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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내 矗石樓(촉석루)에 관한 史蹟(사적) 탐구
1. 촉석루 창건과 중수 및 재건립 내력
矗石樓(촉석루)는 남강이 접한 벼랑 위에 자리 잡은 단층 팔각집의 웅장한 건물로 진주성의 주장대(主將臺)다.
1241년 고려 고종 28년 축성 당시에 부사(府使) 김충광(金忠光) 등의 손으로 창건하여 장원루(壯元樓)라 불렀다.
촉석루(矗石樓 :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18호)라 불리게 된 것은 남강 변 언덕에 바위가 삐죽삐죽 솟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이 잘 보이는 곳이어서 일명 남장대라 부르기도 했다.
고려 고종 28년(1241년) 진주목사 김지대(1190∼1266)가 창건한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고 광해군 10년(1618년)에 남이흥(1576∼1627)이 중수하여 1948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불탔다.
지금의 건물은1960년 진주 고적 보존회가 국비, 도비, 시비와 시민의 성금으로 재건한 것이다.
김공(진주 목사 김광중)에게서 착수가 되어 두 번째로 안상현에게서 이루어 졌는데 모두 장원(과거에서 첫째로 급제함)이었기에 장원루(壯元樓)라는 이름도 있었다.
황학루(黃鶴樓)는 촉석루의 별칭이고 현도관(玄都關)은 진주고을 뜻한다.
청천은 남강의 옛 이름이다. 성 둘레는 내성이 2.5km 외성이 4km이었다.
서쪽은 의정문(義正門), 북쪽은 지제문(智濟門)이며, 남쪽은 예화문(禮化門)이라 했다.
촉석루에는 현판과 주련이 여러 개 달려 있는데, 현판을 먼저 살펴보면 북쪽 처마 밑에 붙어 있는 ‘矗石樓’라는 현판은 조선 영조 때의 명필 조윤형(1725∼1799)의 글씨이며, 남쪽 처마 밑에 붙어 있는 ‘矗石樓’현판은 원래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글씨였으나,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그 판을 깎아 오늘 날에는 정현복(1907∼1973)의 글씨로 바꾸었다.
누각 2층 내부에 걸려 있는 남장대(南將臺)는 정명수(1909∼1999)의 글씨이며, 어칸 좌측 대량위에 걸려있는 ‘嶺南第一形勝’은 오제봉(1908∼1994)의 글씨다.
또한 2층 누각 기둥에 붙어 있는 8개의 주련(柱聯)은 신유한(1681∼1752)의 시로서 주련마다 뜻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 한수를 8개의 주련으로 풀어 놓은 것이다.
2층 내부에는 아홉 편의 한시 편액이 있다. 시대 순으로 보면
勉齋 鄭乙輔 면재 정을보(1285∼1355), 憂堂 朴融 우당 박융(1347∼1424), 郊隱 鄭以吾 교은 정이오(1354∼1434), 敬齋 河演 경재 하연(1376∼1453), 晩松 姜濂 만송 강렴(1544∼1606), 農圃 鄭文孚 농포 정문부(1565∼1624), 釣隱 韓夢參 조은 한몽삼(1598∼1662), 寒沙 姜大遂(1591∼1658), 台溪 河溍(1597∼1658)
2. 촉석루 현판의 시
黃鶴名樓彼一時(황학명루피일시) : 황학루의 높은 명성 한 때에 떨쳤는데
崔公好事爲留詩(최공호사위류시) : 최공도 시를 지어 남기기를 좋아 했네
登臨景物無增損(등임경물무증손) : 올라보니 경치는 옛날과 같건 마는
題詠風流有盛衰(제영풍류유성쇠) : 시를 읊는 풍류는 성쇠가 있나니
牛壟魚磯秋草沒(우룡어기추초몰) : 소먹이고 낚시하던 둑에는 가을 풀이 시들고
鶖梁鷺渚夕陽遲(추량로저석양지) : 백로 수리 놀던 물가 해가 저무네
靑山四面皆新畵(청산사면계신화) : 둘러앉은 푸른 산 방금 그린 그림인데
紅粉三行唱古詞(홍분삼행창고사) : 세 줄로 선 기생들 옛 노래 부르도다.
