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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1편
삶의 본질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목차
1. “나는 누구인가” 소크라테스의 고민
2. “나는 누구인가” 전도자의 고민
3. “나는 누구인가” 현대인들의 고민
– “시간이 지나면 영정 사진도 고려하게 될 걸?”
“나는 누구인가” 소크라테스의 고민
나는 누구인가(Who am I).
언젠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질 날이 오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고 역설한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하루는 그의 제자들이 “스승님은 자신을 아느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남긴 대답은 이러하다.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른다”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의 수많은 철학자, 과학자, 종교학자들이 앞다투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하며, 인간의 본질을 밝히려고 끈질기게 연구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왜 ‘나’라는 사람이 태어나 한평생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인생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정의하는데, 우리의 인생이 그리도 허무한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전도자의 고민
사람의 본질과 인생에 대해 심각히 고민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인생은 정말 허무하고 허무하다. 세상만사가 너무 허무하다! ··· 눈은 보고 또 보아도 만족하지 않고, 귀는 듣고 또 들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 온갖 일을 살펴서 알아내려고 지혜를 짜며 심혈을 기울였다. 괴로웠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이런 수고로운 일에다 얽어매어 꼼짝도 못하게 하시는 것인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을 보니 ···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더라.”
그는 사람이 70~80년 사는 동안 무엇이 진정 보람된 일인지 밝히기 위해, 여러 가지 시험을 해봤다고 말한다.
“나는 스스로 말하였다. ‘이제 내가 시험적으로 마음껏 즐기리니 쾌락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러나 그것 역시 허무한 일일 뿐이었다. ··· 이번에는 ··· 술을 잔뜩 마셔 보기로 했다. 나는 사람이 ··· 사는 동안 무엇이 정말 보람된 일인지를 알아보기 원했던 것이다. 나는 큰 사업들을 이루었다. ··· 나를 위해 정원을 만들고 ··· 여러 지방의 진귀한 물건들을 대량으로 모아 들였다. ··· 이것은 내 모든 수고의 보상이었다. ··· 그런데 모든 일과 이루려고 애쓴 나의 수고를 돌이켜보니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했다.”
그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지혜와 지식을 연구했지만 그것이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오히려 걱정과 번뇌, 고민만 늘어날 뿐이었다. 또 그는 술로 인생의 괴로움을 달래 보기도 하고, 세상의 쾌락과 재물이 주는 즐거움을 누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탈하고 덧없이 지나갔다고 회고한다. 그는 연이어 가슴에 맺힌 말을 이어간다.
“한 남자가 있다. ··· 그는 쉬지도 않고 일만 하며 산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산도 그의 눈에는 차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끔, “어찌하여 나는 즐기지도 못하고 사는가? 도대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수고를 하는가?”라고 말하니, 그의 수고도 헛되고, 부질없는 일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돈에 만족하는 이가 없고,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자기 수입에 만족하는 이가 없다. ···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모습 그대로 돌아간다. ··· 사람은 평생 근심 중에 식사를 하고, 크게 좌절하고, 병들고, 분노한다.”
사람의 삶은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잡을 것 같이 두 손 꽉 쥐고 태어난 사람도 결국 병들어 빈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더 많은 돈과 업적, 더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해 수없이 울고 좌절하고 피땀을 흘리며 갖은 고생을 했더라도 죽음 앞에선 모든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나이가 들면 ··· 팔이 떨리고, 정정하던 두 다리가 약해지고 ··· 눈은 침침해져서 보는 것마저 힘겹고 ··· 넘어질세라 걷는 것마저도 무서워질 것이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고, 원기가 떨어져서 보약을 먹어도 효력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영원히 쉴 곳으로 가는 날, 길거리에는 조객들이 오간다. ··· 인생은 정말 허무하다.”
위의 글을 기록한 저자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지식과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접어들어 지난 세월 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회상한다. 세상의 술과 향락으로 인생의 고단함을 달랜 시간들, 지혜를 얻으려고 애써 노력한 시간들, 재산을 모으려고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들. 한평생 공들이고 수고한 시간들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하다고 논한다.
