른 뒤 경기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하늘공원’ 납골당에서 아들의 유골함을 매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포토 스토리 단원고 ‘성복이네 가족’과의 20일간 동행 취재
<한겨레>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실종자였더 단원고 박성복군 가족을 지난달 28일 진도체육관에서 만나 이들의 일상을 20일간 카메라에 담았다. 박군 가족은 이런 참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록되어야 한다며 어렵게 사진 취재를 허락해줬다.
성복이의 장례를 치르고 닷새가 흘렀다. 청와대 근처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길바닥에서 어머니 권남희(43)씨가 밤을 지새우고 돌아왔다. 10일 오후 아내를 맞이한 박창국(45)씨가 방귀를 뀌었다. “오빠가 그동안 긴장해서 방귀도 안 뀌더니,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왔네.” 박군의 큰고모 박지영(43)씨가 오빠의 방귀 소리를 반겼다. 무거운 기운이 가득했던 집안에 잠시 엷은 미소가 번졌다.
‘이만큼 먹고살 수 있는 게 누구 덕이냐’며 한사코 정부 편을 들던 아버지 박씨는 세월호 사고로 성복이를 잃고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친구들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말하던 고모 박씨도 “애국심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그 배에 금궤라도 실려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어떻게든 배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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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복이 영정 들고 청와대로] 박성복군의 어머니 권남희(43·왼쪽부터)씨, 막내고모 박희영(35)씨, 큰고모 박지영(43)씨가 9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청와대로 향하던 중 경찰로부터 제지당해 도로에 주저앉아 대통령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 |
<한국방송>(KBS)에 화가 난 유족 200여명이 9일 밤 8시30분 경기 안산 합동분향소를 떠나 서울 여의도에 있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어머니 권씨, 큰고모 박씨, 막내고모 박희영(35)씨가 성복이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버스에 올랐다. 가족들은 한국방송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
여자들은 다른 유족들과 함께 청와대로 갔다. 그 길도 경찰이 막았다. 영정을 가슴에 품은 여자들은 경복궁 앞에 멈춰선 버스에서 내려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영정사진을 들고 가던 큰고모는 “애들 사진을 들고 오밤중에 이게 뭔 생쇼냐”며 눈물을 떨궜다. “세상을 떠난 아이들과 유가족의 상처가 뭔지 대통령에게 직접 말하고 싶은 것뿐인데 시위대 취급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성복이는 옷 정리도 잘 못하고 이불도 제대로 안 개는 아이였다. 어머니 권씨한테 혼도 많이 났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부터 부쩍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여자친구도 사귀며 조금씩 어른이 돼가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 키운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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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 박창국(45·가운데)씨가 2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위치한 시신검안소에서 아들 박성복군의 시신을 확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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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 못보낸다] 박성복군의 어머니 권남희(오른쪽부터)씨, 큰고모 박지영씨, 둘째 고모 박진숙(36)씨, 아버지 박창국씨, 작은아버지 박경국(40)씨가 5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연화장에서 화장장 안으로 들어가는 박성복군의 관을 붙잡은 채 오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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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가슴에 묻던 날] 박창국씨와 권남희씨가 5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연화장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아들 박성복군의 화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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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구나] 박창국(45)씨가 지난 6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인근에 위치한 상가에서 장례식 때 아들 박성복군의 영정사진을 들었던 김민수(18·단원고3)군에게 새 신발을 선물한 뒤 끌어안고 있다. 박씨는 장례식에서 김군이 구멍난 헌 신을 신은 채 영정사진을 들고 있던 걸 보고서 새 신을 꼭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
성복이는 안산와이엠시에이(YMCA) 동아리 티오피(T.O.P)의 회장이었다. 5일 아침 동아리 선배 김민수군이 성복이의 영정사진을 안고 안산 단원구 한도병원 장례식장 장미실을 빠져나왔다. 성복이는 가족들이 새로 이사한 집과 자신의 체취가 묻은 단원고 2학년 7반 교실, 자신이 다니던 생수교회 예배당을 차례로 둘러봤다. 수원시 연화장에서 작은 함에 담긴 성복이는 안산시립 하늘공원에 안치됐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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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불던 하모니카 불어] 박성복군의 어머니 권남희씨가 지난 5일 저녁 장례식을 마친 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와 남편 박창국씨 옆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다. |
첫댓글 아무리 냉정을 찾으려 노력해도 또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성장해서 멋진 청년에서 노년으로 이어졌어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의 크나큰 죄악과 불찰로 아까운 목숨을 잃게 했구나 가여운 성복아! 성복아ㅠㅠㅠㅠ
이 눈물 언제나 마를런지, 이 아픔 언제나 가실런지요?
유족들과 실종자들의 사연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서
아이들 보내고 읽자 마음먹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을지...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할지...
늙고 나이들어 아프다가 세상을 떠나도 눈에 선한데 수학여행이라며 얼마나 뜰떠서 간 아이들이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만 믿고 자리를 지키다 마감한 생을 보면서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납니다. 신호등,우칙통행 하나 실천하지 못하면서 남의 탓만하는 비겁하고 치사한 어른들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면 우리가 변해야 하고 사회가 변하고 나라가 변해야 합니다. 무전기나 붙잡고 몸보신만 하던 해경이 해체된다고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