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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바닥을 치우는 방법
백은선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무서워
등 뒤엔 철책 돌고 있는 바람개비들
도망친 건 아니었는데
네 손에서 유리컵이 미끄러져
깨져버린 거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말아
널 번쩍 안아 소파에 앉히고
비질을 하고 식빵으로 바닥을 문지르고
물걸레로 깨끗이 닦아주고 싶었는데
걷다가 걷다가 다른 얼굴을 갖게 되면
두 발은 깊어지고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 마르는 소리
어떻게 해야 해? 나는
섬
바닷가에 가면
바위들이 많았고
아들 낳기 바위
혹은
망부석
다 그런 설명이 써 있었고
컵에 들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널 만나려고 천 년 동안 땅 속에서 기다렸어
네 입이 움직일 때
안다는 건 무서운 일
텅 빈 집이 너무 환해서
부서진 것들이 다 반짝인다는 게
이상해서
아픔을 상상하고
기차를 타고 멀리
멀리까지 가는
너를 떠올리고
커다란 돌을 보면 소원이 떠오른다는 것은 신비하고 이상하지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는 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 내가 눈 감을 때 네가 무엇을 빌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거라는 게 그게 사랑이라서
소파에 앉아 너를 기다리는 동안
어둠이 내려앉고
단정한 두 발이 바닥에 스며드는 동안
돌아오면 날 보고 무얼 기도할래?
내내 빛나던 것을 생각해
내가 돌이 되는 동안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이것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쌍둥이가 만나는 이야기다
사랑을 질병으로 여기던 시대의 이야기다
빨간 지붕이 늘어선 언덕을 넘고
바다를 지나 숲을 건너는 이야기다
두 손을 앞으로 뻗은
가녀린 식물의 수런거림이다
이것을 읽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
옛날옛날 아르헨 왕국에
왕과 왕비가 살고 있었단다
폭설이 내리는 밤 왕비는
초록 눈의 쌍둥이를 낳았지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찢어져야했어
한 명은 여왕의 품으로
한 명은 전쟁 중인 이웃 나라로
투명한 것을 너무 오래 마주하고 있으면
믿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구겨진 시야 찢어진 종이
녹아버린 눈 속의 눈
무르고 따듯한 것이
물 위를 떠가는 동안
사라지는 것
너무 오래 바라면 점점 단단해져서
마음을 멀리 쏠 수 있다
진공 속에서 진공 속에서
연마되는
*
하나와 라나는 서로의 꿈을 꾸었어
그게 자기인 줄로만 알고
빛나는 초록 눈이 어둠에 물들 때
어둠 속에서 빛이 돋아날 때
꿈은 영혼을 들어올린단다
햇빛 아래서 두 팔다리가 전부
녹아내리는 꿈
잿더미 속에 묻혀 눈을 감아
지나가버린 일을 잊는 병에 걸려서
우린 행복해
엄마가 말할 때
하나는 책장 깊이 꿈을 밀어 넣으며
숨을 고르지
물론이죠 저는 매일 하나예요
레이스에 둘러싸여 점점 비대해지는 엄마
아빠는 언제 돌아와요?
전쟁이 끝나면
전쟁은 언제 끝나요?
한쪽이 포기하거나 전부 죽으면
애초에 전쟁은 왜 시작된 걸까
하나는 소파에 기대 앉아
꿀단지 속 꿀을 콕 찍어 손가락을 빨아먹으며 생각했어
너무 넓어서 성은 아직도 미로 같고
무엇과도 가까워질 수 없이
혼자 잠드는 밤마다
침대가 점점 높아지는 것만 같아
언젠가 구름을 밟고 올라가 눕게 될지도 몰라요
그게 네가 견뎌야 하는 축복이란다
밤마다 그림자들은 일어나 홀을 배회하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지 못해서
미끄러지는 어둠은 민달팽이 같고
*
라나는 높은 탑에서 자랐어
라나의 눈은 늘 가려져 있었지
초록이 깊어 마주치면 마법에 빠진다고
봐선 안 되는 것이 너무 많다고
사람들은 수근댔어
가리면 가릴수록 더 많은 비밀들을 알게 되어서
가슴 속에는 진주처럼 흔들리는 것이 가득했다
뒤척일 때마다 차르르차르르 심장 속에서
소리가 났다
아침마다 나선의 긴 계단을 내려올 때
라나는 쏟아질까 조심히 발을 옮겼지
매일
한 번의 외출
한 번의 인사
난 불행해지려고 태어났다
라나는 자주 생각했어
창밖의 새가 우는 소리
멀리서 날아오는 타는 잿빛 냄새
밤에만 볼 수 있는 빛들
이렇게 긴 악보를
언제 다 연주할까?
호흡의 반대말은
이해하게 될 때마다 희미해지는
아름다움이 라나를 덮칠 때
점점 더 커지는 천 얼굴을 가리고
꿈을 되새기는 버릇
손가락을 빠는 오래된 버릇
본 적도 없는 긴 복도를 배회하는 꿈을
매일매일 꾸고 꾸며 도착한 문은
절대 열리지 않으며
*
마침내 아빠가 돌아왔을 땐 깜짝 놀랐지
낯선 남자가 말 위에서 나를 내려다봤지
하나야
하나야
다 커버렸다는 건 무슨 소릴까?
커다란 나팔소리가 온 나라를 채우고
밤새 불빛이 일렁거려서
두려움은 기쁨과 짝인가 봐
밤마다
엄마는 자꾸 잃어버린다
무엇을?
보고 싶지 않아도 매일 봐야하는
멍든 거울이 있어서
그걸 폭설이라고 뾰족한 손톱이라고
꿈
나는 헤매고 헤매며 진땀을 흘린다
눈물 대신
꽉 쥔 주먹의 빨강
방문객이 늘어나고
무릎을 굽혔다 펼 때마다
미소 미소 미소
아빠 앞에 엎드리는 많은 상자들
이런 것이 기쁨이라면
하나는 기다려온 것은 결코 도착하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지
*
라나는 평생 탑처럼 꼿꼿했다
굽어질 수 없는 나무처럼
손가락이 많은 창문처럼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
그게 라나의 이름이었어
패전국의 아침
패전국의 밤
분노의 오케스트라는
라나를 향해 연주됐다
너는 쓸모없어
입 속에서 쓸모라는 말을 곰곰이 더듬을 때
혀 위로 자라는 풀 무더기
보따리 하나
안에 든 건 빗
커다랗고 딱딱한 빵
얼굴을 가릴 때 쓰던
처음부터 라나를 싸고 있던 천
그게 전부였지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계속 걸으면 도착한다
알고 있는 전부였단다
*
빨간 지붕이 가득한 거리로 나왔을 때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본다
온통 소음에
귀를 틀어막아도
자꾸 들리는 심장소리
발끝만 보며 걷고 또 걸으며
모든 게 멀어지고
모든 게 가까워질 때까지
밤이 오면 벽에 기대 쉬고
해가 뜨면 눈물을 찍어 빵을 뜯어 먹으며
나는 서쪽을 향해 이동했다
초록이 두발을 엉망으로 만들 때까지
두 눈을 잠그고 그 안에 붉은 지도를 펼쳐 놓고
몇 개의 언덕을 넘고 또 넘어
모래 모래 모래
모래 모래 모래
모래 모래 모래
온통 모래뿐인 곳에 도달했던 날
나는 처음으로
주저앉아 머리를 빗고
천을 걷어 넘실거리는 파랑을 마주봤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눈물을 흘렸다
*
아르헨 왕국에 가려는 거지?
