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하나님
안재경 지음/391쪽/15000원/홍성사
이 책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1606-1669)의 작품 가운데 성서 이야기를 주제로 한 12점의 그림들을 화두삼아 렘브란트의 삶과 신앙의 살펴보면서 우리시대를 성찰해 보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책입니다.
저자는 2010년 봄에 《고흐의 하나님》이란 책을 썻는데요. 글과 그림으로 표현된 고흐의 신앙고백을 살피면서 고흐의 삶과 예술 세계에 새롭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 좋은 책이었는데요. 그로부터 4년 남짓, 이번에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또 다른 거장 렘브란트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에서 <탕자의 귀환>에 이르는 12점의 유화와 동판화에 대해 저자는 주제 및 표현 기법상의 특징적인 면을 중심으로 렘브란트가 각각의 그림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나타내려 했는지를 차근차근 짚어 가는데요. 그리고 그 그림들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와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확인해보게 합니다.
저자인 안재경 목사는 과거 네덜란드에서 목회자로 7년간 사역하면서 고흐의 ‘상처 받은 삶’에 특별히 주목했고...그래서 고흐가 남긴 서신과 작품을 통해 그의 삶에 아로새겨진 상처와 고통의 흔적에 다가가면서 ‘고통을 나누려는 마음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후 언제부턴가 ‘렘브란트의 그림이 인간 영혼을 드러내는 깊이가 있음을’ 깨달은 저자는 렘브란트의 삶과 예술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에 깃든 하나님의 뜻, 곧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파도가 넘실대던 시기에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복음을 형상화하는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렘브란트가 어떻게 화폭에 나타내려 했는지에 주목했다고 해요.
그러한 저자의 오랜 노력이 결정체처럼 빛을 발하는 곳이 이 책의 꼭지마다 맨 뒤에 렘브란트의 독백 형식으로 소개되는 글로서, 이 책의 독자들이 각별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라 보여집니다.
이 책에서 안재경 목사는 렘브란트가 작품속에 그리스도를 너무나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린 것은 단순히 감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성육신의 신비를 제대로 묵상했기 때문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종의 신분으로 낮아지셨는데 어떻게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을 영웅으로 그리는 것은 예수님의 육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거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성을 제거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육체성을 인정하기 위해 오셨다라고 평한 것이 와 닿는 구절입니다.
<책속으로>
내가 공부를 계속 했더라면 목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학 수업은 어쩐지 지루하게 느껴졌다. 나는 말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는 그림으로 복음과 종교개혁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에 더 끌렸다. 나는 환쟁이가 되었지만 스스로는 목사, 신학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말로 구구절절이 복음을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림으로 종교개혁의 정신을 묘사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중세 로마 가톨릭이 라틴어를 읽을 수 없는 신자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성화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성화들은 복음의 핵심을 왜곡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그림에 담아 보려는 야망을 품었다.(1장, 37쪽)
우리는 복음이라는 새로운 길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부터 제시하셨던 옛적 길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의 기운이 퍼져 가면서 새로운 종류의 맹목에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가? 진리를 발견한 것에 안도하여 그 진리를 고착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유와 번영을 복음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단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마 가톨릭이 미신에 물든 토빗과 같이 눈먼 장님이었다면, 우리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선지자 발람과 같이 눈 뜬 장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복음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2장, 62쪽)
내가 《논쟁 중인 두 노인》을 통해 보여 주려 한 것은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의 인간적인 투쟁이 아니라 율법과 복음의 관계다. 베드로가 율법을 대표하고 바울이 복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도를 내세워서 나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다시금 따져 보고 싶었다. 교회의 모든 문제는 바로 이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3장, 87쪽)
렘브란트는 바로크시대의 거장입니다. 그의 그림은 어둠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연들을 빛이 쏟아지는 곳으로 길어 올리는데요. 이 책에는 바로 렘브란트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어둠의 저장고에 감춰둔 그 이야기를 끄집어 올려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문자의 회화로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흥미와 진중한 설명으로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