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 / 김재희
여행을 하다 보면 장승촌에 들리는 때가 있다. 수많은 장승들의 이름과 표정이 참으로 기이하고 익살스럽다. 갖가지 이름만큼이나 서로 다른 특징이 들어 있는 장승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한 곳에서 전부 보는 느낌이 든다.
조금은 숙연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올려다 보이는 장승에서부터 아이들 장난 같은 웃음을 짓게 만드는 장승들. 현 시대에 발 맞추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괴이한 장승이 있는가 하면 살짝 눈을 돌리며 배시시 웃음을 깔게 만드는 짓궂은 장승이 있고 밤길에서 뒷덜미를 잡아 챌 것 같은 으스스한 장승도 있다. 어떤 모습일지라도 그것들은 우리들의 끈끈한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형상들이다.
그것들의 모습은 결코 매끄럽거나 곱지가 않다. 어딘가에 별 쓸모 없이 서 있거나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모아 많은 힘 들이지 않고 만들어 낸 하찮은 나무조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스쳐 지나가듯이 가볍게 감상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장승들의 표정들에서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 속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의 신화나 전설, 민담 속 주인공들은 친근하고 정겹다. 더러는 괴팍스럽고 밉살스러운 면도 있지만 대부분 부족하고 모자라서 늘 누군가에게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지게 살아 온 평범한 인간상들이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그것이 지금껏 내려온 우리민족의 혼이었지 싶다. 우리가 장승이라고 이름지어 부르는 것들의 표정이 바로 그들의 상징 아닐까. 묵직한 자연의 섭리와 돈독한 가정 윤리에서부터 가벼운 재치와 해학 등 수많은 사연들의 표정이 줄줄이 늘어서서 점점 잊혀져 가는 옛정들을 돌이켜 보게 만든다.
장승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가 쌍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나무꾼과 선녀, 양반과 상놈 등이 그렇다. 그런 것들 중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삼신할멈의 땀 흘리는 표정 옆에는 괴이한 웃음을 웃는 저승할멈이 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탄생의 기쁨 자리에 왜 하필 죽음의 그늘을 드리우게 한 것일까. 태어나는 순간 세상 모든 것과 대립하는 존재가 되고 그에 따른 희로애락의 고뇌가 시작되는 것, 모든 세상사가 다 이처럼 극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좋은 일에 기뻐하면서도 궂은 일에 항상 대비하고 살아야 하는 삶의 이치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 걸음 물러서서 그것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단지 웃음을 짓거나 찡그리게 하는 것은 표면적일 뿐 내면에는 인간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 장승들만큼이나 다양하다. 문득, 어쩌면 장승 쪽에서도 드나드는 사람들의 갖가지 표정을 감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장승의 표정보다도 저들이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저들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어떤 걸 느낄까. 환희와 기쁨에 들뜬 표정을 보기도 할 것이고, 찌들고 어두운 표정을 보기도 할 것이다. 더러는 아집과 탐욕으로 얼룩진 표정에 경악을 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편해진 세상이다. 반면에 사람들의 마음은 삭막해져 가고 있다. 올라가는 빌딩 층만큼 채워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서로 견주고 밀치며 기를 써야 하고, 그래서 서로 미움과 갈등들이 쌓여 간다. 위층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아파트 생활, 이혼이 늘어가는 가족생활, 그래서 늘어나는 미아와 기아들,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들을 저 장승들은 보고 있으리라. 그러고 보면 오히려 우리 인간이 장승들의 구경거리인 셈이 아닐까?
한 바퀴 휘 돌고 나오려는데 내 눈을 다시 잡는 장승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 눈에 쉽게 뜨일 것 같지 않는 곳에 이름표도 없이 다른 장승들과는 좀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어찌 보면 다른 장승들과는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거만한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같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소외감으로 인한 자괴감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왠지 알 수 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는 양면성. 그 장승에게서는, 결코 들추어내고 싶지 않는 내 양면성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애써 배척해 버리고 싶은 마음과 그러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는 어리석은 마음, 내 작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표면으로 뿜어내면서도 내게로 오는 감정은 부풀려 키워가며 등 돌렸던 마음, 스스로 만들어 논 울타리 안에 그 누구도 들여놓지 않았던 외곬의 침묵, 그렇게 얽힌 마음들과 얼음장 같이 싸늘하게 굳어져 있었던 표정이 저 장승 속에 들어 있는 듯했다. 불현듯, 그 장승이 갖고 싶어졌다. 곁에 두고 타인인 듯한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타산지석(他山之石)을 삼아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