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을 때
오래된 우리나라의 대중가요 ‘하숙생’은 인생을 나그넷길이라고 노래합니다.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한때 인기를 누렸던 그룹 god의 ‘길’이란 제목의 노래에서 인생을 길에 비유합니다. “내가 가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그런데 우리의 인생길은 유감스럽게도 잘 닦인 평평한 도로도 아니고,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도 아닙니다. 굽이굽이 굴곡이 많고 높낮이도 고르지 않은 울퉁불퉁한 산길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그 길의 반 이상은 숨을 헐떡이고 땀을 흘리면서 힘들게 걸어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입니다. 이렇게 인생길은 가파른 오르막이 많은 산길에 가깝지만, 그래도 간혹 목을 축일 수 있는 샘물이 되고, 땀을 식혀 주는 한 줄기 산들바람이 있기에, 또 길동무가 있기에 힘을 얻어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에 등장하는 엘리야 예언자는 자신의 인생길에서 힘겨운 고갯길을 넘어야 했습니다.(1열왕 18,20-40) 그는 야훼 하느님에 대한 열성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우상인 ‘바알’ 신의 숭배를 조장하는 이스라엘의 아합 임금과 이제벨 왕비에 대항하여 카르멜 산에서 바알 숭배 예언자들과 홀로 대결을 벌입니다. 엘리야는 하느님께 간청하여 제물로 바친 토막낸 황소 위에 불이 내려와 태워 버림으로써 야훼 하느님만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러고는 사백 명이나 되는 바알 예언자들을 모조리 처단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엘리야는 목숨위 위협을 받습니다. 바알 예언자들이 후견인인 이제벨 왕비가 앙심을 품은 것입니다. 왕비는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죽여 버리겠다고 공언합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그대의 목숨을 그들의 목숨과 한가지로 만들지 못한다면, 신들이 나에게 벌을 내리고 또 내릴 것이오.”(1열왕 19,2)
엘리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급히 이웃 나라 유다 땅으로 도망칩니다. 길을 가다가 지친 그는 광야에 있는 싸리나무 아래 주저앉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하다가 잠이 듭니다. 잠든 엘리야에게 천사가 나타나 엘리야를 흔들어 깨우면서 음식과 물을 주고 기운을 내라고 격려합니다. 다시 한 번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엘리야는 천사가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걸어 호렙 산에 이르러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1열왕 19,1-18)
우리 역시 살다 보면 갑자기 일이 크게 어그러져서, 혹은 병이나 사고 등 인생을 힘겹게 하는 일들을 만나 엘리야처럼 체념과 낙담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꼼짝할 힘도 없이 그저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한 채로 말입니다. 이럴 때 누군가가 건네준 이해의 말 한마디, 따뜻한 눈길, 격려의 손길에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서서 인생길을 계속 걸어간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점점 더 세상이 각박하고 삭막해진다고 하지만, 그래도 삶의 무게에 눌려서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말과 눈길, 손길을 건네는 이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 볼 일이 있어서 시내에 나갔는데 큰길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부서지는 소리도 나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얼른 뛰어가서 사람들을 헤치고 들여다보았습니다. 단속반원들이 샌드위치를 파는 작은 포장마차를 뒤집어엎고 있었습니다. 계란이 깨지고 베지밀 병이 길바닥에 이리저리 굴러다녔습니다. 처음엔 사정도 하고 울부짖으며 매달려 보던 포장마차 아저씨는 모두 포기했는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소리쳤습니다. “살아 보겠다고 하는데 그만 괴롭혀요!” 갑자기 큰소리에 놀랐는지 단속반 아저씨들의 손길이 좀 멈칫했습니다. 그때, 말쑥한 차림의 아저씨가 걸어 나오더니 길바닥에 뒹굴던 베지밀 세 병을 주워 들고 멍하니 서 있던 주인아저씨의 주머니에 지폐 몇 장을 밀어 넣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리쳤던 아주머니가 우유를 집어들고 주인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했습니다. 이번에는 아기를 업은 젊은 아줌마가 삶은 계란 몇 개를 줍고 돈을 냈습니다. 이후에는 줄을 지어서 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아저씨의 어개를 한참 두드려 주다 가시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 볼 만한 것이 아닌가?』
소금항아리, 생활성서 2002년 1월호
나자렛의 여인 마리아 역시 인생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었습니다.(루카 1,26-38) 갈릴래아 지방의 한 시골 마을의 평범한 처녀인 마리아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께서 보낸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러고는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라는 엄청난 소식을 전해 줍니다. 그 순간 마리아는 몹시 당황해합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끝에 처녀의 몸인 자신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성령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 하던 마리아의 친철 엘리사벳의 예를 들면서 전능하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을 듣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깁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런 놀라운 일이 있은 지 며칠 지나서 마리아는 길을 떠나 유다 산골에 사는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왜 마리아는 서둘러 엘리사벳을 찾았을까요? 성경에 따르면 마리아는 결혼 적령기의 여인이고, 엘리사벳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엘리사벳보다 훨씬 젊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너무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되자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입니다. 처녀로서 임신을 한다거나, 태어날 아이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는가 하는 천사의 전갈은 젊은 나이의 여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엄청난 내용의 말이었습니다. 어쩌면 마리아는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나이 많은 친척 엘리사벳을 생각해 내고는 산골 마을까지 찾아가서 자신의 불안한 심경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요?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위로와 확신의 말을 듣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보되십니다. ……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2-45)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대답했지만, 과연 제대로 대답한 것인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과 신앙에 대한 경륜이 있는 엘리사벳의 얘기를 들으면서 마리아는 그동안 가득했던 불안감을 털어 버리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가량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