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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이 저자는 민담과 구비문학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로서, 그동안 주로 한국의 옛이야기를 중심으로 저술하여 책으로 츨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점차 관심 영역을 중국과 서양의 민담으로까지 확대시키고, 마침내는 독일 출신의 민담 수집가인 그림 형제가 출간한 민담집을 텍스트로 삼아 논의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그리고 이 책은 마침내 그림 형제의 민담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다양한 옛이야기를 연구하여, 그 결과물로서 저자가 새롭게 펴낸 결과물이다. 학생들과의 수업 시간에 ‘자신의 롤 모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과거에는 저자 자신의 ‘롤 모델’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롤 모델은 바로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히는 것에서, 저자가 그들의 민담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라는 부제의 이 책에는, 독일의 그림 형제들이 정리한 민담집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전에도 같은 제목으로 한국의 옛이야기를 대상으로 책을 출간한 적이 있지만, 이번 저서는 그 스케일이 더욱 커지고 다루고 있는 내용의 깊이가 더해졌다고 생각된다. 특히 다양한 민담에 등장한 화소들을 하나의 상징으로 풀어내, 인간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의미를 제시해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것을 즐겼던 사람들이 그 속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비문학을 비롯한 모든 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각자의 해석이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는가에 대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정해진 답이 없기에 작품을 읽는 사람의 상상력과 설득력 있는 설명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저자가 옛이야기를 통해서 제시하는 설명들이 충분히 설득력을 갖추고 있으며,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대해 저자 자신이 ‘진행해 온 옛이야기 탐구의 결산이자 새로운 도전’이라고 규정하고, 10여 년 전에 정독했던 그림 형제 민담집을 중심에 두고 세계의 옛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한 결과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민담에 나타난 주제들을 모두 5개로 나누어, 각각의 주제들에 담긴 민담과 그 의미를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이야기와 인간'이라는 주제의 첫 번째 항목에서는 '이야기를 알면 진리가 보인다'라는 설명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 속에 담긴 인간의 본질과 함께 서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민담들을 통해 스토리(Story)나 정신(Spirit )이나 영혼(soul)으로 인지될 수 있는 'S-Ray'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치 X-ray를 찍어서 질병을 찾아내듯, 저자는 민담을 통해서 우리의 정신을 치유할 수 있다고 짱한다. 그래서 ‘문학치료’라는 개념을 도입해, 다양한 작품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민담에 흔히 등장하는 '성장과 독립'이라는 주제를 다음 항목으로 다루면서, 저자는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사람들이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홀로 서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인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사회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간혹 민담에 등장하는 자식에게 혹독한 부모가 등장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국 자식을 독립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홀로서기'는 힘들어서 더 아름다운 여정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세 번째 항목에서는 '호모에로스'라는 제목으로 사랑이라는 문제를 다고 있으며, '사랑하니까 인간이다'라고 강조한다. 민담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학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가장 보편적이며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랑' 그 자체를 이루기 위한 민담 주인공들의 치열한 노력이 소개되기도 하며, '영원한 동반자'를 얻는 과정이 왜 그리 험난한지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아울러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밀당'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민담에서는 그것을 오랜 시간 동안의 고난을 극복하여 마침내 결실을 거두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제만이 아니라 냉혹한 인간 사회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의 의미에 대해서 '세상과의 대면'이라는 네 번째 항목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를 일컬어 '이야기로 투시하는 냉혹한 현실'이라고 규정한다. 비록 세상은 냉혹하지만 그것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자신만의 주체적인 의지에 기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양한 민담을 통해서 풀어내고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성공과 행복'을 바라는데, 이 책의 마지막 항목에서 다양한 민담을 통해서 그 방법과 의미가 제시되어 있다. 즉 '인생의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과 세상의 선입견에 휩쓸리지 않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책의 전체 분량이 5백 면이 넘을 정도로 적지 않지만, 너무도 재미있어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전 책에서 보여주었던 저자의 논법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한국의 신화와 민담을 넘어서 세계 신화에 도전하여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저자의 바지런함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미나가 끝나고 시장통의 술집에서 저자를 포함한 일행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까마득한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지내 자부 만날 수 없지만,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다시 옛날처럼 술잔을 기울이며 옛이야기에 대해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상징으로 풀어내는 민담의 화소들에 접근하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왔으며, 나 역시 앞으로 수업이나 논문들에서 이러한 해석을 즐겨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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