왜 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인생의 앞에는 언제나 최종 목적지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이라는 것은 그동안 내가 노력하여 얻어낸 결과물 곧 자신의 직업, 지식, 승진, 사회적 지위, 경력, 명성, 외모, 재산을 모두 빼앗아 버린다. 살아있는 동안 그토록 허덕거리며 쌓았던 수많은 일들의 마지막 자리, 그 자리가 죽음이라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일화일언] 죽음의 시간이 오기 전에 [ 바로가기 ]
“나는 누구인가” 현대인들의 고민
출생, 입학, 졸업, 취업, 승진, 결혼, 출산, 질병 등. 우리는 한평생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생존 자체가 무한 경쟁에 휩싸이다 보니 사람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불안해 하고 조마조마해 하고 초조해 한다.
2015년, 서울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으로 마련한 <All (is) Vanity: 모든 것이 헛되다>는 이러한 우리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무너지는 절망감, 쉴 세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통감하는 시간의 유한함 등 현대인들이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진실을 보여준다.
‘당신은 진실과 마주할 자신이 있습니까?’
전시관 벽면에 기록된 문구다. 거기에는 한 중년의 남자가 얼굴에 검버섯이 핀 노인을 두 팔로 안은 채 내려다보는 조각상이 있다. 자세히 보니 중년 남성의 얼굴과 노인의 얼굴이 꽤 닮았다. 그 노인은 다름 아닌 중년의 남성, 자기 자신이었다. 즉 젊은 자신이, 늙어서 죽은 자신을 안고 있는 조각상인 것이다.
우리가 생의 순간에서 언젠가는 만나게 될 모습을 놀랍도록 정교한 조각으로 재현했다. 작가 샘 징크(Sam Jinks)는 우리에게 ‘메멘토 모리‘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당신은 그(그녀)의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전시관 벽면에 기록된 또 다른 문구다. 거기에는 남녀 석고상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 평범해 보이는 석고상을 일정 시간 지켜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름답고 탱탱한 피부의 젊은 남녀가 주름살 가득한 노인의 얼굴로 바뀐다. 그 시간은 불과 5초.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이다.
작가는 실리콘 고무 소재로 만든 사람의 얼굴 안에 공기압축기를 제어하여 조각상의 움직임을 부가했다. 관람자가 특정 위치에 서면 센서가 작동하여 순식간에 노화가 진행되는 남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젊음’이 찰나의 순간임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탄생, 늙음, 죽음은 모든 사람이 마주하게 될 필연적인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시간이 지나면 영정 사진도 고려하게 될 걸?”
죽음의 운명으로 끝을 맺고 마는 인생
“노모와 8남매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벌써 쉰 살이 되었다”
“스스로 원했던 인생의 방향과는 달랐던 삶이었다”
“젊은 시절을 희생한 것에 대한 억울한 마음도 든다”
“모든 것이 손 틈에서 빠져 나가는 모래인 것 같다”
“가족만 챙기면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늙어버린 나의 모습을 본다”
“나이가 드니 체력도 떨어져 서럽다”
MBN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개그맨, 방송인, 배우들이 출연해 오간 대화 내용이다. 이날 한 방송인은 나이가 들면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관심사가 달라졌다고 얘기했다. 젊었을 때는 ‘주택’, ‘집’ 등이 보였지만 지금은 ‘산소자리’를 보게 된다고 한다. 더욱 시청자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 것은 그 옆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한 방송인의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영정 사진도 고려하게 될 걸?”
바쁜 시간 속에 묻혀서 잊고 있던, 삶의 본질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 셈이다. 평생 가난의 버거움과 질병, 사고, 돈, 물질에 얽매인 후 결국 대면하게 되는 진리는 ‘죽음’이라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 자리가 이러다 보니 우리의 인생이 허무할 수밖에.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솔로몬이 남긴 의미심장한 기록을 보자.
영원한 집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애곡하리라 ··· 몸(육)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 숨(영)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전도서 12:5~7)
거리를 왕래하며 애곡하는 조문객들의 모습에서 누군가가 죽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눈여겨볼 점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살아남는 존재’가 있어 ‘영원한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으로 사라져버릴 나는 무엇이며, 죽음이 빼앗을 수 없는 본질의 나는 누구일까?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해답을 ‘나는 누구인가 2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자료>
1. ‘헛되고 헛된 인생…”당신은 ‘명품’입니까?”’, SBS뉴스, 2015. 6. 16.
2. ‘늙는 게 억울하다’, MBN, 2019. 7. 6.
