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은 본래 斧자의 초기 형태이다. 금문의 父자는 한손에 한 자루 돌도끼를 잡고 있는 모양이다. [1]청동기 명문에 보면 큰 도끼를 들고 있는 형태로 쓰여진 글자도 있다. 원시사회 부계(父系)시대에, 돌도끼는 일종의 주요한 무기와 생산 공구였다. 또한 돌도끼를 손에 쥐고 적과 싸우거나 어렵고 고달픈 야외 노동에 종사하는 것은 성년 남자의 책임이 되었다. 그래서 父는 성년 남자에 대한 일종의 존칭으로 파생되었고, 후에 또한 친생 부친과 동년배 남자의 칭호가 되었다. 斧와 斤은 유사한 도구이므로 斤가 형태부, 父가 소리부가 되었다. [2]
文化
최초의 斧는 부락 안에 우두머리의 성년남자가 사냥감을 분배하는 공구였다고 한다. 이는 곧 부권의 상징이다. 계급이 발생하여 왕이 탄생하였다. 王은 왕권을 상징하는 대형의 도끼(鉞)를 가진다. 이 도끼의 상형이 王의 기원이다. [3] 선비(士)들도 권력을 상징하지는 않지만 도끼를 가진다. 두 글자 모두 병기의 날 부분을 의례 도구화한 그릇의 모양을 본 뜬 글자이다. [4]
가계(家系)의 존속을 강조하는 우리의 가족제도에서 가족의 우두머리인 가장은 시조에서부터 수많은 세대의 조상들을 거쳐서 대대로 이어져온 가계를 물려받은 사람이고, 또한 이 가계를 단절 없이 후세에게 이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어느 가족에게서나 아버지는 먼 과거에서 시작되어 미래로 연결되는 가계의 연결고리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아버지의 가족 윤리 기본은 권위였다. 사실 가계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자식 특히 아들을 가계의 대를 물려 줄만한 인물로 키우는 것이 바로 아버지에게 달렸다고 할 정도로 그의 임무는 막중하다.
아버지가 가족의 중심적인 인물이기에 전통사회에서는 친족호칭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지칭하는 용어가 극히 다양하여, 이 많은 용어들 중 맥락에 따라서 얼마나 적절히 잘 구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 개인의 학식과 품위를 가늠하는 한 중요한 지표로 간주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