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놀라운 부르심
교회 헌장(Lumen Gentium) 49항과 50항에서는 교회를 '순례하는 교회'로 소개하고 있다. 교회는 순례를 통해서 천상 교회를 향해 현세의 나그네 여정을 걷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시적으로 들어낸다. 이처럼 순례하는 교회의 지체들인 신자들 역시 순례 행위를 통해서 교회의 신비를 새롭게 사는 가운데 이를 내면화할 수 있게 된다. 순례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따르는(Sequela Christi) 길이다. 따라서 순례에 있어서 핵심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새롭게 인격적으로 만나고 아는 일이며 그분과의 관계를 쇄신하는 일이다. 이러한 작업에는 필연적으로 회심(回心)이 전제된다. 따라서 순례는 곧 회심의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카를로 마짜의 '순례 영성'에서) ..........................................................................................
두 번째 날, 아침 조반을 먹기 전에 호숫가를 거닐었다.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도, 모래밭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다들 한적한 풍경이고 한 폭의 그림이다. 우리 일행도 모래밭을 거닐며 묵상에 빠져 있거나 묵주기도를 하는지 평화로워 보인다. 불어오는 바람에 베드로 사도의 목소리가 실려 있을까 귀기울여본다.
“갈릴레아 맞은쪽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저어 갔다.” (루카 8, 26) 오늘의 시작은 게라사이다. 마귀 들린 사람이 사는 무덤과 회당이 무너진 채로 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이 마귀를 쫒아내자 군대라는 이름을 가진 마귀는 돼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길을 내리달려 호수에 빠져 죽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성경에 의하면 게라사와 호수는 바로 지척에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돼지 떼가 달려가기에 너무 멀다. 가이드에 의하면 2천 년이 흐르는 동안 호수의 수위가 낮아져서 호수와 거리가 멀어진 게 아닐까? 당시 이곳은 유다인들이 율법으로 꺼리는 돼지를 사육하는 이방인 지역이었다. 요즈음은 쿠르시라고 불린다. 첫날은 유대광야를 중심으로 다녔다면 오늘은 갈릴레아 호수 주변 마을을 다닌다. 인근의 카파르나움으로 간다. 루카4장 38절에 나오는 베드로가 살던 집이 있는 마을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시지 않았던가? 바로 앞에는 갈릴레아 호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좋은 곳이다. 예수님 당시 가파르나움에는 유대인 회당(마르 6,1-6)과 세관(마르 2,13-17)이 있었고 로마 군대가 주둔(마태 8,5)한 큰 마을이었다. 또한 베드로의 본가와 처가(마르 1,29-31)가 있었다. 나자렛에서 배척을 당하신 예수님이 전도의 중심지로 삼았기에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마태 9,1. 마르코 2,1) 이라고도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집에 기거하시며 갈릴레아 호수 일대에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셨다. 이런 이유로 베드로의 집터 위에 8각형으로 지어진 베드로 기념 성당 대문에 이런 글씨가 보인다. "Capharnaum the town of Jesus". 베드로가 살던 집터를 보존하려고 아예 기둥을 세워서 바닥을 들어 올려 성당을 지었다. 팔각형의 성당 중앙에는 유리로 바닥을 해두어서 그 밑으로 베드로가 살던 집이 보인다. 아마도 예수님이 기거하시던 방인가 조그만 방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초라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 이곳 가파르나움의 주민들 대다수가 유다인이었지만 인근 갈릴레아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카나로부터 나타나엘, 막달라에서 마리아, 벳사이다로부터 필립보와 안드레아 등.
예수님은 이곳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으며, 12제자를 뽑으셨고, 생명의 빵에 관한 설교를 비롯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회개하여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을 비롯하여 인근의 벳사이다와 코라진 같은 성읍이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마태 11,20-24) 예언대로 6세기에 퇴락하더니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 되고 말았다. 가파르나움은 고고학적으로 가장 고증이 잘 된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부자들이 쓰던 흰 돌로 지어진 시나고그 밑바닥은 예수님이 걷던 2천 년 전의 돌바닥 그대로다. 유리 칸막이를 걷어 내려가서 걷고 싶다. 아니 아니, 감히 제가 뭐라고? 무릎을 꿇고 귀를 다땅에 대고 귀울여보리라. 어쩌면 성미 급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찾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예수님이, 베드로와 제자들이 스승님을 따라 걸어가신 곳이라잖은가! 지금 베드로 기념성당은 옛날 비잔틴 양식 교회 터 위에 세운 25년 된 성당이다.
그럼 예수님과 관련된 가파르나움이 나오는 성경을 찾아볼까? 1)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마르 1,21-28 ; 루카 4,31-37) 2)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마태 8,14-17 ; 마르 1,29-31; 루카 4,38-39) 3)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고(마태 8,5-13; 루카 7,1-10) 왕실관리의 아들을 살리시고(요한 4,46-54 4)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통해 내려 보내진 중풍환자를 고쳐 주심(마태 9,1-8; 마르 2,1-12; 루카 5,17-26 5)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고(마태 9,18-26; 마르 5,21-43; 루카 8,40-56) 6) 한 여인의 하혈병을 고쳐 주시다(마태 9,20-22) 7) 소경 두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심(마태 9,27-31) 8)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다(마태 12,9-14; 마르 3,1-6; 루카 6,6--11) 9)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 “생명의 빵”에 관한 긴 담화를 가파르나움의 회당에서 하셨다(요한 5,59) 10) 그분에게 온 수 많은 사람들을 낫게 하셨다(마태 8,16-17; 마르 1,32-34; 루카 4,40-41)
이렇게 가파르나움과 관련된 구절을 찾다가보면 절로 ‘예수님은 메시아시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믿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청하면 세상의 악과 병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시지 않는가?
또한 예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지붕을 벗기고 구원이 필요한 이웃을 그분께 데리고 가야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빵이 무엇인가? 하루하루 목숨을 연장해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손을 잡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어쩌면 예수님의 체취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 가파르나움이 아니었을까? 가이드가 말하기로. “가파르나움은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신 선교본부였다.”고.
예수의 마을이 가파르나움이라잖은가? 이천 년을 훌쩍 뛰어넘는 이곳에 예수님과 거닐었던 길, 호숫가로 시원하게 뚫린 길을 따라 걸어보지 않으련가? 날씨도 화창해서 반팔 티셔쓰를 꺼내입고 썬글래스를 끼고 주위 경관을 둘러본다. 호수에 햇빛이 쏟아지는가 부셔 눈을 뜰 수가 없다.
바람도 산들, 하늘도 푸른 빛에 빛살무늬 구름이 엷게 펼쳐진 이곳으로 그대를 초대하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