<나는 누구인가, 초로 같은 인생>
인생의 본질을 깨닫게 하여주셔서 영혼의 부모님이 우리아버지 어머니이심을 돌아가야 할 곳이 천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마음 둘 것이 아니라 더욱더 회개하며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녀가 되렵니다.
이 땅의 삶은 헛되고 헛된 것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삶보다는 하늘의 삶을 중시하며 살아가야 한다.
최종 목적지를 모른채 살아갔다면 그것만큼 억울하고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가야할 곳과 하나님을 만났으니 이제 앞만 보고 달려가야겠다!
성경은 정말 모든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나의 시작점 그리고 결승점까지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에는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다가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허무하게 보내다 보면 원하는 것은 이루었울지는 몰라도 결국엔 자신이 늙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 재물이 많다고 하지만 죽음 앞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썩어질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해 살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된 인생들을, 당신이 죽기까지 희생하셔서 그 사랑을 확증하시고 감히 영생에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신 엘로힘 하나님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저도 한 번쯤은 저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궁금증을 가질 때마다 결론을 낼 수 없었는데 성경에는 명백히 우리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으며 허무하고 헛된 인생길에 끝은 죽음뿐임을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나의 존재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는 이 글의 2편이 더더욱 궁금해지고 기대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도 반드시 오듯이 우리 인생도 반드시 죽는 그날이 올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지 고민하고 열심히 돈을 벌며 더 좋은 집, 차를 위해 열심낸다 그러나 가장 슬픈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이 가졌더라도 아무리 적게 가졌다라도 우리가 죽음 앞에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가리켜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천국 갈 준비에 열심 내는 자녀가 되어야 겠다
여전히 ‘살아남은 존재’가 있어 ‘영원한 집’에 돌아간다는 것.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임이 확실하다고 여겨집니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는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기까지 한 이 문장은, 우리의 근본을 알려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정말 이글을 통해 인생은 허무하고 찰나의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되었습니다 그런 짧디 짧은 인생에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인생 속은 허망하고 죽음이 금방 이르지만 하나님과 함께 있다면 이런 인생도 걱정 없고 영원한 생명을 살아갈 수있음에 너무 기쁩니다.!! 앞으로 더 힘을 내야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목차
1.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2.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이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영어: Know thyself, 그리스어: γνῶθι σεαυτόν).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유명하다. 그는 신 앞에서 사람의 지혜는 보잘것없으니, 늘 겸손한 자세를 갖춰야 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자신의 무지(無智)를 아는 것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출발점이라 강조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들은 만물의 본질을 ‘자연’에 두었다. 탈레스(Thales)는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적 물질이 물(水)이라고 주장했고,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숫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는 만물의 기원이 불이라고 생각했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는 세상 만물이 4원소 곧 물, 공기, 불, 흙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 곧 인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광장 중심지에서 길을 가는 시민들을 붙잡고, 자기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 진리를 찾으라고 호소했다. 소크라테스의 “자기 자신을 깨닫고 진리를 발견하라”는 말은, 당시 사람들의 관심과 철학의 주제를 ‘자연’에서 ‘인간’으로 전환시킨 혁명적 메시지였다.
“너 자신을 알라” 즉 “자기 자신을 알라”는 말에는 단순히 스스로 미련한 존재임을 인식하라는 뜻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한 청년과 대화하는 도중 이 말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니 자신을 알라고 명하는 자는 우리에게 혼을 알라고 시키는 걸세. ··· 자신을 알려면, 혼을 들여다봐야 하고, 무엇보다도 혼의 훌륭함, 즉 지혜가 나타나는 혼의 이 영역을 들여다봐야 하네.”
–알키비아데스 1-
사람 안에는 마음 즉 영혼이 존재한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직전 제자들에게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영혼에 대한 진리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 영역을 깨닫는 것,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한 진정한 지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이해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은, 성경에도 그 중요성이 여러 차례 강조되었다.
너는 아직 젊을 때, 곧 고난의 날이 오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때가 되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육은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7)
『전도서』는 이스라엘의 3대 왕인 솔로몬이 기록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라 불릴 만큼 현명하고 모든 면에서 박학다식했다. 기원전 10세기경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많은 금과 보석들을 싣고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주변의 여러 나라들도 솔로몬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의 지혜를 들었을 정도였다(열왕기상 10:1~14).
