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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 문학공원 시비
시비(詩碑)는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
예술가의 문학혼을 기리고 후손들이 대대손손 기리는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이유의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을 하고 자연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시비는 작가와 독자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의 장이 되는 역할도 한다. 도내에 많은 시비가 조성돼 있지만 강릉만큼 많은 곳도 드물다. 문향 예향으로 명성이 높은 강릉만의 자랑이다. 신사임당, 율곡 이이, 허균, 허난설헌 등 예부터 문필을 날린 선조들도 많을뿐더러 김동명, 신봉승, 윤후명, 이순원, 김형경, 김별아 등 우리나라 문단을 대표하는 극작가, 소설가, 시인 들도 모두 이고장 출신들이라는 점도 강릉에 문학공원이 많은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많은 문학공원으로 강릉을 찾는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더불어 풍류를 즐 길 수 있는 또하나의 볼거리로 시비공원을 찾는다.
△경포호 문학공원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철새도래지인 경포호수에 지역출신 시인을 중심으로 시비공원이다. 경포호수(鏡湖)는 바다와 이어지는 넓이 38만평의 자연호수로 국민의 사랑과 동경을 받아온 명승지로 이름 그대로 거울처럼 맑은 수면을 지닌 호수이다. 1999년 조성된 경포호 시공원은 예총강릉지부가 작고한 도 출신 문인 가운데 시인 아동문학가등 10인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을 조형물과 함께 돌에 새겨 문화와 예술을 함께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시(詩)공원에는 전시된 작품은 김동명(68년 작고 시인 강릉)씨의 ‘수선화’를 비롯해 박기원(78년 작고 시인 강릉)씨의 ‘진실’ 박인환(56년작고·시인·인제)씨의 ‘세월이 가면’ 최인희(58년작고·시인·삼척)씨의 ‘비 개인 저녁’ 최도규(92년작고·아동문학가·강릉)씨의 ‘교실 꽉 찬 나비’ 김유진(87년작고·시인·강릉)씨의 ‘아침에’ 이영섭(88년 작고·시인·강릉)씨의 고향얘기 김원기(88년 작고·시인·강릉)씨의 ‘산위에서’ 엄성기(98년작고·아동문학가·강릉)씨의 ‘꽃이 웃는 소리’ 정순응(94년작고·시인·강릉)씨의 ‘강문어화’등 10여편이다.
당시 강원도 도립공원인 경포호에 문학공원을 조성한 관동대 엄창섭교수(강릉 예총 회장)는 “문향의 도시 강릉은 예부터 허균, 허난설헌, 신사임당 등 빼어난 시인과 소설가를 많이 배출한 곳”이라며 “강릉의 특색을 살리고 경포호 주변 볼거리 제공을 위해 시공원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특히 경포호 일대는 아름다운 경치만이 아니라 선사시대의 문화유적을 비롯하여 화랑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역대 명사의 숨결과 발자취가 담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포호 가운데는 월파정(月破亭)과 홍장암과 조암(鳥岩)이 있는데 조암에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조암'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그리고 선사시대 문화유적을 비롯해서 화랑의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고 역대 명사의 숨결과 발자취가 담겨져 있는 곳이다. 또 경포호 입구에 ‘사공의 노래비(함효영 시, 홍난파 작곡)’와 조형물도 함께 만들어져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江門漁火 (강문어화) 시비 詩人 정순응(鄭順鷹 1910~1994)
달이 중천에 오르면/하얀 꽃타래 같이/잔잔한 동해에/부서져 내리고
생명의 꿈을 실은/꽃잎 휘날리어/파도 위에 반짝이누나
강문의 고기배엔/가물거리는 漁火
먼 하늘 별빛 같이/희미하고/넋을 씹는 숨소리/뱃전에 찰삭이누나.
