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시작되었네
사 천 년 구약의 강물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네 개의 초로 다가와
우리를 맑게 해주는 기다림의 시간
정서적으로 편안함과 행복감에 들게 하는 양초는 휘겔리한 분위기를 창조하기에 충분한 요소가 된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그곳 사람들은 휘게의 절정을 기대하며 대림절을 준비하는데 가톨릭에서 말하는 대림절이란 성탄절 전 4주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를 말한다.
4개의 대림초가 대림환에 꽂혀 있다.
예언자의 초(진한 보라), 베들레헴의 초(연한 보라), 목자들의 초(장미색), 천사들의 초(흰색)로 그 빛이 세상을 비추는 것을 말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구약의 사천 년을 의미한다. 초의 색깔이 점점 밝아지는 동시에 죄가 용서함 받는다고 여긴다. 대림초에 대한 이 모든 의미를 짧은 5행 이내로 함축한 시인은 이같이 ‘지금은 내면의 물거품 모두 빠지고/ 침묵으로 나를 말리는 은총의 시간(「은총의 시간」부분)임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이미지(영상)는 항상 시인의 의식이며 그 의식은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는 존재와 연결되어 출발하게 되어 있다.
시인에게 있어 가장 아득한 기억은 무엇일까. 가슴 밑바닥에 고여 출렁이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지 않을까.
삶의 뼈대가 된 기나긴 이민 생활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을 터, 하루하루의 삶이 수도자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토록 최선을 다해 살아온 시인에게 문학은 위로였고 스러진 것 같으나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흔들릴 때마다 다가와 중심을 잡게 해 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파문.
시인은 고국 어머니들의 삶의 정서에 대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한(恨)을 기억하고 있다.
단 한 편인, 아버지의 피난길인 듯한 기억(「1·4 후퇴」)에 비해 여러 시편을 통해 어머니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