이렇듯 하나님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인류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한 줌의 재로 없어져도 영혼은 살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살아 존재하는 영혼은 하나님이 계신 나라, 즉 영혼의 세계로 돌아간다. 솔로몬은 그날이 오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기억해야 본래 자기 자신의 모습, 곧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던 자신의 신령적 시절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 그 무엇보다 나를 먼저 만드셨으므로 나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처음부터 있었다. ··· 그 때는 ··· 하나님이 아직 땅과 들과 티끌의 분자도 만들지 않았을 때이다. ··· 그때 나는 그(하나님)의 곁에서 ··· 즐거워하였으며(잠언 8:22~30)
위의 내용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본래 우리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다. 성경은 지구 창조 이전에 솔로몬이 존재했다고 기록한다. 솔로몬이 존재했을 때에는 땅, 들, 바다가 없었고, 흙조차 없었던 때였다. 사람의 육체가 흙에서 비롯되었다는 성경의 말씀을 염두한다면(창세기 2:7), 당시 솔로몬은 육체가 아닌 영혼의 모습으로 하늘세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솔로몬이 이 땅에 태어나기 전 그의 본래의 모습은 하늘의 천사였던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우리의 교훈을 위한 것이다(로마서 15:4). 단지 솔로몬이 특별해서, 그의 영혼만 하늘나라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영혼도 솔로몬처럼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하늘에서 날마다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던 천사였다(욥기 38:2~7,21, 에스겔 28:1~14).
하나님은 인류가 하늘에서 누리던 본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길 원하신다. 그래야만 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히브리서 11:15~16)
<참고자료>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한국경제, 2013. 4. 26.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1, EJB(이제이북스).
탈레스, 철학사전, 중원문화.
헤라클레이토스, 두산백과.
엠페도클레스, 두산백과.
성경 진리
나는 누구인가 2편
내 영혼이 어째서 육신을 쓰고 이 땅에 살고 있을까?
목차
1. “나는 누구인가”
– 사람은 흙과 생기가 결합된 존재
2.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
–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
– 사람이 이 땅에서 찾아야 할 것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수천 년간 인류 역사는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는’ 모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0년을 살든지 100년을 살든지 결국에 가서는 죽음으로 끝을 맺고 만다. 왜, 어떤 이유에서 인류는 이 허무하고도 공허한 삶을 경험해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 우리는 ···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에베소서 1:4~7)
위에서 언급한 세상 창조 이전 즉 지구가 생기지도 않았을 때에 택함 받은 ‘우리’는 누구일까? 에베소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과 그의 서신을 받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이다. 즉 성경은 이 땅에 사는 인생들이 지구 창조 이전에 이미 존재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창조 이전에 존재했던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피로 용서를 받아야 하는 ‘죄인’의 처지에 있다고 말한다.
과연 전 세상의 나는 누구이고, 현재의 나는 누구이며, 죽은 후에 살아남아 영원한 집에 돌아갈 미래의 나는 누구일까(전도서 12:5~7).
사람은 흙과 생기가 결합된 존재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흙)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산 존재가 되었다(창세기 2:7)
사람에 대한 이해는, 사람이 어떻게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산 존재.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실 때 시작되었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 생기를 가리켜 ‘신(神)’, ‘영혼’이라고 말한다(전도서 12:7, 에스겔 37:14, 누가복음 12:20). 즉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영혼이 몸에서 나가면 사람이 죽고, 영혼이 도로 몸에 들어오면 사람은 살아야 한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을 기록하고 있다. 바로 사르밧 땅에 있는 한 과부의 아들이다. 그는 갑자기 위중한 병에 걸려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과부의 집에서 신세를 지던 선지자 엘리야는 죽은 과부의 아들을 안고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엘리야는 ···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 아이의 영혼이 돌아오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였다. ···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 주셨으므로 그 아이의 영혼이 몸으로 돌아와 그가 되살아났다.(열왕기상 17:22~23)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영혼’에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를 깨달았던 베드로는 사람의 육신을 가리켜 영혼이 임시 거하는 장막집이라고 표현했고, 사도 바울은 사람이 죽게 되면 장막집에서 벗어난 영혼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가게 된다고 말했다(베드로후서 1:13~15, 고린도후서 5:1~9).
