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풍경
kch_35@hanmail.net강철수
새파랗던 젊은 부부가 어느새 새하얀 할매, 할배가 되었다.
재를 넘고 내를 건너 여든 몇 해를 달려 이제 종점 부근인 해질녘에 와 있다.
젊어서는 일하랴 아이들 공부 시키랴 정신없이 돌아쳤고, 이후에는 손주놈들 재롱에 세월 가는 줄 몰랐다. 바쁘고 좋을 때는 있는 둥 마는 둥 서로 무덤덤한 부부였다. 그러다 신혼 시절 버금가게 가까워진 건 해가 서산에 걸린 요즘이다.
아이들이 회갑을 맞는가 하면 손주들이 시집 장가를 가기 시작하면서 노부부의 본가(本家)는 추수 끝난 휑한 들판이었다. 그 들판에 내려앉는 저녁놀,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유일한 사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했다. 말결도 부드러워지고 톤도 낮아졌다. ‘당신처럼 하면 우리 살림이 벌써 거덜 났을 거요!’, 할배가 전등을 끄지 않거나 물을 헤프게 쓰면 으레 따라붙던 할매의 쇳소리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할배도 시난고난 건강이 좋지 않은 할매를 위해 기꺼이 앞치마에 고무장갑을 끼고 부엌일을 도맡았다. 이리 서로를 껴안음은 남은 삶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상대가 몰(歿)해 혼자가 되었을 때의 황량한 삶이 떠올라서일지도 모른다. 해질녘의 사별 그리고 혼자의 삶, 누구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까.
할배보다 다섯 살 아래인 할매, 영감 따라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고 보건소에 들러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를 작성하는가 하면 영정사진도 준비했다. 주 무대이던 성당에서도 뒤로 물러났다. 한창때는 성모회 회장에다 성가대 단장까지 맡았는데 뉘엿뉘엿 해거름이 되면서 하나 남아있던 ‘레지오 마리애’에서까지 발을 뺐다. 비 오기 전의 단속을 비설거지라 한다면, 할매의 이런 처리들은 해 지기 전의 ‘해넘이 설거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할매가 영감 소매를 끌어당겨 신부님과 수녀님께 인사를 시키고 또래 할머니들에게도 저이가 우리 남편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할배는 주로 집에서 방송 미사를 보고 성당에는 특별한 날에만 가는 데다, 가서도 곁에 앉지 않고 멀찍이 앉기에 두 사람이 부부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인사를 시킴은 당신이 독거노인이 아니고 허우대 멀쩡한 영감이 있다고 동네방네 외치고 싶었을까. 아니, 이 또한 해넘이 설거지였을지도 모른다.
나이 든 사람들은 낙상과 고뿔을 조심해야 한다 했다. 잘못 넘어지면 뼈가 바스러지고 감기는 만병의 시초이니 당연히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할배는 거기다 한 가지를 더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망(老妄)!, 요즘 말로 치매다. 삶을 송두리째 블랙홀로 빨아들이는 그 병은 요양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하지 않는가. 그걸 피하는 데 특효가 있다는 글쓰기 공부에 정성을 쏟는 할배, 물도 많이 마시고 혓바닥 굴리기도 하루에 수없이 한다. 할매 또한 새벽같이 일어나 성경을 필사하는가 하면 저녁때는 화투장 짝 맞추기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걸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지력(認知力) 감퇴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빠져나간 그 자리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건망증, 깜빡! 깜빡! 사흘이 멀다고 지갑을 찾느라 부산을 떠는 할매, 신용카드 분실을 신고했다가 취소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들이 올 적마다 내어놓는 핸드폰, 카카오톡 사용법을 돌아서면 까먹는 모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자식들 앞에서 이전에 했던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재탕 삼탕 할 때는 모두가 미소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할배도 도긴개긴 마찬가지였다. 반갑게 악수하면서도 상대방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애를 태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양치하고 혓바닥을 긁었는지 아닌지 몰라 칫솔을 든 채 멀거니 서 있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당신이 주관하는 점심 모임, 정해진 날짜지만 깜빡할 수도 있겠다 싶어 ‘바로 오늘입니다’라는 문자를 띄운 다음 왼 손목에 불망(不忘)의 고무밴드 하나를 채운다. 이전 어느 달이던가, 그런 문자를 보내고서도 깜빡해서 생난리를 치르지 않았던가.
‘약 안 먹는 노인 있으면 나와 보라 하소!’ 강골인 할배 친구도 약을 한 주먹씩 먹는다고 했다. 처방 약 한두 가지에다 비타민 같은 보조제들일 것이다. 할매, 할배도 역시 한 주먹씩이다. 거기다 안압을 낮추는 점안액도 하루에 두 번씩, 의좋게 넣고 있다. 대학병원에서는 대개 육 개월 분 약을 한꺼번에 주기에 그 부피가 엄청나다. 거기다 자식들이 병약한 어머니를 위해 들이미는 홍삼정 같은 보약 또한 적지 않아 할매는 숫제 부엌 수납장 한 칸을 약장으로 쓰고 있다.
