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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목요일 바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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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단지 풍경이 아닙니다. 몸 담그는 놀이터도 아닙니다. 바다는 생명을 짓고 품는 뿌리입니다. 바다가 위태로우면 바탕을 잃는 것입니다. 땅과 바다는 한 덩어리로 읽어야 하고, 바다를 사랑하는 것은 바다와 바닷속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함부로 버리고 흘려보낸 것들이 얼마나 많은 바다생명을 위험에 빠트렸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13쪽
세면대와 화장실에서 바다를 떠올릴 수 있다면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화장실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변기는 바다의 입이다. 집집마다,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바다의 입’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가?
15쪽
땅끝에서 돌아서면 그 자리가 바로 땅의 시작이 아니던가.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땅끝은 바다의 끝이기도 하고,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다.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관점을 바꾼다는 것이다. 사랑의 끝이 어찌 고통스럽기만 하랴. 정말 안타ᄁᆞ운 것은 새로운 시작을 만나지 못하는 끝이다. 정말 슬픈 것은 끝을 만나지 못하는 시작이다. 끝과 제대로 만나는 자만이 진정한 시작, 진정한 처음을 만날 수 있다.
17쪽
지난 세기 중반 미국의 기독교 아나키스트 애먼 헤나시는 소금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뉴욕 한복판에서 당국의 불합리한 정책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자주 벌였다. 기자나 행인들이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는가?”라고 물으면 헤나시는 물으면서 이렇게 답하곤 했다. “내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도 나를 바꾸지 못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 못지않게 세상에 의해 바뀌지 않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문학보다 세상에 의해 바뀌지 않으려는 문학이 결국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다. 물론 수시로 사회적 압력에 휘둘리는 나 자신에게도.
35쪽
몇 년 전 이탈리아 리구리안 해안의 슬로피시 마을을 방문했다. 작은 배로 20여 가구가 협동조합을 만들어 가까운 바다에서 잡은 멸치로 엔초비(유럽식 염장멸치)를 만들어 생계를 잇는다. 해안의 한쪽은 여행객들이 수영을 즐기고 그 옆에는 그물을 손질하고 어부가 직접 잡아온 생선을 판다. 도로 건너 성 안쪽 마을에 들어서면 앞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을 독특한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바다가 있어 어민이 있고, 어촌이 존속된다. 그곳을 찾는 여행객은 이를 기꺼이 소비한다. 그들은 수산물ㅇㄹ 파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파는 것이며, 여행객은 어촌과 바다의 가치를 구매한다. 이들의 관계는 과거의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가 아니라 공동생산자로 자리매김한다. 슬로피시는 이렇게 서로 존중하며 지지하며 공감하고 이해하는 그물망을 엮고 있다.
50쪽
독일에서는 갯벌에 만들어진 여름목초지를 모두 구입해 염습지로 복원하는 사업을 한다. 정부가 소유자에게 거래가격의 3~4배를 주고 구입한다. 물론 복원된 염습지 주변은 중요한 관광지가 된다. 이러한 습지는 공익 목적이므로 비싸게 구입을 하더라도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이다. 새겨 보아야 할 정부의 태도이다.
51쪽
지역민의 반대에 대해 우려하는 질문을 하자, 이 사업은 ‘공익 목적’이므로 전혀 개의치 않으며, 반대측 농민에게 연방정불ㄹ 상대로 소송을 걸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목적과 이용이 완벽한 공익이므로 소송에서 연방정부가 패할 수도 없으며, 소송 당사자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인센티브의 수혜를 전혀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진정한 공익이 아니면서도 강제로 토지를 헐값에 수용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들 나라들은 ‘완벽한 공익’이라는 전제 아래 주민의 토지도 비싸게 살 뿐만 아니라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부의 태도에서 감명을 받았다.