이처럼 사람의 본질이 ‘영혼’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지금도 육신의 만족을 누리는 것만을 인생의 목표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고하고 탄식하고 좌절한다. 그러다 결국 대면하는 죽음 앞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논한다.
이제 인생의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창조 전부터 존재했던 진짜 나의 존재. 죽음 후에도 살아남는 진짜 나의 존재. 내 영혼이 어째서 육신을 쓰고 이 땅에 살고 있으며, 사는 동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
인생에 대한 해답은, 사람의 영혼이 이 땅에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가를 아는 데부터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내가 땅(지구)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 때에 ···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연수가 많음이니라(욥기 38:1~21)
욥(Job)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그는 부자로 태어났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다. 쌓아놓은 재산을 잃고, 질병으로 고생하고, 심지어 큰 재앙으로 자녀들까지 잃는다. 그를 위로하러 온 세 친구들과 다투기도 한다(욥기 1:13~22, 2:7~10, 4:1~26:14). 사는 날 동안 수고와 탄식, 미움과 적개심, 고통과 괴로움에 허덕이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 현대인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기 전에 욥이 어디엔가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때 그는 하나님 곁에서 기뻐하며 노래까지 불렀다. 그리고 하나님의 곁에 있는 또 다른 존재들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도대체 지구 창조 이전에 존재하던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일까. 다름 아닌 욥을 포함한 인류가 인생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전 신령의 시절이다. 우리는 천사세계에서 이 땅에 내려온 존재들인 것이다(누가복음 15:4~7, 19:10).
욥, 솔로몬, 예례미야, 요한,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인류는 왜 천사세계에서 이 땅에 내어보냄을 입은 것일까(예레미야 1:5, 요한복음 1:6, 9:2)?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
앞서 사도 바울은 인생을 가리켜 ‘하나님의 피’로 용서받아야 하는 ‘죄인’이라고 얘기했다(에베소서 1:4~7). 전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 가는 대목이다.
여호와께서 ··· ‘너는 두로 왕을 위해 슬퍼하며 나 주 여호와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 주어라. ··· 네가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 있으면서 갖가지 보석으로 단장하였으니 곧 홍옥, 황옥, 금강석 ··· 이 모든 것은 ···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너에게 주어진 것이다. 내가 너를 택하여 지키는 그룹 천사로 세웠으므로 ··· 네가 창조되던 날부터 네 행위가 완벽하더니 마침내 네 악이 드러났구나. ··· 횡포를 부리며 범죄하였다. 그러므로 지키는 너 그룹(천사)아,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 너를 땅(Earth, 지구)에 던져 ···(에스겔 28:11~17)
기원전 11세기경 번영을 누렸던 두로(현재 지명 ‘수르’). 두로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해안 도시 중 하나다. 솔로몬과 두터운 관계를 유지하던 두로 왕 히람은 이스라엘 성전건축에 필요한 자재와 기술자를 지원했던 실존 인물이다(여호수아 19:29, 열왕기상 5:1~6).
성경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을 가리켜, 그의 근본이 하늘의 그룹 천사라고 말한다. 그가 범죄하여 이 땅(지구)에 인생으로 태어나기 전 그의 본래의 성격과 지위가 어떠했는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곧 범죄한 천사와 인간은 오묘하고도 긴밀한 관계에 있으며, 무수한 천사들이 범죄하여 이 땅에 인생으로 태어난 존재 중 하나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내 영혼이 울면서 세상에 태어나 삶을 시작하고 각종 인간관계의 문제, 종교적 문제, 경제적 문제, 도덕적 문제, 전염병의 위험 등에 얽매여 수고로운 여정을 살다 허무한 죽음을 당하는 근원적 원인, 그것은 하늘에서 지은 죄 때문이다. 성경은 그 죄의 값을 사망이라고 기록한다. 인류가 하늘 재판정에서 선고받은 죄의 형량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지위 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생들의 최종 목적지가 ‘죽음’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로마서 6:23, 히브리서 9:27).