약이 빨리 찾아지지 않으면 득달같이 할배를 불러댄다. 금세 찾아 대령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뒤져도 오리무중이었다. 강남 A 대학병원에서 타 온 심장약이다. 삼 개월 동안 먹었는데 앞으로 먹어야 할 삼 개월분 약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항응고제인 그 약은 심장병 환자들이 뇌졸중 예방을 위해 반드시 복용해야 했다. 냉장고 안을 뒤지고 침대 밑은 물론이고 베개 머리맡까지 살폈다. 꼬박 이틀 동안 난리를 치다가 대학병원 의사인 막내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삼 개월 분 처방전을 다시 받을 수 있었다. 할배가 약국으로 가 약을 받으면서 잃어버린 약의 행방이 밝혀졌다.
얄궂게도 그 약은 할매 배 속에 있었다. 하루에 한 알씩 먹어야 하는 걸 두 알씩 먹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박장대소를 멈춘 건 ‘환자가 약을 건너뛰는 것보다 먹은 약 또 먹는 게 훨씬 더 위험하다.’라는 약사의 말 때문이었다. 다시 비상이 걸렸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느니 이렇듯 멀쩡하니 그럴 필요가 없다느니 설왕설래가 뭉게구름이었다. 그 구름을 단칼에 헤친 건 역시 막내였다. ‘많이 웃고 식사 잘하시면 됩니다.’
해질녘 노령들은 비뇨기과 의사를 먹여 살리는 큰 손이다. 할배는 전립선비대증으로, 할매는 요실금으로 넉넉히 그들에게 돈을 준다. 할배는 그런대로 돈값을 하지만 할매는 영 아닌지, 한 시간이 멀다고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당연히 장거리 버스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이제 봄이 오면 성당에서 이곳저곳 성지순례를 다닐 텐데 못 가는 할매의 심정이 오죽할까 싶어 할배가 묘안을 짜내었다.
묘안은 성인용 기저귀였다. 전립선암 수술받은 친구가 한동안 그걸 차고 여행도 다니지 않았던가. 얼마 전 연예인들의 TV 방담, 부산에서 대구 찍고 대전 찍고 서울이라는 빡빡한 일정일 때는 당연히 기저귀를 찬다고 했다. 잘 설명하면 할매가 그걸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은 할배, 봄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당장 이번 가을부터 시도해보는 게 옳다 싶었다. 마침 계제가 생겼다. 십일월 첫 주, 할배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M 산악회에서 충남의 오서산 등반 후 광천읍 장터에서 김장용 새우젓을 구매하는 일정이었다.
그곳은 할매가 기저귀를 차고서라도 가보고 싶은 곳일지도 모른다. 아득한 세월 저편, 광천 구 장터 초가집 문간방,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 초반의 햇살 같은 부부가 조롱조롱 아이 셋을 키우며 푸른 꿈을 달래고 있었다. 부엌 없는 단칸 셋방, 연탄불 구멍 맞추느라 캑캑거리고 동지섣달에도 찬물에 설거지하고 빨래하던 할매, 이곳저곳 장마당을 찾아다니는 신출내기 곡물 장수 할배, 세월이 흘렀다고 어찌 그곳을 잊겠는가.
이외로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겠다 싶은 할배, 서둘러 백화점으로 달려가 예의 그 기저귀 한 뭉치를 샀다. 한가한 오후, 소파에 앉아 있는 할매 곁으로 다가갔다. 급하게 본론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차분히 변두리에서부터 분위기를 잡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광천 구 장터 얘기부터 꺼냈다.
“그 집 탁 씨네, 두부 장수였는데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이외로 빠른 할매의 반응에 쾌재를 부른 할배,
“우리 거기 한 번 가보자.”
내달 M 산악회 따라가면 자식들 폐 안 끼치고도 너끈히 다녀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요실금 때문일 것이다. 기다리다 못해 할배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기저귀 찼던 친구와 연예인 얘기를 한 다음 등 뒤에서 기저귀 뭉치를 슬며시 내밀었다. 웬걸, 그걸 밀쳐내는 할매. 슬픔 그렁한 눈빛이었다. 벌에 쏘인 듯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할배, 그 애련한 눈빛을 어찌 차마 마주할 수 있겠는가. 그걸 들고 일어서는 할배의 눈자위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겨울 끝자락인 2월 9일이 할매의 생일이었다. 그 나흘 전에 들어온 축하 화분, 분홍색 리본 한쪽에는 ‘祝, 朴英姬 女史 八十四 回 生辰’ 다른 한쪽에는 ‘本家 大主’ 였다. 할배가 두어 달 전부터 화원에다 공을 들였을 것이다. 사실 할매 생일에 이리 큰 꽃나무 선물은 처음이었다. 주인공 키보다 한 뼘이나 더 높은 진홍 철쭉, 해질녘 노을보다 더욱 붉고 아름다웠다. 꽃을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 할매, ‘해질녘이 되니 별짓을 다 한다.’ 하지 않았을까.
첫댓글 더 깊어진 회장님의 글맛을 보니 설령 보여주신 자잘한 사연들이 사실일지언정
그다지 서글프지 않네요.
세월의 힘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스며들어 소리없는 점령군처럼 위협적이지만
잘 살아오신 그 내공은 충분히 그 힘에 맞서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진군하시리라 여겨집니다.
회장님, 이 세심함, 다감함으로 늘 행복하십시오.
복희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