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시시포스
아침 8시, 골목이 깨어난다. 큰 바위 하나가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주택의 벽을 타고 올라온다. 곧이어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덩치 큰 사내아이 하나가 고함을 지르며 집 앞 골목을 지나고, 잠시 후 손가방 하나를 팔목에 걸친 그녀가 허겁지겁 나타난다.
내가 사는 동네는 병영성이 품은 마을이다. 조선시대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산세를 갖춘 능선에 성곽을 쌓았다. 포곡식 산성이라 집들 또한 성 언덕에 기대어 나지막이 자리한다. 다닥다닥 붙은 주택의 벽들이 마주 서서 골목을 이루고 있어서 한낮에도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올 정도로 한적한 마을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학부모 회장이었던 그녀가 총무인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둘째라고 소개받은 아이가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말을 시켜도, 웃어주어도 반응이 없었다. 꽉 찬 여섯 살이지만, 대소변을 못 가려 기저귀를 차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간간이 눈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오고 갔다. 여느 모자와 다를 바 없이 아침이면 자분자분 오르막길을 올라 언덕 너머에 있는 학교에 데려다주었고 하교시간이면 기다렸다가 함께 내려왔다. 그녀는 어떤 의심도 없이 아들의 말문이 트이길 기다렸다.
지적장애인인 그녀의 아들은 지금 특수학교에 다닌다. 사지가 멀쩡하였으나 언어장애가 있고 사람과의 관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덕을 넘어서면 등교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아이는 혼자서 언덕을 넘은 적이 없다. 늘 엄마가 앞에서 끌거나 옆에서 훌치면서 걷는다. 버스가 출발하면 그녀는 올라갔던 길을 터벅터벅 되돌아온다.
예전의 그녀는 참 밝았다. 옆길로 새려는 아이의 손을 꼭 붙들고 가끔은 아는 이들과 눈 맞추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쩌면 ‘이까짓 것쯤이야.’,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는 희망을 품으며 언덕을 넘었을 것도 같다. 그저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는 것뿐일 거라고, 언젠가는 ‘엄마!’ 하며 품으로 달려드는 날을 기대하며. 그러나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면서 그니의 희망은 점차 절망이 되었다.
아들은 덩치가 커가는 만큼 힘도 세졌다. 망아지처럼 날뛰며 차도에 뛰어들기도 했다. 아침 골목은 클랙슨 소리로 소란스러워지고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귀를 막았다. 이제 둘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지 않았다. 울부짖는 목청, 날카로운 음성, 거친 숨결이 아침 골목 풍경이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나는 그녀를 보며 끊임없이 산꼭대기를 향해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를 생각했다. 얼마나 거부하고 싶었을까.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보며 넋을 놓고 차라리 깨어지기를 바란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번쩍, 정신이 들면 바위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겼을까 봐 애태웠으리라. 행여, 길을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들어서지나 않을까, 어느 집 담장 위로 올라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비 오는 날이면 경사진 도로에서 넘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와 나는 계단에 앉아 있다. 주간보호센터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머님은 다리 근육이 약해진 탓에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집 안에서는 엉덩이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기어 다닌다. 등굣길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잠시 이마 위 깊은 주름을 옅게 한다. 새벽에 잠자는 식구들을 깨웠던 기억은 까맣게 잊었는지, 얼굴빛이 평화롭다.
어머님은 젊은 날 기억 속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새벽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긴다며 이 방 저 방 돌아다닌다. 개어놓은 옷들이 엉클어지고 꺼낼 옷가지가 없어지고 나서야 아침밥 달라며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리고는 턱밑에 앉아 쉴 새 없이 중얼거린다. 처음에는 대화하자는 줄 알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노인성 치매의 한 종류라는 걸 안 후로는 나도 어머님의 음성에 귀를 막았다.
누구에게나 시시포스의 운명이 있다. 맞대고 비교해보면 크기와 무게는 분명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바위 하나씩 끌어안고 산다. 내가 그녀를 시시포스라 일컫는 것처럼, 그녀 또한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드러내기도 하고 더러는 감추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언젠가는 태산 같은 바위를 내려놓을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녀와 나는 하루에 두 번 골목에서 만난다. 나의 시선은 아들 꽁무니를 쫓아가는 그녀를 따라가고, 그니의 눈은 시어머니 손을 꽉 붙들고 계단을 오르는 나를 본다. 잠시 스쳐 가는 시선 속에는 연민과 안타까움과 이해가 뒤섞여 있다. 무언의 응시 속에, 끊임없이 바위를 산꼭대기 위로 올려야 할지라도 결코 쓰러지거나 주저앉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서.
그녀가 언덕을 넘어간다. 그 언덕길을 따라 주간보호센터 차가 내려온다. 나는 지팡이를 어머님에게 건네주며 일어서도록 돕는다. 두 손을 잡아끌어 일으켜 세우자, 겨우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긴다. 차문이 열리면 어머님을 향해 주름진 손들이 반갑게 마중 나온다.
이 골목엔 많은 시시포스가 살고 있다. 담벼락에 붙은 쪽문이 열리면서 취준생인 청년이 급히 내리막길을 내달린다. 베트남에서 돈 벌러 왔다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골목을 지나간다. 마흔 살 아들을 끼고 사는 슈퍼 아줌마가 출근하는 아들을 배웅한다. ‘댕기 와라’ 당부하는 아줌마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별나게 크게 들린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새소리가 들려온다. 바위산처럼 척박한 이곳에도 계절 따라 꽃이 피어난다. 삶은 고되고 힘겹지만, 누군들 가슴 깊숙이 바위 하나 굴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그것들로 인해 삶은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담벼락 틈에 힘겹게 고개를 내민 개보리뺑이꽃 옆으로 새끼 길냥이를 거느린 어미가 지나간다.
큰 바위를 꼭대기에 올려놓고 돌아서는 그녀의 손에 민들레 꽃대 하나가 들려있다. 홀씨들이 서로를 잡아당겨 이어붙인 모양이 둥그런 바위 같다. 그녀가 후하고 입김을 불자, 솜털들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어딘가에서 꽃이 될 그녀의 시시포스를 싣고서.
첫댓글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
누구나 크고작은 시지포스를 가지고있겠지요. 자고나면 해가뜨고 이어서 밤이오는 것처럼말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송년회에서 봬서 반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