황해도 해주 출생. 시집에 "동해를 바라 보며","山情水情"과 산문집 '경포호반에서'가 있다. 東圃文學賞을 제정하였으며,명주병원 원장,초대 참의원과 한국 불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다. 대한민국 문학상(번역부분)과 관동문학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2)「꽃이 웃는 소리」[동시] -엄성기
나는 나는 들었지/ 아름다운 꽃밭에서/ 빨강 노랑 분홍꽃이/ 모두 함께 어울려/ 맑디 맑은 소리로/ 하하 호호 까르르르/ 꽃향기로 피어나는/ 꽃이 웃는 소리를// 나는 나는 들었지/ 아름다운 꽃밭에서/ 자주 보라 하얀꽃이/ 모두 한데 어울려/ 곱디 고운 소리로/ 하하 호호 까르르르/ 향기롭게 퍼져 가는/ 꽃이 웃는 소리를「꽃이 웃는 소리」는 1959년 강릉 사범 학교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에 재직하며 아동 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엄성기(嚴成基)[1940~1998]의 대표작이다. 엄성기는 1970년 『월간 문학』 신인 공모에 동시 「별열매」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동시집 『산골아이』, 『그림 위에 누워서』, 『꽃이 웃는 소리』, 유고 시집 『바람의 속삭임』, 동요집 『내 마음의 노래』 등이 있고, 『이율곡』, 『김정호』 등 여러 권의 어린이 위인전을 펴냈다. 한국 문인 협회 강릉 지부장, 솔바람 동요 문학회장, 백오 문학회장, 아동 문학회 연구소장, 관동문학회장, 조약돌 아동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7년 '제9회 한국 아동 문학 작가상', 1993년 '제33회 강원도 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엄성기가 회장으로 활동했던 솔바람 동요 문학회는 1990년 동요 보급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동요 대상' 보급 부분 단체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구성> 2연 18행으로 이루어진 동시로, 1연과 2연이 리듬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동일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1연과 2연이 리듬과 형식에서 반복을 이루며 이해하기 쉽고 오래 기억되는 효과를 불러온다.
의의와 평가
「꽃이 웃는 소리」는 작곡가 김계명이 곡을 붙여 동요로 불리워진 작품으로, 1986년 제4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본선에 진출한 바 있다. 시의 제목 「꽃이 웃는 소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맑은 동심에서 나온 공감각적인 표현과,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오래 남는 리듬 및 표현이 돋보인다. 엄성기는 조약돌 아동문학회 회장, 솔바람동요문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강릉 아동문학의 초석을 놓았다.
(3)「고향 얘기」 -이영섭
여름이 이우는/ 산 뙈기밭./ 지즐하던 장마 걷히듯/ 걷히는 안개 속을/ 나의 유년은 흘렀고/ 호미날에 걸린 사금파리이듯/ 일년에 한번쯤은 볕 들거라./ 산 그늘 길이만큼 걸린/ 나의 인연은/ 또 어디만큼서 개인 하늘 보리./ 매양 보채며 채근턴/ 그런 인연들 멀어/ 언제 산채만큼 싱그러울까./ 엄니 가시고/ 나도 영 넘어 부는 바람맞아/ 제김발 서서/ 가슴을 펴면/ 가슴엔 얼마나/ 아픈 날 고였으랴.
특징> '산 뙈기밭' '산 그늘' '산채' 등 고향의 자연을 소재로 삼아 유년 시절과 현재의 심사를 표현하고 있으며, 이 시어들의 시작음인 'ㅅ'음과 '안개' '유년' '인연' '엄니' 등에서 알 수 있듯 'ㅇ'음을 많이 사용하여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리듬감과 내성적인 울림을 잘 살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고향 얘기」는 이영섭이 추구한 고향 인식과 고향 탐구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고향을 아픔이자 동시에 치유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이영섭의 심사를 알 수 있다. 시인은 유일한 시집 『원시의 벼랑』을 통해 고향을 도시 문명의 대척점에 있는 순수 원형의 세계[「대관령」, 「이목정 겨울나무」]로,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치유의 공간으로, 그리고 삶의 한 지표[「강원도의 산」]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했다. 「고향 얘기」는 본격적으로 고향의 가치를 탐구하고 평가하는 세계로 나아가기 이전에 쓰여진 작품으로, 상실감과 이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리듬과 형식이 조화를 이뤄 시의 서정성이 돋보인다.
(4)「아침에」 강릉 출신 시인 김유진의 시.
1952~1953년, 강릉 현대 시단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청포도'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 김유진(金有振)[1926~1987]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99년 시비로 제작되어 경포 호숫가에 세워졌다. 1985년 강원일보사 출판부에서 펴낸 시집 『산계리』에 수록되었다.
