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항의를 했다. 자신이 인터넷 클래스에 과제를 올렸는데 내가 삭제를 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2주에 걸쳐 자신이 특정한 게시판에 올렸는데 내가 삭제를 했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내게 메일을 보내려 시도했는데 발송이 안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는 자신의 메일을 보여 주겠다고 까지 했다. 개인메일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보내려다 못 보냈다는 메일이다.
그 게시판에 과제를 올리라고 한 적이 없다. 간혹 아이들이 제출 마감을 놓쳐 올린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아이가 주장했다는 시점과는 전혀 다르다. 이 아이가 올렸다고 주장하는 시점은 다른 아이의 과제를 삭제한 시점이었는데 이 아이의 주장은 그 아이의 과제를 삭제하면서 내가 실수로 함께 자신의 과제를 삭제했다는 것이었다.
학생 과제를 삭제했다는 말을 듣자 일단은 어처구니가 없었고 그 다음에는 화가 났다. 하필 컴퓨터가 고장 나 수리점에 보낸 시점이었다. 일단은 찾아보겠노라고 말하고 집에 와서 컴퓨터 기록을 모두 뒤졌다. 있을 리 없다. 다음에는 그동안 받은 인쇄물들을 모두 뒤졌다. 있을 리 없다. 과제는 모두 체크를 해서 돌려준다. 한데 2주 뒤에 과제가, 그것도 내가 삭제를 해서 없다고?
다음에는 쪽지와 이메일 기록을 확인했다. 이 아이가 주장하는 시점은 우선 내가 과제를 삭제한 아이와는 시점이 달랐다. 원래 과제는 인쇄물로 받는다. 과제를 삭제한 아이는 인쇄를 못해왔으니 다음 날 내겠다고 사정했고 시간을 맞추지 못하자 게시판에 올렸다고 쪽지를 보내 양해를 구했다. 그 쪽지를 읽은 다음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하니 삭제하겠다고 통보했고 다운로드 받은 다음 삭제 했으며 학생으로부터 확인 메일을 받았다. 그러니 나와 그 학생 둘 다 삭제를 증명할 수 있는 온갖 기록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주장하고 있는 이 아이는. . .
번역이라는 과목의 특성상 과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학기에는 단편 소설 하나를 번역하고 있으므로 매주 과제는 필수다. 따라서 아이들은 매주 과제를 내고 그 다음 주 수업시간에 자신이 낸 과제를 돌려받아 확인한다. 학생들은 과제를 반드시 내야 하지만 나 또한 과제를 모두에게서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과제전용 게시판을 이용했다. 이 경우 체크할 기간이 너무 짧았고 체크해도 표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생겨났다. 해서 이러이러한 문제점이 있으니 인쇄물로 받겠다고 공지했다. 착실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반드시 인쇄물 원칙을 지켰다. 그러나 때로 늦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인쇄를 못해왔다던가 집에 놓고 왔다던가 하는 이유를 말하고 양해를 구한다. 그럴 경우에는 이 메일로 받았다. 마감 기한을 놓쳐 이클래스 게시판에 올린 과제물도 받았다. 그러나 어떤 아이는 심지어 결석하면서 과제만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고, 그날 수업 시각에 보낸 과제를 돌려달라고까지 요구했다. (물론 다른 아이가).
즉 나는 학생들이 반드시 과제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기본 원칙을 다소 어기고 있었다. 수시로 체크하는 수고를 무릅쓰면서. 그렇게 했더니 결국에는 이 아이처럼 거짓말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왜 그럴까? 아들에게 상의했다. 왜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늦었으면 늦었다고 하면 된다. 사정상 늦어서 제출을 못했다고 하면 된다. 물론 지각제출이니 점수는 다소 깎인다. 어차피 이 아이는 지각제출이다. 제시간에 내지 않았으니 지각제출인 것이다. 한데 왜 저런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회피 하려는 것일까?
아들은 한마디로 요점을 파악했다. “걔는 생각이 없는 거에요. 당장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지각제출이라고 하면 되잖아?” “그런 생각조차도 안 해요.” “배신 당한 느낌이야. 나는 아이들에게 잘해주려고 애썼는데.” 아들이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학생들에게 마음을 주려고 해요? 학생들은 그런 생각 전혀 안 해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이건 계약이야. 계약만큼만 하면 된다고요.”
순간 멍했다. 그렇구나. 이건 계약이구나. 나는 결국 지식을 팔고 있을 뿐이구나.
학기 초 얼마나 부풀어 있었던가. 아이들 앞에 서려고 읽은 책들은 한결 같이 사랑을 강조하고 있었다. 선배들은 내게 오직 사랑만 주라고 충고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 그리고 사랑할 것. 그것은 선생이라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진리에 관한 것이었다. 내 삶에 관한 것이었다. 내 삶에 충실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의 배움을 뒤돌아보면서 젊은이들에게 무언가 빛나는 것, 아니 삶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무언가를 통해 보여준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배웠고 생각했고 나 또한 바랐던 것인데.
학생들은 그런 것은 아예 생각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니 아니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나 초보의 이상과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내가 솔직하게 대하고 진심을 보이면 아이들 역시 그렇게 반응할 것이라는 착각. 나는 상대에게 내 기준을 덮어씌우고 있었고 내 생각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큰 의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작은 일, 사소한 일에서 보이는 것은 삶을 꿰뚫고 있는 원칙이 아니라 귀찮고 힘든 사소한 것들이다. 그 사소함에서 원칙이 자라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학생들이 아니라 나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큰 원칙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내 잘못이 아닌가.