[일화일언] 죽음의 시간이 오기 전에 [ 바로가기 ]
사람이 이 땅에서 찾아야 할 것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범죄한 천사들에게 ‘인생’이라는 시간을 주셨을까. 인생들은 도대체 이 시간에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만 하는가.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요한1서 1:8~10)
우리는 ···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7)
인생(人生). 이는 하늘의 범죄한 천사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시간이다. 천사세계에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기회의 시간인 것이다. 이를 깨달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사는 동안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일전에 예수님께서도 가버나움 회당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수차례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불쾌히 여겼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후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던 사람들도 이 말에 걸려 넘어졌다. 종교지도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가?”라며 웅성댔고 비아냥거렸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더욱 힘주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한복음 6:53)
무엇이 그리도 간절하고 처절하셨던 것일까. 도대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일까.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이 잔(포도주)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누가복음 22:8~20)
이날은 성력 1월 14일 저녁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유월절 새 언약을 지킬 객실을 준비시키셨다. 그리고 드디어 이날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을 공개하셨다.
떡과 포도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가리켜, 십자가에서 찢기실 당신의 살과 피라고 알려주셨다. 당신의 살이 채찍에 찢기고 온 피를 쏟아야 하는 죽음을 이미 예견하신 것이다.
몸서리칠 정도로 슬프고 끔찍한 죽음을 목전에 두고 무엇이 그리 애타셨는지, ‘유월절’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신 예수님. 그리고 이날 유언을 남기셨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있는 법. 사도 바울은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께서 이날 하신 유언 곧 약속을 공고히 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말한다(히브리서 9:15~17).
도대체 새 언약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하신 약속은 무엇일까.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그토록 새 언약을 외치신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류에게 ‘죄 사함’의 약속을 주시기 위함이었다(마태복음 26:17~28). 인류가 전 세상에서 지은 ‘사망죄’를 끊어내시고 다시 본래의 천사세계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요한복음 17:5~10).
이제, 바쁜 세상살이에 묻혀서 잊고 있던 진짜 나의 본질을 생각해보자. 내가 누구인지, 왜 이 땅에 살고 있는지, 살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내려오셨는지. 왜 그토록 애달프게 새 언약을 외치셨는가를 말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죄 사함’이라는 답을 찾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인생의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이자, 인생의 해답인 것이다.
메멘토 모리, 그 의미심장한 메시지
노예가 로마 개선장군에게 외쳤던 한마디, "메멘토 모리"는 무슨 뜻일까?
목차
1. ‘메멘토 모리’의 뜻
2. 가치 있는 삶이란?
‘메멘토 모리’의 뜻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옛적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뒤따라오게 하며 ‘메멘토 모리’를 외치도록 시켰다고 한다.
한껏 승리감에 도취된 개선장군에게 찬물을 끼얹는 소리지만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은 이렇게 개선가를 부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죽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우쭐대지 말고 겸손하라’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누구는 부(富)를 축적하는 것으로, 누구는 권력을 누리는 것으로, 누구는 이름을 알리는 것으로 성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졌던 사람일지라도 죽을 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역사를 뒤흔들었던 제왕들도, 굴지의 기업을 이끌며 부를 거머쥐었던 기업가들도 살아생전 소유하던 것을 가지고 가지 못했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듯이 말이다. 한평생 쌓아온 공을 영원히 가지지 못하는 것은 불변이요 불가항력적인 법칙이다.
고대 이스라엘 왕조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솔로몬 역시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깨달은 것이 바로 ‘메멘토 모리’였다.
나는 스스로 말하였다. 이제 내가 ··· 마음껏 즐기리니 쾌락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러나 그것 역시 허무한 일일 뿐이었다. ··· 나는 큰 사업들을 이루었다. ··· 나를 위해 동산과 공원을 만들고 ··· 여러 지방의 진귀한 물건들을 대량으로 모아 들였다. ··· 이것은 내 모든 수고의 보상이었다. 그런데 내 손이 한 일과 노력한 수고를 돌이켜보니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했다. ···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처럼 오래 기억되지 못하고, 조만간 둘 다 잊혀지고 말 것이다. ··· 지혜로운 사람도 역시 죽어야 할 운명일 뿐이다.(전도서 2:1~16)
어머니 태에서 맨몸으로 나와서, 돌아갈 때에도 맨몸으로 간다. 수고해서 얻은 것은 하나도 가져 가지 못한다.(전도서 5:15)
부와 명예와 권력을 모두 가졌고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성공 가도를 달렸다고 할 만한 솔로몬이 남긴 말은 “내가 모든 것을 가져봤는데 다 헛되고 부질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삶이 진정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
가치 있는 삶이란?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인생의 앞에는 최종 목적지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때문에 솔로몬은 우리네 인생의 삶이 허무하다고 반복했다. 그런데 그는 우리 인생에서 헛되지 않는 것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들었으니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의 명령(계명)에 순종하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전도서 12:13)
하나님은 전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헛되다. 세계를 호령한 알렉산더 대왕도, 칭기즈 칸 같은 유명한 위인들도 삶의 끝에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킨 사람들의 끝은 다르다. 그들에게는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슬픔, 괴로움, 아픔이 있는 곤고한 세계가 아닌,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넘쳐나는 세계다(요한계시록 21:4, 22:1~5, 고린도전서 2:8~9).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죽는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다. ‘메멘토 모리’ 곧 우리가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생각하며 오늘을 가치 있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면 전도서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과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일까?