늙은 노인이 다가와 라나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어
아 르 헨
그곳이 서쪽 나라라면 맞습니다
네 눈은 정말 아름답게 빛나는 구나
어떤 어둠도 빛낼 눈이 구나
네 눈을 하나 다오
넌 이미 두 개나 가졌으니
라나는 며칠 동안 노인을 무시하며
해변에 앉아 있었지만
눈과 바다를 바꿀 수밖에 없음을 알았어
왜냐고?
혼자 힘으로 파랑을 들어올린 사람은 없으니까
*
애꾸눈의 라나
얼굴을 가린 비천한 왕녀
심장을 부수며 날아가는 새들
피눈물을 흘리며
배는 나아가지
반짝이는 것을 싣고
멀리까지
아르헨
르
헨
아아아아아아
한 번도 소리 지르는 법을 배우지 못한 라나는
파도를 속으로 삼켰단다
마침내 육지에 도달했을 때
흘러내려 물속으로 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검은 그림자의 긴 꼬리
손 안에 새겨진 물보라의 운명
혹은
마음이라 불리던 것
모래뿐인 어둠은 바늘처럼 계속되었고
얼굴을 가린 라나는
소리를 되찾으려 끝없이 기침을 했지
누가 내 귓속을 가위질 한다
라나가 풀썩 쓰러져 눈을 감았을 때
하나는 폴짝 뛰어올라 침대에 누웠지
*
낮은 천장이 보였다
처음 보는 낯선 천장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
이곳이 내가 찾던 집인가 속으로 생각하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들을 보고 아니구나 직감으로 깨달았다 동그랗게 몰려든 사람들이 저마다 질문을 쏟아냈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때 한 노인이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와 익숙한 말로 물었다
당신은 주샨에서 온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만 저는 아르헨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말을 못합니까?
태어나자마자 주샨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곳에 돌아왔습니까?
나는 말없이 베일을 벗어 얼굴을 보였다
술렁이는 소리가 사방 벽을 울렸다
검은 구멍
검은 구멍
꽉 들어찬 어둠
*
며칠째 사람들은 논의를 이어갔어
라나를 어찌할 것인가?
라나는 정말 아르헨의 왕녀가 맞는가?
맞다면, 정말 그렇다면……
소년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검은 천을 건네주었어
이제부턴 이걸 쓰시래요
하얀 천은 너무 낡아서 곧 바스라질 거래요
라나는 검게 물든 시야
새로운 그림자로 세계를 봤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
순종하는 것
그것은 라나가 평생 사력을 다해 연습한 것들이었단다
*
마을의 이름은 바다끝
외지인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몇 대째 근친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조금씩 뒤틀려 있고 무언가 하나씩 없었다
나처럼
나는 점점 이곳을 제자리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졸졸 쫓아다니며
가짜공주님 가짜공주님 내 행동을 하나하나
따라하며 지켜보았다
빙글빙글
몇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말을 배웠고
철없는 아이 같은 말투, 창백하고 아름다운 얼굴
나는 순식간에 다른 것이 되어 간다
마지막 눈이 내리던 날 창밖을 바라보다 결심했다 이제 다시 모험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밤마다 꿈속에서 높은 의자에 않은 내가 울고 있었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고 오르면 단두대 앞에 늙은 여자가 앉아 거대한 몸을 뒤틀며 하염없이 나를 불렀기 때문에 길고 긴 손가락들이 창을 부수고 이불속을 파고들어 끝없이 온몸 할퀴었기 때문에
*
바다끝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높은 벽을 넘어야만 했지
이십사 시간 내내 경비가 벽을 지켰거든 통행증 없이 벽을 건너가는 일은 불가능했어
통역사가 라나에게 말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교대 시간에 이십분 간 감시가 사라지니까요 꼭 수도에 가셔야겠다면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파도가 가장 작은 무시에 둘은 출발하기로 했지
달빛이 제일 흐린 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엎지른 검정
초조함에
손끝을 물어뜯는 라나는
아직도 새로운 어둠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
*
아빠는 하나의 치마를 들어올려 사람을 완성하고
하나는 그날부터
말없이 웃기만 했어
웃음이 계속되면 행렬의 끝은
하나의 두 손을 꾹 짓누르는 파랑 돌
대물림 되는 멍든 거울 속
꺼져가는 초록빛
사랑이 가득한 성은 내내 환해서
꿈: 벽 뒤엔 벽 벽 뒤엔 벽 벽 뒤엔 벽
지나고 지나도 끝없는 파랑
이걸 다 건너려면 날개가 있어야 해
가려워 가려워
뒤척이다 깨는 밤마다
속삭이는 소리
벽
벽
벽
*
긴 송곳을 벽에 박아넣고
한 뼘씩 기어오르기
벽이 우리를 가려주길 빌며
노인과 나는 높이 높이 매달린다
오분 십분 십오분
시간이 흐를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땀
마침내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발을 헛디뎌 노인은 반대편으로 추락했다
커다란 휏불이 일렁이며 내 얼굴을 비췄지
나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
구름 계단을 내려오며 하나는 빈다
오늘 밤에는
검정이 문턱을 넘지 않게 해주세요
엄마
지켜주세요
매일 새로운 시녀가
하나의 시중을 든다
하나는 제일 예쁜 옷을 입혀
계단 위로 시녀를 떠민다
같이 자자
성을 어지럽히는 소문
하나와 함께 잠들면
성에서 내쫓긴다
회색 잠옷을 입은 하나는
오늘도 꿈속을 해맨다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새
일렁이는 도깨비불의 다른 이름은
어깨를 흔들어 깨우고 싶은데
눈을 뜨니 꿈속의 나는 텅 빈 눈구멍으로
볼뿐이야
무엇을?
그걸 미래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니
*
라나는 병사들에게 둘러싸였지
아르헨의 말로
라나는 말했어
비켜 나는 왕녀다
벽을 울리는 폭소
일순간의 정적
베일을 벗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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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탑의 영혼이 휘청거렸지
둥글게 말린 빛의 끝이 묶어버린 운명
굳게 믿어온 얼굴의 안쪽부터
날개는 무너졌단다
*
말을 타고 온 남자가 무릎을 굽혀 라나에게 절을 한다
제가 성으로 모시겠습니다
달리고 달려
숲을 헤치고
달빛을 밟고
두근거림이
모든 세포를 터뜨릴 때까지
라나는 세계의 리듬을 다시 배워야 했어
가슴을 온통 흔들던 것이
전부 쏟아질 때까지
마지막 밤 여관 문을 닫으며
기사는 말했지
제가 성에 전갈을 넣겠습니다
그때까지 쉬고 계십시오
라나의 긴 한숨은 불의 노래
선율은 아이들에 관한 것이었어
지워진 발 잘려나간 손
비스듬한 몸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가지들
라나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기사는
라나의 눈을 벌렸지
순간 라나가 깨어나 말했다
가져가요
초록 광채가 빛나며 그를 꿰뚫었다
칼을 비틀어
하나 남은 눈을 도려냈다
눈뜨고 감아도
오로지 하나만 보여
*
승전 일주년 기념 행렬의 맨 앞에는
아빠와 하나가 마차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어
넝마를 걸친 여자가 마차를 향해
중얼거리며 다가갈 때
호위무사들은
여자를 발로 차 막았지
부른 배를 끌어안은 하나는 안간힘 쓰며
웃고 있었어
하나는 점점 길어지는 계단에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올라갔단다
라나가 매일 계단을 내려가며 가슴을 꼭 쥐었던 거 기억나지? 그것처럼
후에 장님여자가 성벽 아래서 밤마다 부르던 노래가
널리 퍼져
성까지 닿았단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나는 타오르는 불
탑에서 태어난 소문의
매일 복도를 헤매는 꿈을 꾸고
숲을 건너고 파랑을 넘네
창백한 심장 속 속삭임
이 노래를 들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네
그걸 세상 사람들은 아마 운명이라 부르겠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하나는 초록 눈을 가진 딸을 낳았단다
엄마
하나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지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구?