玉斝高飛山月上(옥기고비산월상) : 옥 술잔 높이 드니 산에 달이 오르고
珠簾半捲嶺雲垂(주렴반권영운수) : 주렴을 반 걷으니 재엔 구름 드리웠네
倚欄回首乾坤小(의난회수건곤소) : 난간에 기대어 둘러보니 시야가 좁아지고
方信吾鄕特地奇(방신오향특지기) : 우리고을 아름다운 모습 확실하게 알겠구려
(면재(勉齋) 정을보(鄭乙輔 : 1285∼1355)의 시)
興廢相尋直待今(흥폐상심직대금) : 흥망이 돌고 돌아 지금을 기다렸나
層巓高閣半空臨(층전고각반공림) : 층암절벽 높은 다락 반공에 다다랐네.
山從野外連還斷(산종야외련환단) : 산줄기는 들을 건너 이어졌다 끊어지고
江到樓前闊復深(강도루전활부심) : 누각 앞에 이른 강은 넓고도 깊어졌네.
白雪陽春仙妓唱(백설양춘선기창) : 백설양춘곡을 선기(仙妓)가 노래하니
光風霽月使君心(광풍제월사군심) : 맑은 바람 갠 달은 그대의 심사로다.
當時古事無人識(당시고사무인식) : 당시의 옛 일을 아는 사람 없는데
倦客歸來空獨吟(권객귀래공독음) : 지친 객 돌아와 속절없이 읊조리네.
(정이오(鄭以吾 : 1347년 ~ 1434년)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 또는 우곡(愚谷), 시호는 문정(文定),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晉山形勝冠南區(진산형승관남구) : 진양의 아름다운 경치 영남의 으뜸이고
況復臨江有此樓(항복임강유차루) : 하물며 다시 강가에 이 누각까지 있나니
列峀層巖成活畫(열수층암성활화) : 줄지어 선 산과 절벽은 살아 있는 그림이고
茂林修竹傍淸流(무림수죽방청류) : 무성한 숲 대나무 곁에 푸른 물이 흐른다.
淸嵐髣髴屛間起(청람방불병간기) : 맑은 바람은 병풍같은 담 사이에서 일어나고
白鳥依稀鏡裏浮(백조의희경이부) : 흰 새는 거울 속에 드물게 떠 있는 듯하다
已識地靈生俊傑(이식지령생준걸) : 땅이 좋아 인물 많이 남을 이미 알거니와
盛朝相繼薛居州(성조상계설거주) : 조정에 이름 있는 신하 이어져 나온다네
(우당(憂堂), 박융(朴融 : 1347-1424) 본관은 밀양, 자는 유명(惟明), 호는 우당(憂堂), 충숙공 익(翊)의 아들이며 정몽주의 문인이다.)
矗石樓中三壯士(촉석루중삼장사) : 촉석루의 삼장사
一杯笑指長江水(일배소지장강수) : 한 잔 술로 웃음 지며 남강 물을 가르키네
長江指水流滔滔(장강지수류도도) : 남강의 맑은 물은 도도히 흐르나니
波不渴兮魂不死(피불갈혜혼불사) : 저 강물 마르지 않는 한 넋은 죽지 않으리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 1538~1593) 임진순국 삼장사(三壯士)는 1593년 6월 왜군이 진주성를 공략하자 진주성에 들어가 9일동안 용전분투하다가 전사한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충청병마절도사 황진(黃進)을 뜻함.)
往蹟欲攀三壯士(왕적욕반삼장사) : 옛 자취에서 삼장사를 잡으려 하니
祗今惟見南江水(지금유견남강수) : 지금은 남강물이 보일 뿐이네
江波可渴石磨殘(강파가갈석마잔) : 강물은 마르고 돌이 닳아 깨질지라도
壯士義魂長不死(장사의혼장불사) : 장사의 의로운 넋은 길이 죽지 않으리.