구성>「아침에」는 연 구분 없이 총12행으로 이루어졌다. 3~7행은 한 행이 한 문장으로 완결되어 간결하면서도, 리듬에서 속도감이 느껴진다.
내용>안개가 개일 때면/ 안개가 슬리는 자욱마다, 이슬이 눈을 뜬다./ 황망(慌忙)히 이슬 속에 하루가 열린다./ 찰라(刹那)에서 영원(永遠)히 승화(昇華)한다./ 발을 적시며 이슬 길에 선다./ 혈정(血精)이 응결하여 이슬 같이 듣는다./ 우화(寓話)같은 인생(人生)을 잊어버린다./ 풀잎처럼 청신(淸新)히 젖은 가슴에/ 태양(太陽)이 와 안긴다./ 오후(午後) 두시(二時) !/ 아! 만상(萬象)이 비로소 생명(生命)에로 신장(伸長)하는/ 이 고요하고도 싸늘한 계시(啓示).
특징>이슬, 태양 등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가는 자연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생명과 생태의 신비를 찬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아침에」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순수 서정의 세계에 몰입한 김유진의 시 세계를 잘 보여준다. '우화'로 표상된 삶 보다, '영원히 승화'하며 '계시'로 표상되는 자연의 순환과 섭리를 우위에 두는 김유진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시 세계는 1969년 김유진을 『현대 문학』에 추천한 박두진의 시 세계와 닮았다. 김유진은 전쟁기에 황금찬, 최인희, 이인수, 함혜련 등과 함께 '청포도' 동인으로 활동하며 강릉 현대 시단의 형성에 초석을 놓았다.
(5)교실 꽉 찬 나비 (최도규·아동문학가, 1942-1992)
어쩌다/교실에 날아든/한 마리 나비
책을 쓸던/까아만 눈들을/모두 낚아 올린다
책갈피 뛰쳐나간/눈망울들도/장난 속을 튀어나와/살포시 여는/앞니 빠진 입들
선생님도 슬그머니/빼앗기는 눈동자
마알갛게 빛을 낸/유리 그물에 걸려/열린 창 옆에 두고
호록호록 날다/아이들 눈 속으로/쏙쏙 들어가/교실 안은/꽃밭/꽉 찬 나비
최도규는 1943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76년 동시 <고목>, <교실 안 붕어>로 ≪아동문예≫의 추천을 받고, 이어 1977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시 <교실 꽉 찬 나비>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저서로는 동시집 ≪교실 꽉 찬 나비≫, ≪이사가던 날≫, ≪달맞이꽃≫ 등이 있고, 한정동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92년 타계했다.
(6)「비 개인 저녁」최인희(崔寅熙)[1926~1958]
강원도 삼척에서 출생 1950년 『문예』에 「낙조」·「비 개인 저녁」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강릉 현대 시단의 초석을 놓은 '청포도'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강릉 여자 고등학교와 강릉 사범 학교에 재직하며 많은 문인들을 길러냈다. 1982년 유고시 47편과 미발표 장시 「여정백척」, 수필 13편 등이 함께 수록된 유고 시문집 『여정백척(旅情百尺)』[가리온 출판사]이 출간되었다. 「비 개인 저녁」은 1950년 『문예』 6월호에 발표된 최인희의 등단작으로, 이 시는 시비로 제작되어 경포 호숫가에 세워졌다. 연 구분이 없이 총10행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먼 산(山) 고을에 푸른 안개 서서히 기어오르고/ 들과 집과 나무들은 거울 속에 뵈는 듯한데/ 마을은 멀리 가까이 맑은 연기를 뿜어 올린다./ 산(山)을 넘은 햇빛은 물에 고이 씻긴 듯 창(窓)가에 부드러운 날개를 펴고/비가 개인 저녁답은 먼 산(山)도 가까이 오길래/ 사립을 열고 마조서서 산(山)길을 바라보는 노인(老人)도 있다./ 비에 젖은 방울소리 한산히 들려오면/ 소와 송아지를 앞세우고 도라오는 목동(牧童)이 춥겠다./ 조용히 이슬이 지는 호수(湖水)ㅅ가에는 하이얀 물줄을 그으며/ 한쌍의 백구(白鷗)도 떠나가리라.