같이 상상해볼래?
1
내리는 눈속에 파묻혀 잠든 라나는 그대로
하늘나라에 갔어
하나는 그날 밤 꿈을 꾸었지
검은 새가 발치에 떨어져 죽는 꿈
그리고 하나는 엄마를 키우며
평생을 성에서 살았다
하나의 마지막은 아무도 몰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거든
엄마처럼
2
하나와 라나는 계속해서 서로의 꿈을 꾸었던 거 알지?
그런데 하나가 아이를 낳던 밤부터
둘은 그 능력을 잃게 되었단다
왕이 죽고
하나는 여왕이 되었는데
폭군이 되었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다 죽여서
하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지
그런데 계속 성 너머에서 전해지던 노래만 유일하게
진실을 이야기했지
하나는 라나를 궁으로 불러들여
단두대에 목을 매달았어
진짜를 잊는 병에 걸려버렸거든
3
자고 있는 왕의 침실에 불을 지르고
하나는 아기를 데리고 성을 빠져나왔어
그때 마침 노래하고 있는 라나를 마주쳤지
셋은 들판을 걷고 숲을 넘어 바다끝까지 갔단다
거기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단다
*
자, 어떤 결말이 마음에 드니?
나도 그렇단다
벌써 밤이 깊었네
이제 자자
(대표시)
말 없는 애인
창틀에 앉은 새 몰랐던 것을 사랑하기에 사위가 어둠으로 뒤덮이고 물은 아래부터 솟아오른다 찌극찌극 우는 작고 노란 새 숲은 너무나 먼데 종지에 물과 쌀을 담아 베란다로 나가자 날아갔다 이젠 아무도 필요치 않은 것을 둘 자리가 필요해서
광화문 언덕을 지나 카페에 들어가면 잠깐 숲을 오해하기 좋았다 그게 자꾸만 나를 이끌었고 언젠가는 모든 날이 비로 채워지리라 그럼 새들은 어디에서 안식을 찾을까 벽들이 벽의 단호함으로 세계를 구성하기 시작한 뒤부터 나는 점점 많은 말을 하게 되었다 이기려고 무엇을?
이름이 있었다 불리기 전부터
노래가 시작된 곳이 그 작은 몸속 몇 미리 심장이라는 게 너무 이상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한쪽 눈은 달콤한 눈물 한쪽 눈은 검은 눈물이 흐른다면 좋을 텐데 계절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차가운 손들이 일시에 흔들릴 때
말을 잃고 기절한다면 어떨까
이름 모를 소녀, 너는 잠깐 새가 되어 꿈을 꾸었다 초록초록초록 하고 섬을 비행하는 꿈
나는 집에 돌아오면 곧장 베란다로 가 물과 쌀을 살피는 게 일과가 되었다 가끔 콕콕 찍힌 자국이 있을 때마다 세상은 거울처럼 1초씩 빛났다
마법의 영역
마법사들은 파란 땅에 모여 살았다
아주 사소한 마법이라도 괜찮다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마법, 1초의 미래를 보는 마법, 단 한 송이의 눈을 내리게 하는 마법
파란 땅에서는 온갖 파란 것들이 자랐다
파란 장미 파란 쌀 파란 복숭아 파란 버섯들 당연히 모든 요리는 파랬다 마법사들은 파랑을 신성한 색으로 때론 가장 친근한 색으로 여겼다
마법사들의 공동체에는 학교가 없었다
이미 주어진 것만 잘 해도 되었다 어린 아이들은 둘러 앉아 각자의 마법을 연마하며 낮을 보내고 밤이면 어른들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용과 싸운 이야기(이빨이 얼마나 뾰족했는지!)
파란 땅의 바깥에서 반투명한 새를 만난 이야기(깃털이 얼마나 반짝였는지!)
처음 실전 마법을 부렸을 때 실수한 이야기(빗자루가 부러지고 지팡이는 땅에 떨어졌단다)
마법사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머리를 뉘일 베개, 음식을 입으로 가져갈 포크, 스스로를 표현할 멋진 언어(멀리서 들으면 유리구슬이 부딪히는 소리처럼 들렸다)
소란이 시작된 건 한 소녀의 방문으로부터였다
저는 감정과 반대로 표정을 지을 줄 알아요
이것도 마법인지 알고 싶어요
어른들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고 격렬한 토론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 동안 아이들은 서로를 깨물며 시간을 때웠다
아이들이 파랗게 멍드는 동안
파란색에 대한 인식이 뒤바뀌는 동안
어른들은 소녀를 새장에 가두고 고통을 주었다
처음에는 막대기로 찌르거나 굶기는 정도였다
아직도 웃고 있어? 즐거워해?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마법사에게 사람들은 물었다
마법사는 구정구슬에 소녀의 얼굴을 띄웠다
맑은 눈에 기쁨이 가득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더 많은 고통
더 많은 고통
(돌팔매질, 뜨거운 기름 끼얹기, 칼로 베기, 입에 담을 수 없는 나쁜 말들)
아이들이 온통 파래진 다음 모든 일이 멈추었다 아이들은 마법을 서로에게 시험하기 시작했고 사소한 마법을 부리는 아이들은 무시당했다 너 따윈 마법사도 아냐!
이토록 친근한 아이들
강력한 마법 앞에 굴복하는 법을
아이들은 자신도 저절로 습득했다
새장 문을 열어 소녀를 내려다보던 어른들
얼굴에 새겨진
숨을 멈춘
웃음, 웃음
이제 마법을 확인할 길은 영영 사라졌다
눈동자에 새겨져 있던 기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아주 느슨한 시
1
빛 속에 있는 건 다 아름다워서
두 손을 믿을 수 없었다
날개의 수런거림은 얼마나 가벼운가
창에 부딪힌 검정은 허공으로 쏟아진다
나 처음이야
네가 말하며 한 움큼 기울어질 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의 지문은 얼마나 깊은지
깊이를 따라 걸으면
곧 추락할 것만 같다
들숨 날숨 들숨
차곡차곡 쌓이는
숨
같은 리듬 속에서 사라질 수 있다면
거듭해 가정해보는 투명의 약속
2
한 번은 꿈의 도시에 당도한 적 있다
바람의 장난 때문이었다
사방의 스크린에서
아름답고 끔찍하며 환희로 가득 찬
장면들이 끝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화면에 손을 대보았다
꿈은 내가 휘두르는 대로
휘어지고 흘러내리며 뒤섞이기도 했다
꿈이 쏟는 손
손이 쏟는 꿈
문득 궁금해졌다
모든 스크린의 꿈을
동시에 쏟을 수 있다면
3
사탕나무에 사탕이 맺히는 기간은 6-7월이며 작은 가지 끝에 10-15개씩 열린다 양방에서는 사탕나무 잎과 가지를 약재로 사용한다 열매는 슬픔이 끝나는 것을 지연시키는 효능으로 알려져 있어 일반적으로는 섭취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문으로 채집하는 사람들이 있고 고가에 거래되어 애호가들이 많다고 알려졌다
- 슬프지 않을 때 먹으면?