(경상우도 암행어사 여동식(呂東植 : 1774∼1829))
南烽日警陷諸州(남봉일경함제주) : 남쪽 봉화는 날마다 여러 고을 함락을 경고 하고
劍語秋燈對白頭(검어추등대백두) : 칼 차고 가을 등불 마주보며 독백하는 늙은이
安得良籌除海侵(안득양주제해침) : 바다 요기 없앨 계책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君歌我酒更登樓(군가아주갱등루) : 그대 노래 나의 술로 다시 누에 오르리라
(만송(晩松). 강렴( 姜濂 : 1544~1606), 만송 강렴은 16세기 남명(南冥)학파 학자로 남명의 제자.)
龍歲兵焚捲八區(용세병분권팔구) : 임진년 전쟁이 팔도를 휩쓸어 올 때
魚殃最慘此城樓(어앙최참차성루) : 무고한 재앙에 이 성루가 가장 처참했구려
石非可轉仍成矗(석비가전잉성촉) : 돌은 더 굴릴 수 없어 촉석루 되었는데
江亦何心自在流(강역하심자재류) : 무슨 맘에 강은 또한 절로 흘러가는가?
起廢神將人共力(기폐신장입공력) : 폐허를 일으키는 일에 신과 사람 함께 하고
凌虛天與地同浮(능허천여지동부) : 빈 하늘과 천지가 함께 떠서 내달았다.
須知幕府經營手(수지막부경영수) : 막부가 경영한 솜씨를 모름지기 알겠거늘
壯麗非徒鎭一州(장려비주진일주) : 장려함은 한 고을에만 한정되지 않았음을
(농포(農圃), 정문부( 鄭文孚, 1556~1625) 길주 목사, 1624년에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 고문으로 죽은 뒤에 신원이 되어 좌찬성에 추증됨)
天地初開別一區(천지초개별일구) : 천지 사이 처음으로 특별한 곳 열었으니
何年好事起斯樓(하년호사기사루) : 어느 해 호사가가 이 다락을 세웠는가?
層軒遠接靑山影(층헌원접청산영) : 높은 처마 이어진 산 그림자 멀리 드리우고
彩檻低搖碧水流(채함저요벽수류) : 채색한 난간 푸른 물 아래서 흔들린다.
斗覺登臨如羽化(두각등임여우화) : 올라보면 갑자기 날개라도 돋는 듯
却疑身世等萍浮(각의신세등평부) : 한 평생이 불현 듯 부평처럼 느껴지네.
求封萬戶還非分(구봉만호환비분) : 높은 벼슬 내 분수가 아니니
願夢三刀臥此州(원몽삼인와차주) : 바라건대 영전하여 이 고을에 누웠으면
(조은 한몽삼 江右儒脈 / 儒學/南冥學派)
戰場無恙只名區(전장무양지명구) : 전장에서 별 탈 없기는 오직 이름난 이곳뿐이고
人世虧成百尺樓(인세휴성백척루) : 세상의 흥망성쇠 간직한 백척 누각
納納乾坤遙峀立(납납건곤요수립) : 천지를 휩싸 안은 먼 산은 솟아 있고
溶溶今古大江流(용용금고대강류) : 고금에 넘실넘실 큰 강은 흐르는데
船橫官渡隨緣在(선횡관도수연재) : 나루터 가장자리 배는 가로 놓여 있고
鷗占烟波得意浮(구점연파득의부) : 갈매기는 안개 낀 파도를 흡족한 듯 떠다니네.
景物有餘佳況少(경물유여가황소) : 경치는 넉넉하나 좋은 일은 오히려 적고
詩情寥落晉康州(시정요락진강주) : 시의 정취가 쓸쓸한 진주고을
(춘간(春磵), 강대진(姜大進 : 1591~1658 본관: 진주(晉州) 자: 학안(學顔))
滿目兵塵暗九區(만목병진암구구) : 전투의 흙먼지 눈에 가득 온 세상이 어두운데
一聲長笛獨憑樓(일성장적독빙루) : 한 가닥 피리 길게 불며 홀로 다락 기대고서
孤城返照紅將歛(고성반조홍장렴) : 외딴 성에 지는 해는 붉은 빛을 거두고
近市晴嵐翠欲浮(근시청람치욕부) : 가까운 저자엔 맑은 남기 푸른 기운 떠 있네.
富貴百年雲北去(부귀백년운북거) : 평생의 부귀영화 구름되어 북으로 떠나가고
興廢千古水動流(흥폐천고수동류) : 천고의 흥폐는 물과 같이 흘러가네.