당신에게 메멘토 모리의 시간이 오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시온‘과 ‘새 언약‘ 이 두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 반드시 새 언약을 지키는 시온을 찾아 가장 가치 있는 삶의 족적을 남기길 바란다(시편 132:13~14, 이사야 33:20~22, 히브리서 12:18~24, 누가복음 22:8~20).
<참고자료>
‘메멘토 모리!’, 한국일보, 2019. 6. 10.
<메멘토 모리와 가치 있는 삶>
나는 누구인가(WHO AM I) 소개
1내면의 부름(Calling, 소명)
진정 거듭난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 이 생명 안에는 영원을 향한 본능과 ‘내면의 부르심’이 분명 존재한다. 바다로 나가 수년을 살던 연어가 자신의 본능(Destiny) 안에 있는 ‘내면의 부름(Calling)’을 듣고 때가 되어 내비게이션이나 지도도 없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정확히 돌아오듯, 우리 안에 있는 생명에도 머리와 피부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만큼이나 내재한 천성인 내면의 부름(Calling, 소명)이 존재한다. 이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아간다면 평생을 자기 안의 ‘떡갈나무’를 잊은 채 ‘도토리’로 살다 끝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 안에 있는 ‘거인’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을 ‘메뚜기’로 여긴 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과 같다.
2‘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자
아무리 거듭난 크리스천이라도 인간적인 욕구와 욕망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다. 여기서 ‘선한’ 것이란 사람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이뤄지느냐의 여부다. 하나님은 이 ‘선한 일’을 위해 이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고 예비하셔서 우리로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준비하셨다. ‘선한 일’은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닌, 바른 위치에 있느냐의 문제다. 애벌레는 노력해서 나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 안에 있으면 때가 차매 나비가 된다. 가지가 나무의 생명에 붙어 있기만 하면 때가 차매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기만 하면 때가 차매 ‘선한 일’을 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다.
3카이노스 피조물
당신은 자신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외모, 직업, 지식, 경력, 배경, 스펙이 아닌 다른 것으로 당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났을 때 우리는 누구나 완전히 새로운(카이노스) 존재로 변화된다. 이 연재 글을 통해 나와 세상 사람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는 당신이 바로 ‘진짜 당신’임을 깨닫기 바란다.
4그리스도인의 기준
교회를 출석하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헌신하고, 전도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결과여야 한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지 없는지’가 그리스도인의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교제를 통해 그분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에 따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5최고의 명작(masterpiece)
하나님은 당신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하시고, 오래전에 계획하셨던 최고의 명작으로 바라보신다. 또한, 당신의 모든 순간을 미리 설계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생각에 관심을 기울이시며, 그 존재 자체로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최고의 계획을 준비하고 계신다. 당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당신만의 특별하고도 고유한 존재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가?
6‘포이에마’, 한편의 시
성경은 당신이 하나님의 ‘포이에마’ 즉 한편의 ‘시’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더 적절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의 ‘시’로 당신을 창조하셨다. 전체 퍼즐의 한 조각과 같은 각각의 개별적인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날줄과 씨줄처럼 촘촘히 엮여 그리스도의 전체 몸을 이루는 최고의 명작으로 완성될 것이다. 개별로도 완벽한 명작이요, 연결된 전체로도 완벽한 명작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그림인가? 당신은 이 영광스러운 작품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오직 하나뿐인 ‘한 조각(a piece)의 명작(masterpie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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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는 누구인가(WHO AM I)|작성자 dailyhag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