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렌시아’의 마음차림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최근 신작을 발표했습니다. 읽다 보니 몰랐던 단어가 눈길을 끕니다. ‘케렌시아Querencia’라는 스페인어입니다. 케렌시아는 원래 투우 용어로 ‘피난처’ 또는 ‘안식처’라는 뜻입니다. 투우사와 사투를 벌이는 소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찾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케렌시아입니다.
케렌시아는 특별히 고정된 장소가 아닙니다. 소들은 지치고 힘겨운 순간이 찾아오면, 가장 편안하게 힘을 모을 수 있는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본능적으로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투우사가 승리하려면 상대편 소가 케렌시아를 찾아가는 것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막아야 합니다. 안식처를 찾지 못한 소는 전의를 쉽게 상실하고 마니까요.
투우장 안을 거칠게 질주하는 소에게만 케렌시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복잡하고 숨 막히는 현실을 견뎌내야 하는 우리에게도 그곳은 절실한 장소입니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직장인들 80%는 퇴근 후에도 계속해서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해야 하고, 젊은 직장인들 중 68%는 퇴근 후 너무 지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만의 케렌시아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가장 따뜻한 안식을 얻고, 또다시 용기를 내어 삶의 한가운데로 뛰어들 수 있을까요?
작가는 취미에 몰두하는 것, 여행을 훌쩍 떠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 모두가 케렌시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제겐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케렌시아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런데 발길이 종종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일상의 걱정거리를 내려놓지 못하고, 마치 퇴근 후까지 업무에 쫓기는 사람처럼 주님을 만나러 갈 때입니다.
화창한 봄날, 옷차림만 가볍게 할 것이 아니라, 마음 차림부터 가볍게 하고 저만의 케렌시아를 향한 행복한 산책에 나서고 싶습니다.
첫댓글 "주님을 만나러 갈 때,...."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케렌시아에 이르는 길~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