當時冠蓋今蕭索(당시관개금소삭) : 당시의 고관대작 이제는 적막한데
修道人才半在州(수도인재반재주) : 그 누가 인재의 반이 진주에 있다던가.
(태계((台溪) 하진(河溍 : 1597~1658), 1614년 영창대군의 처형을 반대하여 죽게 된 동계 정온을 구하려다가 회양에 유배,)
晋陽城外水東流(진양성외수동류) : 진양성 밖의 강물은 동으로 흐르고
叢竹芳蘭綠映洲(총죽방난녹영주) : 울창한 대숲 아름다운 풀은 푸른 물에 어렸다.
天地報君三壯士(천지보군삼장사) : 이 세상엔 충성 다한 삼장사가 있고
江山留客一高樓(강산유객일고루) : 강산엔 객을 머물게 하는 높은 누각 있구나
歌屛日照潛蛟舞(가병일조잠교무) : 따뜻한 날 병풍치고 노래하니 잠자던 교룡이 춤추고
劒幕霜侵宿鷺愁(검막상침숙노수) : 병영 막사에 서리 내리니 졸던 백로 수수롭다.
南望斗邊無戰氣(남망두변무전기) : 남으로 북두성 바라보니 전쟁 기운 없는지라
將壇茄鼓半春遊(장단가고반춘유) : 장군단에 풍악 울리니 봄날마냥 노닌다네.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 : 1681~1752) (남쪽 루 2층의 8개 주련-柱聯) 본관: 영해(寧海) 자: 주백(周伯))
高城絶壑大江頭(고성절학대강두) : 높은 성 깎은 벼랑 큰 강 멀 임한 곳에
冬栢梅花矗石樓(동백매화촉석루) : 동백 매화 우거진 촉석루 서 있구나
若也登臨留勝跡(약야등임류승적) : 만약에 여기 올라 좋은 자취 남기려면
請題佳句記吾州(청제가구기오주) : 아름다운 글을 지어 우리 고을 적어 두게
(경재(敬齋), 하연(河演))
3. 義 巖(의 암) --- 논개를 찬한 글
獨峭其巖 特立其女(독초기암 특립기녀) : 홀로 가파른 그 바위, 우뚝 선 그 여인
女非斯巖 焉得死所(여비사암 언득사소) : 저 여인, 이 바위 아니면 어디서 죽을 곳을 얻으며
巖非詐女 烏得義聲(암비사녀 오득의성) : 저 바위, 이 여인 아니면 어디서 의롭단 말 들으리
一江高巖 萬古芳貞(일강고암 만고방정) : 한 줄기 강, 높은 바위, 만고에 꽃다우리라.
(정식(鄭湜) 지음 촉석루 중수기를 썼으며, 경남 유형문화재 353호인 의암사적비(義巖史跡碑)의 의암이란 비문의 저자이다.)
4. 矗石樓次板上韻
一帶藍江不盡流(일대남강부진류) : 띠 두른듯 푸른남강 마를날이 없어라
舊營頹堞泛長洲(구영퇴첩범장주) : 옛 터전 진주성 무너진 담장 긴강물 흐르네
春秋日日登臨客(춘추일일등임객) : 통한의 역사어린 촉석루 올라오니
風雨年年自在流(풍우년년자재류) : 비바람 년년세세 강물은 절로흘러
指水盃深懷古恨(지수배심회고한) : 잔들어 손짓하던 삼장사 위국 순절 슬픈역사
落花巖屹至今愁(낙화암흘지금수) : 우뚝솟은 의암바위 꽃잎처럼 떨어진 넋
憑軒擧目山河異(빙헌거목산하이) :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니 그때의 산하가 아니지만
忍看無心蕩子遊(인간무심탕자유) : 무심한 마음으로 차마 볼수 없어 강물에 탕건 씻고 한수시를 읊노라
(해산(海山) 정해영(鄭海榮 : 1868년∼1946 ) 자: 치일(致一) 호: 본관: 진양(晉陽))
5. 촉석루시
劒燈淚讀龍蛇誌(검등누독용사지) : 검등아래 용사지를 눈물로 읽었더니
宇宙崢嶸矗石樓(우주쟁영촉석루) : 우주에 드높으다 촉석루 여기로다
昔日戰場芳草色(석일전장방초색) : 옛날 싸움터에 방초는 푸르르고
夕陽峭壁落花愁(석양초벽낙화수) : 석양 낭떨어지 꽃잎은 흩날린
晉陽名勝形依舊(진양명승형의구) : 진양명승이야 그 모습 예 대론데
夏日登臨氣蕭秋(하일등임기소추) : 여름날 올라와도 소슬한 가을인 듯
飛鳳山高磨劒磧(비봉산고마검적) : 비봉산 높은지고 칼을 갈던 돌무더기
