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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중심의 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고, 때로는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비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과거에는 피해자가 그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고, 가해자는 그러한 행태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던 부끄러운 시절이 있었다. ‘처신’이나 ‘옷차림’ 운운하며 당사자들의 탓으로 여기면서 피해자를 비난했던 행태는 바로 남성중심의 그릇된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다. 시대가 변해 ‘성평등’의 인식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남성중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성폭력을 저지른 이들을 단죄하기 위한 폭로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은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주목을 이끌어내었다. 이후 SNS와 회견 등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엄연히 벌어졌던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과 그것을 은폐하려고 하는 이들이 존재했으며, 피해자가 오히려 더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현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특히 친부에 의해 자행된 ‘친족 성폭행’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남편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아내는 서둘러 딸을 외국에 유학을 보내야만 했고, 둘째 딸(결)을 일찍부터 기숙학교에 보내야만 하는 사연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져 있다. 외국 유학 중인 딸(하늘)이 그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자실을 선택하게 되고, 그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할머니와 아버지의 행동은 철저히 가부장적인 면모에 다름이 아니라고 하겠다. 그 딸의 죽음을 ‘동성애’로 인한 것이라고 죄악시하는 그들의 후안무치한 행태는 후에 아버지의 행태를 고발하는 딸(하늘)의 유서가 알려짐으로써 서서히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언니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동생이 이를 알게 되고, 딸들을 아버지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자각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가족들로부터 언니의 동성애 상대로 지목되었던 지원을 먼나서 언나거 넘간 유서를 읽고 동생(결)은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꿈이라고 여겻던 과거의 기억이 바로 아버지의 언니에 대한 성폭력이었고, 엄마가 자신을 기숙학교에 보낸 것도 그러한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조치였음을 알게 된다. 마침내 그 상황을 제대라 인식하고 이제라도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머니는 이혼을 결심하고, 동생(결)은 아버지의 추악한 모습을 밝히고자 언니의 유언과 함께 편지를 보내는 것이 소설의 결말에 배치되어 있다. 만약 실재 상황이라면, 아마도 이후의 상황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몸부림으로 주인공은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연과 함께 결혼 전에 성폭력을 당해 태어난 아이를 억지로 입양시키고, 결혼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딸(결)의 친구(가온) 어머니가 등장한다. 가온의 어머니 역시 과거의 성폭력으로 생긴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며, 결혼 이후에도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그 사실을 알고 사랑으로 감싸는 남편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각각의 인물들을 둘러싼 상황과 감정들을 작가는 일기 혹은 편지 등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 작품은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일기나 편지에서는 1인칭의 진술로 이뤄져 당사자들의 심정이나 상황을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치 때문에 작품의 내용이 더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이 소설은 허구’이며 이 작품의 ‘등장인물 역시 상상력으로 빚어낸 허구의 존재’라고 밝히고 있지만, 작품 속의 상황은 현실에 엄존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거세게 진행되고 있을 때,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서 가해자를 부도덕한 존재로 만들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을 목도할 수 있었다. 때로는 SNS를 동원해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언론과 권력 집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행태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후에도 가해자 주변인들은 여전히 피해자를 괴롭히는 행태가 지속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하고 싶었’지만,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억울한 죽음이 이어’지는 현실에서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처음에는 ‘죽은 이들을 위해 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산 자들의 이야기’로 형상화한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진실의 속과 겉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한계에 절망하기도’ 했다고 밝히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은폐되어 있던 ‘친족 성폭력’의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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