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의 길을 함께 가는 벗들에게
입동이 지나며 차가운 바람과 함께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지만 뜻을 나누는 정다운 이들이 있어 마냥 춥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안녕하신지요? 저희들이 이렇게 글을 드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번 교육부 지원금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실 분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희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갖게 된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교육부에서는 2006년부터 교육복지 차원에서 대안교육 현장들을 지원해왔습니다. 첫해엔 55개 현장에 7.5억 원을 보내왔고, 이후로 액수와 지원 현장도 차츰 늘어 올해는 93개 현장에 11.5억 원을 나눠주었습니다.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건강한 교육을 실천하려 애쓰는 시민으로서 받아 마땅한 돈임에도 무언가 눈치 보는 심정이 드는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건 어려운 형편에 요긴하게 써왔습니다. 덕분에 비가 새는 곳도 좀 막고 구입이 부담스러웠던 목공구도 마련해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출된 계획서의 내용에 따라 인정되는 정도가 다르고 그에 따른 지원금의 액수가 달라졌기에 어쩐지 능력을 비교 평가받는 듯한 느낌도 있었습니다만,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교육여건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절실하게 신청서를 쓰게 되고, 프로그램 계획서도 호감을 사기 위해 애써 작성한 경험은 다들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필요한 교육비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고, 전체 교육예산 45조 원에 비하면 껌값도 아닌 돈인데,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탔으면 하는 마음으로 결정통지문을 열어보곤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생각해보면 그 돈이 우리가 낸 세금임에도 떳떳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은, 건강한 교육을 위한 우리 노력에 대한 정당한 자리 매김 속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책 없이 늘어나는 학교이탈자들에 대한 임시방편의 시혜성 배분이라는 성격과, 우리를 빌미 삼아 공교육 영역에 시장과 경쟁의 개념을 끌어들이려 했던 의도가 있음을 일찍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혹 이 돈을 당근 삼아 우리를 길들이려 한다면 당장에라도 받기를 그만 두면 양심에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하고 받기는 했는데.... 밍기적거리다가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일단 제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얼마 되지도 않는 지원금에 벌써 익숙해져버린다면 우리가 도대체 뭘 하자는 사람들인지, 어떤 세상을 꿈꾸며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날이 차고 신종 질병이 기승을 부리는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백신주사보다 스스로 항체를 가르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봅니다. 그러자면 이겨낼 만할 때 그 병을 겪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방법이긴 하지만 멀리 보면 옳은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럴 용기와 내공이 있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참된 용기는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솟아오른다고 할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하는 진지한 물음일 것입니다. 너도나도 대안교육 한다며 새로운 학교를 세우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이 길에 들어서던 첫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를 돌아보는 마음가짐으로 올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받은 대안학교 지원금을 되돌려줄 것을 삼가 제안 드립니다. 자기 발밑을 살펴 각자의 길에 맞게 판단해야 하기에 설령 다른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존중심을 잃지 않아야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결국 다다르고자 하는 그곳을 함께 바라보며 한 마음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때라 믿으며 좀더 멀리 보고 함께 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정부는 대안학교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대폭적인 제도 편입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법적으로 인정해주겠다는 뜻에서는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만 올해의 지원 심사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신들의 입맛과 잣대에 맞는 이들에게 기우는 것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저 손을 계속 잡아도 괜찮을지 심각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올해 들어 지원금 수령 대상에 특정 종교의 엘리트 양성 성향의 현장들이 포함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우려는 더욱 깊어집니다. 그들을 비난할 뜻은 없지만 같은 명단에 들어가 그 줄에 서게 되는 이 상황에 대해 아무 감각이 없다면 앞으로 닥칠 정체성의 혼란과 그로 인한 대안교육의 운동성 상실이 우리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은 뻔한 일일 것입니다. 외국의 사례들을 비춰보면 괜한 소리가 아닐 것입니다.
별 성찰이 없는 상황에서 지원금과 제도화를 쉽게 여긴다면 훗날 크게 후회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흔한 일입니다. 자신의 참모습을 잃은 의미 있고 멋진 삶이란 게 어디 있겠습니까. 어렵고 힘든 시절이기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마음을 여유로이 하여 상황을 휩쓸리지 않고 우리를 깊이 들여다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기저기 대안학교, 대안학교 하며 야단스러운 이때, 나이가 차면 빈들로 나가 자신을 돌아본다는 인디언들처럼 우리도 이 기회에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나저러나 아이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면 좋지 않느냐는 말도 일리는 있지만 지금은 멀리 보면서 깊은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휩쓸려 의미를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오히려 이런 결정이 훗날 아이들로부터 삶의 모범으로 비칠 때가 오면 그들에게도 큰 배움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지난날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그 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여러 번 숙고했을지는 몰라도 의심스러운 의도에 대해 지원금을 되돌려준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어느새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요. 길들여진 운동성이란 게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무조건 거부하는것이 옳다는 말은 아닙니다. 권력에 의해 베풀어지는 것들에 대해 반성이나 성찰 없이 마냥 길들여지는 것을 경계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가 저항정신, 진리추구심, 자유영혼 이런 것을 가진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이번엔 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알뜰살뜰 살아갈 수 있는 곳도 있지만 그 돈이라도 없으면 정말 곤란해지는 곳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힘든 아이들을 위한 현장들은 특히 그렇겠지요. 그래서 말씀드리기가 정말 고민이 되었습니다. 미안하기도 하고요.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갔으면 합니다. 십시일반 추렴하면서 사회에 호소하는 것은 어떨까요. 분명 반향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우리의 공공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보통의 때라면 담당부서에 유감 전달과 개선을 다짐받는 선에서 끝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촛불 길들이기에 나선 위압적인 정부의 태도에 사회 전반이 얼어붙는 지금, 우리가 첫 마음을 잃고 시류에 끌려가는 게 아닌가 진심으로 반성이 필요한 시기라고 저희들은 판단했습니다. 그런 뜻에서 지원금 반환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단순한 지원금 반환이 아니라 이를 통해 깊은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희는 이 일이 우리를 새롭게 세우고 실천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저 저항하기보다 우리들이 하려고 했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힘’을 기르는 디딤돌로 만들려면 몇 가지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안교육진영의 ‘재정자립’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미인가대안교육시설 재정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형태가 아닌, 그야말로 우리들의 학습권과 교육권을 보장받는 차원에서의 공공적 지원의 길을 열기위한 대책 마련은 물론 우리 내부의 자립을 위한 공동의 지혜를 모으는 일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이 길에 저희들도 다같이 힘을 모을 것을 감히 약속드립니다.
대안교육을 한다는 것만으로 외로운 여정에 힘이 되고 싶은 것은 몇몇 사람들만의 정서는 아닐 것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가지 않을까 짐작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10년의 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쪼록 내면에서 들리는 음성에 귀 기울이는 나날이기를 빕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김희동, 박복선, 양희창, 이철국, 현병호, 황윤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