75쪽
제임스 러브록이 ‘가이아’ 이론을 이야기했을 때 ‘지구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지구 스스로 정화할 수 있고 원래 상태로 되돌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아무리 오염시켜도 지구가 알아서 다 회복시키겠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이아는 인간을 우선에 두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가이아를 파괴하면 인간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조절작용을 할 거라는 겁니다. 지구는 스스로 자정하며 존재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이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제 스스로 두려움의 촉을 세우고 우리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공존할 뿐입니다.
78쪽
윌리엄 블레이크는 ‘새장에 갇힌 한 마리 고빈 새는 온 하늘을 분노로 떨게 한다. 주인집 대문 앞에 굶주려 쓰러진 한 마리 개는 제국의 멸망을 예고한다’고 했다. 바다의 실종, 세계의 몰락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제주 바다가 전하는 말을 듣는다.
80쪽
‘제주해군기지 곳곳이 암초’란 기사가 나왔다. ‘앞초’ 때문에 15만 톤급 대형 크루즈선과 항공모함이 입출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역경제가 위기이며 자주국방이 어렵게 됐다는 기사였다. 당연히 ‘암초’를 파괴해 걷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9년 6월, 제주특별자치도는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했다. 대형 선박이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에 입출항하기 위해서는 신규 30도 항로와 수십 18미터여야 하는데, 10미터 안팎 낮은 수심에 ‘암추’가 큰 규모로 발견되었기 떄문이다. 그 ‘참초’가 국가지정문화재이며, 제주의 탁워하고 보전 가치가 높은 멸종위기 산호충류 서식지 ‘산호정원’이었다. 문화재청은 제주도의 신규 30도 항로를 일단, 불허했다. 제주도와 대한민국 해군은 무모하게, 안전한 항로도 확보하지 않은 채, 항만을 우선 만든 것이다. 천연기념물로 겹겹이 둘러친 바다에 집을 짓더니, 이젠 산호정원을 걷어내고 길을 내 달라고 한다.
86쪽
조간대는 밀물엔 잠겼다가 ᄊᅠᆯ물이 되면 드러나는 지역을 말한다. 흔히 갯벌이라고 한다. 오래전 다큐멘터리 <갯벌은 살아 있다>를 통해 사람들은 깊은 바다가 아닌 조간대가 생태와 환경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또 간척이 곧 발전이고 자연을 힘으로 이긴 인간의 위대함을 뽐내는 업적이라 생각하던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갯벌은 흔히 생각하듯 끈적끈적하고 질척거리는 펄로 된 공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갯벌은 곧 조간대이다. 그 가운데 펄로 된 곳도 있고 모래로 된 곳도 있으며 자갈이나 바위로 이뤄진 곳도 있다. 펄 위를 뛰어다니는 짱뚱어와 말뚝망둑어, 칠게며 농게 그리고 맛, 바지락, 꼬막 같은 조개들은 정말 매력 있는 갯벌 생물들이고 식량자원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제주도 바위 조간대는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저 풍경 또는 사진 배경으로만 보인다. ‘흔히 ’나무는 보고 숲은 못 본다‘는 말을 하지만, 이곳에선 반대로 풍경은 보되 그 안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이 존재는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종 다양성을 비교하자면 제주도 바위해안과 서해안 갯벌은 체급 자체가 다르다.
108쪽
함께한 친구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오갯동안 기어 다니며 바다를 경험한 건 처음이라 했다. 이 낮은 자세의 경험은 독특하다. 기어 다니는 것은 긴간이 가장 먼저 했던 움직임이 아닌가. 함께한 사람들은 이 몸의 언어를 계속 기억하게 된다. 저절로 마음의 낮은 감정들을 일으키는 몸의 자세다.
