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사랑함에
지난 주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고향에 다니러 간 날이라 내가 세례를 받은 본당에서 주일미사를 드렸다. 미사 중 공지 시간에 다음 주가 추수감사절이니만큼 주교님께서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신다는 게 아닌가. 사실 내가 세례 받은 날이 언제였던가 무척 궁금했거든. 왜냐면 딱 30년 전, 추수감사절에 내가 세례를 받았기에. 내 궁금해 하는 걸 아시고 주님께서 친절하게도 꼭집어 주신 게 아닌가 말이다.
그래 그날 7명이 세례를 받았다. 오전반에서 4명이, 저녁반에는 날 포함해서 3명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뜻 깊은 세례날을 알아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벗님들도 함께 축하해 주시리라 믿는다. 그때가 막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갑자기 고향으로 발령이 난 터라. 회사에서 받은 전세금으로 부모님 집 근처에 아파트를 얻고서 회사에 다녔지만 아내는 무척 힘들었으리라. 매운 고추처럼 시집살이가 보통 힘들었을까만 어쩌랴, 내가 출근하고나면 조모님까지 계신 시댁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더우기 아는 사람, 친구도 없는 시골에서 사는 게 그리 좋기야 했으랴.
내가 왜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가려 했는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 집, 할머니와 어머니는 절에 나가셨고 아버지는 향교에서 소임을 맡은 유학자였으니까. 굳이 이유를 댄다면 아내가 고등학생일 때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따르던 담임 선생님이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덜컥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친정 어머니가 여자는 시집을 가서 시댁 종교를 따르는 게 도리라고 성당엘 나가는 걸 반기지 않았다지. 그래서 냉담 중이었던 아내는 내게 성당에 나가자고 조른 일도 없었다.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왜 그랬을까? 주님께서 날 이쁘다고 선택하심에 틀림없다.
고객 중에 신자가 있어 넌즈시 성당엘 나가고 싶다고 했더니 마침 교리반이 막 시작한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교리반엘 나가기 시작했는데 날 안내해 주신 분, 나중에 대부님이 되셨지만 정성이 끔찍했다. 화욜이던가, 퇴근할 무렵에는 차를 가지고 날 태워서 성당으로 안내했다. 당시에 자가용이 무척 귀할 때였는데 한번도 빠지지 않고 자가용 기사 노릇을 단단히 했지. 다른 한분의 교우와 함께 우유를 산다거나 요구르트를 교리반에 돌리고 내 옆에서 함께 수녀님이 진행하는 교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우리 교리반도 열 명가까이 되었기에 우유값 지출도 녹녹찮았을 게다. 교리가 끝나면 기다리는 건 쌩맥주에 통닭 안주로 날 이끌었으니 예비자 하나를 영세 시키려고 돈도 많이 쓴 셈이다. 정말이지, 예비자를 세례로 이끄는 것은 인도자의 성의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빠지고 싶어도 어쩌겠는가?
아내는 화욜마다 늦게 들어오는 날 의심하기 시작했다. 신혼이라 된장을 보글보글 끓여놓고 기다리는 새댁이 신랑이 밥은 먹었다고 하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전화라도 하지 그래!' 그때는 전화를 놓기가 얼마나 어려웠던가. 잠시 지방 근무하러 온 터라 전화를 놓기도 그렇고. 아내의 의심이 짙어가자 실토하고 말았다. 괜히 숨길 일이 뭐 있겠는가 말이다. 세례 받는 날 짠하고 털어놓으리라 했던 계획을 깨고 "나 성당 나간다" 고 하자 아내가 얼마나 놀라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당연히 아내는 기뻐해 주었다. 세례는 받았지만 친정도 교우가 아니었길래 그냥 냉담자가 된 터라 놀랄만도 했지. 세월이 흘러 지금은 처가쪽으로 처남 내외분하고 맏조카 내외까지 성당에 나가는 교우가 되었다. 글쎄 아내의 공로인가 내 공로일까? 그때부터 아내는 예비자 교리반에 나가는 나를 적극 후원해 주었다.
