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
그해 1월, 우리 집 단칸방에 달력 하나가 걸렸다.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우수수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는 벽에 발라진 얇은 벽지에는 희미한 회색 꽃무늬가 엇갈리며 그려져 있었다. 그 벽지에 빈대 자국 같은 붉은 녹물을 남기며 박힌 못에 기다란 달력 열두 장이 걸렸다.
보통은 국회의원 얼굴이 동그랗게 실린 벽보 같은 커다란 한 장짜리 달력이었지만, 어쩌다 색색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절을 하거나 그네를 타거나 하는 달력이 걸리기도 했다. 운이 좋은 해는 아랫동네 쌀가게에서 주는 하루에 한 장씩 뜯어내는 일일 달력이 걸리기도 했다. 그런 해는 노상 가게에서 외상으로 쌀을 가져오던 어머니가 설을 맞아 어쩌다 외상값을 다 갚은 해였다. 어쨌든 나는 벽에 걸린 그 긴 달력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달력에는 발레를 하는 여인이 한 손을 들어 올리거나, 아니면 두 손을 모으며 뛰어오르거나, 또는 한 손과 한 발을 뻗으며 날아오르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하얀 새털로 만든 것 같은 발레복을 입은 그녀들은 새까만 종이에 도드라지게 인쇄되어 있었는데, 마치 아득한 허공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들은 희고 푸르고 붉은 조명을 받고 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벽에 붙어 서서 달력을 넘기며 그녀들을 감상했다. 그녀들은 인간 세상과 천국, 그 중간 어디쯤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이 아닌 것도 아닌 그 장면들은 얼마 있지 않아 나에게 보다 생생한 화면으로 다가왔다.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장면이 TV 화면에서 녹화 중계되었다. 이번에는 달력에 있던 발레리나들이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판을 누비고 있었다. 경기장에 흐르는 음악과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장식이 달린 예쁜 의상과 얼음판을 지치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긴장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낡은 TV 화면 속에서는 내 나이 또래 어린 선수들이 날카롭고도 여려 보이는 스케이트 날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음악에 맞춰 연기를 했다. 내 눈에는 그녀들 연기가 비할 데 없이 우아한 춤으로 보였다. 점프를 위해 솟구치며 발이 얼음판에서 떨어질 때면 숨이 멎었고, 몇 바퀴를 돈 뒤 착지하는 순간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비록 흑백 화면이었지만 내게는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한 장면이었다.
당시 나는 세상과 단절된 채 낮이면 낮잠을 자고, 밤이면 밤잠을 자며 지내고 있었다. 낮에는 좁은 단칸방을 청소하고, 동생들을 챙기고, 정리할 것도 없는 부엌세간을 정리했다. 나름 할 일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낮은 늘 공허했다. 중학교를 중퇴한 후로는 밖에 나가지 않았으므로 종종 벽을 향해 웅크리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고된 노동으로 하루를 마친 어머니의 앓는 소리와 그 소리를 숨죽이며 듣고 있는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으며 밤잠을 잤다. 자면서도 어금니를 앙다물거나 엄지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벽을 밀어댔다. 마치 고치 속 애벌레 같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식구 중 아무도 내가 고치 속에서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저녁에 본 화면의 잔영 때문인지 그날 밤 나는 자다가 문득 눈을 떴다. 달력에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가 희미하게 보였다. 장지문에는 현관 널빤지 틈으로 비쳐 든 달빛이 알 수 없는 무늬를 새기고 있었다. 정월 보름이 며칠 지난 뒤였다. 두꺼운 솜이불 밖으로 동생들 맨발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슬며시 일어나 솜이불을 밀어 발을 덮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찬 기운이 쨍하게 얼굴을 엄습했다. 두 볼이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밤하늘에는 한쪽이 이지러진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소박한 사람들이 이마를 맞대고 사는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비추었다. 마당 구석에 쌓인 눈더미가 푸른 달빛을 되쏘고 있었다. 달빛은 깨진 유리창에 붙여 놓은 비닐에도, 늘어진 빨랫줄에도, 문도 없는 대문 기둥 옆에 있는 녹슨 드럼통에도, 아마도 밥알과 김치 찌꺼기가 얼어붙어 있을 수채에조차도 푸른 물감을 뿌렸다. 누추하고 초라한 마당에 푸른 물감이 스미자 마당은 마치 조명을 받은 무대 같아 보였다. 내 눈앞에 푸른 무대가 둥실 떠올랐다. 나는 두 눈을 감고 한 발을 뗐다.
달밤의 체조란 이런 것을 보고 하는 말이리라. 달력 속 발레리나나 화면 안 스케이터라도 된 것처럼 팔다리를 휘저으며 춤을 췄다. 두 귀에는 저 멀리 아득한 은하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가득했다. 두 발로 허공을 딛고 손끝으로 달빛을 감치며 너울거렸다. 순간순간 황홀하고 저릿한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도 목적하지 않은 그 행위가 더없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눈을 감고 발을 들어 올리다가 수채 옆에 놓여 있는 양은 세숫대야를 냅다 걷어차기 전까지는.
“와장창” 밤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저앉고 말았다. 음악도 그치고 푸르던 달빛도 하얗게 말라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올려다보니 빨간 내복에 털신을 신은 한 소녀의 희한한 몸짓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중천에서 조금 기운 달은 더욱 이지러져 있었다.
요즘도 가끔 김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 장면을 동영상으로 찾아보곤 한다. 전성기 시절 모습도 좋지만, 검은 머리를 뒤로 묶고 입에는 치아 교정기를 낀 열댓 살쯤의 김연아 모습을 더 좋아한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뒷모습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몸짓을 본다. 몸부림치며 고치를 뚫고 나와 비상하기 전까지의, 아직은 위태하고 설익은, 춤을 향한 멈출 수 없는 그 몸짓을 사랑한다.
한 시대의 현자인 라즈니쉬는 삶은 춤이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평생을 통해 내 몸짓은 끝내 춤이 되지 못했다. 몸부림과 춤의 중간에서 늘 어설픈 몸짓만을 계속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옛날 그날처럼 유난히 달빛이 푸르른 밤에는 무엇이라 칭할 수도, 무어라 의미 지을 수도 없었던 몸짓들이 결국은 이 세상에서 너울거린, 어쩔 수 없는 나의 춤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너무나 부끄러워 글로밖에 쓸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