111쪽
나는 미술이 자연을 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이 그렇게 위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은 위대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뿌리 깊은 욕구와 맞닿아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예술은 주술과 종교와 더불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몇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다. 예술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폴 블룸(Paul Bloom)에 따르면 공감은 행동을 일으키는 매우 강력한 기제이지만, 상당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거나 귀엽고 예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존재에게만 공감력이 발휘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르거나, 추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하여 공감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왜 아직 태어나지 않는 다음 세대에 대핸 공감하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며 그들로부터 너무나 귀한 것들을 빼앗고 있으면서도, ㄱ들에게 미안하거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가? 대답은 보이지 않고 상상할 수 없기 떄문이다. 그렇다면 미술, 더 나아가 예술이 이 지구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상상을 하게끔 하는 것이리라. 아직 태어나지 않는 생명들이 만날 지구는 정말 상상을 못하겠다. 하지만 바로 지금 바다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수많은 생명이 있을 텐데, 이 고통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예술이 이 역할을 보다 더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일단 바다에게 미안하고자 한다.
119쪽
핵발전소는 가동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온배수를 쏟아낸다. 영광핵발전소(한빛)가 1초에 쏟아내는 열폐수는 390톤이 넘는다. 365일 24시간 내내 바닷물보다 섭씨 7~8도나 뜨거운 물을 쏟아낸다. 한해 바닷물 111억 5800여 톤이다. (중략) 한국해양연구원이 4년 6개월에 걸쳐 연구조사한 결과 실제 남쪽으로 20.2킬로미터, 북쪽으로 17킬로미터 면적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24쪽
맹방해수욕장 포스코 석탄화력발전소 방파제와 호안축조 공사는 해양생태계 파괴를 되풀이하는 일이다. 해안사구의 심각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도 해안도로와 관광시설 개발로 해수욕장에 모래가 유실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흐르던 해류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증거이며 바다 생태계가 엄청난 변화에 직면했다는 방증이다.
130쪽
그동안 정부 주도 보호정책은 오랜 불신이 쌓여 주민들 의견수렴이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해 실제 효과를 얻지 못했다.
녹색연합은 이러한 보호정책의 문제점을 검토해왔다. 2007년부터 민관 협력을 통한 지역사회 중심 점박이물범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지역의 사회경제구조와 주민들의 삶과 의식에 바탕을 둔 점박이물범 보호 활동을 이어왔다. 무엇보다 주민참여가 공공 정책수단으로만 활용되는 것을 경계했다. 주민들 참여를 위해 물범과 지역을 어떻게 연계할 수 있는지 생각을 바꾸는 일에 중점을 뒀다. 2007년부터 해양생태관광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물범 보호와 지역의 사회경제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모색했다. 지역 청소년 물범동아리(백령중고, 2016년~현재)와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2013년~현재)같은 다양한 지역 주민들이 나서도록 활동해왔다.
윤용빈(백령고3, 물범동아리 부회장)학생은 동아리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주변 어른들이 물범 보호활동을 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지만, 학생들이 나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점박이물범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점박이물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진로를 개발하고 자신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151쪽
세상에 무릉도원이 이싿면 그곳은 바닷속입니다. 낙원 없는 세상에서 낙원을 찾아가는 방법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바닷속은 천국 같은 곳입니다. 독도는 바다 없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독도에서 바다와 바위는 눈으로 들어오고 빛과 바람은 몸으로 들어옵니다. 독도 바다 속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입니다. 환상입니다.
152쪽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애국자가 없습니다. 애국하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독도 해양생물에 감동하고 사랑하며 전율했습니다. 독도 선착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기념사진 찍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소리쳐봐야 흩어지는 메아리뿐입니다. 우리끼리 이야기입니다. 분명한 연구 자료를 가지고 독도는 우리가 주관하고 관리하는 우리 것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생생하고 진실한 독도 생명의 기록이 독도를 우리 땅으로 지켜낼 수 있는 소중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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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지혜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다시 읽으니 또 좋습니다.^^
제가 손이 좀 빠르면 인스타에도 올려 널리 알리고 싶은데......^^
참........^^
그래도 조금 더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