특징>비 개인 저녁 무렵의 풍경을 섬세한 언어로 한 폭의 동양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전쟁기인 1952~1953년, 황금찬, 이인수, 함혜련, 김유진 등과 '청포도' 동인으로 활동하며 강릉 현대 시단에 초석을 놓은 시인 최인희는 불교 사상이 가미된 동양적 서정을 섬세한 언어로 노래했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한문과 불경을 공부한 바 있는 최인희는, 시와 선(禪)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중국 당나라 때 「한산시(寒山詩)」의 시풍과 닮아 있다. 등단작인 이 작품에서도 한산시처럼 은둔과 관조, 그리고 적조의 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7) 『감자꽃 태산』시인 원영동(元永東)[1930~2003]
강원도 원주시 문막에서 태어나 강릉에서 활동함 [개설] 1995년 출간한 시집 『감자꽃 태산』의 표제작이며, 2005년 월간 한맥 문학사와 한맥 문학가 협회 주관으로 시비로 제작되어 경포 호숫가에 세워졌다. 시비는 조각가 장윤우가 조각을 했다. [구성] 4연 16행의 시로, 마지막 연은 그가 후기에 즐겨 사용한 감탄사 '허허'로 시작된다.
[내용] 강원도/ 산간벽지 벼랑까지/ 화전밭을 일구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네// 그때는 어디를 가도/ 감자꽃이 만발했고/ 다만 감자만을 먹었다네// 새하얀 감자꽃은/ 쑥국새 소리에 피고/ 오뉴월 땡볕에선/ 태산을 뽑았다네// 허허 뽑아도 뽑아도/ 알은 부실하였지만/ 나는 어머니와 함께/ 큰 산 큰 땀의 감자를/ 한없이 뽑았다네
[특징] 감자를 통하여 가난의 시대와 강원도의 정서를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연에 사용된 '허허'라는 감탄사는 시인의 관용과 달관의 세계관을 드러내 준다. [의의와 평가] '감자바위'라는 속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자는 강원도와 강원도민을 상징한다. 원주, 철원, 강릉 등 강원도의 여러 지역에서 살았던 시인은 감자꽃과 감자를 통해 강원도의 정서와 유년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이 시에서 감자는 가난의 상징이기도 하고, 강원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인은 여기에 더하여 어머니와 함께 감자를 캐던 유년 시절을 회고 하며 노동의 신성함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시에도 등장하는 '허허'라는 감탄사는 시인이 후기에 즐겨 사용한 시어로, 관용과 달관의 세계관을 표상한다.
(8)<세월이 가면> (박인환 시, 이현섭 작곡, 박인희 노래, 1976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저 유리창 밖 가로등/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시인은 1926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1956년 3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는 195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었다. 명동신사, 명동백작으로 불릴 만큼 당대의 최고 멋쟁이였고 명동에서 예술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노래하며 풍류를 즐기는 또한 당대 최고의 낭만가객이었다고 전해진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멋진 삶을 살다간 시인이었다. ‘세월이 가면’ 이라는 이 詩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목마와 숙녀’와 함께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또 詩보다 박인희의 노래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명동 어느 술집에서 박인환이 詩를 써서 옆에 있던 이진섭작곡가에게 보여주자 그 자리에서 곡을 붙이고 함께 있던 나애심이 바로 불렀다고 한다. 나애심이 먼저 나가고 나중에 온 테너 임만섭이 그 악보를 보고 다시 노래를 부르자 주위에 있던 손님들이 몰려들어 노래를 감상했다고 한다. 그 때는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박인희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詩보다 노래로 더 잘 알려졌다. 불행하게도 시인은 이 詩를 쓴지 얼마 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누군들 이렇게 잊을 수 없는 애틋한 사연이 없으랴마는 詩로 쓰고 곡조를 붙여 노래로 불려지니 더욱 절절함이 사무치는 것 같다. 이 詩의 첫 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그 입술은 내 가슴에 남아있네. 눈동자와 입술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찌 그 이름을 잊었으랴. 그만큼 머리로 기억하는 사랑이 아니라 온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시각과 촉각 등 온몸이 기억하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란 뜻이 아닐까.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가로등 그늘의 밤 또한 잊을 수 없다고 되뇌고 있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라고 노래한 세 번째 연이 이 詩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 술술 나열해 나간 행간에서 필자는 그 잊지 못하는 사람의 부재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나뭇잎처럼 떨어져 나뭇잎에 덮여 흙이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연도 첫 연과 같은 반복이지만 내 서늘한 가슴에 있다고 한 행을 더하고 있다. 그 서늘함이 어쩐지 죽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두 번째 연의 그늘의 밤과 세 번째 연의 흙이 되고 마지막 연의 서늘한 가슴 모두가 죽음의 이미지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랑도 가고 그도 가고 추억의 쓸쓸한 노래만이 남았다. 오늘도 비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 사람들의 촉촉한 가슴을 더욱 풍성한 감성으로 채워주는 詩이며 노래이다.
