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의 등장과 변론을 위한 선언(욥32:1-22)
본 장(32장)에서부터 37장까지는 엘리후의 중재적(仲裁的) 변론이다.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와는 별도의 사람이다. 다만 방관자(傍觀者)로서 욥의 논박에서 말을 못하는 세 친구의 태도와 욥의 자의(自義) 주의에 분개하여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1. 엘리후의 출현(1-5)
엘리후의 변론 중에 서론 격인 본문은 엘리후가 누구인 것과 그가 왜 간섭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욥의 세 친구를 가리켜 "그 세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그는 그들 일행에 속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욥과 세 친구의 족보는 본서에 없으나 엘리후는 분명히 기록하였으니 그는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이다. 부스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둘째 아들 이름이다. 또 아라비아의 한 성의 이름이기도하다(창22:21, 렘25:23). 람은 여라므엘의 아들이다(대상2:25). 또 그의 동생이라고도 하였다(대상2:9).
엘리후가 욥에게 분개한 것은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다. 이는 욥이 자기의 의(義)를 나타내려고만 애쓰고 신의 공의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욥은 자기 의를 강력히 주장하다 보니 자기 의를 신의의 이상에 놓는 태도를 가졌다고 엘리후가 반박하였다.
2. 엘리후의 변박(6-14)
본문에서는 젊은 사람이 노인 앞에서 먼저 지도자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는 젊은 사람이라도 나이 많은 사람 대신으로 옳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런 주장이 당연한 것은 젊은 사람에게도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엘리후는 오래 침묵으로 인내하면서 욥의 세 친구의 변론을 다 들어 보았다. 세 친구의 논전이 끝나는 것을 엘리후는 이렇게 상상하였을 것이다. "논전을 더 계속하는 것이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차라리 빨리 항복하자. 우리는 지금 욥의 놀라운 지혜를 보았으니 하나님이라면 몰라도 사람으로서는 그에게 답변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물러서는 것으로 보고 엘리후가 나섰다.
세 친구는 이론적으로 반박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하고 있음도 잘못되었기 때문에 엘리후가 나셨다.
3. 엘리후가 개입한 이유(15-22)
엘리후는 욥의 변론에 답변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18)고 하였으니 그의 심중에 욥에게 대하여 답변할 말이 솟아오른다는 뜻이다.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21). 엘리후는 여기서도 변론자로서의 자격을 표시한다. 자신은 편견(偏見)이 없다는 것이다. 대게 변론자들은 이기려는 목적에서만 서서 자기 의견을 편벽되이 편파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엘리후는 아첨할 줄도 모른다고 하였으며, 그리고 아첨하는 것이 큰 죄라고 하였다. 곧 아첨하는 자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취하여 가십이 마땅하다고 하였으며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시12:3)라고 시편기자는 말하였다.
◇ 엘리후는 아첨을 철저히 배격하며 죄악시하였으니 아첨하는 자는 진리의 원수가 되나니 이는 거짓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사람의 비위를 마추어 인간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까닭이다.
●결심 기도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https://youtu.be/G01h3kZ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