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소리 (문순태)
[줄거리]
칠복은 장성댐이 건설되면서 농토를 잃어버리고 아내마저 달아나자 어린 딸을 업고 무일푼으로 호수 가로 돌아온 이래, 징을 울려 낚시꾼들을 방해하다가 매를 맞곤 하는 위인이다. 마을 사람들은 호수에 잠겨버린 방울재를 떠나 낚시꾼과 관광객 상대로 매운탕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 가는 처지인데, 칠복이가 장사를 방해하니 그를 동정하면서도 쫓아낼 궁리만 한다.
원래 칠복이는 조실부모하고 외가에서 눈치밥 얻어먹으며 머슴처럼 장성했는데, 색시로 맞았다는 것이 도시물 먹은 순덕이었다. 순덕이는 결혼한 지 한 달도 못되어 도시로 나가 살자고 성화였다. 칠복이 내외는 광주시 산꼭대기 사글새 방으로 밀려가 도시 생활을 한다. 순덕이는 며칠만에 식당 주방에 취업하고, 농사일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칠복은 면목 없이 아내의 수입으로 먹고살다가 광주시 인근 장성읍에 나가 농사 품을 팔며 20만 원을 벌어 집으로 돌아온다. 일부러 아내를 놀라게 해 주려고 소리 안 나게 집으로 들어가 불을 켜는 순간, 순덕이가 웬 놈과 벌거벗고 누워 있는 현장을 발견한다. 칠복이 식칼을 들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엔 두 년놈은 벌써 줄행랑을 놓은 뒤였다. 거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칠복은 징을 애지중지하며 잘 때도 꼭 베고 잔다.
마을 사람들은 징을 빼앗아 보기도 했으나, 칠복이는 살기(殺氣)를 보이며 제 징을 지킨다. 주민들은 칠복을 내쫓기로 하고 억지로 칠복이 부녀를 읍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태운다. 칠복의 친구인 봉구는 칠복에게 이천원을 찔러주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다. 빗방울이 굵어지는데, 봉구의 귀엔 바람 소리인지 징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 온다. 마을 사람들도 그 귀기(鬼氣) 서린 징 소리에 몸을 떨며 잠을 뒤척인다.
[등장 인물]
* 칠복: 외가에서 머슴처럼 살다가, 순덕이와 결혼. 자갈논을 부치며 살아가다 장성댐이 건설되어 마을이 수몰되자 보상도 못 받고 광주로 밀려 들어와 낯선 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아내에게마저 버림받는다.
* 순덕이: 칠복의 아내. 시골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남편과 어린 두 딸을 두고 달아난다.
* 봉구: 칠복의 어렸을 적부터의 친구. 칠복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편이나, 끝내 칠복을 내쫓는 데 합류한다.
[핵심 정리]
* 갈래: 단편소설, 연작소설
* 배경: 시간(1970년대), 공간(전남 장성호 수몰 마을)
* 경향: 사회 고발적
*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주로 서술에 의지함. 인물 묘사는 간접적인 방법이 위주.
* 의의: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농촌의 붕괴와 도시 빈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 소설로서, 우리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용되어 나타나는가를 진지하게 모색한 작품.
* 주제: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고달픈 삶
* 출전: <창작과 비평> 1978년
이해 및 감상1
<징소리>는 창작과 비평 1978년 겨울호에 게재된 단편 소설인데, 문순태는 이후 <저녁 징소리>, <말하는 징소리> 등 5편의 연작을 내놓아 장편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런 형식의 소설들은 1970년대에 특히 유행했는데, 농촌의 붕괴 문제를 다룬 이문구의 <우리 동네>, 도시 빈민 문제를 다룬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한국 사회의 산업화에 따른 빈부 격차와 계층간의 갈등 문제를 다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연작 소설은 부분적으로 독립된 단편이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갖는 장편의 형태를 지닌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고 사회 계층의 반목이 뚜렷해지면서 하나의 시점으로 작가의 시각을 고정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당대의 문제들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는 작가 의식의 소산으로 이해되나, 문제를 천착하지 못하고 단순한 문체상의 기교로 흘러버린 문제점도 노출되었다.
1970년대의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의 그늘 아래 속절없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부문이 두드러지는, 사회의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에 자리잡는다. 따라서, 경제 성장에 방해되는 일체의 요소 ― 농촌 진흥과 노동자 복지, 환경 보존 등은 아예 제기조차 될 수 없도록 경제의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분배의 불공정성과 부정 부패, 인권 유린, 황금 만능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 현상이 불거졌다. 한마디로 말해 1970년대는 전통 사회의 붕괴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난 시기라 하겠다.
작가 문순태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주로 자신의 성장지인 전남 일대의 농촌을 주목하며, 전통적 공동체가 무너지고 선량하나 무지한 민중들이 어떻게 희생되는가 하는 점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는 이 소설에서 '칠복'으로 대표되는 농촌 빈민(또, 그대로 도시의 빈민이기도 하다.)의 삶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우리 농민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을 구체화하고 있다. 장성 방울재라는 수몰 지구를 배경으로,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해 실향민들이 겪는 고향 상실의 아픔과 다시 고향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그 아픔과 몸부림의 절규가 곧 '징 소리'의 격렬한 음향으로 표상된다.
이해와 감상2
<징소리>는 장성 방울재라는 수몰지구를 배경으로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해 실향민들이 엮어가는 '고향 상실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농촌에 불어닥친 산업화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향이란 단순히 현실적 공간으로서 태어난 장소가 아닌, 우리 존재의 본질이며, 곧 인간성을 되찾자는 의미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황폐한 삶이 6.25 이후 민족 분단의 비극적인 역사와 깊숙한 연관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징소리>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원적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각박한 현실에서 뿌리가 뽑혀 버려서 살아갈 수 없는 인물이며, 다른 하나는 부조리한 현실과 타협하여 세속적 행복을 추구한 인물이다. 주인공 허칠복은 입체적 인물도 아니며 성격의 발전도 없는 구시대적 인물의 전형이다. 그는 지금의 부조리하고 인간성 상실의 현실 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고향을 존재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대 산업 사회를 거부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징소리>에서 '징소리'는 단순한 금속성의 울음이 아닌 방울재 사람들의 혼의 울음이며, 동시에 인간다운 혼을 잃어 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고향을 일깨우는 깨우침의 소리를 의미한다. 고향을 인간의 존재 양식으로 파악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공동체적 이상을 갈구하는 소리이며, 비인간화된 사회에서 인간화를 부르짖는 소리이다.
1970년대의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의 그늘 아래 속절없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부문이 두드러지는, 사회의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에 자리잡는다. 따라서, 경제 성장에 방해되는 일체의 요소 ― 농촌 진흥과 노동자 복지, 환경 보존 등은 아예 제기조차 될 수 없도록 경제의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분배의 불공정성과 부정 부패, 인권 유린, 황금 만능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 현상이 불거졌다. 한마디로 말해 1970년대는 전통 사회의 붕괴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난 시기라 하겠다. 이러한 시기에 작가는 그는 주로 자신의 성장지인 전남 일대의 농촌을 주목하며, 전통적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으며 선량하나 무지한 민중들이 어떻게 희생되는가 하는 점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는 이 소설에서 '칠복'으로 대표되는 농촌 빈민(또, 그대로 도시의 빈민이기도 하다.)의 삶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우리 농민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을 구체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