(9)「진실」[ 眞實 ]박기원(朴琦遠)[1908~1978]은
강릉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 대학 문과대를 졸업했다. 1929년 『민성』에 「실향」을 발표하고, 같은 해 『문예 공론』에 시 「홍수」가 입선하여 등단했다. 1938년 첫 시집 『호심의 침묵』을 출간했으나 일본 경찰에 압수되어 현재 전하지 않는다. 1953년 부산 피난기에 최재형과 공동 시집 『한화집(寒火集)』[현대사]을, 1969년 단독 시집 『송죽매란(松竹梅蘭)』[삼일각]을 각각 펴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 기자로, 광복 후에는 『독립신문』 창간 위원과 『평화신문』 문화부장으로 활동했다. 한국 문학가 협회 중앙 상임 위원 및 이사, 예술원 사무국장, 한국 현대 시인 협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해방 전에는 목민(牧民)이란 호를, 해방 이후에는 야청(也靑)이란 호를 각각 사용하였다.총 62편의 시로 이루어진 시집 『송죽매란』 1부에 실려있는 「진실」은 총 4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로, 시조작법으로 시상과 운율이 전개되고 있다.
내용>푸른 잎사이에, 한 점, 붉은 것은, 생명(生命)의 눈 동자(瞳子)/ 푸른 하늘에, 일월(日月)이 가는 건 영원(永遠)히 있는 신(神)의 마음/ 푸른 호심(湖心)에 별이 잠기는 건, 쇠(衰)하기 설운 인생(人生) 백년(百年)/ 푸른 가지에 열매가 달리는 건, 끝내 못 잊는 사람이 있기 때문
특징>각 행이 모두 '푸른'이라는 시어로 시작되고 있고, 이와 대비되는 색깔 및 상황이 뒤에 이어져 드러내고자 하는 심사가 강조되고 있다. 시조의 운율을 빌어 점층식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생명과 사랑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있다. 「진실」이 새겨진 시비가 경포 호숫가에 있다.
의의와 평가>1929년에 등단한 시인 박기원은, 현대 강릉 시 문학사에서 시인 김동명과 '청포도' 동인 사이의 시대적 공백기를 메워주는 시인으로 손꼽힌다. '청포도' 동인으로 활동했던 시인 함혜련이 1959년 박기원의 추천으로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시 「진실」은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생명과 사랑의 소중함을 노래해온 박기원의 결기와 시 세계를 함축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10)수선화[ 水仙花 ] 김동명(金東鳴) 작사·김동진(金東振) 작곡의 예술가곡.
구성 및 형식>가곡 「수선화」는 전체 5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의 형식에 역시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구조로 작곡된 통절 가곡이다. 피아노 전주와 간주를 포함하여 74마디로 되어 있는 마디 구성은 크게 보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나 기존의 가곡에 많이 사용된 가요형식에서 벗어나며 4분의 2박자로 시작하여 4분의 3박자로의 박자 변화와 내림 마단조로 시작하여 사장조를 거쳐 사단조로 끝나는 점 등이 특징이다. 보통 빠르기로 표정을 풍부하게(Moderato con espressivo)라는 지시어에서 보여주듯 셋잇단음표와 점점 느리게(ritardando), 늘림표(fermata) 등을 사용해 가사의 내용과 곡의 분위기를 극적이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피아노 반주 부분에서도 트레몰로(tremolo: 떨리다 라는 뜻으로 같은 음을 빠르게 반복함)와 옥타브를 사용하여 가사에서 나타나는 단어의 의미와 강렬한 분위기를 나타내주었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주 세게(ff)와 아주 여리게(pp)를 사용하고 pp보다 더 여리게(ppp)로 끝맺음하여 비극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였으며 자유로운 악상전개와 표현양식, 낭만적인 가곡의 서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곡이다.
