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것에 대한 작은 생각들
글/스텔라 박
붓다에게 유미죽을 바치는 수자타의 모습
나이가 들어가는지, 도대체 먹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 예전에는 점심 먹고 3시경 소화가 됐다 싶으면 ‘오늘 저녁은 또 어디서 무얼 먹을까?’를 고민하며 행복했었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머무는 연습을 하던 때도 아니니 마음은 이미 서너 시간 뒤, 어느 식당으로 향해 있기 일쑤였다.
마음을 담는 그릇인 몸을 위한 음식
스무 살 시절 좋아했던 음식 가운데 지금은 쳐다보지 않는 것도 생겼다. 요즘엔 음식을 앞에 두고 먼저 한 번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음식을 먹고난 후 내 몸은 어떤 반응을 할까?’
물론 이 역시 마음이 바로 지금이 아닌 ,먹고 난 잠시 후로 다녀온다는 점에서 진정한 Zen Mind가 아닐 수도 있겠다만, 여러 차례의,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철들고 나서부터 쭉, 거의 40년 정도의 경험에 의거해 볼 때, 이제 마음을 담는 그릇인 몸을 어린 아이 다루듯 잘 대해야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머무는 연습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이다.
비계 잔뜩 끼어 있는 돼지고기, 고춧가루와 설탕 소금으로 범벅을 한 오징어볶음 같은 음식은 이제 나의 식탁에서도, 나의 외식 메뉴에서도 자취를 감춘지 오래이다. 배가 싸르르 아파지며 화장실을 들락달락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혀의 노예가 되어 몸이 그렇게도 힘든 것을 꾹 참는 미련스러움을 다시는 떨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물론 당신에게는 이런 음식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 지방 분해를 잘 못하고 과민성 대장증상이 있는 나에게 이런 음식은 독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에 보면 우리의 스승 붓다는 새도 배부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양의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음식 종류야 탁발 나가서 받은 것이었으니 중국인들의 원숭이골, 제비집 등에 쓰이는 식재료처럼 유난스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음식이 다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붓다의 깨달음을 도와준 음식, 유미죽
붓다의 삶에서 중요한 몇 가지 음식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유미죽이다. 붓다가 6년 간의 고행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쓰러졌을 때, 수자타라는 처녀가 유미죽을 끓여 붓다에게 공양을 바친다. 붓다는 유미죽을 먹고 다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는다.
힌두 수행자들은 고행할 때 3가지 금기사항을 지켜야 했다. 목욕하지 말 것(그 더운 나라에서… 아이고, 땀 냄새야.) 부드러운 음식 먹지 말 것(입안이 얼마나 까칠했을까. 아니 거의 안 드셨던 것 같지? 그 피골이 상접한 조각상을 보아하니), 부드러운 것에 앉지 말 것 등 3가지이다.
붓다가 부드러운 유미죽을 먹었다는 것은 고행이 끝났음을 암시한다. 강을 건너 목욕을 하고, 유미죽을 먹고, 보리수 밑에 갈대를 깔고 앉았다고 하니 말이다.
붓다는 <사분율>에서 “때에 맞는 음식을 먹어라”면서 아침 식사로 죽을 권한다. 아침은 밤 사이 쉬던 위가 활동을 재개하는 때이니 부드러운 식사로 무리를 주지 말아야 하기 때문일 게다. 뭐든 소화하기 힘든 것을 먹으면 우리 몸은 소화하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그렇다 보면 어느 세월에 마음 공부를 하겠는가.
인도식 레스토랑에서 먹어본 음식 가운데 유미죽과 가장 비슷한 것은 Rice Pudding이 아닌가, 싶다. 키르(Kheer)라고도 하고 파야삼( (payasam)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은 쌀과 우유, 설탕을 넣고 끓여 만든다는 점에서 수자타가 붓다에게 바쳤던 유미죽과 거의 재료가 같다. 우유 대신 코코넛 밀크를 사용하기도 하고 캐슈, 피스타치오, 아몬드, 건포도, 그리고 카다멈(cardamom)과 사프란 등의 향료를 첨가하기도 한다. 이 음식은 인도인들의 잔치에 꼭 나오는 음식이라나.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은 건강식의 적이 되어버린 설탕은 부자들만 맛볼 수 있는 음식, 즉 부의 상징이었다. 수자타가 붓다에게 유미죽을 바쳤다는 것은 소박한 음식을 드린 것이라기 보다는 귀한 것을 바쳤다고 해석해야 할 터이다.
생명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음식이 필요한 것이거늘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 사이에서 참 갈등이 큰 것 같다. 암 예방과 노화 방지를 위해 먹어야 할 음식에 대한 기사는 늘 우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켓에 가서 장바구니에 식재료를 담아 오는 것을 보면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그런 정보에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몸을 만들기 위한 음식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냥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체취를 나쁘게 만드는 음식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한인들은 비한인들에게서 좋지 않은 체취가 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웬걸. 비한인들은 한인들에게서 냄새가 난다고들, 난리다.
