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옷*
노을의 역광 속에 매미 허물이 빛났다.
뾰족한 발톱을 거칠거칠한 나무껍질에 박은 채 완강한 앞다리로 버티고 위로 오르는 것 같았다. 하늘을 우러른 투명한 눈에는 깊은 고요함이 깃들고 얇은 몸통엔 저무는 황혼빛이 가득했다. 마치 다른 세상을 위한 옷,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감싼 얇은 명주 수의壽衣 같았다.
젊은 시절엔 죽음이 멀게 느껴졌듯이 수의는 아득한 거리감에 삼베처럼 뻣뻣한 거북함이 들었다. 보들보들한 천으로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나 망자에게 최고의 옷감은 삼베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깨끼 바느질로 소문난 사촌 형님이 이웃으로 이사 오시면서 자주 바느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간혹 수의 주문이 들어오면 형님은 아침 일찍 목욕으로 정갈하게 하고 바느질을 시작하셨다. 방에 펼쳐 놓은 삼베 자락을 밀치거나 넘어 다니는 건 절대 금지였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옷감에 영혼이라도 들어있는 듯 정중히 예의를 지키셨다.
알음알음 주문이 들어왔다. 급박한 수의를 만들 때는 애통한 한숨을 감추지 못하셨고, 미리 준비하는 수의를 지을 때는 마치 옷 주인의 수명에 덤이라도 보탠 양 뿌듯해하셨다. 살아생전 남루함을 걸쳤든 비단에 칠보단장을 했든, 누구랄 것 없이 떠나는 길은 주머니 하나 없는 베옷 한 벌이라는 말씀에 나는 때때로 숙연해졌다. ‘수의’라는 말보다 더 감각적으로 들려서 섬찟했던 형님의 ‘죽음의 옷’이라는 말도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삼베가 펼쳐진 방은 가을걷이한 들녘같이 황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재봉틀이 달달거리며 돌아가는 저녁이면 어디선가 별똥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느 윤년 친정어머니가 넌지시 수의에 관해 물으셨다. 먼저 아버지의 옷을 지었다. 수의를 받아보신 어머니는 삼베가 누르퉁퉁하고 올이 성글고 뻣뻣하다고 심기 불편한 음성이었다. 최고의 안동포라 해도 당신의 옷은 한사코 발이 고운 분홍빛을 원하셨다. 어쩌면 어머니는 당신의 신앙대로 죽음을 신부 입장하듯 천국 입장식으로 준비하고 싶으셨던 건지 모른다. 고심 끝에 형님과 포목점에서 진명주 옷감을 골라왔다. 올이 곱고 은은한 연분홍빛이 새색시 옷같이 아련했다. 삶이 명주 올같이 부드럽고 감미로웠으면 얼마나 좋으랴. 거센 비바람과 천둥,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살아낸 어머니의 생이 스치고 지나갔다. 험난한 세월을 불꽃 같은 생명력으로 이겨내신 어머니는 지난한 생을 분홍빛으로 마감하시고 싶으신 건지 몰랐다.
치마저고리와 원삼은 명주로, 천금과 지요는 삼베를 덧대어 두 겹으로 지었다. 스무 가지가 넘는 품목을 하나하나 접는 손에 전율이 일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건 삶을 뼈저리게 감각하는 일이었다. 손발톱을 넣는 오낭五囊의 섬세함에서 따스한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의 손길이 살아왔다. 천금天衾은 커다란 어머니 품에 비해 턱없이 작아 보였다. 세상의 수고를 마칠 그날, 세상에 갓 나온 분홍빛 아기 감싸듯 부드러운 명주로 감싼다고 위안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러나 부모님의 수의를 짓는 일이란, 그게 당신의 장수와 자녀의 복됨을 의미한다 해도, 아직 건강하시다 해도, 가슴엔 알 수 없는 파도가 일렁이기 마련이다.
“얘, 수의가 도착했구나! 이거 어떻게 입는 거니?”
어머니 목소리에 놀라 입어보는 게 아니라고, 나중에 다른 사람이 입혀 드리는 거라고, 보관법을 찬찬히 설명해 드렸다. 거울에 비춰보니 얼굴빛에 어울린다고 어머니는 수의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문득, 신부 혼수 장만하듯 자기의 수의를 직접 바느질했다는 어느 시인의 글*이 생각났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시인은 손수 완성한 명주 옷자락을 어깨에 걸치고 거울 앞에 비춰보며 영원의 안식처에서 누릴 자기의 모습이 눈부시다고 썼다. 신의 음성에 귀가 뚫린 사람의 문장 같았다.