내용>김동명(1900∼1968)의 시 「수선화」에 1941년 만주 신경교향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던 김동진(1913∼2009)이 곡을 붙였다. 김동명은 강원도 강릉시 출생의 시인이자 정치가이며 「수선화」는 1936년에 발간된 그의 시집 『파초』에 수록되어 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나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붙일 곳 없는 정열을
가슴에 깊이 감추이고
찬 바람에 쓸쓸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
또한 나의 작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작곡가 김동진은 평안남도 안주 출생으로 「가고파」, 「봄이 오면」, 「산유화」, 「못 잊어」, 「목련화」 등을 작곡하였다. 「수선화」는 가사가 주는 음악적 감동이 커서 곡의 앞부분을 김동진이 피아노를 치며 단숨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곡에서 수선화는 단순히 꽃의 이미지가 아니고 마음, 넋, 얼굴, 소곡, 애인 등으로 은유 되며 죽음과 다시 살아남, 쓸쓸함과 적막함, 애인과 사랑 등의 단어를 통하여 낭만적인 가곡의 서정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용 면에서 수선화는 죽어서 멸망한 조선과 한민족을 상징할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난다는 광복운동을 노래한 시로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곡이다.
(11) 「눈보라」 시인 심연수의 대표작.
시 「눈보라」는 일제 강점기에 굴하지 않고 시혼을 불태웠던 강릉 출신의 시인 심연수(沈連洙)[1918~1945]의 대표작 중 하나로, 동시대를 살다간 시인 이육사의 시 「절정」과 함께 1940년대의 암흑기를 밝힌 작품으로 손꼽힌다. 2003년 「눈보라」를 새긴 시비가 경포 호숫가에 건립되었다.
구성>2연 10행으로 이루어진 시로, 각 행의 길이가 짧아 추위와 삭막함이 강조되고 있다.
내용>바람은 서북풍(西北風)/ 해 질 무렵 넓은 벌판에/ 싸르륵 몰려가는 눈가루/ 칼날보다 날카로운 이빨로/ 눈 덮인 땅바닥을 갈거간다.// 막막(漠漠)한 설평선(雪平線)/ 눈물 어는 샛파란 공기( 空氣)/ 추위를 뿜는 매서운 하늘에/조그만 해ㅅ덩이가/ 얼어 넘는다.
특징>「눈보라」의 중심 이미지는 얼음[눈물 어는]과 태양[햇덩이]이다. 얼음은 죽음을 상징하고, 태양은 불, 즉 생명을 상징한다. 이 두 개의 상반되는 이미지는 긴장을 불러오고, 이 긴장 속에 초월[얼어 넘는다]적인 상상력이 전개된다. 햇덩이는 작고, 비록 얼어있지만 그래도 추위를 뿜는 매서운 하늘을 넘어간다는 점에서 시인의 희망과 초극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심연수는 윤동주, 이육사와 함께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저항 시인, 민족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 시는 내용과 비유의 측면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노래한 이육사의 시 「절정」[1940]과 자주 비교된다. 「눈보라」는 이육사의 시 「절정」처럼, 수난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저항 정신과 초극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강원도와 경상북도 동해안 일대의 여덟 명승지.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청간정과 삼일포,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과 월송정을 일컫는다. 대관령의 동쪽이라 하여 '관동'이라는 말이 붙여졌지만, 현재는 망양정과 월송정이 경상북도에 편입되었고, 삼일포와 총석정은 북한지역에 들어있다.예로부터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문인들이 풍류를 즐긴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특히 조선 선조 때의 시인인 정철은 가사인 <관동별곡>에서 그 아름다운 경치를 찬양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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