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혹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 1.
모세의 영도하에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사십 년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사명을 본격적으로 수행하시기 전에 준비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간 머무르십니다. 광야는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하고 생존의 위협을 받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와 자칫하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태오복음(4,1-11)과 루카복음(4,1-13)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어떻게 유혹을 받으셨는지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두 복음서 모두 사탄이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을 유혹했다고 전하는데, 단지 유혹의 순서만 다를 뿐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은 앞으로 전개될 예수님의 공생활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사탄은 우선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바꿔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빵으로 대표되는 물질과 돈의 힘으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라는 유혹입니다. 과거에 모세의 인도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빵과 만나를 내려 주시지 않았던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면 마땅히 허기진 백성을 배불리 먹여야 하고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치자들은 백성들이 빵을 배불리 먹으면 성공한 것이라 여기지 않았던가요? 실제로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일어난 직후 군중은 예수님을 억지로라도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요한 6,15)
이어서 악마는 성경의 말씀, 곧 시편 91장 11-12절의 말씀을 인용해 가면서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보호해 주실 테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기적에 힘입어서 자신의 정당성을 공개적으로 입증하여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라는 유혹입니다.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을 벌였던 엘리야 예언자는 주님께 청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함으로써 야훼가 진정한 하느님이시며, 자신은 그분의 참된 예언자라는 것을 입증하지 않았던가요?(1열와 18,20-40) 엘리야처럼 하느님의 아드님도 하늘에 기적을 청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악마는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세상과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영화로 백성의 마음을 휘어잡으라는 유혹입니다. 강력한 권력을 갖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에게는 사람들이 몰려오게 마련입니다. 지난날 다윗과 솔로몬이 거대한 왕국을 수립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여서 다른 백성들의 부러움을 사지 않았던가?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면 마땅히 그런 권세와 영화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요?
악마의 유혹은 교묘합니다. 악마는 직접적이며 노골적으로 악을 행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럴 듯한 논리로, 합리적이며 효과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선택하라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이 제안은 당장에 필요한 것들 때문에 하느님을 덜 중요하게 여겨서 옆으로 제쳐 놓거나 혹은 도구처럼 이용하도록 은근히 유혹합니다. 이미 첫째 유혹에서 그런 점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고 그러므로 빵은 중요하지 않느냐?’ 매우 합리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빵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자칫 빵이 절대화되고, 빵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생각, 정신적 가치를 무시한 경제제일주의가 빠지기 쉽습니다. 이는 하느님보다 빵을, 돈과 재물을 우위에 놓는 그릇된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빵을 하느님 자리에 놓으려는 유혹에 이렇게 대응하십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둘째 유혹도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필요하면 당신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이 당신이 아들이라는 것을 놀라운 방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증명해 주셔야 할지 않을까요? 그래야 변덕스러운 군중의 마음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하느님께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큰 유혹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구로 하느님을 나의 일꾼으로 삼아 내 뜻과 내 욕망을 채우려는 잘못이요 불신앙적인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자기 명예와 욕심의 도구로 삼으려는 유혹에 대해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처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 4,7)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표징을 보여 달라는 집요한 요구를 물리치셨는가 하면(마태 12,38-39; 16,1) 체포되시는 순간에도 천사들의 보호를 청하지 않으셨고(마태 26,53-54), 마지막 순간에는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조롱을 듣고서도(마태 27,40) 무력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필요하면 당신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 4,7)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