産䵷竈滄壅沙洲(산와조창옹사주) : 개구리알 친 부엌 넘친모래 맑은기슭
運耶鰈域援兵小(운야접역원병소) : 운명이냐 접역에는 원병이 적었었고
時側龍灣大駕留(시측용만대가류) : 그때 임탄 수레 의주에 가 머물럿네
尹鐸孤城生不保(윤탁고성생불보) : 윤탁이야 외로운 성을 살아서 못 지켯고
張巡厲鬼死寧求(장순려귀사영구) : 장순도 죽어 여귀를 어찌하여 구햇던가
心頭天日寃應泣(심두천일원응읍) : 하늘도 태양도 응당 마음으로 울었으리
誓後江波咽不流(서후강파인불류) : 맹세하곤 강물도 흐느껴 못흐른다
丹荔黃蕉將薄尊(단려황초장박존) : 붉은여단 누른풀잎 빛갈이 엷어지려는데
哀絲藍竹動淸遊(애사남죽동청유) : 애사남죽은 맑은흥취 움직이네
鴻毛大義何難辨(홍모대의하난변) : 홍모와 대의 어찌 판단하기 어려우랴
漁腹孤忠可與儔(어복고충가여주) : 어복에 장사한 외로운 충신과 벗 하리라
更酌一盃歌浩浩(갱작일배가호호) : 다시 한 잔 술로 추모하니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腥塵滿目不堪洲(성진만목불감주) : 성진이 눈에 가득히 견딜 수 없는 강가에
(한재(韓齋), 정규영(鄭奎榮 : 1860∼1921) 자: 치형(致亨) 호: 한재(韓齋) 본관: 진양(晉陽) - 출생지 경남 하동군 대현리(大峴里))
6. 현재 건물 재 건립 일화
1953년 3월 촉석루 재건공사 중요자재의 납품 경매입찰 공고에 나타난 납품자재 목록은 다음과 같다.
느티나무 기둥 18개, 잡목(참나무) 기둥 8개 등 기둥 26개, 그리고 대들보 4개, 화강암 원주(圓柱) 30개, 원초(圓礎) 30개 등이다.
이중 석재는 김태영이라는 사람에게 낙찰되었다. 하지만 화강암으로 된 거대한 기둥 30개를 만들만한 바위를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태영이 전국의 채석장을 한 달 동안 살피고 다녔으나 그만한 규모의 바위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때 논개사당 비석을 만든 경험이 있는 석공 박지문이 진주를 찾아왔다. 시교위(市敎委) 영선계장 김성일 씨를 찾은 그는 ‘논개 부인이 꿈에 선몽을 했는데 진주에 할 일이 있으니 급히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돌을 오래토록 다룬 경험이 있는 그에게 사실을 이야기 하자 박지문씨는 금새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는 좋은 돌이 있다고 했다.
시교위 관계자들은 그의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그를 따라 나섰다. 그들이 찾아 간 곳은 창원시 소재 명곡산. 산에 오르자 거대한 돌출 바위가 일행을 반겼다. 화강암 원주 즉, 돌기둥 30개는 족히 만들고도 남을 법 했다. 이어 바위의 이름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바위 이름이 ‘촉석바위’라는 것이었다.
무슨 인연인지는 몰라도 촉석루를 중건하는데 필요한 석재는 이렇게 이름마저 촉석바위라 불리는 그 바위로 해결이 되었다.
그곳 촉석바위에서 이루어진 채석작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운반 차량에 돌을 싣는 순간 이양기가 풀어지면서 돌이 굴러 떨어졌고 이로 인해 석공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애석한 마음에 후히 장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