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사랑
비가 그리도 구질구질해서 어서 그쳤음 하다가 이제사 햇볕이 짱짱하니 비가 그리워질려하네요. 아침나절에 들녁에 나가보면 선선한 공기가 그리도 좋더라고요. 아직 햇볕에 달구워지지 않아서겠지요. 개울에는 힘찬 몸짓으로 우당탕탕하며 지가 무신 강물이라고 씩씩하게 흘러가는 모습, 또한 보기 좋네요. 산들바람이 선듯 불어가면 논에 푸른 벼들이 일제히 우우하고 몸을 숙이는게 마치 무용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아직은 더 자라야 이삭을 날개에 달겠지요. 그전에 미리 고개도 젖혔다가 바람따라 고개를 숙이는 연습을 하면서 줄기에 힘을 불어둬야할 테지요. 날개마다 잘 여문 낱알을 가득 달고서 '나, 잘 컸어'하고 우쭐거릴 벼들의 모습이 선연합니다. 묵직한 열매를 가득 담기에는 힘이 여간 있어야 되겠어요. 우리도 그래요. 인생의 훈장 함부러 단답니까. 힘이 빡쎄야지요. 아참! 짙은 초록의 논에 하얀 백로 한 마리를 그려넣어보세요. 기막힌 대비입니다. 이걸 어쩐다 그림도 그려얄텐데.
이 싱그러운 아침, 눈을 감으면 잘 찍은 사진처럼 하얀백로와 초록의 들녁이, 들숨을 쉬면 코로 들어오는 아련한 추억, 살갗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 보이는듯도해서 눈을 떠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널디넓은 들녁이 온통 초록의 물결로 넘실댑니다. 바람따라, 나도 끝없이 걷고만 싶고요.
끝물 산딸기도 사라지고 아침나절에 요기할 게 암 것도 없어서 가난한 여름입니다. 왜, 강냉이가 없던가? 하다못해서 토마토에다가 수박도 있지않는감 하시지만 즐펀하게 깔린 과일이 지천이래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들의 노고를 허수이 보고 농작물을 탐할 수 있겠습니까? 들녁으로 나가는 길에는 감시카메라가 노려보는 게 흔해요. 농작물 도둑이 득실거려서. 도둑 중에도 가장 질이 안좋은게 농작물 도둑이겠지요. 이곳은 인삼밭도 많은데 걱정이예요. 세상이 워찌 이리 빡빡하다냐. 인심이 사나워지는게 살 맛이 싹 달아나네요. 저는 고추 하나, 강냉이 하나 슬적한 적이 없시유. 워째 인증샷이나 날려야할 텐데. 할 줄 몰라서.
장마가 지난 들녁의 색깔은 짙은 초록입니다. 독이 바짝 오른 폼이 워찌 무섭더라고요. 이제사 날개를 단 새마냥 부쩍 제 키를 키우고 안으로는 달디단 과육을 가득 담고 있을 여름입니다. 벼란게 열대식물이라 논에 고인 물이 자글자글 끓도록 내려쪼이는 햇볕이 따가워야 살맛이 나는가 봐요. 햇볕만큼 식물에게 필요한 게 없더라고요. 식물이 성장하기 위해서 햇볕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이제사 알았다니까요.
저란 놈은 햇볕을 멀리하려고 썬 크림을 쳐바르는 터라 알 턱이나 있었남요. 공장 안에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웠는데 햇볕이 들고말고에 따라 천양지차라고요. 우리에겐 햇볕이란 뭘까요? 손 들고서 '돈이요 돈!' 흐히구, 남사스러워서. 허지만 솔직이 그렇다구요. 돈만큼 필요한게 있을까요? 이래사 제 인격이 의심스럽다할거구.....
그리운 벗님들은?
오늘은 유시찬 수사신부님 테이프 듣는 재미로 아침 산책이 심심치 않았어요. 땀을 흠벅 흘리고 돌아온 숙소의 씨디가 달콤한 브라더스 훠의 그린필드를 토해냅니다. 사춘기를 넘길 때 가장 즐겨 듣던 팝송이라 구입한 재미가 쏠쏠합니다. 옛날 팝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라. 세시봉 덕분에 옛날 팝에 취해 지냅니다.
이곳 시골의 정취를 한가득 담아 전하기에 막막한 제 글솜씨가 아쉬운 여름 아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