- 나도 몰라 근데 슬프지 않을 때가, 있어?
- 그러게
- 그렇지
사람들은 그것을 천사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철판 위에 가장 얇게
흩어지는 눈물
4
혈관 속을 파고드는 소리
붉게 채색된 세상은 혼의
이름을 부르고
마지막 숨은
언제나 날숨
물질과 비물질 사이
좁은 틈에서 들려오는
숨
그거 알지 어렸을 때 괜히
스탠드에 손 대보던 거
빨갛게 신기해서
자꾸 했잖아
나무 사이 빛무늬들이
네 얼굴을 밝고 어둡게 물들이는 동안
내가 삼킨 것은
5
그 나무는 집 주변에 심으면 안 된대
사람을 홀린대
모든 게 거꾸로 된다면
손으로 걷고 아침에 잠들고
거리엔 온통 나무뿌리
그때 우린 무슨 꿈을 꿀까?
이토록 가벼운 것은 처음이라고
눈 속에 누우며
나 처음이야 너는 다시 말하고
무서워져 나는 손을 놓쳤는데
저 검고 깊은 구멍 속에서
아주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은
밤마다 구멍을 드나드는 바람이
내는 휘파람 소리
마침내 내가 이해하게 된 것은
유리, 아주 느슨한 시, A Loose Poem, 181.8 x 227.3 cm, oil on canvas, 2023
이 시는 류희연 기획자가 기획한 전시 <흰 작살을 머금은 바다>의 참여 작가 유리, 박은진, 김유자, 김민정 작품에서 출발하였으며, 서리풀청년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오프닝에서 낭독하기 위
해 쓰여졌다.
백은선 시인
2012년 『문학과 사회』신인상
2016년 시집『가능세계』2019년 시집『아무도 기억하지 못하 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2021년 산문집『나는 내가 싫고 좋 고 이상하고』2021년 시집『도움받는 기분』
2023년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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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론)
시와 편견 | 2024년 겨울호 백은선론
이 여자의 눈은 검다
전승민 문학평론가
여러 명의 화자가 등장합니다
여러 시간대가 뒤섞여 있습니다
한 명의 화자가 얼굴을 바꿔가며 이야기합니다
아무도 울지 않아
아무도
그러니
이제
가느다란 뼈를
다 무너뜨려 볼까
─백은선, 「앙망」 부분
1. 절망의 잠재태
모두가 희망을 내놓으라 요구할 때 그 틈에서 절망을 노래하는 여자가 있다. 그의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희망이라고 착각하며 음악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절망이야말로 절망 그 자체다. 시절이 엄혹하고 삶이 죽음의 뼈들로 지어진 집이라는 현실의 감각 속에서 우리는 시와 소설이 이를 최대한으로 부정해 주기를 바란다. 물론, 문학이 현실의 중력을 비틀어 새로운 차원의 재현을 만들 때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생성되는 또 다른 미래의 형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미래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쉬이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좀 더 신중하게 입술을 열어야 할 것이다. 함부로 발설하는 낙관은 달콤한 기만이다. 백은선의 시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왜 절망의 표정을 희망보다 더 깊이 알아야 하는가? 그 절망의 빛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 말하자면, 절망의 아름다움에는 도대체 어떤 힘이 있는가?
이 겨울에 도착한 백은선의 시 다섯 편은 그의 시 세계에서 잠재태로 내재하던 형상들의 비화다. 사랑과 그로 인한 고통을 말하면서 조금도 울지 않는 목소리(들)가 그간의 숨은 이야기들을 발설한다. 다섯 편의 시는 각각이 고유한 파격을 내보이고 있으나 이들이 발휘하는 강력한 상호텍스트성에 의해 우리는 다섯 개의 시를 하나의 거대한 서사이자 시로 읽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장시를 즐겨 쓰던 시인은 말의 부피를 초과하는 광활한 세계를 내어두고, 요컨대 이 시(들)는 한 편의 극시(drama poetry)이자 둘이자 하나인 백은선의 ‘눈먼 여자’가 겪는 삶과 죽음의 연대기이다. 백은선의 시 속에서 우리는 시가 견인하는 서사의 규모에 압도될 것이며, 거대한 공전 궤도와 그 안에서 역동하는 구조, 그리고 리듬의 별들이 내뿜는 빛 앞에서 탄식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아름다움의 얼굴이 다름 아닌 절망이라는 것, 그리고 그 속된 비루함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기꺼이 믿게 될 것이다.
2. 새의 노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련의 시편들을 하나의 시로 읽어낼 때 「말 없는 애인」에 등장하는 새는 ‘소녀’(「마법의 영역」)이자 쌍둥이 왕녀 ‘하나’와 ‘라나’(「인간은 신의 알레고리」)의 원형이 된다. 물론, 백은선의 ‘새’가 시적 화자의 분신으로 제시된 것은 이미 여러 번이었다. (“새를 키우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고/나는 새의 눈으로 봅니다” 「우리가 거의 죽은 날」) 예컨대 아마도 새의 눈으로 보았을 숲의 풍경이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세계 인식이 새를 초점화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시(「생의 찬미」)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말 없는 애인」에서 ‘새’가 그녀의 ‘소녀’임을 최초로 선언한다. (“이름 모를 소녀, 너는 잠깐 새가 되어 꿈을 꾸었다 초록초록초록하고 섬을 비행하는 꿈”) 그러나 이 분신은 화자가 물과 먹을 것을 담아 새에게 다가갈 때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어지는 두 왕녀의 생애는 돌연 집을 탈출해 버린 새의 빈자리로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아마도 새를 정성껏 길러왔을 화자는 사라진 새 따위는 마치 그의 시적 사건이 될 수 없다는 듯 무심하게 “이젠 아무도 필요치 않은 것을 둘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사라진 것뿐이라고 읊조린다. 화자의 무심함이 되려 기이하다. 명확한 이유 없이 점층되는 으스스한 분위기는 새 자체가 아니라 새가 사라진 이후 ‘나’에게서 발견되는 내면의 변화에서 비롯한다.
노래가 시작된 곳이 그 작은 몸속 몇 미리 심장이라는 게 너무 이상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한쪽 눈은 달콤한 눈물 한쪽 눈은 검은 눈물이 흐른다면 좋을 텐데 계절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차가운 손들이 일시에 흔들릴 때
말을 잃고 기절한다면 어떨까
─「말 없는 애인」 부분
그는 이전의 연에서 “나는 점점 많은 말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의 두 눈이 서로 다른 종류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며 말을 잃고 기절하는 자신을 상상한다. 백은선의 시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것이 가장 서늘하고 낮은 온도로 발화되어 왔음을 고려한다면, 이때의 상상은 그의 현실 바깥을 단순히 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누설된 욕망이다. 새기 노래하지만 부재하는 멜로디는 화자의 눈물 안에 과거형으로 들어 있고, 그 노래의 출발지가 새의 작은 심장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새의 노래는 시의 바깥에 자리한 독자들은 알지 못하나 시의 안쪽에 살고 있는 그만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비밀, 시가 품은 가장 은밀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다섯 편의 시를 통과하며 우리가 이 새의 노래를 듣게 된다면, 우리는 감히 백은선이 가장 깊숙한 곳, 새의 붉은 심장에 숨겨둔 진주알들을 만지게 될 것이다. (“가리면 가릴수록 더 많은 비밀들을 알게 되어서/가슴 속에는 진주처럼 흔들리는 것이 가득했다/뒤척일 때마다 차르르차르르 심장 속에서” 「인간의 신의 알레고리」)
한편, 우리보다 먼저 이 새를 만난 자들이 있다. 파란 땅에 모여 사는 마법사들이다. (“마법사들은 파란 땅에 모여 살았다 [……] 파란 땅의 바깥에서 반투명한 새를 만난 이야기(깃털이 얼마나 반짝였는지!)” 「마법의 영역」) 파랑을 가장 신성한 색으로 받드는 이들의 세계에는 ‘학교’가 없다.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그들은 “이미 주어진 것만 잘 해도 되었”으므로 자신의 존재 외부에 설치된 규율을 내면화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세계가 지닌 본래의 완전함은 한 소녀의 출현으로 인해 깨지기 시작한다.
