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는 매화 피는 봄과 단풍드는 가을에 자주 찾아 가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선암사 공식 홈페이지에 의하면 백제성왕 5년인(527년) 현재의 비로암지에 초창주 아도화상(阿度和尙)께서 선암사를 창건하였고 산명을 청량산(淸凉山) 사찰명을 해천사(海川寺)라 하였습니다. 이창주 도선국사께서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습니다. 선암사는 태고종 유일의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써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종합수도도량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선암사가 고향집에서 제법 먼 거리인데 내가 선암사를 자주 가는데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봄에는 600년이 된 선암매와 흐드러지게 피는 겹벚꽃을 보러 가야 하고 가을에는 선암사로 가는 약 1km의 진입로 좌우에 곱게 물든 단풍입니다. 매화가 피는 시기가 해에 따라 며칠씩 오락가락하기에 만개하는 때를 맞추어 가기가 참 어렵더군요. 올 봄에는 선암사 종무소에 여려 차례 전화로 물어보니 몇 그루는 피었는데 전체적으로는 아직 덜 피었다, 다음 주 후반이면 될 것 같다고 하는데 며칠 후엔 서울로 가야 하기에 조급한 마음에 선암사 입구에 있는 순천 전통야생차 시음장에도 물어보니 비슷한 대답이 돌아 왔습니다. 망설이다가는 선암사 매화를 놓칠 것 같아 허탕칠 각오를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선암사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순천을 지나 승주IC에서 나와서 지방도로를 따라 약 6km를 가야 합니다. 도중에 제법 넓은 홍매화 묘목장이 있는데 작년에는 홍매화가 활짝 피었는데 올해는 절반 정도 피었으니 아직은 조금 이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암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 가는데 그동안 받아 오던 입장료 3000원을 안받는다고 안내문이 붙어있습니다. 화엄사, 선운사 같은 절은 입장료가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선암사까지는 약 1km의 도로가 있는데 관광객은 차를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약 20분 정도 걸리지만 물소리 들으며 경치 구경하면서 걷다 보면 그리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선암사 조금 못 가서 오른쪽으로 300m만 올라 가면 순천 전통야생차체험관이 있습니다. 순천시에서 홍보목적으로 운영하는데 숙박도 할 수 있으나 주변 상인들의 반대로 식사는 주차장 인근 식당가까지 내려 가서 해야 한답니다. 야생녹차 한잔은 무료로 제공되나 제대로 차맛을 보려면 주문을 해야 하는데 한사람당 3천원을 내면 야생차를 우리는 방법과 마시는 요령을 설명까지 해 줍니다. 야생녹차라 한두번 우리고 버리면 안되고 적어도 5번 이상 우려도 차맛은 여전히 좋더군요. 설명을 들어 보니 처음에 너무 뜨거운 물을 부으면 떫은 맛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드시 80도 정도로 식혀서 물을 부어서 3분 후에 딸아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하며 두 번째부터는 뜨거운 물을 바로 부어도 된다고 합니다. 쉬운 듯 하면서도 항상 헷갈리는 게 녹차 우리는 방법이지요. 전통녹차시음장을 지나서 조금 더 올라 가면 승선교와 강선루가 있는데 승선교는 개울 위에 돌을 쌓아 만든 아치형 무지개 다리인데 돌이 부식되어 원래 것을 헐고 다시 지었으며 헐어 낸 돌은 승선교 옆에 전시해 두었습니다. 승선교는 1698년 숙종 24년에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보기 위한 백일 기도를 하다가 영감을 얻어 만든 다리인데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어 있는 참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승선교를 가장 잘 보려면 개울로 내려 가야 합니다. 개울에서 선암사방향으로 바라 보면 뒤에 있는 강선루가 아치 안에 쏙 들어오는데 언제 봐도 아름답지만 가을에 단풍이 들었을 때는 한폭의 그림이 됩니다. 그래서 이 풍경은 달력에 자주 등장하지요. 다리 천정을 자세히 보면 용머리가 보이는데 개울을 타고 나쁜 기운이 선암사로 못들어 오게 지키는 것이랍니다. 