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칩거
낌새가 이상하다. 둥글고 부드러운 뭔가에 둘러싸인 느낌이랄까.
사위가 고요하다. 15층 높이에서 듣는 소음은 울림이 크고 깊다. 그런데 이 고요함은 뭘까?
의아한 생각이 들면서도 따뜻한 이불 속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뭉그적거리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혹시?…. 거실로 나가 본다. 앞 동 꼭대기 위로 어깨를 드러내고 건재함을 과시하던 검단산이 사라지고 없다. 안경을 쓰고 다시 쳐다본다.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온다. “눈이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본다. 세상이 온통 흰빛이다. 모든 것들이 흰빛 아래 색채와 형체를 감추어 버렸다. 흰빛은 소리마저 삼켜 둥글고 순한 음색으로 되 뱉어낸다. 질주하던 자동차도, 활개를 치던 사람들도 다소곳하다. 삼가고 가리느라 세상은 잠잠하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다. 오늘은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하얀 손님은 며칠간의 칩거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비자발적 칩거는 자유롭고 유쾌하다.
나이가 들면서 칩거가 잦아졌다. 겨울이 특히 그랬다. 건강을 이유로 세상에서 나를 유리시킬 때면 마음이 불편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핑계로 읽히기 일쑤다. 우울하기도 했다. 소외감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요 며칠간의 칩거는 이유가 명쾌해서 마음이 가벼울 것이다. 이런 날이면 밥벌이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와 있다는 것이 고마워진다.
커피 메이커에 물을 붓는다. 블루마운틴 커피 가루를 적당량 덜어 넣고 스위치를 누른다. ‘블루마운틴’, 하면 파란 하늘과 만년설이 덮인 산봉우리가 연상되어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제 조금 있으면 커피 향이 집안에 가득 퍼질 것이다.
묵은 질화로에서 향연香煙이 모락모락 푸르게 피어올라 허공중에 둥근 채색공 모양을 만든다.(……) 오른편에 보이는 매화는 일제히 꽃망울을 부프고, 왼편에는 차 끓이는 소리가 솔바람 소리나 노송에 듣는 빗방울 소리를 내며 보글보글 넘쳐흐른다.
<눈 오는 밤>, 깊은 산속 눈 덮인 집에서 이덕무가 누리던 이런 정취까지는 못 되더라도, 따뜻한 실내에서 눈 내린 아침 풍경을 내려다보며 갓 뽑은 커피 향에 취해보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은가.
꾸르륵 꾸르륵, 물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피식 웃음이 난다. 기존의 의성어를 가지고 시비하던 개그프로그램이 생각나서다. 물 끓어오르는 소리를 꼭 ‘보글보글’이라고 해야 하는가?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해보는 것조차 유쾌하다.
커피 기계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푸른 향연이 아니면 어떠랴. 솔바람 소리나 노송에 듣는 빗방울 소리가 아니면 또 어떠랴.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면서 커피 향이 풍겨온다. 옅은 갈색 액체가 투명한 유리 포트 안에서 유혹을 한다. 위장병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않은 지 오래. 하지만 오늘만큼은 기꺼이 유혹에 넘어가 주기로 한다. 반 잔쯤 컵에 따라 들고 창가로 간다. 깊은 겨울 속에서 지난가을의 향기 같은 커피 냄새를 맡는 것도 운치가 있다.
열린 창으로 매운 기운이 들어온다. 싫지가 않다. 흰빛 때문일까,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명징해 보인다. 산에 드문드문 초록빛이 보인다. 무소불위 같은 흰빛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영역이 있나 보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오래된 벚나무가 눈꽃을 피우고 있다. 봄꽃보다 더 화려하다. 흰빛 하나로도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을….
설설 기는 자동차 한 대가 눈 위에 바퀴 자국을 남기고 간다. 그 자국을 따라 다른 차 한 대도 설설 기어 간다. 운전자가 느끼고 있을 긴장감이 전해 온다. 언젠가 눈 오던 날, 핸들을 꼭 붙들고 앞차 브레이크 등을 등불 삼아 졸졸 따라가던 기억이 난다. 그 빨간 불빛이 반딧불이같이 따뜻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었다.
눈 덮인 놀이터는 고즈넉하다. 발자국 하나 없다. 펄펄 날리는 눈발 속에서 순결한 흰빛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즐거워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눈이 주는 포근함 때문일까, 아쉬움보다는 회상할 수 있는 그런 푸른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휴대폰을 켠다. 아버지께 눈 때문에 들를 수 없겠노라 말씀드린다. 무사통과다. 몇 가지 해야 할 일들을 같은 이유를 들어 전화로 해결하고 나니 마음이 한가하다. 흰죽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입가심으로 식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거실 가득 햇살이 퍼진다. 흰빛 때문에 세상이 한결 환해진 것 같다. 한낮이 되면 햇볕의 성화에 눈이 녹으면서 난간 위로 똑똑 물방울이 떨어질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2악장이 생각난다. 그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난로 옆 흔들의자에 앉아 눈 녹는 소리를 들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는 여인이 연상되곤 한다. 내게는 뜨개질 재주도 없고 흔들의자도 없으니 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로 한다.
이덕무의 청언소품집을 펼친다. 이렇게 깨끗한 날은 맑은 글이 어울릴 것이다. 담백한 문체에서 가난한 선비의 매운 슬픔이 배어 나온다. ⟪한서⟫를 이불로 덮고 ⟪논어⟫를 병풍으로 삼을 만큼 추운 방안에서도 읽고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를 생각하니 칩거라 이름 지은 이런 나의 호사가 조금 부끄러워진다. 아름다운 그의 문장들을 가슴에 담는 것으로 면구함을 지워 본다.
가볍고 부드러운 것의 반란으로 바깥세상은 지금 비상이 걸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는 무관하다. 15층 허공, 몇 평의 공간 속에서 나는 자유롭다. 나는 잠시 후 점심으로 무엇을 해 먹을까를 고민하다가 건너편 지붕에 앉은 까치들의 끼니 걱정을 하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누워도 있다가, 따끈한 국화차 한 잔을 마시며 자주 가는 인터넷카페에 들러 댓글을 남기거나, 빈 화면 위에 생각의 부스러기들을 끼적거리기도 하면서 저녁을 맞을 것이다. 밤이 되어 창문을 열었을 때, 하얀 풍경 위로 이지러진 달이라도 한 조각 푸른빛을 흘려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칩거의 남은 시간들을 찰스 램의 ‘회복기의 환자’처럼 아끼며 야금야금 즐길 것이다.
첫댓글 한 줄 방명록에 '집콕의 이유를 정당화 시켜주는 추위'라는 이복희 샘의 글에 공감하다 보니 오래된 제 글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ㅎㅎ
'유쾌한 칩거', 제목에서 느낌이 진하게 풍겨옵니다. 읽기도 전에 알 것 같은...
언제나 고급진 선생님의 글은 그 느낌, 공감이 운치와 여운이 되어 커피향처럼 전해집니다.
아,이렇게 오래 전 글이라도 올려주시니 얼마나 좋은지요. 자주 보여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