소란이 시작된 건 한 소녀의 방문으로부터였다
저는 감정과 반대로 표정을 지을 줄 알아요
이것도 마법인지 알고 싶어요
어른들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고 격렬한 토론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동안 아이들은 서로를 깨물며 시간을 때웠다
아이들이 파랗게 멍드는 동안
파란색에 대한 인식이 뒤바뀌는 동안
─「마법의 영역」 부분
마법사들이 가진 “머리를 뉘일 베개, 음식을 입으로 가져갈 포크, 스스로를 표현할 멋진 언어”는 그들이 세계와 불화하지 않게 하는 자족의 조건들이고, 아마도 그 자족적인 평화의 투명함은 세계의 표면과 이면의 일치에서 비롯할 테다. 파랑으로 점철된 그들의 세계는 언어가 실재를 고스란히 견인한다는 것의 방증(“파란 땅에서는 온갖 파란 것들이 자랐다/파란 장미 파란 쌀 파란 복숭아 파란 버섯들 당연히 모든 요리는 파랬다”)이다. 그러나 소녀가 가져온 새로운 능력인 “감정과 반대로 표정” 짓기는 마법사 세계의 핵심 원리, 언어와 실재의 투명한 동기화를 일격에 파괴할 위험이 다분하기에 세계의 “어른들은 소녀를 새장에 가두고 고통을 주었다”. 그때부터 파랑은 억압의 색이 되고 만다. (“아이들이 파랗게 멍드는 동안 [……] 강력한 마법 앞에 굴복하는 법을/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습득했다”)
한데, 새장에 가두어진 소녀에게 더 많은 고통을 가하면 가할수록 소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오른다. (“맑은 눈에 기쁨이 가득해서/혼란이 가중되었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당황한 마법사들은 고문의 세기를 높이지만 그럴수록 얼굴에는 “웃음, 웃음”이다. 소녀의 등장이라는 시적 사건으로 인해 투명한 언어의 세계는 불투명한 혼돈으로, 즉자적 자연의 파랑은 대자적인 세계 원리로 변한다. 요컨대 ‘학교’가 필요하지 않았던 세계에 ‘학교’가 세워지고, 이는 곧 자신보다 더 큰 힘을 구별하고, “사소한 마법”과 그렇지 않은 마법을 구분하며 인위적인 위계를 자연적인 가치로 내면화하게 되는 (“강력한 마법 앞에 굴복하는 법”) 경위다. 다소 동화적인 소재들을 통해 그려지는 이 시는 그러나 화자가 “너 따윈 마법사도 아냐!”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토록 친근한 아이들”이라고 일갈한다는 점에서 결코 동화적이지 않다. 냉소하는 화자는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아이들을 두고 보이는 것과 정반대로 ‘친근하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소녀가 가진 능력은 아무리 큰 외력에도 훼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로 인해 한층 더 강화되는 듯하다. 보이는 그대로가 곧 실재인 이 투명한 ‘마법’은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다. 표면과 이면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생기고, 그 안을 채우는 모호한 어둠,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지리라. 명확한 출처와 내용을 알 수 없는 언어의 불투명함 속에서 말이다. 이런 종류의 언어를 우리는 시라고 부른다.
이제 마법을 확인할 길은 영영 사라졌다
눈동자에 새겨져 있던 기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같은 시, 부분
시적 언어, 불투명한 혼돈의 언어를 가져다준 소녀가 새장에 갇힌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먼저 읽었던 「말 없는 애인」의 날아가 버린 “노란 새”가 다름 아닌 이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던 새는 우리에게 시의 언어를 손수 물어다 준 셈이고, 그 언어의 투명도가 한없이 낮다는 깨달음과 함께 우리가 왜 새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없었는지도 뒤늦게 알게 된다. 새의 노래─두 “날개의 수런거림”(「아주 느슨한 시」)은 “허공으로 쏟아진” 어둠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재현된다는 ‘마법’에 대한 환상은 소녀에게 무의미하다. 모든 실재는 언어라는 물질을 통과하는 순간 굴절되고 언어로 지어진 세계 속에서 절대적인 원형은 들어설 자리가 없음을 그녀는 안다. 그러므로 소녀는 미성숙한 인간이 아니라 마법사(‘어른들’)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의 진실을 이미 아는 메시아이며, 남들보다 먼저 아는 자로서 고요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자다.
3. 블랙 미러
시적 언어가 본질적으로 배태하는 어둠의 불투명함은 세계를 조명하는 존재자들의 빛이 굴절되기 때문이다. 빛의 파동은 그것이 통과하는 물질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다른 정도로 꺾이고 그러므로 사물/대상의 형상은 빛의 주인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빛 속에 있는 건 다 아름다워서/두 손을 믿을 수 없었다” 「아주 느슨한 시」) 물론, 마법사들의 파랑과 같이 주체와 대상이 합치되어 투명해지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같은 리듬 속에서 사라질 수 있다면/거듭해 가정해보는 투명의 약속”) 그것이 이미 ‘마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아는 소녀에게 그것은 단지 절망이 예정된 욕망일 뿐이다. 표면과 이면의 간극이 생성하는 언어의 어둠은 더욱 구체적인 세부로 변태한다.
사탕나무에 사탕이 맺히는 기간은 6-7월이며 작은 가지 끝에 10-15개씩 열린다 [……] 열매는 슬픔이 끝나는 것을 지연시키는 효능으로 알려져 있어 일반적으로는 섭취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
슬프지 않을 때 먹으면?
나도 몰라 근데 슬프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러게
─「아주 느슨한 시」 부분
약으로 쓰인다는 사탕나무 열매의 약효는 슬픔의 종료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러니까 소녀의 ‘기쁨’이 실상 고통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슬픔의 지속이다. 슬픔이 사라지는 것이 오히려 병리적인 상태다. 세계의 현상을 정반대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소녀의 ‘능력’이었다면 사탕나무의 열매 또한 소녀가 키워낸 것일 테다. 그러나 ‘웃음’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 숨은 괴로움이 굴절된 표면 속에서 더욱 강력한 현전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슬프지 않은 상태가 비정상적이라는 가치관은 슬픔이 지닌 규모를 한 차원 더 확장시킨다. 백은선에게 시의 언어는 불투명한 검은 유리(black mirror), 실제를 반사하지만 어둠이라는 검은 ‘스크린’을 덧씌워 원본성을 굴절시키는 매체다. 「아주 느슨한 시」는 앞서 읽은 두 개의 시편이 체현하는 언어의 불투명함과 모호함의 관념을 스크린이라는 물질적인 장치로 변주한다.
