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포장마차
손광성
11월은 입동과 소설이 들어있는 달이다. 가을 밑장에 겨울이 비치는 달. 까닭 없이 공복을 느끼는 달이기도 하다. 11월이면 모든 게 수척해진다. 잎이 진 나무들이 수척해지고 그 위에 걸린 까치둥지가 또한 수척해진다. 햇볕조차 11월에는 야위어간다.
야위어가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11월에는 도시들도 야위어간다. 가로수가 야위어 가고 공원에 쳐진 철책이 야위어 가고 고층 빌딩의 비상계단이 또한 아득히 야위어간다. 여름내 아이들 웃음소리로 한껏 상기되었던 어린이 놀이터도 활기를 잃고 야위어간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손님을 맞이하던 가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1월이 되면 추위만 밖에 세워두고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 허기진 거리가 그래도 견딜만한 것은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몇 안 되는 계절의 주인공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늦은 밤까지 하얀 입김을 피워 올리는 호빵 찜통이 구멍가게 앞에 등장하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쓸쓸한 거리 여기저기에 군밤장수의 리어카가 등장하고, 소박한 메뉴판을 주렁주렁 달고 우리의 주인공 포장마차가 등장한다. 검정 바탕 위에 찍힌 빨간 점 하나가 유달리 돋보이듯이 어둡고 가난한 거리에 등장하는 이 작고 헐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온기에 의해 미미하게나마 도시가 체온을 유지해 가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름에도 포장마차는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모든 것에는 제 철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포장마차가 포장마차다워지는 건 그러니까 11월이라는 이야기다. 거리에는 아직 제 갈 길을 찾지 못한 낙엽들이 방황하고, 찢어진 포장 틈새로 11월의 서늘한 바람이 비집고 드는 포장마차. 작고 위태로운 의자에 앉아 등에 냉기를 느끼면서 마시는 한 잔의 소주가 주는 칼칼한 위안. 그것은 포장마차에서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11월의 서정인지도 모른다. 12월이 되면 이미 포장마차도 기정사실이 되어 참신성을 잃고 만다. 해가 바뀌어 1월과 2월이 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은 없다.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기에는 너무 추운 달, 게다가 새해에는 새 꿈을 꾸는 계절이지 지나간 일에 매달릴 때는 아닌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불빛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고된 일과에서 벗어나 귀가하는 가장의 눈에는 자기 집 창문에 비친 불빛이 가장 따뜻할 것이고, 오랜 항해 끝에 귀항하는 선원의 눈에는 항구의 등대 불빛이 가장 따뜻할 것이다. 바람이 부는 거리에 외롭게 떠 있는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것보다 따뜻한 불빛은 다시없으리라. 게다가 낡은 포장에 등이 굽은 사나이의 그림자라도 하나 어리어 있으면 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의 옆에서 나도 그 사내처럼 한 잔 기울이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유혹에 빠진다? 그렇다. 그러나 포장마차라면 안심해도 좋다. 포장마차의 주모는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와 같이 주머니가 가벼운 술꾼에게는 더없이 만만한 술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주 한 병에 어묵이나 닭똥집 안주 한 접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위에 약간의 잔돈을 얹으면 우리는 육체의 허기와 함께 마음의 허기도 달랠 수 있는 것이다.
포장마차의 주모에게도 자격이란 것이 있을까? 있다. 포장마차의 주모는 너무 젊어서는 곤란하다. 인생에 대해서 뭘 좀 아는 나이. 그러니까 20대나 30대는 아니고 적어도 40대나 50대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외모 문제도 그렇다. 미인이라고 해서 결격사유가 될 건 없겠지만 포장마차의 주모는 수더분하다고 할 정도의 외모면 족하다. 얼굴이 좀 너부죽해도 좋고 광대뼈가 좀 나와도 괜찮다. 그런 사람 앞에서 까닭 없이 편안해지는 우리니까.
포장마차의 주모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더 있다. 우선 무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잔술밖에 살 수 없는 손님의 식어가는 국물에 따뜻한 국물 한 국자 리필 할 줄 아는 여인. 조금은 귀찮더라도 그의 신세타령도 묵묵히 들어 주고 가끔은 감탄사 한두 마디쯤으로 추임새를 넣을 줄 아는 여인이며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런 주모 앞에서 술을 마시고 온 날 밤은 큰형수님이 차려준 술상을 받고 온 날 밤처럼 마음이 훈훈해진다.
오늘은 11월의 첫 주말이다. 이제 벽에 걸린 달력도 낙엽과 함께 다 떨어지고 달랑 두 장이 남아 있다. 한 해를 돌이켜보면 기쁘고 행복했던 날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슬프고 불행했던 날들이 어쩌면 더 많았던 것도 같다. 이런 때 마음에 맞는 친구랑 단골집에서 거나하게 취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아니면 가족과 함께 교외의 분위 좋은 음식점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11월 중 어느 하루 저녁만은 혼자이면 어떨까 싶다. 허름한 잠바 한 장 걸치고 혼자 한적한 거리를 거닐고 싶다. 운 좋게 불빛 환한 포장마차를 만나면 거기서 소주 한 병 시켜놓고 가만히 앉았다 와도 괜찮으리라. 아니면 오늘까지 살아온 날들을 헤아려 보고 또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 보고, 그동안 살기 바빠서 애써 외면했던 지난날의 젊은 나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그동안 수고 많았노라고, 슬프게 해서 미안했노라고, 내가 나를 위로해 주고 싶다. 슬픔도 고통도 또 한때의 어리석음과 치졸했던 그 많은 만용까지도 다 젊은 혈기 때문이었노라고 수척한 어깨에 팔을 얹고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위로해 주고 싶다.
첫댓글 역시
손광성 선생님의 묘사력은 대단합니다.
이복희 선생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