어느날인가 아내가 친구한테 쓴 엽서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남편이 교리반에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는 "아마도 시조모님하고 시부모님을 모시는 내(아내)가 이뻐서 예수님께서 남편을 세례받게 해 주신 거 아니겠니. 분명 자기를 기특하게 여기신 주님께서 주신 선물임에 틀림없다고.." 그럼 나 스스로 교리반에 나간 내 공로는 어디 가고 지가 잘 나서 내가 세례 받는 거라나. 참 웃긴다 웃겨.
사실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 그제야 배우게 되었다. 아내를 기쁘게 해 주는 일이 이렇게 신나고 즐거운 일인지. 풋내기 신랑이 알아가는 "결혼의 신비를 니들이 어찌 알까!" 그래, 그 후로도 이 깨달음을 죽 계속 해나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살아가면서 마음과는 달리 아내를 속 상하게 만드는 게 부지기수라야지. 이런 내게 하늘나라는 너무 멀리 달아난 거 같아서 가슴이 새가슴이 되고 떨려.
우리 교리반은 최희준의 하숙생이란 노래로 테이프를 끊었다. 갈대가 날리는 장면에 최희준씨의 허스키한 노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교리반 이레네 수녀님이 얼마나 속을 끓였는 줄 알어. 아담이 살았던 에덴동산은 어디였을까요? 라는 질문에 내가 답변한 게 이랬다. 아무래도 아프리카에 있었던가 봐요. 왜냐고 묻는 수녀님한테 그랬지. 아담하고 하와께서 발가벗고 산 걸 보면 무척 더웠을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아프리카지 뭐. 이러는 날 수녀님이 이뻐했을리 없었을 게야.
하여간 세례를 받은 날, 얼마나 기뻤을까. 아내는 이렇게 기쁜 날에 집에 가야한데요. 난 기념될만한 날은 으례 짜장면이라도 외식을 해야할 거 아니냐고 했지만 아내의 고집에 부모님 집으로 갈 밖에. 아내의 속셈은 이랬어. 애비가 세례를 받고선 나보고 성당에 나가자고 그런대나. 자기가 미리 세례를 받은 사실을 빼고는 남편이 받았으니 나(아내)도 성당엘 나가겠다는거지 뭐. 용의주도했어, 시부모님인들 뭐라겠어 당신의 아들이 먼저 성당엘 나가면서 지 마누라를 데리고 가겠다는데. '그래, 애비가 나가니 너도 나가야지.' 이런 대답은 당연한 게 아닐까.
기억하건데 내가 세례 받던 시골 본당의 추수감사절은 한편의 축제였다. 직접 농사 지은 수수라든가 사과에다가 콩이라든가 깨 같은 추수한 농산물을 들고서 제대에 바칠 때 농부들은 얼마나 가슴이 뿌듯할까. 그랬다. 수수라든가 쌀을 볏단 채로 들고나와서 제대에 바치는 모습이 생생하더군. 서울에 와서는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어서 아쉽더라고.
어쨎건 이날, 세례받은 날로부터 주님과 난 기나긴 여정(행)을 시작한 셈이 아닐까? 영성이 깊은 분이야 그 세월이 아주 짧은 여정이겠지만 제 경우에는 길고 긴 여행이라고 여겨지네 그려. 사실 주님과 난 언제나 달콤한 관계라기 보다는 밀고당기는 밀당이 심했다고.
내가 세례받은 기념일이, 아니 주님의 아들로 태어난 날을 어찌 그냥 넘길손가! 그것도 30년이나 된 걸. 벗님들 함께 기뻐해 주실 거지요 예!!! 참 궁금한 거는 25주년을 신부님은 은경축, 50년을 금경축이라했던가? 그럼 30주년은 뭐 없는가요? 니가 신부님이던가? 와 이러요, 신부님도 힘 들지만 평신도의 삶도 보통 힘 든게 아니거든요. 그래요, 우리 평신도들도 신부님맨치로 기념일 챙기자구요.
이럴 땐 영적 선물이라든가 물적 선물도 팍팍 보내줘야지요. 제가 사양할 사람이 아니고 말고요.
그래도 조.....금......은 섭 섭 할 거구먼 .......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