사방의 스크린에서
아름답고 끔찍하며 환희로 가득 찬
장면들이 끝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화면에 손을 대보았다
꿈은 내가 휘두르는 대로
휘어지고 흘러내리며 뒤섞이기도 했다
꿈이 쏟는 손
손이 쏟는 꿈
문득 궁금해졌다
모든 스크린의 꿈을
동시에 쏟을 수 있다면
─「아주 느슨한 시」 부분
“투명의 약속”을 거듭 가정해 보던 화자는 그러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다만 ‘스크린’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투명해지기를 바라는 대신 “모든 스크린의 꿈을/동시에 쏟을” 것을 욕망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지하는 세계가 실은 ‘화면’들이며 주체가 시선을 발휘하는 방향대로 이리저리 뒤섞이며 변형되는 ‘꿈’이라는 것을 안다. 실제의 가상성, 그리고 가상의 가상성이 이루는 겹겹을 들여다보던 그는 급기야 “모든 스크린의 꿈을/동시에 쏟”고자 한다. 그 한가운데에 설치된 재현의 복잡한 미로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을 감각하게 하는 토대는 인간의 숨이다. (“물질과 비물질 사이/좁은 틈에서 들려오는/숨”) 검은 유리와 현실 사이의 아주 좁은 틈새로 그가 현실을 현실로 인지하며 ‘너’의 얼굴에서 발견되는 빛이 순수하게 ‘네’가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세계가 ‘너’에게 드리운 빛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나무 사이 빛무늬들이/네 얼굴을 밝고 어둡게 물들이는 동안”) 바로 이 “날숨” 때문이다. 새의 작고 붉은 심장이 (「말 없는 애인」) 노래하던 곡은 “혈관 속을 파고드는 소리”(「아주 느슨한 시」)이며, 그것은 “저 검고 깊은 구멍 속에서/아주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백은선에게 시의 말, 새의 노래는 현실의 표면과 주체의 내면 사이의 간극을 어둠으로 삼아 시시각각 사라지고 있는 소리, 시인의 검은 유리가 굴절시키고 반사하며 “허공으로 쏟아”내는 숨이다. 한데, “날숨”들─새의 노래가 검은 유리에 부딪혀 뿌연 김을 서리다 이내 곧 사라질 때, 그는 두려워한다. (“무서워져버려 나는 손을 놓쳤는데”) 그것은 아마 유리가 아주 약한 힘에도 쉽게 깨지는 물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무서워
등 뒤엔 철책 돌고 있는 바람개비들
도망친 건 아니었는데
네 손에서 유리컵이 미끄러져
깨져버린 거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말아
널 번쩍 안아 소파에 앉히고
비질을 하고 식빵으로 바닥을 문지르고
물걸레로 깨끗이 닦아주고 싶었는데
[……]
어떻게 해야 해? 나는
─「바닥을 치우는 방법」 부분
검은 유리(black mirror)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꺼진 화면을 부르는 말이다. 현실이 무수한 가상들로 구성되는 동시대의 자장 안에서 재생되던 영상이 사라지고 가상 바깥에 존재하던 자신의 얼굴이 날아드는 순간, 인간은 원하지 않던 두려움과 맞닥뜨린다. 현실을 압도하고 지배하는 가상의 위력은 더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기에 재현된 가상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일순간 사라질 때 폭로되는 것은 화면 앞에서 자신의 (무)의식을 외면하던 이가 가장 아프게 앓고 있던 부분의 감각과 그 병소다. 백은선의 화자가 마주하게 되는 두려움의 얼굴은 사랑이다. 그에게 사랑은 살아 있는 것에게 심장이 있는 이유를 물을 수 없는 차원과 같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상수처럼 건재하지만 그가 살아내는 세계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들숨과 날숨처럼 영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계속해서 사라지기만 한다.
「바닥을 치우는 방법」에서 화자는 유리로 만든 컵이 깨져 ‘네’가 다칠지도 모르는 상황에 두려워한다.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을 완벽하게 치워 ‘나’와 ‘너’ 모두를 안심하게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모자라게 발휘되고, 깨진 유리 조각들로 환한 집은 ‘나’와 분명 같지 않은 마음일 ‘너’의 말들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네 입이 움직일 때/안다는 건 무서운 일//텅 빈 집이 너무 환해서/부서진 것들이 다 반짝인다는 게”) 자신의 사랑이 필패할 운명 속에서 ‘나’는 이미 ‘나’에게서 멀어지는 ‘너’를 본다. (“기차를 타고 멀리/멀리까지 가는/너를 떠올리고”) 화자의 사랑은 ‘너’에게 ‘나’의 마음을 밀어 넣거나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떠나고 마는 ‘너’의 시간까지도 오롯하게 놓아두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어둠 속에서 말없이 기다린다. 살을 찢고 피를 내어 상처 입힐지도 모르는 뾰족한 유리들은 어둠 속의 기도와 함께 둥글고 단정한 돌이 된다. “널 만나려고 천 년 동안 땅 속에서 기다렸어”라고 고백하는 ‘나’에게 기다림은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실천이다.
커다란 돌을 보면 소원이 떠오른다는 것은 신비하고 이상하지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는 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 내가 눈 감을 때 네가 무엇을 빌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거라는 게 그게 사랑이라서
소파에 앉아 너를 기다리는 동안
어둠이 내려앉고
단정한 두 발이 바닥에 스며드는 동안
돌아오면 날 보고 무얼 기도할래?
내내 빛나던 것을 생각해
내가 돌이 되는 동안
─「바닥을 치우는 방법」 부분
깨진 유리들, 안전하게 착지하지 못하고 부서진 시적 언어(‘블랙 미러’)들의 파편 속에서 ‘너’를 기다리며 기도할 때, 아프고 무서운, 뾰족하고 투명한 것들은 빛나는 ‘돌’로 변한다. 백은선에게 사랑은 이미 경험한 것이며 이미 예정된 절망의 기호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날카로운 통각은 사랑의 행위 속에서 연마된다. 그러나 사랑은 ‘나’의 몸짓 속에서 둥글어지는 것이지 그것이 지닌 본래의 위험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역사적으로 하나의 질병이었다.
4. 절망의 아름다움을 들으려고
이것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쌍둥이가 만나는 이야기다
사랑을 질병으로 여기던 시대의 이야기다
[……]
이것을 읽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부분
우리가 막 도착한 곳은 이 세계의 결절점이다. 아마도 ‘소녀’일, 앞선 네 편의 시를 노래한 화자의 얼굴, 검은 유리 위를 응시하는 시선의 얼굴을 우리는 이제 직접 만나게 된다. 그는 ‘그’가 아닌 ‘그녀’이며 동시에 ‘하나’이기도 한 둘이다. 그녀(들)는 바로 ‘하나’와 ‘라나’라는 이름의 쌍둥이 자매들이다. 이 길고 긴 시는 「마법의 영역」과 유사하게 동화적인 상상력을 차용하지만, ‘마법’이 깨어진 자리에서 폭로되는 진실은 현실과 재현 사이의 불투명한 어둠이므로 시적 세계로 그려지는 ‘아르헨 왕국’ 역시 그 상상력의 형상들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을 테다. 알레고리는 서사의 각 요소가 미시적인 은유의 의미소들로 기능하면서 생성하는 거시적인 상위의 서사적 맥락을 견인한다. 인간이 신의 한 가지 은유적 맥락이라면 시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그들의 ‘사랑’은 백은선이 파악하는 ‘신’과 ‘신성’의 세속적인 번역이다.
