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일 무더운 날을 피해 휴가를 떠난 분들이 많음에도 이 날 강의실은 귀를 쫑긋 세운 열혈청자들로 후끈 달아올랐네요~
-군 부정선거 고발했던 당당한 군인 이지문 박사-
1992년 군부재자 투표에서 상사가 여당을 찍으라고 요구하고 공개투표를 진행한 사실을 고발했던 이지문 중위, 그가 추첨민주주의 연구자이자 시민운동가가 되어 강단에 서서 열띤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알려진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대부분의 선출직 선발방식은 선거가 아닌 추첨이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상징은 시민이 직접 참여해 구성하는 민회에 있었다. 민회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한 평의회, 시민법정, 행정관 3개의 기구도 존립했다. 평의회와 시민법정의 구성원 전원뿐만이 아니라 700여명의 행정관 중에서 100명 정도만 선거를 통해 뽑았고, 나머지 600여명은 추첨으로 선발했다. 이러한 아테네 민주주의 제도는 300여년을 지속하며 도시국가로서의 영화를 유지했다.
추첨민주주의는 아테네뿐만이 아니라 근대 선거제가 자리 잡기 전까지 아주 오랫동안 서구 정치체제에서 중요한 기능을 해 왔다. 프랑스대혁명 전후 프랑스의 정치체제를 정립해가는 과정과 미국 연방헌법을 둘러싼 격론 과정에서 추첨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은 활발하게 전개됐지만 대리인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선거제가 자리 잡게 되면서 추첨제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선거제는 얼마나 민주적일까.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재능이나 재산, 언변 등에서 자신보다는 뛰어나다는 판단 혹은 여러 후보자 중에서 가장 탁월하다는 평가를 내린 후보자를 선택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대표자가 아닌 나보다는 탁월한 대표자를 선택한다는 탁월성의 원칙이 선거에서 작동하게 된다. 다만 선거의 민주적인 요소는 모든 시민이 동등하고 자유롭게 그 판단에 참여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귀족적이며 민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선출된 대표자는 자신을 뽑아 준 유권자와 늘 멀어져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추첨민주주의를 생각해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첨제의 민주적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적인 것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적이라는 것이다."
시민이라면 모두가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추첨에 의해 선출된 특정한 사람이 역할을 수행해야 하므로 간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함께 갖게 된다.
나 자신도 언젠가는 선출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리인이 선택한 결과에 대한 신뢰는 확고해진다. 선거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유일한 선출방식은 아니었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추첨은 선거와 함께, 아니 선거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용된 민주적 선출방식이었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참여의 위기(낮은 투표율), 대표의 위기(비대표성), 책임의 위기(의회 부재)에 직면해 있다고 보는 이지문박사는 추첨제로 시민의원단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추첨제 도입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추첨으로 의원이 될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춰 정치적 평등과 통합의 효과를 높이고, 심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 기제를 도입해 대표성을 제고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추첨 민주주의》는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민주주의와 선거, 대의제와 투표의 관계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시민이 직접 대의하는 추첨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상상해보자고 제안한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인기리에 소진된 이지문박사님의 책의 싸인과 함께 한 컷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단체사진~
더더욱 빠질 수 없는 뒷풀이시간^^
첫댓글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 귀쫑도 (부분적으로나마)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동체의 방향이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결단을 내리기가 조금 어려울 수 있고, 관성의 법칙을 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지 조금 궁금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