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 조각상 셋(젊음의 거리)
한 집 건너 또 한 집 먹고 마시며 밤을 질펀 그리게 하는 술집으로 서서히 간판이 바뀌는 종로
대구 여행의 상징인 근대화 골목길을 다니시기에 거치적 거리실가 보아
자동차길은 북쪽에서 남쪽으로만 열어 놓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조국의 모습에
절망하며 절규했던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을 지나
아직도 식지 않은 찡한 코끝을 문지르며 또 하나 근대화
상징 건물인 천주교 계산 성당을 뒤로하고 탄약 냄새가 은은히 풍길 것 같은 약전 골목을 빠져나온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둘 떡집이 늘어나더니 제법 모양을 갖추어가는 먹음직한 떡들이 진열된 점포들을 지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교들이 많이 살아 화상들의 골목이라 불렀으나 하나둘 떠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길을 들어서자
한 무리 여행객들이 긴 골목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진골목으로 빨려 들어가듯 살아진다.
아직은 가로 수라 서 있어도
어린 나무들 길가 조각상들을 덮을 그늘 하나 만들지 못하고 한낮 햇빛이 얼굴을 익히려는 듯 따갑게 내리쬔다.
동거란 얼굴 웃는 듯 아니 웃는 듯 크지 않은 실 눈 같은 두 눈
스스로에게 먼 후일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의자에 앉아 책가방을 옆에 두고 자신에게 뭇고 답하는 학생 조각상 하나
길 건너 앞산 쪽으로 조금 비켜 가면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떡하니 입 벌리고 잡지 나부랭이를 읽는 모습 시원찮은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긴 인생에 어느 과정이 소홀하여 후일을 기약하지 못한다면
아마 발도 키도 크나 마음이 크지 못하여
지금 정신 놓은 이 모습이 원인의 단초는 아닐까?
그저 시간 죽이는데 정신이 팔려
정신과 육체를 단련하고 학습하며
세상 돌아보지 못한 이 조각상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매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조금 더 남쪽으로 발길 옮기면 오늘은 일찍 오실까? 기다려도 아니 오시는 지아비 아이 등에 업고 길가로 마중 나온 동그란 얼굴에 비녀도 단정히 꼽은 한복 입은 저 여인은 전시용인가?
넘쳐 나는 인파 속에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없는 조선의 새아씨 여인상은
변해버린 세태에 던지는 우리 것을 지키라는 또 다른 매시지인가?
밤은 깊어가고
뻘건 불판 위에 노리끼리 잘 익어가는 먹음직한 고기 안주에 술 술 잘 넘어가는 소주 양 만큼이나 밤은 비틀거리며 술 취한 이들의 발길에 걷어차이는 조각상들 주위에 언제나 분주하게 발길 이어지며 밤이면 더욱 붐비는 종로
오고 가는 말속에 욕까지 버물어져 포장되지 않은 논 논길같이 질펀 거린다.
금고 자개농 반닫이 등 변신하지 못하고 시대 뒤떨어진 구닥다리 물건을 팔다
손님 뜸하여 문 닫으려다.
어느 날부터 불경기에는 먹는 것이 제일이야 하면서 하나둘 술집으로 간판 바꿔 달았다.
먹고 마시며 취하여 비틀거려도
젊다는 이유만으로 이해되고 용서되며 활기를 찾는 거리
앉으나 서있는 조각상 셋이 어우러진 길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화상 골목도 떡 골목도 조각상 골목도 아닌
젊음의 거리라 불어리라
자정을 지나서도 담배연기까지 어우러진 뿌연 연무(煙霧) 속
실내에서 길거리에서 젊은 그들 시끌벅적 왁자지껄 말의 비빔밥을 포장한다.
손가락에 낀 담배 한 개비가 보기 흉한 새아씨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일이 낮 설지 않은 곳
그래도
젊은이로 꽉 찬 다시 젊어지는 거리 젊음의 거리 종로 희망을 엮는다.
꿈이 영글다.