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까치
나무봉지는 과자다
흔들면 새가 쏟아졌다
상추밭에서 저녁을 쪼더니
쥐똥나무로 갔다가 단풍나무 속으로 퐁당 빠졌다
찰칵찰칵 핸드폰으로 찍자 찌르르 경보를 울린다
일제히 합세해서 울어댔다 새들에게 나는
침입자
내 집에서 나가라
새들도 나무에게 방세를 주었을까
출입문을 여닫을 때마다 나무가 주섬주섬 새들을 삼켰다가 도로 뱉어내었다
물까치는 꽁지깃이 연한 하늘색이다 몸보다 꽁지가 길어 작은 소리에도 파드득 놀라 옮겨 다니며 운다
약한 것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가보다
열 몇 번의 주소지를 바꾸며 살던 아비처럼
방 빼라는 말을 늘 머리 위에 얹어놓고 말이지
아비를 흔들면
시큰한 술 냄새와 기약 없는 희망이 주머니 속 구겨진 천 원짜리처럼 떨어지곤 했다
밟으면 과자처럼 바삭하게 부서지지도 않았다
물까치 저녁으로 귀가 중이다
나무의 지퍼를 채우고 잎사귀에 하루를 파묻는다
좋겠다
돌아갈 집이 있어서
날개조차 없던 아비는 평생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했다
꽃의 지문
넘어질 때마다 무늬가 생겼어
물결이 굽이칠 때마다 결 따라 남긴
소용돌이치고 모아지고 만나서 몸에 남은 무늬
그 골을 따라가면 전생을 꿈꾸듯 어딘가에 도착하곤 했어
언니가 나를 업고 가던 그 저녁 신작로
등에서 수박향이 났지
우물에 떨어진 달을 아무리 길어 올려도 두레박엔 아무것도 없듯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하루는 흔적도 없었지
물일을 많이 해서 닳아버린 지문처럼
꽃잎에 남은 잎맥들은 해독 못한 채로 남았어
이불 뒤집어쓰고 울던 밤이거나
해고 통지를 받은 봄이거나
구급차를 타던 날이거나
생채기 하나 없이 오는 아침은 없어서 말이지
물결무늬로 말라버린 압화
갈비뼈 어디쯤 숨겨 놓은 기억처럼
책 읽던 중간에 끼워 놓았지
기억에 눌러놓고 간 누군가의 무늬 같아서
꽃의 마지막 말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