처음 읽었던 시부터 천천히 되감아 보자.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르던 ‘새’(「말 없는 애인」)는 시의 언어가 검은 유리처럼 불투명하다는 진실을 서늘하게 전하던 ‘소녀’(「마법의 영역」)였음을 상기하자. 그리고 그 유리는 사랑하는 이의 손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천 년 동안 땅속에서 기다”리던 이의 기도에 의해 둥근 돌로 연마되었고, 이 돌은 폭설이 내리는 밤에 태어난 쌍둥이 소녀들의 세계에로도 흘러온다. (“너무 오래 바라면 점점 단단해져서/마음을 멀리 쏠 수 있다/진공 속에서 진공 속에서//연마되는 演”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시의 언어가 제아무리 불투명하다 한들, 검정 스크린 위로 비치는 얼굴이 화면의 주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거울이다. 쌍둥이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자신의 얼굴과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아닌 자의 얼굴을 함께 본다. (“하나와 라나는 서로의 꿈을 꾸었어/그게 자기인 줄로만 알고 [……] 보고 싶지 않아도 매일 봐야하는/멍든 거울이 있어서”) 이 시의 목소리(들)는 그리하여 ‘하나’이면서 하나만은 아닌 그녀‘들’의 것이며, 다섯 편의 세계를 휘감는 공통의 언어다.
알레고리는 여러 은유의 다층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므로 이 시에 접근할 수 있는 방향 역시 여럿이겠으나, ‘새’였던 ‘소녀’의 연대기로 읽자면 이 시는 자신의 눈을 가렸던 “천을 걷어 넘실거리는 파랑을 마주봤”던 이가 결국 두 개의 눈 모두를 잃어버리고 마는 이야기, 그러나 한 개의 눈과 ‘바다’를 바꾸어 “파도를 속으로 삼”키고, 파랑의 폭력이 넘실대는 그 바다의 끝을 벗어나기 위해 기어이 벽을 넘는 이야기, 그 일련의 고난 속에서 끝내 베일을 벗은 ‘새’가 노래하고 드디어, 그녀와 우리 모두가 그것을 듣게 되는 이야기다.
존재의 위계를 세우는 억압의 ‘파랑’을 만나기 이전에 그녀들은 ‘새’였고, 초록의 꿈속을 비행하던 ‘새’는 ‘소녀’가 되어 새장에 갇혔다. (「마법의 영역」) 초록은 그녀들의 눈동자를 채우고 있는 색으로 (“초록 눈의 쌍둥이”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녹색 눈을 가진 여자는 비밀을 본다. 그러니 ‘파랑’의 세계에 불투명한 시적 언어의 ‘검정’을 손에 쥐고 홀연히 나타난 이에게 초록은 검정의 기원인 셈이다.
라나는 높은 탑에서 자랐어
라나의 눈은 늘 가려져 있었지
초록이 깊어 마주치면 마법에 빠진다고
봐선 안 되는 것이 너무 많다고
사람들은 수군댔어
가리면 가릴수록 더 많은 비밀들을 알게 되어서
가슴 속에는 진주처럼 흔들리는 것이 가득했다
뒤척일 때마다 차르르차르르 심장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부분
자신이 가진 시력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이에게 왕녀의 지위가 다 무슨 소용일까. 앞선 시편들에서 제시되는 언어의 검은 골짜기는 그것이 깊이를 가지기 이전에 다만, 평면과 입체의 분간이 불가한 그림자였으며 일방적인 순종을 요하는 억압의 파랑을 배태한 무엇이었다. (“라나는 검게 물든 시야/새로운 그림자로 세계를 봤지//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순종하는 것/그것은 라나가 평생 사력을 다해 연습한 것들이었단다”) 다섯개 중 최후의 시가 주도면밀하게 구체화하는 것은 시의 언어가 발생시키는 검은 어둠의 끔찍한 내력뿐만 아니라 그녀(들)에게 가해졌던 파랑의 폭력도 함께다.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는 나머지 네 편의 시가 형상화하는 사랑의 비화, 그 절망의 역사를 기록한다.
시가 고발하는 폭력의 얼굴은 딸과 동침하는 ‘아빠’의 것, (“아빠는 하나의 치마를 들어올려 사람을 완성하고”) 그리고 서슴없이 한쪽 눈을 달라 요청하는 ‘노인’과 ‘바다’, 그리고 마치 자신을 보호해 줄 것처럼 굴던 ‘기사’─소녀를 둘러싼 집(‘성’) 안팎에 있는 남성들의 것이다. 여기에는 여자의 얼굴도 있다. 쌍둥이는 ‘나’이면서 동시에 ‘나’가 아니기도 한 ‘너’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칼을 든 기사 앞에 불현듯 나타나 “가져가요”라고 말하고 사라지는 목소리는 폭력에마저 순종하게 된 ‘나’의 분열된 자아다. 시는 언뜻 폭력적 남성성과 피해자로서의 여성성, 그리고 그 훼손된 여성적 섹슈얼리티만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백은선이 시로써 길어 올리는 절망의 들끓는 파토스는 세계에 상시 존재하는 폭력의 낯빛을 비추기 위함이 아니라 좁은 틈 사이로 가느다랗게 새어 나오는 (너무나 미세해서 모두에게 보이는 것은 아닌) 사랑의 빛과 조우하기 위함이다. 이 사랑은, 그로테스크한 세계만큼이나 퀴어하고 매한가지로 끔찍한데, 마지막 눈이 적출되고 난 후 ‘라나’가 보게 되는 세계의 전부가 바로 (자매의 이름이자 일자적 사랑의 차원을 뜻하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라나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기사는
라나의 눈을 벌렸지
순간 하나가 깨어나 말했다
가져가요
초록 광채가 빛나며 그를 꿰뚫었다
칼을 비틀어
하나 남은 눈을 도려냈다
눈뜨고 감아도
오로지 하나만 보여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부분
아버지와 딸의 근친적 관계가 재생산의 역학으로 행해지는 비뚤어진 세계에서 (“몇 대째 근친으로 태어난 아이들은/조금씩 뒤틀려 있고 무언가 하나씩 없었다/나처럼 [……] 아빠와 하나가 마차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어”) 폭력적 남성성에 기반한 이성애 섹슈얼리티는 아이러니하게도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와 긴밀히 연관된다. 가령, ‘하나’를 사랑하는 ‘라나’의 마음과 더불어, 성 안의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공주와 시녀의 잠자리는 ‘하나’로부터 아버지의 ‘검정’을 회색으로 희석할 수 있는 장치다.
구름 계단을 내려오며 하나는 빈다
오늘 밤에는
검정이 문턱을 넘지 않게 해주세요
[……]
매일 새로운 시녀가
하나의 시중을 든다
하나는 제일 예쁜 옷을 입혀
계단 위로 시녀를 떠민다
같이 자자
성을 어지럽히는 소문
하나와 함께 잠들면
성에서 내쫓긴다
회색 잠옷을 입은 하나는
오늘도 꿈속을 헤맨다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새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부분
‘하나’ 뿐만 아니라 ‘라나’ 역시도 퀴어한 섹슈얼리티를 담지하며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그게 라나의 이름이었어”) 이들의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는 확실한 절망 속에서 생동한다. (“하나는 기다려온 것은 결코 도착하지 않는다는 걸/조금씩 알게 되었지”) 이 절망은 실상 한 몸인 두 여자의 녹색 눈이 사라지고 그녀들의 시력이 상실되는 조건을 탄생 배경으로 하고, 이때 녹색 눈이 시의 ‘블랙 미러’를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 결국, 백은선의 시가 전경화하는 것은 장면이 아니라 목소리, 시가 부르는 노래다.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새”, “심장을 부수며 날아가는 새”의 노래다.