코만큼 피로감을 빨리 느끼는 감각 기관이 없다. 우리들 몸에서 나는 냄새에 우리는 이미 적응돼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양치질을 하고 샤워를 자주 한다 해도 김치, 마늘 장아찌 등을 자주 먹는 한인들에게서는 역한 마늘 냄새가 기본으로 베어 있다.
예전에 스위스를 한 달 여 여행한 적이 있다. 한식 구경을 못한지 거의 25일째, 인터라켄이라는 도시에서 한국 식당을 발견하고는 ‘밥아. 너 본지 오래구나.’ 하던 성춘향 남편 이몽룡처럼 반가운 마음에 김치랑 불고기를 원껏 먹었던 적이 있다.
그 다음 날 아침, 내 몸에서 나는 냄새에 깜짝 놀랬다. 아무리 아름다운 코리안 걸(Korean Girl)일지라도 미약한 마늘 냄새(Slight garlic breath)가 난다던 스위스 친구의 말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내 몸에서 맡아진 양념 많이 한 한식 먹었을 때의 냄새를 감지한 이후, 나의 식사 패턴은 조금 달라졌다. 그렇다보니 안 그래도 예민한 나의 코는 육식 많이 한 사람들 몸에서 나는 악취를 맡아낸다. 그럴 때엔 산에서 생식 하시다가 마을로 내려오신 스님들이 인간들 몸에서 나는 냄새가 역하다고 하던 이야기가 생각나 피식 웃는다.
수행하는 몸을 만드는 음식들
체취를 좋게 유지하는 음식은 곧 수행자의 음식이기도 하다. 오신채는 면역력과 원기를 높여줄지언정 냄새로 치자면 빠지지 않는 음식 재료이다. 고기 역시 체취를 아름답게 가꾸는데는 그닥 좋은 선택이 아니다.
체취를 좋게 유지하는데 가장 좋은 음식은 과일과 야채이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신들의 음식이자 음료인 암브로시아와 넥타르가 나온다. 도대체 어떤 맛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근거는 그닥 많지 않지만 후세의 학자들은 발효시킨 꿀이나 과일일지도 모른다고 추측을 한다. 고대 문서에는 암브로시아와 넥타르가 매우 향기로웠고 향수처럼 쓰였다고도 기록돼 있다. 그래서일까. 암르보시아와 넥타르를 먹고 마시면 웬지 꽃처럼 아름다운 체취를 갖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속이 편안하고 소화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음식을 먹고 마실 때, 우리의 몸은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변해간다. 녹차는 어쩜 그런 목적에 가장 좋은 음료인지도 모른다.“차나 한 잔 하고 가시게.”를 입에 달고 사셨던 스님들이 다시금 생각 난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마시는가는 한 존재의 많은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의 건강, 체질, 성격 등이 모두 우리들이 먹고 마시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미국의 사형수들은 죽기 전, 마지막 만찬을 고를 수 있다. 아마도 프와 그라, 철갑상어 알, 트러 플 요리 등 값비싼 요리들을 선택했을 것이라던 나의 짐작과는 달리 그들이 선택한 음식은 소박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었다.
가장 많은 수의 사형수들이 원했던 음식은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 프라이드 치킨 등이었다. 우리들은 우울하거나 보상을 받고 싶을 때, 어린 시절부터 먹어왔던 친숙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음식을 먹으려는 경향이 있다.
분명 그들은 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편모슬하에서 대충 햄버거로 끼니 때우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죽기 직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으로도 그런. 친숙해서 좋은 패스트푸드를 선택했을 것이다.
소중한 한 끼, 떄우지 마세요
매 회 식사는 내 인생에서 한 번뿐인 소중한 기회이다. 내 생애에 2015년 9월 25일의 점심은 한 번뿐이다. 그래서 나는 대충 끼니를 때운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 끼니, 상 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먹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시 오지 않을 귀한 한 끼를, 내 형편에 맞는 가장 좋은 것, 내가 가장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해 마음을 다해 먹으려 한다.
그게 가벼운 샐러드, 현미밥에 미역국 등 박채소반이라도 상관 없다. 한 입 한 입 맛보며 그 음식을 충분히 느낀다. 그 음식을 키운 햇살과 비, 그리고 농부의 땀을 기억해본다. 밥 한 공기에 우주 삼라만상이 들어와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첫댓글 소중한 한끼 그냥 그냥 떼우지 마세요..ㅎㅎ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소중한 한끼를
거의 그냥넘기는데...^*^
밥 한 공기에 우주 삼라만상이 들어와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
^-^ 손인수님 좋은날 되세요~~~ ^^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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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얼굴엔 미소, 마음엔 평화...
보람가득
행복만땅한 하루입니다
관세음보살 마하살()
이 생에서 한끼 때우면, 저승가서도 못 찾아먹는다던 우리 어무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ㅎㅎㅎㅎ
감사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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