어머니도 하루빨리 그곳에 가기를 원하셨다. 중환자실에 꼼짝없이 눕혀진 채 간신히 호흡하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서성일 수밖에 없는 내 신발은 수없이 어두운 문턱을 드나들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소녀가 몇 날 밤을 걸어 삼팔선을 넘던 일, 돌도 안된 아기를 업고 서울을 거쳐 남쪽 끝까지 피난하시던 일, 단 한 사람 혈육을 찾으러 빨치산 토벌대 깊은 지리산 속을 고무신 발로 찾아가셨다던 일, 전쟁의 폐허 위에서 고아가 된 조카들을 키워내시던 일. 어머니는 고달픈 삶 어디쯤의 매듭을 풀고 계신 건지 눈을 뜨지 않으셨다. 평생 그리워하신 원산 명사십리 해당화 꽃향기를 맡으시는지, 어쩌면 고단한 환자복을 벗고 분홍빛 옷을 입으시려고 단장 중인지 알 수 없었다.
수의를 입혀 드리던 날, 유난히 하얀 피부는 연분홍빛에 서러웠다. 돌아가는 길이라 옷깃을 반대로 여민다고 말씀드렸을 때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 매듭도 없다는 말에 의미심장하다고 감탄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게 언제였더라. 정적이 흘렀다. 삶의 희로애락을 접으시고 잠드신 고요한 얼굴을 맞대자 차디찬 냉기가 나를 밀어냈다. 나를 삶의 자리로 밀어내시는 듯했다. 분홍빛 고운 멱목幎目으로 마지막 아까운* 얼굴을 감쌌다. 세상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얼굴, 억지로 돌아서는 내 눈에 어머니의 발이 보였다. 버선발에 신긴 습신의 천진스러운 빛깔이 처연했다. 연분홍빛 신부의 모습으로 천국에 입성하신 모습을 떠올렸으나 가슴엔 가을비가 흩뿌렸다.
반짇고리에는 명주 조각이 그리움처럼 남아있다. 또르르 말린 채 좁다란 자투리 조각으로 묶어놓은 뭉치를 만져보면 명주 필을 방안 가득히 펼쳐 놓았던 먹먹했던 풍경이 떠오른다. 모진 세월을 겪으면서도 세상을 고운 명주 올같이 아름답게 보려 했던 어머니는 나에게 세상을 섬세하게 보는 눈을 가르쳐주셨다.
매미 허물은 명주 올같이 섬세하다. 허물을 살짝 떼어내려니 어떤 에너지가 느껴졌다. 온 힘을 다해 나무껍질을 부여잡고 허물을 벗어나기까지 몸부림했을 매미의 단단한 의지가 남아있는 것 같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단단히 붙잡아야 할 현실을 떠올려 본다. 죽음의 순간까지 뜨겁게 사는 것이 목숨에 대한 책임이리라.
나무에 붙어 있는 허물은 매미의 긴 생애 중 마지막 옷이다. 꼬깃꼬깃 접혔을 날개를 덮고 있던 날개 무늬, 머리부터 수직으로 갈라진 등을 본다. 등껍질을 찢고 마침내 비상하는 매미가 사람의 생애와 겹쳐 보인다. 흙색 몸이 갈라지면서 영롱한 초록빛 몸으로 날개를 펴는 순간이 전환점이듯, 사람의 임종 순간 역시 삶의 완성이 아닐까. 생은 그때가 절정일지도 모른다. 지상의 삶에서 영혼으로 눈부시게 날아오르기를 원하신 어머니는 그 순간까지 고통스러운 목숨을 잡고 계셨다.
보물 찾듯 나무 밑 풀밭에 떨어진 허물을 찾아 상자에 담고, 나무 기둥에 붙어 있는 허물의 사진을 오늘도 몇 장 찍었다. 영혼의 세계를 바라보기라도 하듯 허물의 커다란 눈처럼 눈을 크게 떠본다. 폭우를 견뎌냈듯 폭설에도 붙어 있을 허물을 기대하는 건 오래도록 매미 소리를 기억하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차곡차곡 접어놓았던 어머니의 마지막 옷, 죽음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쏴아쏴아 쓰르르 쓰르르 맴맴’
뜨거운 여름철 푸르른 소리는 영혼의 합창 소리 같다. 숲길에서 가져온 죽음의 옷 한 벌, 책상 위 상자 안에서 삶과 죽음, 영혼을 일깨운다.
-경북청송 객주문학대전 수필부문 장려상
*죽음 옷: 수의를 일컫는 남도 방언.
*이영도 수필 〈수의〉
*아까운: 일부 지방에서는 사랑에 겨운 표현으로 사람에게도 아깝다는 말을 사용한다. 예) 내 새끼 얼굴은 보기도 아깝다.
*본문 속 수의 용품: 멱목- 얼굴을 싸는 헝겊, 천금-이불, 지요-요, 오낭-머리카락과 손발톱을 넣는 주머니, 습신-종이로 만든 신발.
첫댓글 요즘은 아마도 경험하기 힘든 일이 아닌가 싶어요. 그 섬세한 과정 사이사이 한 여안, 어머니의 생이 교직되어
필자의 단단한 필력으로 피어납니다.
이혜연 선생님, 좋은 작품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상받으신 작품도 판 편, 한 편 올려주시면 더 고맙겠습니다. 다시 축하드리며.....
과정 사이사이 한 여인, 어머니의 생이 교직되어 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