무엇보다 학생들의 편의를 생각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결국 이 모든 사태를 야기한 원인은 나다. 내가 원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아이들이 저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멀리 보라고 말하면서 결국 정작 나 자신은 눈 앞에만 매어 있었던 것이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책을 쓴 이들은 오랜 경험을 거쳐 나온 진리를 말한다. 그 진리를 착각 혹은 오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용기를 주고자 하는 섣부른 시도가 오히려 그들을 망친다. 이렇게 이 세계를 배워나간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아찔한 현기증과 더불어.
첫댓글 '내가 이만큼했으니 넌 요정도는 해야 해.'
이런 기대감이 나자신을 불행하게 한다는 글을 읽고나선
내가 하는 행위자체로 만족하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쉽지 않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 한 발 물러시게 되고 그러다보니 더러는 이해도 되고
저도 마음을 많이 다치지 않게 되어 결국은 제가 좀 편안해지더군요.
네. 오늘도 그 이야기를 무수히 했습니다만 결국은 내가 깨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상대는 변함없이 원래 그대로의 모습인데 나는 내 기대를 그들에게 얹어놓은 것이지요. 열린 의식으로 있으려면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우리는 늘 내 생각과 느낌을 그들에게서 보고 있는 것이지요. 상대의 입장에서 본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모두 내려놓아야 가능한 것. 그게 안된다면 내 기대를 아예 없애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심심한 위로와 더불어 찐한 학습성취에 축하를 함께 드립니다.^^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게 참 많지요? 이런거도 주셨겠지요?
믿어주고....기다려주고....속아주고....이중에 제일은 속아주는 거.ㅎㅎ
속아주는거는 속는 게 아니란 걸 아이들은 다 알더라구요...(메롱)
거 참, 무슨 대답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답을 쓰지 못하고 나갔는데 오늘 또 읽어봐도 답을 쓰지 못하겠어요. 전 저 아이가 먼 훗날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지금 당장은 잘 속여 넘겼다고 생각하더라도. 이 일 하나는 그 아이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에 의해서 변하지 타인에 의해서 변하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그 변화시점을 알지 못하니.
@이 명 속이는 사람은 늘 속입니다. ㅎ... 훗날이라는 날은 보험이 아니에요.
아주 운이 좋다면, 그 버릇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 개인사적으로는 꽤 쇼킹한 - 어떤 경험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된다면 정말 운이 좋은 거고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
비극적인 말이지만... 제가 아는 한.....
@丁明 자신의 일처럼 흥분해주셔서(ㅎㅎ 생각해주셔서 ) 감사합니다. 저는 한마디로 저 거짓말을 무너뜨릴 수 있어요. 기록을 찾아 증명하라고 하면 되니까요. 게다가 그 거짓말에 상응하는 해를 줄 수 있어요. 어차피 저 아이 자신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테니까요. 증거도 기록도 없으면서 자신이 주장하면 제가 속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지요. 이미 아이 자신은 저를 대할 때마다 지옥을 건너가고 있을 겁니다. 빤히 보여요.ㅎ 하지만 말이지요. 우리 또한 작고 사소한 거짓말로 그 순간을 모면하고자 했던 기억이 없을까요? 저는 있습니다. 여러 번 있습니다. 아마 무척 많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있을 겁니다.
@이 명 흥분하는 건 아니고요. 훗날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말한 것 뿐이랍니다.
작고 사소한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한 기억이 왜 없겠어요. 누구나 있을 테고..
돌아보면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로 회한이 남아있기도 하죠. ㅎ.
그가 깨닫게 될 그 '훗날'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축원입니다만..
제 젊은 날에 결정적인 쓴 소리 한 마디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에 가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나이들어 스스로 깨달을 때는 늘 늦었죠)
한약처럼 '따뜻한 쓴소리' 또한 메마른 세상인듯해요.
@丁明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학생에게는 통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그토록 뻔한, 날짜만 돌이켜봐도 환히 들여다보이는 거짓을 우기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합리화시켜서, 자신이 말한 거짓에 취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경우는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효과가 없지요. 이제는 객관적인 방법, 원칙에 의거해 점수를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점수를 따려고 거짓을 말한 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가르침이 남아 있는 거지요.
@이 명 ㅎㅎ... 맞아요. 통하지 않을 때는 통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에도 운명(timing)의 작용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그가 운이 좋다면, 이런 사소한(?) 계기를 통해서도 인생에 중요한 교훈을 얻을 테고
그런 운이 못된다면, 그의 인생에서 재수없는(?) 해프닝을 또 한번 겪는 것이 되고 말겠죠.
세상에 깨우침이 없어서 못깨닫는게 아니라 깨우침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서 못깨닫는게 태반이니까요.
많은 꾸지람을 받고 깨우치지 않고도 승승장구하는 인간도 있긴 하더라고요.
MB 같은 인성은 아마도 그런 행운(?)에 힘입어 형성됐을 겁니다.
@이 명 이런 사람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주 불운하게도, 모든 사악한 잔꾀가 통하는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사악의 화신으로 자라났다고 봐야하겠지요.
과연 그 학생의 운명에 '구원의 기회'가 있을지 미래가 궁금해지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