지나고 지나도 끝없는 파랑
이걸 다 건너려면 날개가 있어야 해
가려워 가려워
뒤척이다 깨는 밤마다
속삭이는 소리
벽
벽
벽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부분
파랑을 건너가기 위해 날개를 더듬지만 들리는 것은 “벽/벽/벽”의 소리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벽들이 벽의 단호함으로 세계를 구성하기 시작한 뒤부터” ‘무엇’을 이기기 위해 “점점 많은 말을 하게 되었다”는 진술을 이전에 들은 바 있다. (「말 없는 애인」) 게다가 새의 노래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다만 “날개의 수런거림”이자 “창에 부딪힌 검정”(「아주 느슨한 시」)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파동임을 듣지 않았던가. 최초의 화자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대로라면 “벽/벽/벽”은 벽이 여자를 가로막는 양태가 아니라 날개가 막 돋으려는 가려운 날갯죽지를 ‘벅/벅/벅’ 긁는 소리를 품은 파동이다. 이를 자각하는 순간, 절망의 아름다움은 비로소 소리로 화한다. 두 눈을 완전히 잃고 장님이 된, ‘새’로 다시 태어난 ‘라나’가 부르는 노래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나는 타오르는 불
탑에서 태어난 소문의 現
매일 복도를 헤매는 꿈을 꾸고
숲을 건너고 파랑을 넘네
창백한 심장 속 속삭임
이 노래를 들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네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부분
결국 ‘파랑’을 넘어서는 여자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초록 눈을 가진 딸을 낳”는다. 그 이후의 시간은 무엇이 진실인지 비밀에 부쳐지지만 화자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 속의 독자, 자신의 아이에게 세 종류의 ‘가능 세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중 가장 행복해 보이는 것은 세 번째 이야기로, 집(‘왕의 침실’)에 불을 지른 뒤 아이를 안고 탈출한 ‘하나’가 성 밖에서 노래하고 있던 ‘라나’를 만나 세 여자가 “들판을 걷고 숲을 넘어 바다끝까지” 가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이다. 그러나 백은선의 여느 시가 그러하듯 불행은 완벽히 불행하지 않고 행복 또한 온전히 행복하지 않다. 그리하여 세 개 중 어떤 하나도 완전한 결말로 읽히지 않지만, 셋 모두를 합쳐 하나의 진실로 받아들일 때 이야기는 가장 완전해진다. “눈속에 파묻혀 잠든 라나”가 죽자 “검은 새가 발치에 떨어져 죽”고 ‘엄마’(아이)도 사라진다. (첫 번째 가능 세계) ‘하나’가 아이를 낳음으로써 쌍둥이 여자는 둘을 강하게 얽어매던 의존과 분열로부터 비로소 놓여나지만 여왕이 된 ‘하나’가 폭군이 되어 진실을 말하는 이들을 모조리 죽여 세계를 자발적으로 소외시키고 만다. (두 번째 가능 세계) 그러나 ‘하나’와 ‘라나’ 그리고 ‘엄마’가 이 알 수 없는 가능 세계의 미래에 실재하는 것은 분명하므로 그들은 분명 “바다끝”을 넘어 숲으로 들어갔을 거라는 세 번째 결말은 확실해진다. 무엇보다도, 눈먼 여자가 부르는 새의 노래는 이를 진실의 차원으로 견인하는 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네”)
5. 이후의 것들이 이후가 될 수 있도록
절망은 ‘나’의 욕망이 좌절되는 곳에서 태어난다. 삶이라는 것은 대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시간의 총체이며, 세계란 ‘나’만이 아니라 여러 타인과 공거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나’의 욕망이 타인들의 그것과 중첩되거나 충돌할 때, 그리하여 그 대결의 경합에서 질 때 우리는 절망한다. 늘 이기거나 늘 지기만 하는 자는 없으므로 절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든 반드시 겪고야 마는 운명이다. 때로 ‘내’가 무엇을 욕망하지 않고 그저 생활의 일상 속에 거주하기만 하더라도 절망은 쉼 없이 찾아온다. 인간의 의지와 선택, 그리고 능동적인 행위와 전혀 별개로 닥쳐오는 숙명적인 수동성이라는 점에서 절망은 순수한 부정의 에너지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백은선의 눈먼 여자가 노래하는 시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 절대적인 무력, 절망으로부터 인간의 다채로운 욕망이 배태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백은선의 시는, 욕망은 곧 결핍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해되어 온 저간의 인식론을 가뿐히 내파한다.
인간이 죽지 않고 절망하는 한 그 절망의 자리에서는 욕망의 씨앗들이 파종될 것이다. 그 씨앗들은 반드시 선하거나, 도덕적으로 옳은 것들만을 피워내지는 않을 것이다. 순결하게 깨끗하기만 한 것들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 파종할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란 것은 제 스스로 삶을 살아내 본 적이 없고 다만 살아낸 자들의 기도 속에서 그려지는 무결함이므로 살아가는 일의 현재적인 고통 속에서 건져진 백은선의 말들 속에서 희망의 자리는 협소하고 대신, 욕망과 소망의 자리들이 펼쳐져 있을 따름이다. 그는 희망의 관념을 궁구하느니 차라리 열렬히 절망하고 가열차게 냉소한다. 사물과 대상을, 그리고 세계를 시의 검은 유리 속으로 굴절시키고 그 위로 비치는 자신의 두려움 앞에서 눈을 치켜뜬다. 언어의 파동,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의 욕망은 절망의 자리에서 더욱더 강건해질 것이다. 선과 악의 혼재, 불행과 행복이 쌍둥이처럼 결합하고 아름다움과 추함 역시도 그렇게 서로의 몸을 섞을 때, 그 누구도 감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었던 가장 거대한 아름다움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백은선이 견인하는 신성의 알레고리, 아름다운 절망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은 지극히 불온하다. 시는 신과 인간을 나란히 마주 보게 한다.
희망보다도 절망에 더욱 천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불순물 하나 없이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사랑과 폭력을 초월한 신이 지상으로 하강하여 시대의 그림자를 손쉽게 물리쳐줄 리도 없다. 신의 구원은 인간의 희망과 꼭 같은 자리 위로 겹쳐지는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백은선의 인간은 그러므로 기꺼이 절망하며 그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겨울에 도착한 다섯 편의 시는 잃어버린 검은 두 눈의 텅 빈 구멍을 통해 미래를 듣는 여자의 목소리다. (“어깨를 흔들어 깨우고 싶은데/눈을 뜨니 꿈속의 나는 텅 빈 눈구멍으로/볼뿐이야/무엇을!/그걸 미래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니” 「인간은 신의 알레고리」) 안구 두 개만큼 비어버린 구멍 사이로 그가 보는 미래는 기쁨에서 출발해 슬픔과 두려움, 불안, 그리고 냉소로 가는 자리에서 흘러가는 노래다. 그렇기에 시인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인간의 절망은 눈이 머는 침묵 안에서 끓는 눈처럼 도래하는 것이며, 그러나 그것은 “이후의 것들이” 반드시 “이후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인간의 절망이 발휘하는 아름다운 힘이라고 말이다.
인간을 잊은 것은 인간이었다
침묵은 무르고
침묵은 투명해
침묵의 밖에서는 침묵을 읽을 수 없고
침묵의 안에서는 눈이 먼다
폭설─끓고 있는 하얀 장막
이후의 것들이 이후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이후의 감정을 예비하며
미래에
내릴 모든 눈에게
─「嘿」
전승민 평론가
202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제19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으로 등단.
평론집 『퀴어-(포)에티카』, 산문집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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