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교회개척을 준비하면서 마음에 많은 부담이 있었던 차 기다리고 기대하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40대 초반의 젊은 목회자이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그리 만만치 않다.
현재 한국 교회가 잘못 걷고 있는 길을 발견하고 조금은 직설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은 목회자이다.
"종교는 인간의 이기심이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종교는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은혜가 충돌하는 궁극적인 전투지다." p96 라인홀드 니버
또한 평신도들에게도 일침을 가한다. p58
"믿음이 없는 사람이 교회의 짬밥만 먹다 보니 소위 영향력만 강한 존재가 되고 선한 일에는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5986
김관성 목사는 페북에 "목회 성공하고 싶으냐? 내가 몇 가지 팁을 알려 주마"라는 글을 올려놓아 일약 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당시에 이 글이 패러디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난이, 그 진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통찰력 때문에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본서는 그가 매일 새벽 기도 후에 써 내려간 오전 묵상의 내용을 엮어 낸 것이다. 본서는 기독교나 목회의 본질에 충실하지 않고, 외양과 수적 성공에만 몰두하는 현대 한국교회에 도전장을 낸 책이다. 그런데 본서를 읽다 보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슬슬 웃기면서 슬프게 만든다. 이와 같이 저자는 한국교회 현실을 폭로하면서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도록 초청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는 겉모양만 추구하는 한국교회에 대한 조롱과, 자신도 별다를 바 없음에 대한 비애와,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이비 영광과 거짓 권위에 대한 역설적 언급을 통하여 교회의 '본질' 회복을 갈망하는 21세기의 코헬렛(전도서의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본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제1부: 목회-본질에서 길을 찾다
저자는 자신도 목회의 외양을 채우고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저자는 자기 성찰적이다. 세상에 많은 목사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청중이 지키도록 요구하는 당위적 설교를 하지만, 정작 자신은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많지 않은가! 성공 중심적인 목회는 성공 중심적인 교인을 양산하고 그 교인들이 그 목회자를 만들지 않는가! "신자는 정녕 변화하는가!" 저자는 교회나 목사가 변화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의 진보를 믿으나 여전히 인간의 사악함을 조롱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목회자들에게 청중들의 고뇌와 삶을 이해하는 나이 들고 철든 설교자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요청하지만, 청중에게는 무턱대고 설교자의 말씀을 수용하지 말고 분별력을 키우도록 권면한다.
또한 설교자에게 열과 성을 다하여 설교를 준비하고 전할 것을 잠자는 청중을 깨우는 비법으로 소개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세상과 삶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균형이 잡혀 있는 양립적인 형태의 진리로 인식된다. 저자는 사람들이 좋아할수록 그 방법론이 비성경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인간적인 방법을 버릴수록 우리가 찾아 헤매는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목회자는 결국 세습을 마지막으로 결단하게 마련이다.
제2부: 사랑하는 사람들-본질과 현상의 관계
이 단락에서는 김관성 목사의 유년 시절 부모님과 형제 오누이 관계와 부부 자식에 대한 회상을 서술한다. 이웃에 대한 상처와 불안한 관계보다는 가족 내에서 오래 잠재해 있는 헤어나갈 수 없게 만드는 '엉겅퀴' 같은 쥐어뜯고 잡아채는 불편한 관계들이 우리의 과거를 어둡게 하고 현재의 삶을 훼방하기 마련이다. 슬프고 아쉽고 밉고 소중한 관계다. 김관성 목사는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사랑이 넘치기를 바라고 실현하려고 애쓴다. 이 단락이 오히려 가장 따뜻하고 눈물겨운 장면들을 연속으로 보여 준다.
제3부: 성도-본질을 추구하다
많은 목회자들은 고독과 외로움과 싸우고 신자들은 채무자의 윤리와 자학적 신앙과 싸우고 있다. 고난의 자리에서나 기쁨과 성공의 자리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신자가 참된 신자다. 그래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보상 심리로서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결국 인간의 노력과 수고가 깊을수록 공허함과 좌절을 느끼며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저자는 인생의 모순처럼 보이는 장면들을 경험하였다. 그 속에서 놀라운 기적과 같은 일들이 벌어짐은 다만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만든다. 물론 가장 평범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감사와 찬송이 넘쳐나야 하지만, 우리는 너무 극적인 삶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주님을 사랑하여 세상을 버렸으나, 교회가 그들의 놀이터가 난장판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쓰지 않았으면 한다. 기도원에서의 통회의 눈물이 세상에서의 한 줌의 땀이 되기를 바란다. 복음은 선포에 그치지 않고 삶으로 녹아 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시지만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하나님이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신다는 인상을 갖지 말라. 외모와 줄 세우기가 교회에 만연하는 것도 문제지만, 감정 중심의 신앙생활도 건전하지 못한 '거대한 파도타기'에 신앙인을 내몰 수 있다. 감정이 기복이 심한 교인들이나 자아도취증에 빠진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는 데 온갖 정력을 소비하는 것'이 바른 목회일 수는 없다. 자기혐오나 자기연민을 구별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저자의 경우처럼 어두운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저자의 목회의 '큰 밑천'을 이루는 통찰력의 배경이라는 고백은 놀랍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시한폭탄처럼 그것들을 품고 살 뿐이다.
제4부: 교회-본질로 돌아가다
지금은 비록 그렇게 보이질 않더라도, 장차 '성장하게' 될 교회를 위하여 소망 중에 인내할 필요가 있다. 교회에 섬김과 순종으로 나아가야 하며, 세속화를 깊이 경계해야 한다. 하늘의 영광을 위해서는 이 땅에 평화가 필요했다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서 이 세상에 사는 자들끼리 불화하는 모습은 모순이다. 성도들의 헌금은 빚 갚는 이자용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구조악을 이기는 힘은 개인의 희생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교회에서 반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기존 상식과 관행의 굴레를 거슬러야 하며,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불신 세상에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교회에 회심하지 않는 '불'신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백화점이 아니라, 맛난 한 가지 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이어야 한다. 교회는 기독교적 가치와 복음으로 존재하는 곳이어야 한다.
덧붙이는 말:
이 책은 교회의 본질 추구라는 점에서 큰 그림을 그려 주고 있지만, 각각의 단상(斷想)들은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신앙과 인생의 양면성을 주의하거나 명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면에서 단순히 은혜를 받는다든지 감동을 받는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독자의 입장에서 그 내용과 의도를 파악하는 게 '난해'하다고 볼 수 있다. 혹여 이러한 점 때문에 책을 구입해서 읽고 '낙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서평자의 노파심일 수 도 있다. 사실 저자는 쉽고 단순하게 말했는데, 숨겨진 깊은 뜻을 찾는 서평자의 헛발질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한 점에서 단순하고 재미있고 감동 만점의 쉬운 책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공적인 면이 있고 사적인 면이 있다. 생각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한다면 그는 성인군자일 것이다. 김관성 목사는 아직 만들어 가는 '도상'에 있다. 그는 더욱 훌륭한 저자로 더욱 훌륭한 목회자로 자라 갈 것이다. 모양은 좀 나이 들어 보이지만 아직 속은 젊다. 독자들은 이 점에 혼동하지 말시길 바란다.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인생의 비밀이 많고 신자들의 삶의 모순이 많다. 그것을 더 많이 파헤치기 바란다. 지속적으로 쾌도난마로 속 시원하게 전달해 주기 바란다. 우리는 아직 교회의 본질을 온전히 붙잡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는 거룩해지고 있으며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있다. 본질은 확실히 이긴다. 이겨야 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