이런 설명을 모르고 가면 용머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관심이 없지요.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면 삼인당이라고 하는 알모양의 작은 연못이 있는데 연못 가운데 섬이 있고 거기에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만들었다고 전해 오고 있으며 삼인은 불교의 중심사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선암사 경내에 들어 가는데 일반적으로 절에 들어 가기 전에 악귀가 못들어 오게 막는다는 사천왕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선암사에는 사천왕이 없습니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8개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팔상전은 유형문화지 제6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선암사에 가시면 꼭 둘러 봐야할 곳이 측간(뒷간, 화장실, 해우소라고도 함)인데 구조가 특이 할 뿐 아니라 벽에 붙어 있는 시가 인상적입니다. 구조로 보자면 남자칸과 여자칸이 따로 있습니다. 용변보는 자리는 사람 키보다 악간 낮은 칸막이 나무 벽이 있고 앞쪽은 틔어 있어서 처음 들어 가면 누구나 난감해 합니다. 여성분이라면 더욱 난감하겠지요. 변은 쭈그리고 앉아서 보는데 옛날에 사용하던 재래식 화장실과 똑 같습니다. 바닥까지는 약 2m가 되어 내려다 보면 무섭기까지 하지요. 저는 어릴적에 이런 식의 화장실을 쓰면서 자랐기에 아무렇지도 않지만 비데가 달린 수세식 양변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선암사 뒷간에서 용변을 보기는 어려우듯 합니다. 화장실 벽에는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라는 시가 붙어 있는데 꼭 한번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의 명물은 단연 선암매입니다. 원통전 뒷편과 각황전 옆 담벼락에 수령이 350년~650년 된 매화나무가 50여 그루 있습니다. 이들 나무를 가리켜 선암매라고 하는데 수령이 오래되다 보니 기둥에 구멍이 뚫리고 껍질도 삭아서 스님들이 베로 감싸고 지주목을 세워서 겨우 서 있는데 그래도 해마다 꽃을 피우는 것이 신기할 정도지요. 선암매 중에서 으뜸은 원통전 뒷편에 있는 650년 된 고매화입니다. 이 나무는 키가 절간 지붕보다 높게 자랐고 가지도 무성하며 마치 눈이 내린 듯이 꽃이 무성합니다. 이번에 내가 갔을 때도 가장 먼저 피었고 100% 만개한 상태였습니다. 수령이 오래되다 보니 받침목은 몇 개 세웠지만 상태는 아주 좋아서 사람에 비유한다면 60대 정도로 건강한 나무입니다. 꽃이 진 후에 매실도 상당히 열린다고 하네요. 각항전 옆 담장에 줄지어 서 있는 매화는 비록 키는 작지만 홍매화(엄밀히 말해서는 분홍색)와 백매화가 함께 피어서 참 아름답습니다. 만개했을 때보다 절반 정도 피었을 때가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해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꽃이 돌아옵니다. 죽은 듯이 보였던 나무에 새순이 돋고 꽃망울이 터집니다. 계절이 가면 꽃은 시들겠지만 또 다른 꽃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도 어김없이 꽃은 돌아옵니다. 그러나 한번 가버린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매화가 필 무렵 어머님께서 우리 곁으로 돌아 오신다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집을 나설 때 했던 걱정은 사라지고 선암매 향기에 취해서 선암사를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선암사의 또 한가지 명물은 겹벚꽃입니다. 겹벚꽃은 벚꽃이 진 후에 피는데 올해는 4월 15일 전후면 피지 않겠나 싶네요. 이 때도 꼭 가 보고 싶은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선암사는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천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한국적인 사찰입니다. 휴식이 있는 공간이자 기품이 있는 수향의 향기가 가득한 사찰입니다. 선암사는 볼수록 아름답고 자꾸 찾아 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사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